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테토스의 인생을 바라보는 지혜 소울메이트 고전 시리즈 - 소울클래식 11
에픽테토스 지음, 키와 블란츠 옮김 / 소울메이트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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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2015-110

 

에픽테토스의 인생을 바라보는 지혜에픽테토스 / 소울메이트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사람답게 살면서 동시에 세속적인 영예를 추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인간다운 삶과 세속적인 영예 중에서 어느 하나를 추구하다 보면 다른 한 쪽은 반드시 무시할 수밖에 없다.” p.38

 

마음의 안과 밖이 전혀 상반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가 어느 순간 그 안과 밖이 바뀌는 경우가 있다. 안이 밖에 되고, 밖이 안이 되어버린다. 공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에서 한 순간 삐끗거림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남은 생에서 걸어가고 싶었던 길을 막아버린다. 혼자 그러다 말면 그만이다 생각이 들다가도 그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이 겪을 정신적 혼란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그런 일들을 바라보며 내 마음을 다시 추스르게 된다. 밖이 안이 되는 것은 그런대로 봐줄만 하나, 안에 들어앉아 있던 온갖 지저분한 것들이 밖으로 나오면 골치 아프다. 인간다운 삶과 세속적인 삶. 대부분 이 둘이 한 지붕 밑에 있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토굴 속에서 10년을 지낸다고 치자, 눈으로 안 보니까 세속의 그 현란한 것들이 모두 사라질까? 이미 내 안에 만들어진 세속의 잔상들은 어이할꼬. 하물며 세속도시에서 호흡하며 살며 차창 밖으로 창문 밖으로 수시로 출몰하는 세상의 유혹들을 이길 장사가 있을까? 단지 어느 한 쪽에 먹을 것을 많이 주느냐에 따라 차이가 날 것이다. 내 안의 양에게 먹이를 많이 주느냐, 호랑이에게 먹이를 많이 주느냐. 양도 양 나름이고, 호랑이도 호랑이 나름이겠지만 누구를 더 챙기느냐에 따라 그 몸과 마음이 달라질 것이다. 에픽테토스는 말을 짧게 하면서 담을 것을 다 담는데, 나는 그런 재주가 없다보니 쓸데없이 말이 길어진다. 그런데 양과 호랑이 이야기를 인용하다보니 이런 생각도 든다. 먹이를 준다고 꼭 강해지고 안 준다고 약해질까? 먹이를 안 주면 더 성질이 포악해지지 않을까? 막가파로 변할 가능성은 못 먹은 놈들이 더 하지 않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이 책은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Encheiridion)을 영국의 고전문학가 조지 롱이 1877년 영어로 번역한 것을 토대로 했다. 고대 철학자들의 가르침은 한 번 읽고 마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곰씹을 내용들이 많다. 에픽테토스는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 제논 등과 다소 다른 차이가 있다. 에픽테토스의 아포리즘은 인간의 실제적인 삶의 방향 설정을 해주는 특질을 갖고 있다. ‘엥케이리디온은 핸드북 또는 매뉴얼로 풀이한다.

 

 

에픽테토스로 대표되는 스토아 철학은 기원전 300년 경 제논에 의해 시작된 이후 약 500년 동안 그리스 로마 사회에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으로 널리 알려졌다. 스코틀랜드에선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이 담긴 교재를 학교 수업에 사용했다. 초기 기독교 저술가들 역시 기독교적 윤리의 틀을 구성하는 데 그의 가르침을 많이 원용했다고 한다.

 

 

근육 단련, 음식 먹기, 음주, 배변, 성 생활 등 육신과 관련 된 일에 너무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이러한 것들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할 수 있으니, 육신보다 마음에 더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라.” p.105

 

이 글을 읽다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이미 고인이 된 의료계 선배 중 한 사람이다. 음주가무에 특히 능했던 사람이다. 카드놀음도 좋아했다. 그들 부부사이는 짐작컨대 원만하지 못했다. 아내도 전문직 여성이었다. 주말이면 따로 놀러간다. 골프, 여행, 등산 등등 두 사람 다 각기 바쁘다. 선배가 어느 겨울 친구들과 스키를 타러갔다가 큰 사고를 당했다. 척추 골절상을 입었다.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다른 내과적 질병이 겹쳐져서 결국 사고 후 5년도 채 안 되어 이 땅을 떠났다. 이 세상을 떠나기 수 개 월 전에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병원으로 찾아갔다. 나에게 해준 말이 생각난다. “내가 내 몸을 너무 혹사시켰어. 몸 위주로만 살았어. 다치고 나서야 내 마음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어. 어쩔 수 없이 마음으로 마음이 돌아들어오더군. 아마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라도 붙들어 매어놓고 싶으셨나봐. 하도 마음 밖으로만 돌아다니니까...덕분에 그동안 서재에 꽂혀만 있던 책들을 얼추 다 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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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경전
해이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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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2015-108

