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 :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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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편3을 완독하니 중국편1, 2도 마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3이 나오기 전에 1을 먼저 읽긴했으나 이내 책을 덮고 말았다. 도서관 반납 기간이 다가오도록 책이 눈이 들어오지 않아서였다. 답사기라면 당연 현장감이 우선인데 현장감을 도무지 느낄 수 없었다. 학구적인 건 다른 책으로도 충분하다. 또 하나, 책은 내 돈주고 사봐야 잘 읽힌다는 걸 중국편3으로 확인, 새삼.

 

 

어느 답사나 마찬가지이지만 중국 답사에서 가장 필수적인 것은 유적지에 대한 설명보다도 그곳의 역사를 아는 것이다.   -100쪽

 

어쩌면 상식적이고 당연한 말인데 이렇게 꼭 집어서 말해주는 사람은 고수 중의 고수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중요한 걸 가장 쉽게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가장 필수적인 것'이 '역사를 아는 것'. 2년 전 실크로드 일대를 다녀오고도 전후좌우가 얼키고 설키면서 개념이 잡히지 않았는데 그 근본적인 원인이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였다는 것을 위의 문장을 접하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교하고성(기원전 2세기 차사국)-고창고성(6세기 고창국)-아스타나 고분(7세기 당나라)-화염산(7세기 현장법사)-베제클리크석굴(9세기 위구르제국)-시내 소공탑(18세기 회교사원)-카레즈 전시관-투르판 박물관       -74쪽

 

위와 같은 순서로 진행했다는 부분을 읽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교하고성과 고창고성을 다녀오고 베제클리크석굴, 소공탑, 화염산, 카레즈 전시관도 봤지만 이 모두가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다. 물론 개별적으로 설명은 들었었다. 문제는 한줄기 흐름으로 꿸 수 없다는 것. 역시 유홍준 교수는 답사의 대가는 대가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크로드를 여행하는 건 쉽지 않다. 일반 여행사 패키지 상품도 많지 않고 모객이 되기도 쉽지 않다. 2년 전 여름에도 2~3개 여행사에서 10명이 신청해서 겨우 연합상품으로 다녀왔으니 말이다. 그래도 중국이니까 소인원으로 여행이 가능했지 유럽같았으면 출발 자체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렵게 갔었지만 실은 이 책에서 언급된 지역의 반이나마 갔을까. 쿠차, 타클라마칸사막, 호탄, 카슈가르는 그저 책으로만 접할 뿐이다. 실크로드 관련 책에서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곳이지만 내가 발을 딛지 못한 곳은 나의 것이 되지 못한다. 그저 아쉽고 감질나고 안타까울 뿐이다. 미련이 남아서 또 꿈을 꾸게 된다.

 

신강성의 성도가 우루무치이지만 위구르인의 마음의 수도는 카슈가르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중국도 민족감정이란 그런 것임을 잘 알기 때문에 일찍이 신강성을 '위구르자치구'로 지정해 형식으로나마 반(半)독립적 성격을 부여했던 것이다.   -390쪽

 

우루무치만 가보고 카슈가르를 못 가봤으니 위구르인의 마음을 읽기란 더 힘들 터.

 

그러나 막상 카슈가르에서 우리가 답사할 곳은 많지 않다.    -391쪽

 

그래도 한번쯤 가볼만한 곳이 실크로드임에는 틀림없다. 히말라야가 그랬듯 실크로드 역시 여행 전보다 여행 후에 더 빠져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의 일천한 경험상.

