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10명의 멤버로 구성된 "조직"이 하나 있다.

짧게는 15년, 길게는 25년을 만나온 어릴적부터 몰려다니면서 어울리던 소위 "동네 친구"들의 모임이다. 어느덧 10명중  8명이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렸고, 7명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직장 생활, 사업 등을 하며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해마다 송년회를 하면 의례히 서울로 장소가 결정되었고 고향이나 고향 근교에 살고 있는 친구들은 그래도 이 참에 친구들 얼굴이나 보자며 홀홀 단신으로 서울까지 올라오곤 했다.

그리하여 올해는 모든 친구들이 가족을 동반해서 참가할 수 있도록 좀 거창하게 송년회를 계획했다. 토요일, 일요일 이틀을 잡고 서울과 광주의 중간지점 쯤인 안면도로 1박 2일 단체 여행을 계획한 것이다. 각자 하는 일들도 다르기에 직업적인 사정도 있을 것이고 일요일엔 종교 활동을 하는 가정들도 있으니 많은 참여가 쉽지 않은 계획이었지만 친구 좋다는게 뭔가. 결국 10명 전원, 모든 가족들과 자녀들이 안면도에서 모이게 되었다. 10명의 남자들과 8명의 아내들, 그리고 8명의 자녀들까지.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야 바람같이 연락해서 하룻 저녁 모여 놀기도 하지만 모든 정회원과 그 가족들까지 다 아우르는 모임은 우리가 정식으로 회비를 걷기 시작한 이후 8년여만에 처음인 듯 하다.

10여년 전 다들 총각이던 시절에는 여기 저기 어울려 놀러도 많이 다니곤 했었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한사람, 두사람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게 된 후로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이렇게 다시 단체로 여행을 간다는 사실에 만사에 무덤덤하던 내가 놀랍게도 마음이 설레고 있다. 설레는 마음은 다들 마찬가지인지 며칠전 부터 우리들이 모이는 게시판은 난리가 났다. 너는 축구공을 준비해라.. 우리는 장을 봐 오마. 카메라 당번은 누구냐. 토요일날 점심은 어디서 먹을거냐.

회사에서 워크샵을 가는 일도 많을 것이고, 가족들끼리 종종 여행을 하는 경우도 많을 터인데 오랜 친구들과의 모처럼만의 여행이라는 그런 기대감이 우리들을 어린 시절로 되돌려 놓은 듯 하다.

30대 중반, 어쩌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바쁜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회사일에 치이고 아직 어린 아이들일 자녀들 양육에 치이고 부모님에게도 가장 잘 해 드려야 할 시기. 험난한 생존경쟁의 한 해를 무사히 보내고 또 닥쳐올 내년 한 해를 별 탈없이 잘 넘기기 위해 비장한 각오를 다져야 하는 우리들. 모든 근심을 잊고 어린 시절의 그 순진했던 마음으로 놀다 오리라.

내일 모레 토요일. 날 받아 놓고 이렇게 손 꼽아 기다려 본것이 얼마만이더냐. 기다려라 친구들아. 안면도 앞바다에서 잊었던 우리의 혈기를 불태워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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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꼬 2004-12-16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부럽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친구 모임이 있긴 하지만,, 10명 정회원으로 똑 부러진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아주 가끔씩 모이고 친구들 중에서 친한 사람도 있고 아닌 애들도 있고 그래서 지금은 많이 흐지부지되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만 해도 학교 다닐 때 친구들 모임을 30년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오시는 것을 보니 부럽기만 하더이다. 저도 뭔가 조직을 해야 하는데 말이죠.... 아무튼 반갑습니다. 어찌 흘러 흘러 이곳까지 왔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oldhand 2004-12-16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림님 반갑습니다. 몇 번 다른 분들 서재에서도 뵙고 서림님 서재에도 몇 번인가 가본적이 있음에도 게으름이 병인지라 먼저 인사를 드리지 못했네요. 양희은의 앨범에 대한 리뷰는 아주 재미있게 봤답니다. ^^ 저도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__)

oldhand 2004-12-16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조직원들이 워낙에 어렸을 때 부터 생업을 제쳐두고 놀기를 즐겨하던 무리들이라서요. 이럴때는 단합이 잘 된답니다. ^o^ 다만 아직 철이 없어서 아저씨들이 모여도 맨날 게임방이나 가고 당구나 치고 그러지요.. 철이 없어서 건전해 보이기도 합니다만 핫핫.

하얀마녀 2004-12-16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설레임 알 것 같습니다. 재미나게 쉬다 오셔요. ^^

oldhand 2004-12-16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하얀마녀님도 송년회 등등으로 바쁜 연말 잘 보내시와요. ^^

파란여우 2004-12-16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면도에 오시면 동북방향으로 반짝이는 여우꼬리털 별자리를 보시면서 저를 생각해 주심이...^^

날개 2004-12-16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 맞는 친구들을 그렇게 유지해 오시다니.... 부럽습니다..^^

밤에 아이들과 불꽃놀이도 괜찮은데... 준비 많이 해가서 즐겁게 놀다가 오세요~

로드무비 2004-12-16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면도에 가서 뭘 먹었더라?

우선 먹는 것부터 생각하게 되네요.

맛있는 것 많이 드시고 아주 흐드러진 시간 보내고 오세요.

제가 다 가슴이 설레네요.^^

미완성 2004-12-17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면도 앞바다에 혈풍이 휘몰아치겠군요.

강호에 숨어있던 무림고수들이 날을 잡아 다 모였으니..*.*

부디 그 혈풍을 즐거이 잠재우고 돌아오세요~

oldhand 2004-12-17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아! 그러고 보니 안면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여우님이 계시는 군요! 여우 꼬리털이 안면도 까지 날리나 잘 보겠습니다. ^^

::날개님/ 워낙에 놀기 좋아하는 친구들이라 잘 뭉친답니다. 다행히 아내들도 대개 결혼 전 연애시절부터 우리들을 익히 봐왔기 때문에 도움이 되더군요. ^^

::로드무비님/ 대하철이 지금은 끝났을까요? 맛있던데.. 뭐 조개구이나 해물탕이라도 먹을수는 있겠지요? 잘 먹고 잘 놀다 올랍니다. ^^

::멍든사과님/ 무림고수.... 절대 아닙니다. 애들이 다 순해 터져서 사실 제가 가장 어둠의 세력에 속하는 편이죠. 흐흐. 친구네 아이들 뒤치닥거리 하다가 끝날지도 몰라요. ^^

마태우스 2004-12-17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가슴이 설레는 걸 보니 참 좋은 조직인 듯합니다. 그런 조직만 있다면 세상이 살만할 텐데요^^ 즐겁게 놀다 오세요.

oldhand 2004-12-17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를 빼고는 다들 착한 녀석들이지요. 워낙 어렸을 때부터 만나던 친구들이라 1년만에 만나도 엊그제 같은 친구들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