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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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2015-107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데이비드 실즈 / 문학동네

 

 

삶의 마지막 순간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나는 자연스럽게 죽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병원이 아니고 집에 있기를 바라며 어떤 의사도 곁에 없기를 바란다. 의학은 삶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고,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니까.” 미국의 경제학이자 정치학자 스코트 니어링은 100세 되던 해 스스로 음식 섭취를 끊고 그의 유서에 적힌 소원처럼 또렷한 정신으로 죽음을 맞이했다고 전한다. 복에 대한 정의는 각기 다르겠지만, ‘복 받은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언뜻 든다. 또 한 가지 의사와 의학에 대한 냉소적인 견해는 맞는 말이기도 하고, 좀 지나친 감도 있다. 의료 일선에서 환자들의 질병과 주야로 씨름하는 의료진들이 들으면 서운할 이야기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스코트 니어링의 말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의학이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삶과 죽음이 아니라, 건강함과 그렇지 못함, 살아있음과 그렇지 못함 정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음을 주제로 한 책은 별로 인기가 없었다. ‘을 주제로 한 책들은 그나마 손길이 닿지만, ‘죽음을 미리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결국은 살아감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부터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분위기다. 죽는 것은 여전히 두렵지만, ‘죽음이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이 다소 완화된 듯하다는 말이다.

 

 

언젠가 죽는다

 

이 책의 제목은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이다. 우리는 모두가 죽는다라고 붙이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제목만 봐서 깊이 있는 인문학 서적 같다.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해서 책의 내용을 이해하려다 죽을 정도일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오히려 가볍다. 책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는 부분도 있다. 노화와 죽음을 이해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준다.

 

 

예술학 석사이자 영문학과 교수, 소설가, 에세이스트로 소개되는 지은이는 의학이나 생물학 쪽은 별도의 코스를 거치지 않은 듯한데, 인간의 탄생과 사멸에 이르는 단계를 신뢰할 만한 자료와 데이터를 인용해가며 독자에게 유익한 정보를 전해주고 있다. 죽음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삶을 말해야 한다. 마치 어두움을 설명하기 위해서 빛이 필요하듯이..

 

 

생명의 탄생

 

한 판 시합을 해보자. 내 이야기 대 내 아버지의 이야기. 이것은 내 몸의 자서전이고, 내 아버지 몸의 전기(傳記)이고, 우리 두 사람 몸의 해부학이다. 내 아버지의 이야기이고, 아버지의 지칠 줄 모르는 몸 이야기다.” 글의 중심엔 지은이가 생존기계라고 이름 붙인 97세의 아버지가 버티고 있다. 아무리 100세 시대를 바라본다 할지라도 97세의 영감님은 아직 흔치않은 존재이긴 하다. 지은이도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있나보다. 그래서 이렇게 죽음에 관한 자료를 쏟아 부어 아버지를 매장하려나보다. 왜 나는 아버지에게 한시 바삐 수의를 입히지 못해 안달인가? 아버지는 강하고, 아버지는 약하며,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나는 아버지를 미워하며, 아버지가 영원히 살았으면 좋겠고, 아버지가 내일 당장 죽었으면 좋겠다.” 이 문장만 보면 지은이가 이상성격자가 아닌가 의심을 가질 사람도 있을법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지극히 정상이다. 너무 솔직해서 탈이다.

 

글은 유년기와 아동기부터 시작해서 노년기와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성장과 쇠퇴의 과정을 주관적(자신과 자신의 가족, 이웃이야기), 객관적(자료와 데이터)으로 이어간다. 아울러 유머러스하다.

 

태아는 엄마의 자궁 속에 얌전히 앉아 엄마가 먹여주기만 기다리지 않는다. 태아의 태반이 엄마의 조직에 혈관을 뻗어 공격적으로 침투해서 영양소를 뽑아낸다.” 나무뿌리는 물줄기를 찾아 필사적으로 손을(발인가?)뻗힌다. 태아나 나무뿌리나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생존은 전쟁이다.

