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만들기 - 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
존 테일러 개토 지음, 김기협 옮김 / 민들레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68022.html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0128.html 

2006년에 이 기사를 읽고 곧바로 이 책을 구입했었다. 그런데 읽지는 않았다. 읽어보려고 몇 번인가 손에 들어는 봤었다. 소위 '교육'과 관련된 책은 도무지 구미가 당기지도 않거니와 모두 쓰잘데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감히 이런 생각으로 선생을 하다니... 

이 책을 읽어야지, 하고 늘 벼르고 있던 참이었는데... 엇그제 콘서트 건으로 마음이 많이 상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2개월간 준비 끝에 학급 학생들을 겨우 콘서트에 데려가게 되었는데 학교 맞춤장학 날짜와 겹치는 바람에 온갖 비난과 방해 공작(?)으로 시달려야만 했다. 이 일과 직접적인 관련조차 없는 사람들마저 뒷담화에 가담하여 비난을 퍼부었다는 말에 새삼 학교 사회를 되돌아 보게 되었다.   

나름 진보적이라고 여겼던 동료의 한마디도 나를 아프게 했다. '자기 교과에 관련된 체험 학습도 아닌데 학교 일정을 무시한 채 진행하는 건 옳지 않다'고 했다. 나는 교사의 전문성이라는 말에 늘 회의를 갖고 있다. 나는 내가 가르치는 교과에 자신있고 당당하지 못하여 감히 전문성을 논하지 못한다. 이건 다른 교과를 가르치는 교사를 바라보는 관점이기도 하다. 어렵다. 콘서트에 한번 데려가는데 이런 많은 논의가 정말 필요한 일인가?  

이런 우울한 기분에 젖어있는 나에게, 이 책은 곳곳에서 나를 위로해주는 말이 산재해 있었다. 너무나 지당한 말씀들이다.  

(54쪽) ..교사든 교장이든, 교직원들이 모두 길드 제도 같은 곳에 몸담고 있으니까 그럴 수밖에요. 길드 같은 옛날 조합에선 미리 길드의 동의를 얻지 않고서는 어떤 조합원도 남보다 튀는 행동을 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알리고 받아들일 수 없었죠. 이 원칙을 어겼을 때는 모진 처벌을 받았습니다. 

(63) 거의 30년 세월을 학교에서 보내고 나서...제가 확신하는 것은 관리인들이 학교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중요한 변화는 모두 가차없이 막아버리죠. '소유자'로서 문제를 개선해야 할 동기도 없고, 바깥과 경쟁해야 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100쪽)..조직은 전인격적 인간을 필요로 하기보다 인간을 분해한 조각들을 필요로 합니다. 조직 안에서 기능하는 사람들은 조직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부분을 억누르도록 요구받습니다. 아주 부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사람들은 어느 정도 길들여질 수는 있습니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조직은 제한된 범위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능률적으로 충족시켜줍니다. 이것은 사실 악마의 거래와도 같은 것입니다. 장래의 특정한 이익을 위한 대가로 현재의 전인격성을 내놓는 것이니까요. 이런 거래관계를 많이 가질수록 그 사람의 인격은 여러 개의 전문화된 조각들로 쪼개지게 됩니다. 그 어느 조각도 진정한 인간성을 담을 수 없게 되고.... 

따분한 냄새가 나지만 그래도 한 때는 '전인교육'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단어는 죽은 단어나 다름없다. 아무도 감히 이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내년부터 실시되는 외고 입시에 응시하려면 학교에서 보는 정기고사의 영어시험에서 하나라도 틀리면 안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감히 이런 분위기에서 전인교육을 거론하는 것은 말 그대로 시대착오적인 발언일 수 밖에 없다.   

한마디로 이 책은 가슴을 벅차게 한다. 내가 가슴 속에 담아두었던 온갖 말들을 시원하게 대변해주는 느낌이다. 답답하기만 했던 시야를 저만큼 멀리 내다보게 해준다. 새롭다고 할 수 없는 새로운 고민을 떠안은 느낌마저 시원하다. 

다음은 노벨상을 받은 멕시코의 옥타비오 파스가 교육제도에 대해 했다는 이야기란다. 

(152)북아메리카의 제도에서 모든 남녀는 어릴 적부터 혹독한 과정 속에 던져진다. 짤막한 공식으로 표현되는 몇 가지 원칙이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교회, 그리고 특히 학교를 통해 끝없이 되풀이된다. 이런 제도에 묶인 인간의 모습은 너무 작은 화분에 심어진 식물과 같다. 성장할 길도 없고 성숙할 길도 없다. 이런 종류의 음모는 각 개인의 난폭한 반란을 불러오지 않을 수 없다. 

