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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묘묘 방랑길
박혜연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4월
평점 :
〈 Book Review 〉
《 기기묘묘 방랑길 》 _박혜연 (지은이) / 다산책방(2025)
“새까만 밤이었다.” 마을에서 힘 좀 쓰는 최대감 집에서 상서롭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몇 주 동안 심상치 않은 기운이 집안을 감싸더니, 그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인 금두꺼비가 생물이 되어 담장을 넘어간 것이다. 시작부터가 심상치 않다. 금두꺼비는 어떻게, 왜 그렇게 돌아다니는가? 애꿎은 머슴과 하녀만 고초를 당한다.
이웃해있는 윤대감의 막내아들 효원이 그 사건에 관심을 기울인다. 권세가의 막내아들인지라 한량이다. 성격적으로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효원은 그 오지랖이 발동되어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이 금두꺼비 사건을 맡아서 처리해줄 마땅한 사람이 없을까? 수소문 하던 중, 여우의 자식이라고 소문 난 ‘사로’이야기를 듣게 된다. 사로는 소외된 자이다. 근본도 모르겠고, 길게 묶어 내린 붉은 머리, 호리호리한 체형에 새하얀 얼굴이 예사롭지 않다. 여우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소문이 참말인지도 모르겠다.
금두꺼비 사건으로 서로 만나게 된 효원과 사로는 어느 결에 운명처럼 엮어진다. 희한하게도 금두꺼비는 효원의 근처에서 얼쩡거린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 의기투합해서 먼 길을 떠나기로 한다. 비록 양반의 피가 흐르고 있지만 현재의 생활이 갑갑해서 미칠 지경이다. “무엇보다 난, 진짜 세상을 보고 싶네. 지금처럼 팔자 좋은 도련님 대접을 받으며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가고 싶진 않아.” 윤대감의 윤허를 받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 희한한 조합의 두 사람이 집을 나선다. ‘기기묘묘 방랑길’의 시작이다.
소설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쓰였다. 각각의 이야기를 한 편만 떼어서 읽어도 생명력이 있다. 날개 달린 아이 업동이, 돌아가신 어머니가 목각 인형으로 환생했다 생각해서 저녁마다 밥상을 차려놓는 소년, 끊임없이 향기로운 술이 채워지는 술잔을 들고 사람을 유혹하는 서(鼠, 쥐 서)공자,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열리지 않는 아씨방을 열고 문제의 붉은 상자를 열고 보니 ‘놀라움’, 도깨비불, 여우 구슬 이야기 등등이 흥미진진하다. 우리의 옛 선조들은 사물에도 영(靈)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자연현상도 예사롭게 넘기지 않았다. 그래서 “비가 온다”가 아니라 “비가 오시네”였다. 그리고 비가 얼마나 오시는가 확인하기 위해 손바닥을 위로 (하늘을)향했다(서양인들은 같은 경우 손등을 위로 향한다). 이 소설의 각 편 이야기들은 바로 사물에 깃든 영(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국형 판타지 소설’이라는 표현을 붙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소설의 지은이 박혜연 작가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국내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교양디자인연구과/문화를 전공한 지은이는 출판사 저작권 담당자로 일하다 경력 단절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경력 단절 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옮긴 책 외에 지은 책으로는 이 소설이 첫 작품이다. 건필을 기대한다. 날개 달린 업동이처럼 그간 움츠려 놓았던 필력이 한껏 솟구쳐 오르길 소망한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통해 작성한 서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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