 

눈의 경전해이수 / 자음과모음

 

 

마체르모(Machermo, 4,450m)를 떠나서 네 시간쯤 걸었을 때, 완은 얼굴에서 발라클라바를 벗겨냈다. 악천후에 안면을 보호하는 그것은 이미 습설과 콧물에 젖어서 얼음이 서걱거렸다. 고도 4,700미터 지점에서 눈은 전후좌우에서 휘몰아치고 땅에서도 솟구쳤다. 눈보라 속에서 사나운 채찍 소리가 들렸다. 강풍에 실린 눈발이 완의 뺨을 할퀴며 괴성을 질렀다.”

 

 

넌 그녀를 버렸어!”

 

이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완은 한발 한발 히말라야의 눈길을 헤치며 산을 오른다. 히말라야의 눈길을 헤맨 지가 며칠 째인지를 헤아려보니 벌써 열흘이나 되었다. 그는 어찌 이렇게 걷고 있을까? 그가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잊고자 하는 것은 또 무엇일까?

 

 

소설의 무대는 히말라야의 가파른 눈밭과 호주의 대학 강의실, 서울을 오가며 옮겨간다. 완은 히말라야의 산길에서 결국 지쳐 쓰러진다.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가까이 들리는 목소리는 따뜻하고 애틋했다. 그녀였다. 여인은 다가와 누워 있는 완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작고 부드러운 손으로 완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 여인은 완이 호주에 유학 중 만난 유밍이다. 중국에서 온 유학생이다. 완이 학교 강의와 과제물을 어디서 어떻게 이해하고 풀어가야 할지 갈팡질팡할 때 마치 구세주처럼 나타난 존재다. 완은 유밍 덕분에 학업의 중심을 잘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둘이는 연인사이가 됐다. 서른한 살의 완과 스물네 살의 유밍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순례의 길과 무지개

 

다시 히말라야. “영리하거나 힘이 센 것들은 순례를 하지 않는 법이다. 그런 힘든 여정에 오르지 않아도 자신의 영토 안에서 충분히 잘 살기 때문이다. 밥벌이에 하루하루가 고단한 부류도 고행을 하지 않는다. 일상 자체가 고행이기 때문이다. 죄를 지어 추방당했거나 거룩한 정신적 부담을 가진 자만이 순례를 선택한다.” 일면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완의 산행은 거룩하다고 표현할 정도는 아니지만, 모종의 정신적 부담임을 암시해주는 부분이다.

 

 

완은 히말라야 산정에서 무지개를 보고 싶었다. 그 무지개는 유밍도 보고 싶었던 무지개다. ‘이 봉우리에서 저 봉우리까지 하늘을 가로지르는, 아주 커다랗고 선명한!’ 무지개의 반대쪽이 내려앉는 그곳은 어디일까? 무지개라는 것이 한갓 나타났다 사라지는 존재일지라도 사람들은 무지개를 바라보며 감탄한다. 눈을 못 뗀다. 우리가 바라는 꿈과 희망이 어쩌면 무지개 같을지도 모른다. 사라져 버릴지언정 갖고 싶고, 이루고 싶은 그 무엇일지도 모른다. 유밍은 완과 함께 이뤄갈 꿈을 그 무지개에 싣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이 가교(架橋)역할을 해주리라 믿고 있었을 것 같다.

 

 

완이 히말라야에 온 것은 유밍과의 약속이다. “자신을 네팔까지 부른 중국 여인, 상대방은 까맣게 잊은 약속을 숨이 끊기던 순간까지 가슴에 품었던 사람...” 그녀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다. 함께 오기로 한 그 약속을 혼자라도 지키기 위해 완은 히말라야 행을 결정한 것이다. 완이 산을 오르는 것은 회상일수도 있다. 다시 쓰고 싶은 내면의 일기장일 수도 있다.

