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원어민 교사와 함께 하는 수업도 이제는 끝이 보인다. 

지난 3월 부터였으니까 한 5개월을 일주일에 5시간 시간 정도 수업을 함께 했다. 함께 했다기 보다는 원어민 교사가 수업을 이끌면 나는 뒤쪽에서 아이들이 못알아들을 때 약간의 설명을 하기도 하고, 원어민 교사가 수업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질서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주로 했다. 절대로 아이들의 몸에 손을 대지 않는 철저한 직업 의식과 안전 의식(?)이 몸에 밴 원어민 교사를 대신하여 아이들 머리를 쥐어박는 일 같은 것도 살짝 살짝 하는 일이 내 몫이었다. 

계약 기간 1년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그 종점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87년생 원어민 교사를 바라보는 일은 때로 곤혹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혼잣말에 아이들도 답답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수업이 끝나 교실에 돌아오면, "원어민 선생님이요 정체성 혼란을 겪고 계시나봐요,".."원어민 선생님 자살하실 것 같아요." 

좀처럼 열리지 않는 아이들의 입, 질문 하나 던지지 않는 아이들의 무관심 내지는 무력감 혹은 두려움. 아이들의 조그마한 잡담도 견디지 못하고 집중만을 요구하는 수업 시간. 아이들은 이래저래 입을 열지 않을 뿐더러 열지도 못한다. 이런 정체된 수업 분위기에 숨이 막히는 건 아이들이나 원어민 교사나 마찬가지이다. 

수업은 원어민 교사의 인사말부터 시작된다. How are you? 초등학교 때부터 착실하게 배운 아이들은 배운대로 응답한다. "I'm fine, thank you. And you?" 허구한 날 이런 응답에 식상한 원어민 교사는 친절하게도 인사하는 법부터 다시 가르친다. 칠판에 Fine.을 써놓고 X라고 덧쓴다. 절대 쓰지 말라는 말이다.응답하는 방법을 감정에 따라서 네 가지 용법으로 분류해서 설명한다. happy, sad, angry 그리고 neutral. 그리고 일주일 후에 다시 수업이 돌아와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How are you?" 아이들은 대답한다, 그것도 기껏해야 한두명이지만. "Fine!"이라고. 

어이없고 답답해하는 원어민 교사의 표정에 어느 용감한 녀석이 얼마 전에 기출문제지에서 배운 표현을 써본다."I'm blue."라고. 인내심을 발휘하며 원어민 교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blue라는 단어보다 How are you?라는 인사말을 제대로 구사하는 게 더 중요한 일이라고 말이다. 흠..아이들로서는 시험에 나오는 blue의 뜻이 중요하지 더 이상 시험에도 나오지 않고 별 것도 아닌 How are you?라는 인사말이 그렇게 중요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런 동상이몽도 없을 터. 

미국인다운 친절함이 몸에 밴 원어민 교사는 실력이 뛰어난 아이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수업을 미안해하기도 한다. 결국 이 원어민 교사 수업시간에는 아무도 만족스러운 사람이 없다. 좌절감과 열패감을 스스로 다스리는 원어민 교사나 늘 굳은 얼굴로 수업 시간에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아이들이나, 이 둘을 동시에 지켜보고 어쩌지도 못하는 한국인 교사인 나. 한 쪽 벽에 걸린 도시별 시차를 알려주는 네댓개의 시계만 열심히들 바라본다. 

군대에서 한창때를 보내야 하는 우리나라 20대의 청년에 비하면 이 20대의 원어민 미국인이 누리는 경험과 자유는 부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우리 같이 목숨 걸고 영어를 공부할 필요도 없을테고. 한 학기 내내 가르쳐도 How are you? 에 응답조차 제대로 하려고 하지 않는 우리 아이들을 글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런지....blue 할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유치해서 오래 기억나는 영문법 (책 + KJ의 동영상 강좌 20강 무료제공)
이갑주 지음, 마이클 스완 외 감수 / 어문학사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중2 정도의 실력으로 혼자서 공부하기 좋은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장영희 교수의 글이 그렇게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의 글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싶다. 마치 군에 갔다오지 않은 사람을 한 옆으로 제껴두고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절대로 나이 먹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이 또한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늘 그런 생각을 해왔다. 꽉 움켜쥔 자기 세계라고 할까, 세상에 대한 방어벽이라고 할까. 이런 자기만의 세계가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 뿌리의 어느 부분에서 홀연 빠져나왔던 나 역시 그랬으니까. 

도서관에서 빌린 이 책을 틈틈이 읽으면서 가끔씩 신음처럼 새어나오는 가냘픈 내 한숨 소리에 놀라곤 했다.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이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왠 오버?  

결혼을 둘러싼 무릇 인간사의 찌든 인간관계에 휘둘리지 않아서 실감(?)이야 덜하지만 나름 가열차게 살았던 여러 흔적들이 눈물겹게 다가오곤 했다. 참 긍정적인 분이었던 것 같은데 그 가운데서도 안쓰러움이 묻어났다. 

절제된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글에서 오히려 더 진한 슬픔이나 연민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작년에 운명을 달리한 분을, 오늘 이 책을 통해서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 김선주 세상 이야기
김선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이상 좋은 글을 당분간은 만나기 힘들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숙의 자연 치유 - 진정한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자연건강식과 치유식, 요가, 명상
문숙 지음 / 이미지박스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그닥 새로운 내용은 없지만 좋은 기운이 느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