'강제적 제도교육의 황무지를 침식시키는 물방울이 되십시오.'라고 주문하는 저자의 조언을 깊이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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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책을 구입할 때 나름대로의 원칙 같은 게 하나 생겼습니다.
<Thanks to>를 클릭하여 얼마간의 적립감을 쌓잖습니까?  그럴 때 <구매자>라고 표시된 서평에 더 신뢰감이 가게 되더군요. 특히 서평단의 글은 일단 배제하고 보는 거지요. 칭찬 일색의 글은 신뢰감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공짜로 받는 책 한 권에 대한 보답성 글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됩니다...이런 글 남겨서 득 될일은 별로 없겠지만 뭐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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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빠져 미국을 누비다 - 레드우드 숲에서 그랜드 캐니언까지, 대자연과 함께하는 종횡무진 미국 기행
차윤정 글.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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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미국 여행기라면 읽지 않았을 책이다.  숲 생태 전문가의 여행기는 어떤 식으로 쓰여졌을까, 가 궁금했다. 나무 이야기라면 더 좋겠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런데 제목이 너무 거창하다. 고작 열흘 간의 여행으로 책 한 권을 쓴 것도 그렇다. 그런 자신감이 궁금하기도 했다. '학문적인 여행기'는 아닐까 의심도 갔다. 마침 4대강을 둘러싼 저자의 행보에 내심 불쾌감도 있던 터라 저자의 좌우를 살피고도 싶었다. 

오로지 출세라는 한 자리를 목표로 일로매진하는 무리들을 늘 보아온 터라 그리 이상할 것도 그리 섭섭할 일도 아니건만, 그래도 나무를 얘기하고 생태를 부르짖는 사람이라서 다를 줄 알았다. 위안삼아 차라리 더 두고 봐야 한다,라는 말을 남겨두는 게 좋을 성싶다. 슬퍼지니까. 

가족 여행 답게 남편과의 갈등 같은 것도 숨기지 않고 잘 드러냈다. 사실 쉬운 일이 아닐텐데. 더구나 책으로 나오는 건데. 꾸밈이 없는 저자의 진솔함이 읽혀지기도 했다. 

나무나 숲에 관한 것은 대강 흥미는 가지만 글쎄 내 분야가 아니고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부분이 아니라서 그런지 사실은 그저 그렇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민들레나 쑥 같은 존재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도 못하다. 엇그제만해도 민들레를 캐느라고 꼬박 주말 오전을 이틀씩이나 바친 터라 아무래도 먼 이국 땅의 나무 얘기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고나 할까.

글쎄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도대체 내가 왜 이 책을 읽고 있나? 미국은 질색하면서 말이다. 미국에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살금살금 들여다보는 이 심리는 또 뭔가 하고. 

그럴 즈음 반가운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154) 한편 우리에게 미국이 로망인 것처럼 많은 제3세계 국가들에겐 한국이 로망의 대상이다. 서아시아나  남미에 부는 한국 자동차 열풍은 미국에서의 일본 차 열풍과 같다. 우리 아이들에게 미국에 대한 도전을 권고하는 만큼 이런 나라들에 도전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어떨까. 미국, 유럽, 일본 같은 나라에서 한계에 찬 도전을 하는 것보다 우리의 경쟁력을 필요로 하는 제3세계로 눈을 돌리라고 말이다. 이번 여행에서 확인한 거지만, 아이들의 삶의 수준은 이미 그 정도에 도달해 있다.  샌프란시스코나 로스엔젤레스에서 우리는 남들이 흔히 하는 도시 탐색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서울도 그와 비슷한 양상으로 발전해 있으니까. 

그러나 마지막 세 문장이 거슬린다. 과연 그럴까. 저자의 4대강을 둘러싼 태도 변화가 잠깐 떠오른다. 사람은 자신이 처한 계급에서 절대 자유로워질 수 없나보다. 

책 한 권을 읽기가 왜 이리 골치 아픈가. 저자가 인용한 부분을 그저 다시 인용할 뿐이다. 

   
 

 "그저 우리가 할 일은 위대한 자연을 그대로 두고 보는 것입니다. 세월은 지속적으로 그들의 위대한 작업을 진행하지만, 사람은 파괴할 뿐입니다.(I want to ask you to do one thing ....keep this great wonder of nature as it is.....The ages have been at work on it and man can only mar it." 1903년에 루스벨트 대통령이 한 말이다. 하지만 그냥 두고 보는 일도 우리는 제대로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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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재즈 가수인 웅산의 콘서트에 다녀왔다. 45명의 중3짜리 아이들을 데리고.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선 오늘 2년 마다 있는 맞춤장학이 있는 날이었다. 일종의 학교 평가 같은 건데 더불어 학부모 공개수업까지 있었다. 두 학급 콘서트 관람건을 제의한 옆 선생(20여년 지기)을 따라 이 공연 관람을 준비한 것은 지난 4월 부터였다. 물론 미리 구두로 교감한테 허락을 받은 상태였다. 5월에는 일찌감치 예매까지 마쳤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학교의 큰 행사인 맞춤장학과 날짜가 겹쳤다. 맞춤장학 날짜가 발표된 것은 6월 초였다. 예술회관은 거기대로 사정이 있어서 환불은 불가능하다 하고, 학교에선 교감이 절대 불가하다고 끝까지 결재를 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힘들게 다녀왔다. 