 

 

고통과 아름다움

 

“750도의 고열에서 하루 24시간 꼬박 열을 가해야 합니다. 그런 열기를 견뎌야만 이렇게 진실하고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만들어집니다.” 완이 유밍과 시드니의 한 예배당을 들렀을 때 스테인드글라스를 손으로 가리키던 성직자의 말이다. 하루 24시간 꼬박 열을 가해야 한다는 말에 시선이 머문다. 그 온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완이 유밍에게 묻는다. “왜 진실과 아름다움은 시련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걸까? 순서를 보면 고통이 먼저고 아름다움은 그 다음이야. 왜 아름다움이 먼저가 아니라 고통이 먼저일까?” 유밍이 답한다. “고통이 먼저고 아름다움이 나중이니까 그나마 고통을 견딜 수 있겠지. 만약에 아름다움이 먼저면 곧 다가올 고통의 두려움 때문에 그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느끼지 못잖아. 그러니까 그 순서가 맞는 거야.”

 

작가는 후기에서 스스로 묻고 답한다. 인간이 가진 최고의 덕성은 왜 고통의 순간에 발현될까? 다행스럽게도 그곳의 추위와 시련은 나를 전보다 조금은 선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눈보라 너머로 어떤 희미한 이야기가 보였다. 희미한 것을 선명하게 만드는 작업을 나는 중요한 과제로 받아들였다. 하늘은 중요한 일을 맡기기 전에 그 사람의 생각과 의지를 시험하므로 나도 이번에 시험 대상자에 속했을 것이다.

 

작가가 작가로서의 뜻과 의지를 어떻게 다져가고 있는가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백지에 그림을 그리듯,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작가라는 생각도 들지만 때로 드는 생각은 이미 누군가 진작 그려 둔 밑그림을 따라 선을 이어가는 것이라는 느낌도 전해진다. 마치 완이 걸어가던 그 눈길이 다른 이들이 남긴 발자국은 이미 사라졌지만, 그 길을 따라가듯이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 문학이고, 예술이다.

 

 

당신이 만든 물결이 결국 당신에게 돌아올 거예요

 

완이 히말라야 산행의 막바지에서 만난 빠모. 그녀는 영국 출신이다. 텐진 빠모(일종의 구루)가 된 서양 최초의 여성이다. 이십대에 인도에서 스승을 만나 티베트의 수도원에서 서원한 뒤 히말라야 13,000피트의 동굴에서 혼자 12년간 수행하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빠모는 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꿰뚫어보듯 한 마디 한 마디가 완의 가슴에 콕 박힌다. 아마도 작가는 빠모의 입을 빌어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이 우주는 말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광대해요. 그러나 아무리 광대해도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어요. 그 누구도 이 연결에서 제외되어 있지 않죠.(.....) 지난 일을 후회 할 때도 있겠지만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당신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존재 할 수 있어요.(.....) 선택을 하면 책임을 져야 해요. 책임에서 도망치려 할 때 불행에 빠지고 말죠. 이 우주는 잊는다는 것을 몰라요. 당신이 매 순간 선택할 때마다 우주는 지켜볼 거예요. 앞으로는 지옥보다 천국을 택하세요. 당신이 만든 물결이 결국 당신에게 돌아올 거예요.”

 

 

작가 해이수. 내가 주목할 작가의 명단에 올린다. 깊은 울림이 있는 글을 쓰는 작가다. 실제로 히말라야를 다녀왔다고 한다. 몇 해 전, 쿰부 히말라야의 대폭설 기간에 그는 그곳을 걸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때 떠오른 그의 상념 중 관계는 상처를 먹고 성장한다는 말에 지극한 공감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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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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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2015-107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데이비드 실즈 / 문학동네

 

 

삶의 마지막 순간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나는 자연스럽게 죽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병원이 아니고 집에 있기를 바라며 어떤 의사도 곁에 없기를 바란다. 의학은 삶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고,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니까.” 미국의 경제학이자 정치학자 스코트 니어링은 100세 되던 해 스스로 음식 섭취를 끊고 그의 유서에 적힌 소원처럼 또렷한 정신으로 죽음을 맞이했다고 전한다. 복에 대한 정의는 각기 다르겠지만, ‘복 받은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언뜻 든다. 또 한 가지 의사와 의학에 대한 냉소적인 견해는 맞는 말이기도 하고, 좀 지나친 감도 있다. 의료 일선에서 환자들의 질병과 주야로 씨름하는 의료진들이 들으면 서운할 이야기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스코트 니어링의 말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의학이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삶과 죽음이 아니라, 건강함과 그렇지 못함, 살아있음과 그렇지 못함 정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음을 주제로 한 책은 별로 인기가 없었다. ‘을 주제로 한 책들은 그나마 손길이 닿지만, ‘죽음을 미리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결국은 살아감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부터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분위기다. 죽는 것은 여전히 두렵지만, ‘죽음이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이 다소 완화된 듯하다는 말이다.

