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쯤에 추리 소설에 입문 했던 나는 그 이후 긴 시간에 걸쳐 꾸준한 추리소설 애호가였던 것은 아니다. 80년대 중후반, 크리스티에 빠져 지내느라 서점에 빼곡이 꽂혀있던 자유 추리 문고의 그 알찬 리스트도 외면했었고, 추종해 마지 않던 크리스티도 기껏해야 30여권을 읽고 그만 두어 버렸으니 말이다. 대학에 진학하고 회사를 다녔던 90년 대에는 주기적으로 미스테리에 관심을 가졌다 말았다 하는 시기였던 것 같다. 해문의 Q미스테리, 일신, 문공사 등 당시 구할 수 있었던 추리 소설들을 간혹 2-3권씩 읽고 또 멀어진채 1-2년을 보내곤 했던 그 시절. <관시리즈>는 운좋게 내가 추리소설에 잠깐 반짝 했던 시기와 출판시기가 맞물려 읽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리즈 6권 중 2권은 사지도 않았다.) 에드가 상 수상 작품집이나 도솔판, 한길사판, 새로운 사람들판 세계 미스테리 걸작선 등 앤솔로지들을 주로 사서 읽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2001년 여름, 우연히 본 신문기사에서 추리 소설 애호가들의 사이트를 알게 되고, 그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추리 소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건데, 그 시절은 한국의 미스테리 애호가들에게 지독한 암흑기였다.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문고판 추리 소설은 이제 절판의 길에 접어들던 시그마 북스 10여권 뿐이었다. (해문의 크리스티 전집을 예외로 한다면 말이다.) 이듬해 해문에서 Q미스테리의 복간에 해당하는 미스테리 걸작선을 다시 발간하기 시작하고 황금가지의 셜록 홈즈 완역판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추리 소설 출판은 르네상스를 맞이하게 된다. DMB의 복간은 그 결정판이 아니었을는지.
추리 소설 사이트들을 다니며, 텍스트 파일들을 받아서 읽고, 고수들의 희귀본 작품들에 대한 평을 읽으며 부러워 했던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많은 추리 소설들이 넘치게 출판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주었으면 하는 책들은 아직도 무수히 많지만 말이다.
오늘 Decca님의 하우미스터리 게시판에서 또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올 상반기중에 세이시요의 <옥문도>가 출판된다는 낭보.
<문신 살인사건>을 읽으며 이제 곧 나올 <옥문도>의 출간을 기다릴 수 있다니! 3-4년 전만해도 평생 이루지 못할 꿈인 줄 알았다. 그리고 이런 소식과 기대감에 흥분하는 걸 보니 나도 이제는 엄연한 추리 문학 애호가의 길에 접어든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