 

젊었을 때는 모두 화려하고 발달된 문명을 경험해보고 싶어해 파리, 런던으로 떠나는 배낭여행을 선호한다. 중년으로 접어들면 유명한 박물관과 역사 유적을 찾아 이집트, 그리스, 로마를 여행한다. 그러다 중늙은이가 되면 역사고 예술이고 골 아프게 따질 것 없는 중국의 장가계, 계림 등 자연관광과 일본 온천여행을 선호한다. 그러다 노년이 가까워진 인생들은 오히려 티베트, 차마고도 등 인간이 문명과 덜 부닥치며 살아가는 곳을 보고 싶어한다. 인간의 간섭을 적게 받아 자연의 원단이 살아 있는 곳에 대한 그리움이 노년에 들면서 깊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몸이 받쳐주지 못하여 그냥 로망에 머물고 말기 일쑤다. 그러므로 실크로드 답사 중 타클라마칸사막을 경험해본다는 것은 노년 여행에서 누릴 수 있는 큰 호강이다.    -281~282쪽

 

이 책 내용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쉬웠던 부분. 유쾌하게 웃으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런던이나 뉴욕으로 배낭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리고 티베트, 차마고도는 20년 전에도 가보고 싶어하던 곳이다. 여행에 관한 한 나이는 먹지 않는다. 다만 몸이 받쳐주지 않을까 저어할 뿐.

 

중국어의 외래어 표기, 특히 인명 표기는 정말로 어렵다. 중국인 자신들도 어려운지 아주 유명한 사람은 아예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Shakespeare)는 사사비아(莎士比亞)라고 표기하고 줄여서 사옹(莎翁)이라고 부른다.

 

사사비아라고? 재밌어서 딸에게 퀴즈를 냈더니 단방에 셰익스피어를 맞춘다. 난 아무리 발음해도 이해할 듯 말 듯한데, 중학교에서 중국어를 조금 배운 딸은 중국어에 대한 감이 살아있나보다. 배운 것은 언젠가 드러나는 법일까.

 

 

읽고나니 목마른 책. 코로나19 종식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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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1926년- 2017년)의 책은 묘한 거부감과 매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거부감이란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알 듯하면서 모를 듯한 모호감 같은 것이고, 매력이란 그런 거부감 속에서도 드러나는 어떤 울림 혹은 찔림 같은 것에 눈을 뜬다는 것이다. 아마 엇비슷한 시공간을 함께 나눈 사이라면 그의 글이 잘 맞는 친구처럼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부분적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는 이 책. 그럼에도 이 책의 어느 한 부분 때문에 지난 며칠을 바쁘게 보냈다. 다음은 톰 웨이츠의 노래라고 한다.

 

모두들 동시에 말을 하지

누구에게는 힘든 시절이

누군가에게 달콤한 시절이라고

거리에 피가 뿌려지는 때에도 누군가는 돈을 벌고 있겠지

모두들 동시에 말을 하지.

 

 

톰 웨이츠는 또 누군가.

 

출생  1949년 12월 7일, 미국

데뷔  1973년 1집 앨범 <Colsing Time>

수상  2011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2001년 ASAP 팝 뮤직상 공로상

 
(출처: 네이버)

 

 

유튜브에서 그의 노래를 들어봤다. 독특했다. 만취한 사람의 절규같기도 한 걸죽하고도 깊은 목소리의 흐느낌. 궁금해서 책을 찾아보니 다행히(?) 얇은 책이 한 권 있었다.

 

 

 

 

 

 

 

 

 

 

 

 

 

 

 

이 작은 책의 내용은 목차에 잘 나타나 있으니,

 

-뮤지션들의 뮤지션

-톰 웨이츠, 출생과 오해

-비트 세대가 남긴 선물

-별들의 고향 트루버도어 클럽

-이야기꾼의 밤 노래

-노래만 불렀다, 돈은 못 벌었다

-결혼은 이들처럼

-소리에 대한 편력, 칼리오페 에피소드

-뮤지컬 이어스

-'나'에서 세계로

 

톰 웨이츠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고 간편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을 쓰신 저자에게 저절로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톰 웨이츠의 진짜 아버지, 잭 케루악

 

