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러시아 문학
막심 그렉 외 지음, 조주관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6세기 러시아 문학을 알아보려면 우선 16세기 러시아의 상황을 먼저 살펴 봐야겠습니다. 역사적으로 16세기는 러시아의 발전 과정에서 전환기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16세기는 러시아의 중앙집권화가 성립되는 시기로 통일국가 형성, 몽골 타타르 통치에서 해방, 민족성의 완성이라는 특징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상황은 모두 러시아인의 정신 영역과 문화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러시아 문화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국가권력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과 입장입니다. 16세기 사회를 주도하는 두 세력인 교회와 국가는 서로 경쟁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아울러 러시아의 문화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정치사회 제도 중 하나는 농노제였습니다. 농노제 설립은 사회적, 계급적 모순의 첨예화를 초래합니다. 16세기 대다수 문학적 텍스트들은 정치성, 역사성, 종교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데올로기가 출현하며 논쟁이 계속됩니다. 비평가들은 16세기를 '논쟁 문학의 시대'라고 표현합니다. 


이 책에 첫 작품으로 등장하는 [흰 두건 이야기]는 교권과 왕권에 대한 테마를 담고 있습니다. 이 스토리의 작가는 외교관과 번역가로 활동하던 드미트리 게라시모프(1465~1535)입니다. 그는 대주교 겐나지 밑에서 필사가로 활동하다가 로마를 방문해 필사본 [흰 두건에 대한 그리스 이야기]를 구입해 돌아옵니다. 게라시모프는 그 필사본과 전해져 내려온 구전 이야기를 기초로 하고, 역사적 실제 인물들을 인용해 이 새로운 이야기를 창안해내게 됩니다.  


[흰 두건 이야기]는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내용은 흰 두건의 유래, 둘째 내용은 흰 두건이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겨 간 이야기, 셋째 내용은 흰 두건이 콘스탄티노플에서 노브고로드로 옮겨 간 이야기입니다. 그 시작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병(病)입니다. 불치의 병을 앓고 있던 대제의 꿈에 베드로와 바울이 나타납니다. 꿈에서 그들은 대제에게 추방된 실베스터를 만나라고 권고합니다. 그리고 대제는 실베스터가 건네준 성수로 목욕을 하게 된 후 깨끗하게 치유됩니다. 이 대목에서 용서와 화해의 중요성이 부각됩니다. 


병이 회복된 황제는 이에 대한 보상으로 기독교 교회에 새로운 권리를 부여하고, 기독교를 국교로 승인합니다. 심지어 황제는 제국의 왕관을 교황에게 넘기고자 하나, 교황은 이를 정중히 거절합니다. 대신 황제는 교황에게 '흰 두건'을 줍니다. 흰 두건은 영적 권리가 세속의 권리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이며 부활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흰 두건의 하얀색은 그리스도 부활과 광명을 의미합니다. 


실베스터 교황이 죽은 후에도 흰 두건은 로마 교황들에 의해 높이 경배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내 갈등과 분열이 일어나면서 흰 두건에 대한 경배심이 사라지고 심지어 모독하며 파괴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는군요. 그러나 그 당시 눈병과 만성 두통을 앓고 있던 총대주교가 흰 두건을 자신의 눈과 머리에 갖다 대자 그의 병이 바로 사라지면서 흰 두건의 성스러움이 다시 알려지고 인정을 받는 상황이 됩니다.


여기서 흰 두건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 나라의 왕권(王權)으로도 표현 될 듯 싶습니다. 이 작품에는 저자의 신권(神權) 정치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이 전설에서 로마 교황은 세속적 영향력을 갖는 황제로 묘사됩니다. 저자의 소원이 담겨있습니다. 러시아가 마지막 성령 왕국이 될 것이며, 이 왕국은 신에 의해 예정되어 있고, 최후의 심판이 일어나는 날까지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은 누가 알겠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선지자인듯, 예언자인듯, 직접 계시를 받은 자인듯 설치고 다녔지만 결과는 이미 모두 가짜라고 판명이 되었지요.


어쨋든 이 흰 두건 이야기는 '모스크바 제3로마' 이론의 바탕이 됩니다. 모스크바가 정교 신앙의 유일한 수호자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사상은 외교 관계에서 실제로 그 힘을 발휘한 적이 없고, 단지 종교와 교회라는 특정한 의미에서 러시아 정교회의 입장을 강화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막심 그렉]입니다.