 

 

언젠가 죽는다

 

이 책의 제목은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이다. 우리는 모두가 죽는다라고 붙이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제목만 봐서 깊이 있는 인문학 서적 같다.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해서 책의 내용을 이해하려다 죽을 정도일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오히려 가볍다. 책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는 부분도 있다. 노화와 죽음을 이해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준다.

 

 

예술학 석사이자 영문학과 교수, 소설가, 에세이스트로 소개되는 지은이는 의학이나 생물학 쪽은 별도의 코스를 거치지 않은 듯한데, 인간의 탄생과 사멸에 이르는 단계를 신뢰할 만한 자료와 데이터를 인용해가며 독자에게 유익한 정보를 전해주고 있다. 죽음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삶을 말해야 한다. 마치 어두움을 설명하기 위해서 빛이 필요하듯이..

 

 

생명의 탄생

 

한 판 시합을 해보자. 내 이야기 대 내 아버지의 이야기. 이것은 내 몸의 자서전이고, 내 아버지 몸의 전기(傳記)이고, 우리 두 사람 몸의 해부학이다. 내 아버지의 이야기이고, 아버지의 지칠 줄 모르는 몸 이야기다.” 글의 중심엔 지은이가 생존기계라고 이름 붙인 97세의 아버지가 버티고 있다. 아무리 100세 시대를 바라본다 할지라도 97세의 영감님은 아직 흔치않은 존재이긴 하다. 지은이도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있나보다. 그래서 이렇게 죽음에 관한 자료를 쏟아 부어 아버지를 매장하려나보다. 왜 나는 아버지에게 한시 바삐 수의를 입히지 못해 안달인가? 아버지는 강하고, 아버지는 약하며,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나는 아버지를 미워하며, 아버지가 영원히 살았으면 좋겠고, 아버지가 내일 당장 죽었으면 좋겠다.” 이 문장만 보면 지은이가 이상성격자가 아닌가 의심을 가질 사람도 있을법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지극히 정상이다. 너무 솔직해서 탈이다.

 

글은 유년기와 아동기부터 시작해서 노년기와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성장과 쇠퇴의 과정을 주관적(자신과 자신의 가족, 이웃이야기), 객관적(자료와 데이터)으로 이어간다. 아울러 유머러스하다.

 

태아는 엄마의 자궁 속에 얌전히 앉아 엄마가 먹여주기만 기다리지 않는다. 태아의 태반이 엄마의 조직에 혈관을 뻗어 공격적으로 침투해서 영양소를 뽑아낸다.” 나무뿌리는 물줄기를 찾아 필사적으로 손을(발인가?)뻗힌다. 태아나 나무뿌리나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생존은 전쟁이다.

 

성장

 

성장기는 어떤가? 성장기 자녀들을 두고 있는 부모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유익한 글들이 중간중간 실려 있다. 출생에서 청소년기로 가는 성장은 서로 다른 두 단계에 따라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출생 후 2년까지의 기간으로, 급격하게 성장하지만 성장 속도는 감속하는 단계이다. 두 번째는 2세부터 사춘기가 시작될 때까지로, 매년 일정하게 성장하는 단계이다.” 성장 과 노화에 대한 스토리엔 빠짐없이 평균수치가 이어진다. 책 제목과 달리 살아있음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치 아이들이 별로 안 좋아하는 식재료이긴 하나 꼭 먹이고 싶을 때, 슬그머니 다른 식재료와 혼합해서 먹이듯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리고 준비해야 할 죽음

 

죽음은 삶이라는 임시직 후에 찾아오는 상근직이라는 말에도 공감한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고통 속에 태어나고, 자신의 고통 속에 죽어간다.’ _프랜시스 톰프슨. ‘걷는 것은 넘어지지 않으려는 노력에 의해서, 우리 몸의 생명은 죽지 않으려는 노력에 의해서 유지된다. 삶은 연기된 죽음에 불과하다.’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독설가답다.

