Piget me stultitia mea(나의 우둔함은 나를 짜증나게 해)
한 인간의 비전이 3,000년의 역사를 아우를 수 없을 때,
그는 미망의 어둠 속에서 헤메이면서, 그 시대의 한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
- 괴테
* * *
2주전 주말에 동네 도서관에서 (열람실에 앉아서 내가 가져간) 책을 읽다가 문득 칸트의『순수이성비판』이 생각나서 (도서실로 내려가서) 그 책을 찾아 펼쳐보게 되었다. 그건 순전히 쇼펜하우어 때문이었는데, 그의 책『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칸트 철학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전제'로 하고 쓰여진 책이었던 데다가, 더군다나 쇼펜하우어의 책을 다 읽고 나서까지도 정작 '칸트'의 그 어려운 책은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물론 대학1학년때 철학개론 과목을 수강하면서 레포트를 잘 써 볼 요량으로 그 책을 읽고 이해하려 무진 애를 쓰던 기억은 뚜렷이 남아 있다)
어쨌든 짧은 몇 시간 동안에 '칸트의 철학'을 얼마간 이해해 보겠다는 심보 자체가 헛된 욕심이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순수이성비판』의 서문을 30여 년 만에 다시 읽어보는 건 무척이나 '흥분'되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칸트의 그 책은 마침 '신착도서 코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는데, 내가 작년 12월에 그 도서관에 '기증한 책들'이 그 코너에 새로 비치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칸트'를 만나러 갔다가 '내가 기증한 도서'와 '칸트'를 한꺼번에 마주친 셈이었다.
내가 난생 처음으로 '기증한 도서들'은 그동안 '일정한 작업'을 거친 끝에 드디어 도서관을 찾는 일반인들의 손에도 들려질 수 있게 된 것이었는데, 그 책들이 내가 모르는 '남들의 손에 들려' 읽힌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아마 내가 맛본 감정은 책을 펴내는 작가들의 심정과도 비슷한 종류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어쨌든 몇몇 책들은 이미 '대출'이 되었는지 공간이 살짝 비어 있기까지 했다. 과연 어떤 사람들이 그 책들을 빌려볼까 몹시도 궁금해진다.
나는 여태까지 살면서 가끔씩 주위 사람들에게 책을 선물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공공도서관에 책을 '기증'해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기증'이라는 행위가 가져오는 이런 부수적인 효과와 묘한 감정상태는 나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내가 동네 도서관에 기증한 책은 '동서문화사 월드북 전집' 179권과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250권이었는데, 마침 동서문화사의 월드북 전집은 동네 도서관에도 불과 몇 권밖에 갖춰지지 못한 걸 미리 확인해 두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듯싶은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그 도서관에 비치되는 게 아니라 올해 새로 개관 예정인 인근의 신설도서관에 비치될 예정이라는 '연락'까지 받아놓은 상태여서, 내가 기증한 250권의 문학전집까지 내 눈으로 직접 살펴볼 수 있는 즐거움은 나중으로 미뤄놓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경우는 어쩌면 '신설도서관'에 더욱 어울릴 지도 모르겠다 싶다. 왜냐하면 새로 개관하는 신설 도서관의 경우 사정상 처음부터 여러 도서가 구색에 알맞게 제대로 갖춰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그런 신설도서관이라면 그나마 내가 기증한 책들이 아주 조금은 보탬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새로 생겨나는 도서관의 개관과 함께 내가 기증한 새 책들도 오랜 세월동안 그곳에서 함께 머물면서, 도서관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상상하니 그것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싶다.
1. 동서문화사 월드북 시리즈, 제1자료실에 비치된 모습(문학, 역사, 종교, 과학 등)
이 책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모습을 대하니 마치 이 책의 저자들이 '여기에' 다시 모여 있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우리 인류의 빛나는 정신적 유산을 남겨준 그 '인물들'에게 우선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하고 싶고, 또 저 걸작들을 '죽기 전까지' 모두 다 들춰 보고 읽어 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 본다.
2. 모비딕,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984년/동물농장, 백년의 고독, 노인과 바다 .....
3. 아라비안나이트, 율리시스, 전쟁과 평화, 역사의 연구, 로마제국쇠망사......
4.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마의 산, 월든, 테스, 제인 에어, 이방인, 돈끼호떼, 괴테와의 대화......
5. 동서문화사 월드북 시리즈, 제2자료실에 비치된 모습(철학, 정치학, 경제학)
6. 아리스토텔레스, 세네카, 아우렐리우스, 키케로, 베이컨, 몽테뉴, 홉스, 칸트, 쇼펜하우어......
7. 니체, 하이데거, 야스퍼스, 스피노자, 파스칼, 루소, 베이유, 오르테가 이 가세트......