 

성장

 

성장기는 어떤가? 성장기 자녀들을 두고 있는 부모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유익한 글들이 중간중간 실려 있다. 출생에서 청소년기로 가는 성장은 서로 다른 두 단계에 따라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출생 후 2년까지의 기간으로, 급격하게 성장하지만 성장 속도는 감속하는 단계이다. 두 번째는 2세부터 사춘기가 시작될 때까지로, 매년 일정하게 성장하는 단계이다.” 성장 과 노화에 대한 스토리엔 빠짐없이 평균수치가 이어진다. 책 제목과 달리 살아있음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치 아이들이 별로 안 좋아하는 식재료이긴 하나 꼭 먹이고 싶을 때, 슬그머니 다른 식재료와 혼합해서 먹이듯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리고 준비해야 할 죽음

 

죽음은 삶이라는 임시직 후에 찾아오는 상근직이라는 말에도 공감한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고통 속에 태어나고, 자신의 고통 속에 죽어간다.’ _프랜시스 톰프슨. ‘걷는 것은 넘어지지 않으려는 노력에 의해서, 우리 몸의 생명은 죽지 않으려는 노력에 의해서 유지된다. 삶은 연기된 죽음에 불과하다.’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독설가답다.

 

어떤 나이에 머물러 영원히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몇 살이기를 택하겠는가?를 물었더니18~24세는 27. 25~29세는 31. 30~39세는 37. 40~49세는 40. 50~64세 사이는 44. 그리고 64세를 넘은 사람들은 59세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30, 40대에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많다. 지은이는 30~40대에 고인이 된 유명인들(작가, 예술가등)을 천연덕스럽게 집어넣어 이 사람들도 이렇게 갔지만, 우리 기억에 계속 남아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모차르트는 35세에 죽었다. 바이런은 36세에, 라파엘로와 고흐는 37세에 죽었다

 

 

마지막 한 마디

 

내가 이 땅을 떠나면서 딱 한 마디만 하라고 하면 무슨 말을 할까? 바라는 것은 한마디라도 제대로 남기고 떠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명료하다면 다행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팔 저 팔에 링거를 꽂고 산소마스크를 하고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다 가는 모습은 진짜 싫다.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긴 하다. 지금 그러고 누워 있는 사람도 절대 스스로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책 속에 인용된 유언중에서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내가 가진 모든 것은 한순간의 것이었다.’ 에스파냐의 왕 펠리페 3세는 이런 말을 남겼다. ‘통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좋았을 것을, 내 왕국에서 살아온 세월을 자연 속에서 고독하게 살았다면 좋았을 것을. 오직 하느님과 함께 지냈다면 좋았을 것을. 그랬더라면 얼마나 평온하게 죽었겠는가. 얼마나 당당하게 하느님 권자 앞에 나아가겠는가. 죽음 앞에 더 큰 고통을 겪을 것이라면 그 모든 영광과 재물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미국의 소설가 헨리 제임스는 이렇게 말했다. ‘마침내 그것이 왔는가, 그 유명한 것이..’ 미국의 풍자만화가 제임스 서버의 말을 들어본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젠장’. 평생 금주가였던 스코틀랜드의 과학자 제임스 크롤은 한 모금만 마시겠습니다. 이제는 술 마시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겠지요.’

 

이 책을 어디로 분류시킬까? 인문학쪽도 아니고, 과학(생물)분야도 아니고, 성장에세이도 아니고, 지은이의 표현처럼 파괴적 논픽션(?)’ (창조적 논픽션과 반대되는). 노화와 죽음이 건포도 식빵의 건포도처럼 박혀 있지만, 어쨌든 재미있다. 책을 읽다보면 후반으로 갈수록 떠날 준비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사그라지는 불빛을 생각한다. 이 땅에 살아가면서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바로 죽음을 상대하는 일이 그렇다. 갈 땐 가더라도 살아 있는 동안 그 불빛을 잘 유지하다가 훅하고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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