 

어떤 나이에 머물러 영원히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몇 살이기를 택하겠는가?를 물었더니18~24세는 27. 25~29세는 31. 30~39세는 37. 40~49세는 40. 50~64세 사이는 44. 그리고 64세를 넘은 사람들은 59세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30, 40대에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많다. 지은이는 30~40대에 고인이 된 유명인들(작가, 예술가등)을 천연덕스럽게 집어넣어 이 사람들도 이렇게 갔지만, 우리 기억에 계속 남아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모차르트는 35세에 죽었다. 바이런은 36세에, 라파엘로와 고흐는 37세에 죽었다

 

 

마지막 한 마디

 

내가 이 땅을 떠나면서 딱 한 마디만 하라고 하면 무슨 말을 할까? 바라는 것은 한마디라도 제대로 남기고 떠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명료하다면 다행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팔 저 팔에 링거를 꽂고 산소마스크를 하고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다 가는 모습은 진짜 싫다.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긴 하다. 지금 그러고 누워 있는 사람도 절대 스스로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책 속에 인용된 유언중에서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내가 가진 모든 것은 한순간의 것이었다.’ 에스파냐의 왕 펠리페 3세는 이런 말을 남겼다. ‘통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좋았을 것을, 내 왕국에서 살아온 세월을 자연 속에서 고독하게 살았다면 좋았을 것을. 오직 하느님과 함께 지냈다면 좋았을 것을. 그랬더라면 얼마나 평온하게 죽었겠는가. 얼마나 당당하게 하느님 권자 앞에 나아가겠는가. 죽음 앞에 더 큰 고통을 겪을 것이라면 그 모든 영광과 재물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미국의 소설가 헨리 제임스는 이렇게 말했다. ‘마침내 그것이 왔는가, 그 유명한 것이..’ 미국의 풍자만화가 제임스 서버의 말을 들어본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젠장’. 평생 금주가였던 스코틀랜드의 과학자 제임스 크롤은 한 모금만 마시겠습니다. 이제는 술 마시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겠지요.’

 

이 책을 어디로 분류시킬까? 인문학쪽도 아니고, 과학(생물)분야도 아니고, 성장에세이도 아니고, 지은이의 표현처럼 파괴적 논픽션(?)’ (창조적 논픽션과 반대되는). 노화와 죽음이 건포도 식빵의 건포도처럼 박혀 있지만, 어쨌든 재미있다. 책을 읽다보면 후반으로 갈수록 떠날 준비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사그라지는 불빛을 생각한다. 이 땅에 살아가면서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바로 죽음을 상대하는 일이 그렇다. 갈 땐 가더라도 살아 있는 동안 그 불빛을 잘 유지하다가 훅하고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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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것들 - 슬프도록 아름다운 독의 진화
정준호.박성웅 외 지음, EBS 미디어 기획 / Mid(엠아이디)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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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2015-105

 

독한 것들박성웅 · 정준호 외 / EBS MEDIA 기획 / MiD (엠아이디)

 

 

인간 사회에선 너무 이기적으로 강해도 탈이다. 뒤통수에 부딪는 말이 있다.“독한 것”  독한 것도 독한 것 나름이다. 선한 뜻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채찍질하는 착한 독함이 있는가 하면 인륜을 저버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부딪히고 싶지 않은 나쁜 독종도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

 

생태계로 가본다. 생물의 진화를 두고 볼 때 그 요인은 여러 갈래로 해석되지만, 결국은 생존이다. 살아남기 위해 변화가 이뤄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 세상이 점점 살기 힘든 곳으로 바뀌고 있다할지라도, 그래도 그 중 낫다. 아직은 변화를 위해 목숨까지 내 놓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EBS 다큐 프라임 진화의 신비, 을 편집해서 출간한 이 책에선 역시 ()’이 주제다. 생태계에서 독은 특이하다. 제작자들은 여러 의문을 갖고 시작했다. 독이란 무엇인가? 왜 독을 가진 생물들은 자신의 독에 안전할까? 이들이 독을 가지도록 한 진화의 힘은 과연 무엇일까?

 

 

독을 생각하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난다. 논어<선진편(先進篇)>에 나오는 말이다. 중용(中庸)이 중요함을 이르는 말이지만 독도 독 나름이고, 정도의 차이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1g으로 1천만 명을 죽일 수 있다고 하는 치명적인 미생물 독소인 보톨리누스 독소는 아주 적은 양을 정확하게 사용하면 경련이 일어나는 증상에 효과적이다. 성형외과에서 효자 역할을 든든히 잘 하고 있다는 것은 전 국민이 다 안다.