무엇이 톰 웨이츠를 길 위에 서게 하는 것일까. 젊은 시절의 '방랑'과 끊임없이 변주되며 톰 웨이츠의 음악을 관통하는 '길'의 이미지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어쩌면 이 사람 이야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기도를 올릴 정도로 전설처럼 떠받드는 잭 케루악의 영향은 아니었을까. (중략)

<길 위에서>의 책장에 '역마'라는 마법약이라도 묻혀 놓을 것일까. 잭 케루악은 이 소설 하나로 당시 미국의 젊은이들을 모두 길 밖으로 내몰았다. '비트'라는 단어를 처음 만든 그는 비트는 음악의 박자가 아니라 단지 '세상의 모든 관습에 대한 지겨움의 표현일 뿐'이라고 말했고, 젊은이들은 일제히 쌍수를 들고 뛰쳐나가 그 길로 비트닉(비트족)이 되었다. 밥 딜런이 훗날 "그의 작품이 모든 걸 바꿔 놨듯이 내 삶도 바꿔 놓았다."라고 할 정도로 케루악의 영향은 막강했다.       -18~20쪽 

 

 

그래서 또 읽어야 할 책.

 

 

 

 

 

 

 

 

 

 

 

 

 

 

 

 

 

 

예전에 읽다 만 책이다. 그때 그시절에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을지 몰라도 시공간을 달리하는 이 시점에서 읽기에는 너무나도 지루하게 느껴져서 집중하기 힘들었다. 빌린 책이라 더 그랬다.

 

 

 

'톰 웨이츠가 좋아하는 또 한 명의 비트 작가 찰스 부코스키의 시 Nirvana(너바나)를 낭독한 영상이다. 얼마 전 읽어봤던 찰스 부코스키(1920년 ~1994년)의 시집이 떠올랐다.

 

 

 

 

 

 

 

 

 

 

 

 

 

 

 

 

https://blog.aladin.co.kr/nama/11703314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더니 이번엔 영화감독 짐 자무쉬 얘기로 이어진다. 톰 웨이츠는 짐 자무쉬와 영화 작업을 함께 했다고 한다. 그러면 짐 자무쉬는 누군가.

 

출생  1953년 1월 22일 미국

데뷔  1980년 영화 '영원한 휴가' 연출

수상  2006년 제 58회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1993년 제 46회 칸영화제 단편영화상

 

(출처: 네이버)

 

 

그래서 그의 영화를 보기 시작.

 

* 커피와 담배

지루할 것 같지만 은근히 재미있는 영화다. 담배를 피우고 커피잔을 부딪치며 나누는 소소한 대화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니컬하면서 짭쪼름하다고 할까. 톰 웨이츠도 등장. 짐 자무쉬와 친분이 있는 유명 배우들 다수 출연.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는 영화다. 몇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는 사실.

 

* 패터슨

시를 쓰는 버스 드라이버 얘기인데, 톰 웨이츠처럼 짐 자무쉬도 시인이라면 시인이랄 수 있겠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특히 눈길을 사로잡은 건 패터슨의 아내가 꾸미는 실내 장식과 그녀의 옷과 같은 소품. 흑백으로 그린 커튼 무늬의 시적인 감각, 패터슨이 시를 쓰듯 그의 아내 역시 옷과 커튼과 음식으로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시를 쓴다. 어떤 rhyme(운)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영상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천국보다 낯선

천국은 못가봤으니 당연히 낯선 것일 텐데 그 천국보다 더 낯선 것은 대체 뭘까? 시시껄렁한 두 청년과 그중 한 청년의 여자사촌 얘기. 썰렁한 분위기와 썰렁한 줄거리와 그에 걸맞는 썰렁한 대화들. 그런데도 끝까지 보고나면 어딘가 쓸쓸해지면서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지는 영화.

 

 

 

존 버거로 시작해서 톰 웨이츠의 노래와 짐 자무쉬의 영화로 이어지는 며칠 간의 고행(?) 이 끝나려나..... 이젠 다른 책을 읽어야겠다.