줄거리는 이렇게 단순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면서 참 여러번 한숨을 토해내고 달갑잖은 회의에 빠져 들곤 했다. 학교 행사와 날짜가 겹친다는 이유로 절대 불가를 외친 교감은 내부결재를 낸 옆 선생을 몇번씩이나 오라가라하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보다못해 아니 견디다못해 이번에는 교장한테 가서 사정을 말했다. 허락이 떨어졌다. 교장의 허락에도 불구하고 교감은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또 오라가라 했다. 다시 교장한테 갔다. 역시 허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감은 우리가 기안한 출장 신청에 끝까지 사인을 하지 않았다.   

서로 소통이 되지 않아 답답한 상황이지만 별 수 없다. 교감은 교감의 길이 있고 나에게는 나의 길이 있을 뿐이다. 서로 인정할 뿐, 필요 이상의 감정 낭비는 없어야 하는데...글쎄 내가 교감이라면 어떨까? 앞으로 그럴 일이 전혀 없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왜 그런 불편한 길을 걸어가려고 아우성들인지.....

이런 우여곡절 끝에 다녀온 콘서트는...훌륭했다. 아이들이 지불한 5,000원(학교에서 나오는 학급운영비로 개인당 2,000원을 쓸 수 있으니 합계 7,000원이 들어갔다.)이 절대 아깝지 않은 공연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언제 재즈 음악을 들어보길 했을까. 나 역시 그렇고. 

아이들을 데리고 무슨 일인가를 벌인다는 게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오늘도 그랬다. 주의를 그렇게 주어도 티켓을 분실하지 않나 교통 카드를 잃어버리질 않나. 그것도 교실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절대로 뛰지 않는 게으른 녀석들을 다그쳐 겨우 도착하니 이미 공연은 시작되었다. 두 곡이 끝나 겨우 입장할 수 있게 되어 뒷좌석에 겨우 앉을 수 있었는데, 가수의 얼굴 윤곽만 겨우 보이는 거다. 

웅산의 노래에 빠져들다보니 눈물이 찔끔 나온다. 옆 자리에 앉은 우리반 녀석들 생각에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취할 수 있는 게 재즈구나, 싶었다. 긴장된 몸과 마음을 무장 해제시키지만 무너지지 않을 정도의 공간을 남겨두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게 재즈구나, 싶었다. 

공연장을 나서면서 우리반 남학생 녀석들이 한마디씩 던진다.

   
 

행복합니다. 

 
   
   
  다음에 또 오죠.  
   
정이 없는 부부들이 흔히들 '자식 때문에 산다'라고 하듯 나는 '학생들 때문에' 선생질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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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박사 2010-06-16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생님!~
힘내세요!~~
화이팅!!!~~~(^^)
 
이탈리아, 지중해의 바람과 햇살 속을 거닐다
권삼윤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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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아마도 10여년 전쯤 저자의 책 <문명은 디자인이다>를 읽었었다.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무척 참신한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주위 사람들에게 수차례 일독을 권하기도 했었다. 

요즈음 이탈리아에 대한 책을 읽어나가다가 이 저자의 이름을 보고는 따지지도 않고 구입해서 읽게 되었는데...연륜, 경험의 누적이란 다름 아닌 일정한 매너리즘의 내면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기행문이라기 보다는, 여행담보다 학구적인 설명이 더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이를테면 '학문적인 기행문'쯤 된다. 여행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의 글이다보니 아무래도 글 역시 직업적인 성격이 짙다. 여행기로서의 풋풋함이나 생동감이 그만큼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얼마 전에 읽은 <바다에서는 베르사체를 입고 도시에서는 아르마니를 입는다>가 오히려 더 살아있는 내용이 많다. 30년 동안 한 곳을 들여다 본 글이다보니 더 깊이가 있고 내용도 더 알찰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이탈리아, 지중해...>는 이도저도 아닌 좀 애매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간절함이 없는 여행은 참 밋밋하다. 그 밋밋함은 학구적인 설명이나 친절한 해설로 대체될 수 있는 게 아님을 새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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