 

 

독성학

 

여태껏 독()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느냐? 어느 정도 끼치느냐? 해독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수준이었다. 독성학의 연구와 개발이 진척되면서 이제껏 추정 이론으로만 기록되었던 생태계 독소, 독성들의 정체가 밝혀지고 있다. 독을 제대로 아는 것은 의외로 수확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생태계를 깊이 이해하는 계기도 되기 때문이다.

 

 

식물은 살아남기 위해 독을 사용하고, 동물은 그 독을 이용하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독은 잔인하지만 아름다운 진화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독의 생태계는 엄혹한 자연 속에서 평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이기심

 

문제는 평형을 유지하던 독의 생태계에 교란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편리성으로 어느 특정 종자를 없애기 위해 좀 더 독한 어느 것을 인위적으로 투입하면서 오는 현상이다. 국내에선 식용개구리가 바로 그 녀석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사탕수수두꺼비는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사탕수수두꺼비의 강력한 독에 오스트레일리아 토착 동물들은 끔찍한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한다. 남미의 습지에 살던 그 두꺼비들이 어떻게 그곳에 왔을까? 그 이유는 인간의 개입 때문이다. 사탕수수밭의 해충, 딱정벌레를 퇴치하겠다고 도입한 사탕수수두꺼비, 인간의 이기심으로 시작된 외래종의 유입은 스스로 평형을 유지하던 독의 생태계를 뒤흔들고 있다. 어설픈 인간의 개입은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책은 독은 무엇인가?’를 시작으로 독한 생존을 이어가고 있는 독화살개구리, 상자해파리, 바로 앞에 이야기한 사탕수수두꺼비, 바다뱀 등등 수없이 많은 그리 친밀하지 않은 생물들이 소개된다. 끼리끼리 독한 라이벌들도 소개된다. 마지막으로 인간과 독을 통해 인간세상에서 이 활용되는 여러 사례를 들고 있다.

 

 

영감의 원천,

 

분위기를 좀 바꿔서 독이라는 주제가 문학적이고, 실용적이라는 이야기는 어떨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엔 마녀들이 묘약을 만드는데 그 중심엔 독()이 있다. 고대 그리스에선 매년 다산의 여신인 데메테르를 기리는 엘레시우스 제전을 치렀다. 엘레시우스 제전에선 키케온이라는 음료를 마시고 강력한 환각효과와 미래에 대한 계시를 받는 것이 중요한 의식 중 하나였다. 키케온은 물과 보리, 향신료를 섞어 만드는데, 오늘날의 학자들은 맥각에 오염된 보리를 일부러 집어넣어 환각을 유도하며 집단 구성원들의 결속력을 다졌던 것으로 추측한다. 오늘날에도 맥각에서 추출한 물질은 마약류 중 가장 강력한 환각제로 쓰이고 있다. 바로 LSD이다. 오늘은 금요일. LSD까지는 안 가더라도 날도 더워지고 불금이다. 치맥과 함께 할 사람들이 많을 듯. 맥각이라는 단어 때문에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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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야기 2015-103

 

오베라는 남자프레드릭 베크만 / 다산책방(다산북스)

 

 

까칠남

 

오베는 59세다. 그는 사브를 몬다. 그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의 사람이 있으면, 마치 그 사람은 강도고 자기 집게손가락은 경찰용 권총이라도 되는 양 겨누는 남자다.” 로 시작된다. 이 첫 문장을 보며 좀 염려가 되었다. 오베라는 이 까칠한 남자가 과연 나랑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소설을 읽던 중 맘에 안 들어서 책을 덮어버리면 어쩌지. 더러 신경을 안 쓰이게 만드는 사람도 피곤 할 때가 있는데 하물며 맘에 안 드는 말과 행동을 일삼는 사람을 굳이 만날 필요가 있을까?

 

까칠하기로 따지면 나도 만만치 않다. 며칠 전엔 모 인터넷 서점 블로그 담당자가 하도 느슨해서 한마디 세게 해주었다. ‘정 관리할 능력이 안 되면 그만두라, 내가 좀 심하긴 했다. 그 담당자에 대해선 아는 바가 전혀 없다. 처음엔 좀 바빠서 그러려니 이해했다. 그러나 계속 지켜보니 바쁜 것이 문제가 아니라, 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담당자는 엄청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그 점에선 미안하게 생각하나 순수하게 그 인터넷 서점을 아끼는 마음이 컸다고 나 스스로 합리화시킨다.

 

좀 느긋하게 살면 좋지 않아요?”