정교회 역사의 한 면모를 보게 되는 스토리입니다. 종교 논쟁의 과정에서 러시아정교회는 소유파와 무소유파라는 두 종파가 생겨납니다. 이 두 종파는 교회의 권위 향상과 수도원 체제의 완성이라는 동일한 과제를 제시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근본적으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성취 수단과 방법에서 분명한 차이를 드러냅니다. 소유파는 대주교 다닐 같은 인물들의 활동으로 활성화 된 반면, 무소유파는 그리스인 막심(본명은 미하일 트리볼리스)같은 인물들의 활동이 두각을 나타냅니다. 그 막심의 이야기입니다. 


[무롬 지방의 표트르와 페브로니야에 대한 이야기]

이 작품은 사회평론가 예르몰라이-예라즘에 의해 1547년에 쓰였습니다. 그는 전문적으로 농민 문제만을 다루었습니다. 농민이 사회의 중심이라는 신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가 농민들의 권익을 위해 제시 한 것은 근본적인 차원에는 한참 못 미치는군요. 지배계급의 이익을 우선하며, 농민 봉기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역사상 실존 인물이 제목에 등장하지만, 작품의 내용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민담을 기초로 개작한 이야깁니다. 이 작품은 공후 부인이 된 현명한 농촌 처녀에 대한 지방 전설이 플롯의 기초가 됩니다.


[안드레이 쿠릅스키 공과 이반 뇌제의 왕복 서한]

러시아 국가에서 권력 구조에 대한 논쟁은 일반적으로 독재정치와 귀족정치의 대립으로 수렴됩니다. 이러한 것이 기반이 된 이반 4세(뇌제)와 대귀족 안드레이 미하일로비티 쿠릅스키 공이 벌인 논쟁이 중심 주제입니다. 쿠릅스키가 꿈꾸는 정치적 이상이 담겨 있습니다. 탁월한 정치가요 군사 지도자였던 쿠릅스키 공은 이반 뇌제와 정치적 이유 때문에 결별하고 리투아니아로 망명을 갑니다. 망명후 그는 작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이반 뇌제와 편지를 주고 받습니다. 그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실린 작품은 [도모스트로이(가정규범)]입니다. "기독교 신자인 모든 남편, 아내, 아이, 하인들에게 바치는 유용한 지식, 교훈, 교시의 내용의 담긴 도모스트로이라는 이름의 책.'

이 글의 저자는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았지만, 후세 학자들은 100 여 년 동안 크렘린의 성 수태고지 성당의 사제 실베스트르가 저자라고 의견을 모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진짜 저자는 과연 누구일까? 로 남아 있습니다. 글의 주 내용은 가장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한 일종의 교훈서입니다. 글을 통해 느끼는 것은 전통적인 기독교 윤리가 엘리트 집단의 확고한 사고방식에 끼치는 영향력입니다. 이 글은 시대적인 자료의 의미 외에 현대 독자들에게 16세기 러시아의 부유한 가정의 일상적인 삶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16세기 모스크바의 상거래에 대한 관점, 남성과 여성의 역할, 양육법, 주인과 하인과의 관계, 음주, 윤리, 도덕, 시민 의식 등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모스트로이(가정규범)]를 읽다보니 이런 흥미로운 내용도 눈에 들어옵니다.

"주방장에게 필요한 설명서, 지하실에 식품을 저장하는 법 : 통, 상자, 도량형기, 큰 용기, 그리고 양동이에 고기, 생선, 양배추, 오이, 서양 자두, 레몬, 철갑상어 알, 그리고 버섯을 저장하는 법."

일종의 주방장 매뉴얼입니다.   "....만약 음식을 소금에 절인 상태로 말리면, 윗부분에 곰팡이가 슬 것이다. 이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음식이 상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음식들은 모두 얼음에 넣어두라."


문학작품을 읽는 것은 그 시대적 상황을 읽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시대적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읽을 때 그 이해가 빨라질 수 있습니다. 러시아 문학을 많이 접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러시아 문학, 특히 16세기 러시아 문학을 접할 때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