 

 

 

 

 

 

 

 

 

 

 

 

 

 

 

 

 

 

 

살려줘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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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 - 청년과 지방을 살리는 귀향 프로젝트 지금+여기 8
마강래 지음 / 개마고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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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바닥에 놓여있던 책 표지를 슬쩍 본 남편은 잠시 충격을 받았다. 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니... '내가 죽어줘야 하는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시험삼아 책 표지를 사진 찍어서 친구들 단톡방에 올렸다. 역시나 반응은 '내가 죽어줘야 하는거야?' 였다.  큰 글자 위에 있는 주황색 작은 글자, '청년과 지방을 살리는 귀향 프로젝트'는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겨우 보인다. 출판사에서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일단 눈길을 사로잡는데는 성공한 셈이다. 한순간이나마 제호를 읽고 가슴이 벌렁거렸다면...음, 당신은 베이비부머 세대에 해당된다. 틀림없다.

 

베이비부머 세대를 1차와 2차로 나누면, 1차는 1955~1963년생, 2차는 1968~1974년생에 해당된다. 이 책에서는 이들 사이에 낀 4년간의 출생자까지를 모두 합쳐서 베이비부머라고 칭하고 있다. 2020년 현재 나이는 46~65세로, 총인구는 1685만 명이라고 한다. 내 형제자매, 친구들, 한때 동료로서 친분을 나누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이 나이에 속한다. 그러니 한번쯤은 읽어볼 만한 책이다. 정책입안자나 일선 공무원의 연수 자료로 활용되면 더욱 더 좋겠다.

 

베이비부머의 귀향이나 귀촌은 '대도시의 인구과밀 완화, 지방살리기에 기여, 일자리의 공간 분리를 이룸으로써 청년의 미래를 여는 데도 필수적인 정책'이라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이쪽 분야에는 문외한이고, 이런 류의 책은 딱딱한 교과서 혹은 연수자료처럼 느껴져서 손이 가지 않는데도 이 책은 참 잘 읽혔다. 한번 읽기 시작하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를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내 자식을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는, 흔히 말하는 운명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매우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귀향이나 귀촌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시의적절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3년 전부터 우리 부부는 우리만의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다. 무슨 프로젝트냐면, 국내의 유명 도시에서 하룻밤씩 묵어보기. 목적은 1. 그냥 여행. 2. 살아보고 싶은 곳 찾기. 목적 2는 막연하지만 베이비부머세대라면 한번쯤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을까 싶다. 특히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서 살고 있다면.

 

가본 곳보다 가지 않은 곳이 훨씬 많아서 이 프로젝트를 완성하려면 아직은 멀었다. 그러나 몇몇 지방도시를 갈 때마다 느끼는 건 거의 똑같다. 일단 대도시에 비해 한결 널직한 공간 배치는 널널해서 좋다. 답답하지 않다. 그러나 큰 길을 벗어나 작은 길로 접어들수록 도시의 활력은 떨어지고 어느새 쓸쓸한 기운에 휩싸이게 된다. 뻥 뚫린 가슴이 순간 휑한 가슴으로 변한다. 과연 대도시를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에 씁쓸해진다.

 

이 책은 이런 막연한 회의감에 희망의 메세지를 던진다. 그게 가능하다고. 그러나 이건 개인의 차원에서 해결할 문제가 절대 아니다. 국가적인 프로젝트여야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조목조목 따져서 알려주고 있다. 읽다보면 그래서 끝까지 단숨에 읽게 된다. 가능한 얘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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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 키린 - 그녀가 남긴 120가지 말 키키 키린의 말과 편지
키키 키린 지음, 현선 옮김 / 항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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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나 영화에 깊이 빠져본 적이 거의 없던 내가 요즈음 키키 키린(1943년 1월 15일  ~ 2018년 9월 15일) 이라는 일본 배우에 빠져 수 편의 영화를 감상했다. 나에게는 이변이다. 영화 <모리의 정원>이 아무래도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무슨 영화를 보았냐면,

 

<모리의 정원> 2017년 제작.