 

오베가 직장 생활 말년에 자주 들은 이야기다. 어지간히 마음에 서운했나보다. 소설 초반에 몇 차례 반복된다. 일자리 부족과 그로 인한 나이든 세대의 은퇴가 거론되면서 젊은 친구들이 오베 들으라고 하는 말이다. 한 세기의 3분의 1을 한 직장에서 보낸 사람(거의 그렇듯이)이 하루아침에 빌어먹을세대가 된 것이다.왜냐하면 이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31세이고, 너무 꽉 끼는 바지를 입으며, 더 이상 제대로 된 커피를 마시지 않기 때문이다. 책임을 지길 원치도 않는다.” 그리고 조금 느긋하게 사는 것도 좋을 겁니다’, ‘여유를 가지세요가 인사다. 이젠 집에 가서 푹 쉬라는 말이다.

 

 

흑백과 컬러

 

당신이 없을 땐 하루 종일 집이 너무 넓어져. 자연히 그렇게 돼. 살 수가 없다니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다야.” 아내가 어딜 갔나? 어째 아이들 이야기는 하나도 안 나오지? 이 무똑뚝한 사내가 한 여인을 만나 가정을 꾸린 것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다. 오베는 아내의 친구들이 자신과 결혼한 그녀를 이해 못 한다는 걸 잘 안다. 그리고 그들을 탓하거나 비난을 못한다. 사실이니까. 오베는 흑백으로 이뤄진 남자였다. 반면 그의 사랑스런 아내 소냐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그가 가진 색깔의 전부였다. 오베는 유용한 물건들을 좋아했다. 소냐는 사랑스러운혹은 가정적인것들을 좋아했다. 거의 그렇게 살긴 한다. 간혹 유용사랑사이의 분별력이 없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좀 지켜봤더니 오베의 아내 소냐는 이 세상에 없다. 소설은 오베의 현재와 아내 소냐의 회상 사이를 오간다. 누군가를 잃게 되면 정말 별난 것들이 그리워진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 미소, 잘 때 돌아눕는 방식, 심지어는 방을 새로 칠하는 것까지도..” 누군가가 그에게 묻는다면, 그는 그녀(소냐)를 만나기 전까지 자기는 결코 살아있던 게 아니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녀가 죽은 뒤에도. 오베의 우직하고 변함없는 사랑에 경의를 표한다. 부조화속의 조화다. 소냐가 죽기 전에 어디 레스토랑에라도 같이 가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을 다시 쳐다본다.어떻게 저 여인은 저런 남자하고?” 오베는 그 시선을 느끼면서 오히려 더 당당하다. 소냐가 오베를 만나기 전에 그녀의 인생에서 무조건적으로 사랑했던 것은 딱 세 가지였다. , 아버지, 고양이. 소냐가 오베를 만나기 시작했을 때 소냐에게 오베는 결코 뚱하지도 거북하지도 까칠하지도 않았다. 그녀에게 그는 (둘만의)첫 저녁 식사 테이블에 올라 있던 살짝 부스스한 분홍색 꽃이었다.그는 정의와 페어플레이와 근면한 노동과 옳은 것이 옳은 것이 되어야 하는 세계를 확고하게 믿는 남자였다. 훈장이나 학위나 칭찬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래야 마땅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종류의 남자들은 이제 더 이상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소냐는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이 남자를 꽉 잡았다.” 소냐가 꽃으로 비유했으니 오베를 천연기념물 감으로 표현해야겠다. 결국 그는 어째서 그가 그녀의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남자인지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을 때, 어떻게 자기가 그녀의 사랑을 얻게 되었는지를 또렷이 이해하게 되었다.

 

 

원칙 대 원칙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혼자(16세 때)되어 거의 고아처럼 성장한 오베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우직함이 붙는 성실성과 정직성을 물려받았다. 아버지가 죽고 난 뒤로, 그는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더욱 더 구별했다. 아울러 실천하는 사람과 말만 하는 사람들을 구별했다. 오베는 점점 더 할 일을 찾아서 나섰고, 말을 줄이고 더 실천을 했다. 오베의 삶의 철학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원칙이다. 때로 그 원칙 때문에 많지도 않은 친구나 이웃과 불편해질 때도 있지만, 그에겐 삶의 매뉴얼 같은 원칙이 있다. 오베가 맞서는 원칙이 있다. 바로 관료들의 원칙이다. 탁상공론, 실적위주의 원칙들이다. 소설에선 시의회의원, 복지담당 직원 등 관료, 공직자들이 등장한다. 오베에겐 그들의 모습이 단 하나다. ‘하얀 셔츠’. 그들과 성격이 다른 확고한원칙이 오베 안에 있다. 그리고 그들과 싸운다. 거의 전쟁이다. 한편, 오베는 현 시대에서 낀 세대이다.이 세상은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기도 전에 그 사람이 구식이 되어버리는 곳이었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무언가를 제대로 해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나라 전체가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범속함을 거리낌 없이 찬양해댔다.”