그런데 저 많은 걸작들 가운데 정작 내가 지닌 책들은 (동서문화사 '월드북 시리즈'로는) 달랑 6권 밖에 안된다. 그렇지만 동서문화사가 아닌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월드북'에 해당하는 책들도 얼마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
8. 내가 지니고 있는 동서문화사 월드북 시리즈
9. 동서문화사 월드북 시리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전들 ①
10. 동서문화사 월드북 시리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전들 ②
11. 묵직한 몸무게를 지닌 '월드북 시리즈'에 해당하는 책들
(저 책들은 아직도 여러 권이 때묻지 않은 상태로 주인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12. '월드북 시리즈'는 그 가치에 걸맞도록 항상 책장의 맨 오른쪽 상단에 꽂아둔다(그곳이 상석이다)
13. 방문을 열고 들여다 보더라도 '가장 멀고도 높은' 맨 안쪽 창가에 배치
가끔씩은 이런 '주옥같은 고전'들을 이렇게 한번 쭉~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낄 때가 있다. 그리고 동네 도서관의 열람실에 앉아 (내가 가져간) 책을 읽는 동안에도, 가끔씩은 '괜스레' 도서실로 내려 가서 저런 두툼한 고전들을 가끔씩 들춰도 보고 어루만지며 '책이 주는 즐거음'을 느껴 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고전 속에 담긴 이런 저런 구절들을 우연히 스치듯 마주치며 읽으면서 마치 그 책의 저자들과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은 '느낌'까지도 들 때가 있는데 그런 즐거움은 '훌륭한 고전들이 어느 정도 갖춰진 도서관'이 주는 독특한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이 책들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길동무이다. 한번 당신의 내부에 자리 잡으면,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당신의 내부에서, 외부에서, 그리고 대인관계에서 꾸준히 작용한다. 우리가 친구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면 서두르는 법이 없듯이, 이 책들도 서둘러 읽어서는 안 된다. 이 리스트는 '단번에 슥 훑어보는" 그런 리스트가 아니다. 엄청나게 풍요로운 의미가 담겨 있기에 평생에 걸쳐서 캐내야 하는 광산 같은 것이다.
- 클리프턴 패디먼, 『평생독서계획』中에서
그리고 틈날 때마다 그 '광산'에 들어가서 열심히 곡갱이질을 계속 하다가 보면 나도 모르게 '삶의 여러 예속'으로부터 조금은 더 멀리 벗어날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우리는 여기 이 순간의 세상에 집착하는 예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 내에서 우리의 위치가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비록 명확하게는 아닐지라도-깨달을 수 있다. 우리가 저 오랜 인류의 역사로부터 어떻게 하여 이 세상에 오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위대한 사상들을 무의식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 또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사항으로서, 고매한 사상과 느낌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
- 클리프턴 패디먼, 『평생독서계획』中에서
그리고......
이런 책들을 나이 오십이 넘도록 '반의반'도 읽지 못한 나 자신을 돌아보면 문득 '짜증'도 나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너그럽게 나 자신을 바라 본다면 가끔씩은 나 자신이 대견스러울 때도 없지 않아 있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자기 자신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Piget me stultitia mea(나의 우둔함은 나를 짜증나게 해)." 그리고 한참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Ego mihi placui(그래도 나는 나 자신이 대견스러워)."
좋은 책은 좋은 사람과 비슷한 점이 많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잘 알 수 없듯이 책도 한 번 읽어서는 잘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여러 번 되풀이하여 읽는 과정에서 그 책을 잘 알게 되고 그리하여 아주 가까운 친구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가 없으면 더 이상 삶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마저 갖게 된다.
-『평생독서계획』, '역자의 글' 中에서
<2012년 2월 현재까지 내가 읽은 고전 가운데 '동서문화사 월드북 시리즈'와 겹치는 책들>
(다른 출판사의 판본을 통해 읽은 책들이 많지만 '월드북 시리즈'의 이미지와 상품으로 표시해 본 것임)
14. 나름대로 '우선순위'를 고려해서 노트에 적은 '읽고 싶은 책 목록'
(비록 진도는 느리지만 한 권 한 권 꾸준히 읽다 보면 언젠가는......하는 희망을 가져 본다)
내가 하루가 멀다 않고 줄기차게 쏟아져 나오는 '재미있는 신간들'을 애써 외면하고 유별나게 '고전'을 찾아 읽으려고 애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또 읽기 힘든 '고전들'이 대부분인 '동서문화사 월드북 시리즈'와 같은 책들을 굳이 지역 도서관에 기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고전이 지니는 불멸의 가치'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끝으로 '한 권의 책'에 대한 소로우의 인상깊은 글을 인용함으로써 잡다하고 두서없는 내 글을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싶다.
한 권의 책과 새로운 기원
모든 책이 다 독자들만큼 따분한 것은 아니다. 어떤 책에는 어쩌면 우리의 현 상황에 딱 들어맞는 말들이 들어 있을 가능성도 크다. 만약 우리가 이 말들을 정말로 듣고 이해할 수만 있다면 아침이나 봄보다 우리의 삶에 더 큰 활력을 줄 것이며, 우리에게 사물의 새로운 측면을 보여줄지 모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 권의 책을 읽고 자기 인생의 새로운 기원을 마련했던가! 우리의 기적들을 설명해주고 새로운 기적들을 계시해줄 책이 어쩌면 우리를 위하여 존재할 가능성은 크다. 지금 내가 말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어느 책에 표현되어 있을지 모른다. 우리를 당혹하게 하고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며 우리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문제와 똑같은 문제들이 일찍이 모든 현명한 사람들에게도 제기되었다. 한 문제도 빠짐없이 말이다. 그리고 이들 현인들은 저마다 이 질문들에 대해 해답을 제시했다. 자기 능력에 따라, 또 자기 고유의 언어와 생활 방식으로.(P155)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中에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