<앙: 단팥 인생이야기> 2015년

<걸어도 걸어도> 2008년

<태풍이 지나가고> 2016년

<어느 가족> 2018년

<진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2011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013년

<바닷마을 다이어리> 2015년

<도쿄타워> 2007년

 

그러니까 한 배우의 10여 년에 걸친 연기 활동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비교적 젊은 시절 모습부터 틀니를 뺀 쭈글 할머니의 모습까지 한 사람이 늙어가는 과정을 대략이나마 살펴볼 수 있었다. 보통 주변 사람들을 보면 늙어갈수록 얼굴 표정이 무뚝뚝해지고 가만히 있어도 화난 것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미 내 얼굴에서도 나타나는 걸 숨길 수 없다. 몸은 여기저기 아파오기 시작하고 나날이 꽃 길 같은 인생도 아니니 자연 표정이 어두워지고 그늘이 깊어진다. 늙을수록 아름답고 상냥한 얼굴을 유지하려면 어마어마한 내공과 끊임없는 수양이 필요하다는 걸 이제는 알겠다. 그런데 키키 키린이 바로 그랬다. 늙어갈수록 얼굴 근육이 유연해지고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심지어 귀엽기까지 했다. <앙: 단팥 인생이야기>에서 벚꽃 나무 아래에서 나무와 대화를 나누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걸어도 걸어도>라는 제목은 노래 <요코하마>에서 따온 것인데, 남편이 바람 피는 현장에서 들었던 그 노래를 몰래 혼자 즐겨 들었다는 대목에서도 여지없는 귀여운 모습이었다. 이해되지 않는 장면이지만 키키 키린의 사랑스러운 모습만은 기억할 만하다.

 

키키 키린의 생각을 읽어볼 수 있는 책 얘기를 하려다가 서론이 길었다. '그녀가 남긴 120가지 말'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몇 구절 인용하는 것만으로도 리뷰를 쓸 가치가 있다고 생각.^^

 

 

3

나는 만사에 '꼭 이래햐만 한다'는 법은 없다고 봐요. 예를 들어 내 얼굴을 보세요. 이건 실수에 의한 작품이라고요. 그래도 나는 실수를 만회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왔어요. 

 

9

나쁜 상황과 마주쳐도 늘 웃는 얼굴을 하려고 해요. 우물의 펌프만 과도 그렇잖아요. 계속 움직이면 어느 사이에 물이 차오르잖아요? 마찬가지로, 재미가 없어도 계속 웃고 있으면 점점 즐거운 감정이 올라옵니다. 나는 무뚝뚝한 편이라 "왜요" 한마디만 해도 남편이 "지금 화내는 거야?"하고 따지니까. 그렇게 안 되려면 웃어야죠.

 

13.

심각해질 때도 있지만 '놀기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18

내 안에는 '불평'이라는 말이 없어요.

이래야 했다느니 저래야 했다느니 같은 말도 일절. 그저 지금 내 상황이 어떤지에만 집중하니까, 불평할 겨를이 없습니다. 가령 생활고에 시달린다고 하면 '이 상황에서 내가 살길이 뭘까'만 생각하는 거죠.

 

25

평범한 일상을 보내지 않으면 삶 속에서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27

좀 주제넘은 말이지만, 사물에는 겉과 속이 있어서 아무리 불행한 일을 당했다고 해도 어디선가는 빛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물론 행복이 늘 계속되지는 않죠. 그러나 마음이 답답할 때, 그 답답함만 보지 말고 약간 뒤로 물러서서 자기를 보는 정도의 여유만 있으면 인생도 살 만하지 않을까요? 그걸 이 나이가 되어서 깨달았네요.

부디 세상만사를 재미있게 받아들이고, 유쾌하게 사시길. 너무 노력하지도 너무 움츠러들지도 말고요.