 

 

 

절대로 나약한 남자는 아니지만

 

오베는 눈을 감고 소냐를 생각했다. 그는 삶을 포기하고 죽는 종류의 남자가 아니었다. 그는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는 걸 원치 않았다. 하지만 이건 정말로 잘못됐다. 이 모두가, 그녀는 그와 결혼했다. 이제 그는 그의 목과 어깨 사이의 우묵한 부분에 그녀의 코끝이 닿는 걸 느끼지 못한 채 어떻게 인생을 꾸려가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것뿐이었다.” 오베는 빨리 소냐 곁에 가고 싶어서 몇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나는 당연히 실패 할 줄 알았다. 자살을 성공하면 나머지 소설분량은 어찌 메우려고. 어쨌든 사는 것도 힘들지만, 죽는 것도 쉽지 않다. 천장에 고리를 만들고 목을 걸었더니 끈이 끊어졌다. 그리곤 실패에 대해 연신 투덜대며 알츠하이머에 걸린 친구 집의 라디에이터를 고쳐주러 갔다. 달리는 열차와 충돌해서 소냐 곁으로 가고 싶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오히려 선로에 떨어진 어느 남자를 구한다. 차에 시동을 걸고 배기가스를 잔뜩 들여 마신 후 먼 길을 떠나려 했지만, 차의 배기가스도 차에서 미처 가시지 못한 채 옆집 젊은 남자를 병원에 데려가느라 바빴다. 그 뒤로도 한 번 더했다. 장총으로. 그러나 역시나 성공 못했다. 아마 소냐가 좀 천천히 오라고 하는 모양이다. 아직 더 할 일이 남았나보다.

 

 

 

문장력 강화를 위해

 

소설은 슬프게도 재밌지만 문장력 강화에도 좋은 모델이 된다. 소설가를 꿈꾸거나 문장력을 더욱 탄탄히 다져보고 싶은 이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맛깔스러우면서 깊이가 있는 표현과 작가의 섬세한 심리 묘사가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그녀는 말하는 걸 좋아했고 오베는 조용히 있는 걸 좋아했다. 돌이켜보면, 오베는 사람들이 서로 사이가 좋다고 말할 때 그들이 뜻하는 게 바로 그런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오베는 소냐가 하는 말을 꼼짝 않고 다 들어준다는 것이다. 너는 시끄럽고 나는 조용한 것 좋아하니 따로 놀자가 아니다. 이런 표현도 좋다.한때 가까울 수 있을 만큼 가까웠던 두 남자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 중 한명은 과거를 잊길 거부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오베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친구 루네를 방문했을 때. (고집불탱이 둘이 싸우고 한 동안 서로 안 만났다. 루네는 자기 아내 외에 반응을 보이는 인간은 오베 밖에 없다) 하나 더.사람들이 슬픔을 공유하지 않을 경우, 슬픔은 대신 서로를 더 멀리 밀어낼 공산이 크다.” 좋은 표현을 기억해두기 위해 포스트잇을 수십 개 붙였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하긴 처음이다.

 

 

마무리

 

더 이상 이야기하면 재미가 없다. 오베 - 멋진 사내다. 까칠하다고 피할 필요는 없다. 알고 보면 여린 사내다. 단지 미소 짓는 방법을 못 배웠을 뿐이다. ‘융통성을 어디에 써먹는 물건인지 모를 뿐이다. 그리고 오베 같은 인간은 점차 멸종 단계다. 이 소설은 인구 900만 명의 스웨덴에서 출간 즉시 70만부가 팔리며 유럽 전역에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이다. 생각해봤다.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 먼 그대가 아니고 바로 나와 내 이웃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오베가 고집만 세우고 까칠하게만 사는 것이 아니라 뚝뚝함 속에서 사랑과 베풂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그대가 오베 같은 사람을 만나면 그냥 한 번 웃어줬으면 좋겠다. 그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지 말일이다. 그도 웃고 있다. 속으로, 아니면 집에 가서 혼자라도 웃을 것이다. 오베식 표현으로 마무리한다. “빌어먹을, 울리긴 왜 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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