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7일이 예정일이었던 아내는 1월 14일에 때이른 진통이 왔다.
34주가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진통은 지나치게 이른 것이었기 때문에 자궁 수축을 억제하는 주사를 맞아가며 버티기에 들어가야 했다. 당시 아이의 체중은 겨우 1.9kg 밖에 되지 않았다. 열흘여의 입원과 일주일 요양, 다시 재입원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1월은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올 겨울중 가장 추웠다는 2월 1일 새벽 3시 반. 집에서 잠을 자던 나는 입원해 있던 아내로부터 양수가 터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드디어 길었던 비상 대기의 시간이 끝나고 D-day가 닥친것인가.
새벽에 병원에 도착하여 분만에 필요한 몇가지 수속을 마치고 아내와 나는 분만실에서 다가올 결정적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순조로운 진행을 보이던 산모에게 갑작스럽게 이상 징후가 발생한 것은 9시 30분 경.
140 ~ 150 정도가 정상인 아기의 심박수가 갑자기 50 전후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분만전 회진을 위해 잠깐 들른 아내의 주치의도 굉장히 놀라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바로 결정된 응급 수술. 불과 5분 전만 해도 정오경이면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는 기대와 흥분은 사라지고 나는 행여 아이가 잘못 될까 새파랗게 질린채 부들부들 떨면서 수술실로 실려가는 아내를 바라보며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있었다.
수술실에 들어간지 채 10분이 되지 않은 오전 9시 38분, 무사히 아기는 태어났다. 양수가 지나치게 많이 빠져나온 상태에서 탯줄이 발목에 감기며 눌리는 바람에 심박수가 떨어졌다고 한다.
36주하고 하루만에 세상에 나온지라 너무나도 조그많고 작은 여자 아이. 체중은 겨우 2.4kg에 지나지 않았다. 숨쉬는 것도 힘겨워 했던 아이는 3일간 인큐베이터 신세를 져야 했고 수술을 한 아내도 역시 일주일간의 입원을 해야 했다.
2월 7일 퇴원해 집으로 온 아이는, 이제 제법 우렁찬 울음 소리를 낼 줄 알고, 한밤중에도 2시간 마다 젖달라고 보채며 엄마를 잠 못들게 하는 건강한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2005년 2월, 나는 아버지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