 

55

나는 사람도, 한 번 망가져본 사람이 좋더군요.

 

103

세상을 망치는 것은 노인이 판칠 때다. 때가 되면, 긍지를 가지고 뒤로 빠져라.

 

옮기다보니 끝이 없다. 필사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115

삶이 끝날 때까지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이상은 있습니다. 집착을 완전히 버리고 어깨에 힘을 빼고 홀로 우뚝 서는 것이죠. 존재의 무게가 느껴지는 사람이 되고 싶네요. 밖으로 드러나는 것 말고, 마음의 기량 면에서.

 

120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네요. 지금까지, 만족스러운 인생이었습니다. 이제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책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도중에 영화부터 쭈욱 훑고 다시 이 책을 보니 꼭지 꼭지마다 더 마음에 와 닿았다. 내 삶도 조금은 변하지 않을까.....

 

 

 

 

 

키키 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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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오디세이 - 뉴욕의 사계절과 기억의 조각들을 찾아 나선 이방인의 여정
이철재 지음 / 이랑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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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최신 뉴스를 옮긴다. 

 

 

'미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

10일 코로나보드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15분 기준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45만5615명이고, 사망자는 1만6074명이다. 이는 압도적인 세계 1위다. 2위 스페인, 3위 이탈리아, 4위 프랑스가 뒤를 이었다.

특히 뉴욕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이날 뉴욕에서 799명의 사망자가 발생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로써 뉴욕의 누적 사망자는 7067명이 됐다. 뉴욕의 확진자는 15만9937명이 됐다. '

 

https://moneys.mt.co.kr/news/mwView.php?no=2020041007198021920&outlink=1

 

 

코로나 참상의 절정을 이끌고 있는 곳 미국. 미국의 중심인 뉴욕. 뉴욕이라면 나도 한마디쯤 하고 싶어졌다. 내가 지금껏 여행한 지역 중 가장 열악한 곳이 뉴욕이었으므로.

 

'열악'하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작년 6월에 보름 동안 뉴욕에 머물렀었다. 숙소는 차이나타운에 있는 허름한 호텔이었다. 창문이 없는 작은 방에 더블침대가 3/5를 차지하고 작은 탁자와 기둥을 빼면 캐리어 두 개를 펼쳐놓을 공간도 남지 않는 방이었다. 세면실은 공동이용이었지만 다행히 문만 열면 세 개가 나란히 있어서 그닥 불편하지는 않았다. 비용은 하룻밤에 13~14만 원 정도. 그간 여러 나라를 30년 가까이 다녀봤지만 비용 대비 시설은 거의 최악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한마디로 물가가 비싼 나라를 여행하는 게 얼마나 재미없는 지를 알게 해준 여행이었다.

 

호텔이 위치한 차이나타운은 말 그대로 중국인들이 모여사는 동네이다. 뉴욕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마치 중국의 어느 번잡한 동네에 와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팍팍해보였다. 빨래방이 곳곳에 있어 3~4일에 한번씩 빨래를 하러 가곤했는데 가는 곳마다 현지 중국인들로 만원이었다. 겨우 세탁기 하나 차지하고 건조기까지 사용하면 시간이 훌쩍 흘렀다.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집에서 빨래를 하지 않는 것,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빨래를 하거나 빨래를 널 공간이 없어서 이런 빨래방을 이용하는 것이지 싶었다. 집이라고 해야 작디 작은 공간일 뿐이리라. 내가 묵었던 호텔처럼.

