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의 봄은 신학기, 낯선 친구들, 새로운 선생님, 학교길에 피어 있는 개나리 꽃들과 함께 왔다. 오늘 점심시간엔 어떤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밥을 먹어야 하나 하는 고민. 뭔가 어색하지만 새롭기도 한, 생경함과 호기심이 뒤엉켜 있던 그 시절의 봄.
중고생 때의 봄은 입시가 점점 가까워 진다는 압박감과 함께 왔다. 이번 학년에서는 기필코 공부 좀 열심히 해봐야 겠다는 결심과 어김없는 실패(-_-)를 되풀이 했던, 사춘기의 왕성한 감수성과 혈기를 억지로 억눌러야만 했던 메마르고 단조롭던 그 시절의 봄.
대학시절의 봄은 긴긴 겨울방학을 끝낸 캠퍼스의 기지개와 함께 왔다. 곳곳에 붙어 있던 대자보며, 홍보 벽보들. 파릇파릇한 신입생, 수강 신청, 갖가지 환영회, 동문회, 동아리 모임, MT, 잦은 술자리. 봄을 빙자해 젊음만 앞세우던 그 시절의 봄.
한동안의 봄은 청첩장과 함께 왔다. 스토브리그를 마치고 긴긴 페넌트레이스를 시작하는 프로야구마냥, 그렇게 올 시즌도 시작되었구나. 올해는 몇 명이나 가려나. 주말마다 지인들을 신혼의 세계로 떠나 보내야 했던 그 시절의 봄.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봄은, 그저 얇아진 옷차림과 더이상 시리지 않는 무릎(-_-), 그리고 절대 반갑지 않은 황사와 함께 온다. 정신 없이 살다가 달력을 쳐다보고 나서야 깨닫는 봄.
냉난방이 잘되는 사무실과 아파트숲에서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갈수록 계절의 의미는 퇴색되어 간다. 간혹 주위에서 계절을 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철이 없다는 둥, 팔자 좋다는 둥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지 않았던가. 적어도 올해에는 철없고 팔자 좋다는 소리를 들어도 좋으니 긴긴 겨울을 보내고 기적처럼 다시 돌아온 이 봄을. 맘껏 느껴 보고 싶다.
간 밤에 땅을 촉촉히 적신 비를 보니 완연한 봄이다.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