 

뉴욕시의 중심지 맨해튼에서 여행자들에게 제일 불편한 것은 화장실 부족이 아닐까 싶다. 그 수많은 지하철역사에도 화장실 하나 없고, 하늘을 찌를듯한 화려한 고층 빌딩에도 이방인에게 허용된 무료화장실이 매우 드물다. 아주 인색하다. 정 급하면 스타벅스 같은 곳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이용하던가 아니면 맥도날드에 가서 먹고 싶지 않아도 햄버거 하나 사서 입에 물던가 해야 한다. 어떤 맥도날드 매장에선 화장실이 있는 2층으로 가려면 계단 초입에 서서 통행을 체크하는 직원에게 영수증을 제시해야 한다. 그나마 센트럴 파크에는 무료화장실이 있어서 신기할 정도였으니. 여행 첫날 어떤 공원 옆에 있는 유료공중화장실에 동전을 넣고 들어갔다가 오물로 넘쳐흐르던 변기를 보고 일도 못보고 그냥 나온 적도 있었다. 하필이면 여행 첫날에.

 

화장실 다음으로 힘들었던 건 햄버거로 시작해서 햄버거로 끝나는 일용할 양식에 적응하기가 너무나 힘들었다는 것.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한식당을 여러번 이용했지만 그리 탐탁하지 못했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에는 겨우 입에 맞는 망고로 끼니를 때웠다. 다행히 가격은 저렴했다. 애플망고 한 개가 채 1달러도 안 되었다. 여행 중 이렇게 음식으로 고생한 적은 없는데 이 풍요로운 미쿡에 와서 이 무슨 고생이람, 한탄이 절로 나왔다. 결국 집에 돌아와서는 병원에 가서 영양제주사를 맞고나서야 기운을 회복할 수 있었다.

 

보름 남짓 경험한 뉴욕이 이러했다. 세계적인 미술관, 박물관을 둘러보고 유명하다는 명소도 두루두루 갔었지만 내 몸이 겪은 뉴욕은 열악하고 힘겨웠다. 돈이 없는 사람들이 살기에는 매우 팍팍하고 버티기 힘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의 위력이 지배하는 곳은 결코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않다. 언제라도 홈리스로 추락할 수 있는 곳에서 살아가는 건 얼마나 살 떨리는 일일까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내게 뉴욕은 그런 무서움을 일깨워주는 곳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저 깨끗하기 이를 데 없는 화장실에 무한한 감사함을 느꼈다.

 

 

 

 

위 사진은 광주광역시 시내의 화장실 안내판 사진이다. 서로를 배려하는 이런 친절을 왜 뉴욕에선 기대할 수 없을까. 그 잘 사는 나라에서. 이번 코로나 사태가 미국에서 절정을 이루는 건 이런 친절함과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책 얘기.

뉴욕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글이라서 궁금했다. 뉴욕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싶었으나 뉴욕보다 뉴욕주에 관한 이야기여서 내가 기대한 바와 촛점이 달랐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 '맨해튼은 뉴욕시의 일부분이고 뉴욕시는 뉴욕주의 일부분이라는 것'. 그러니까 뉴욕주 안에 뉴욕시가 들어가고, 뉴욕시 안에 맨해튼이 있다는 것이다. 나도 뉴욕에 가서야 그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는.

 

다시 책 얘기.

그러니까 이 책은 저자가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하면서 .... 책 날개에 소개된 글을 인용하면,

 

'뉴욕이 제국의 수도가 된 이유를 찾고, 맨해튼의 빌딩숲 속에 숨겨진 유서 깊은 호텔 앨곤퀸의 문화와 낭만을 소개하며, <라스트 모히칸>의 배경이 된 아메리칸 인디언의 발자취를 쫓고, 낙농과 와인의 산지를 찾아 하룻밤 머물고, 뉴욕 시골 마을의 오페라 축제를 즐기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전한다......(이 책은) 일정을 길게 잡아 뉴욕주에 체류하며 돌아보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 이들에게도 좋은 관광 안내서가 될 수 있다.'

 

맨해튼에서 보름 동안 있어도 일정이 짧은데 글쎄 어느 정도 길게 잡아야 뉴욕이 아닌 뉴욕주에 체류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든다. 미국에 체류하면서, 시간상 금전상 여유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래서 이 책은 내게는 '그림의 떡'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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