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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에 실린 '두 과학자의 자살'이라는 칼럼이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21608.html

 

몇 문장만 인용해도 이 칼럼이 뜻하는 바를 쉽게 짐작할 수 있는데,

 

'숭례문 복원에 사용된 나무가 국내산인지 검증하는 일을 맡았던 목재연륜 분야 국내 최고의 권위자 박아무개 교수의 자살과 2008년 당시 광우병 위험을 알렸던 수의사 박상표의 자살이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다.'

 

'우리 사회는 정치사회적으로 극히 민감한 사안에 대한 법, 의학, 물리학, 각종 공학 전공자들의 정당한 의문이나 판단을 경청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소신을 고집하면서 사회에 경고를 보내는 전문가들을 조직 부적응자로 몰아가거나 최근에는 종북이라는 딱지까지 붙인다. 황우석 사태 이후 4대강, 삼성 백혈병 사고, 천안함 사고, 원전 사고 등 과학기술자들의 전문성과 판단이 필요한 일이 계속 발생했는데, 그 사안의 진실을 잘 알고 있을 전문가들이 입을 다물고 있다.'

 

이 칼럼을 신문에서 오려두고는 그간 미루었던 책을 읽기로 마음 먹고 근처 도서관으로 향했다.

 

 

 

 

 

 

 

 

 

 

 

 

 

 

소신있는 과학자로 살다간 다카기 진자부로의 자서전쯤 되는 책으로, 이미 유명한 책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위의 칼럼에 자극을 받아서였다. 과학자의 자살이라는 초점에 맞추어서 이 책을 훑어가다보니 다음의 구절이 인상깊게 다가왔다.

 

'(227쪽) 과학자들이 일시적이고 독선적인 자국.자민족의 이해의 노예가 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과학자는 이성적이고 보편적인 입장에서 인류 전체의 이익을 위해 생각하고 연구하고 활동하지 않으면 안된다. 스스로 자기 내면에 인류로서의 도덕적 의식을 형성하지 않으면 안된다. 과학자는 자기가 이루어놓은 연구와 개발의 성과에 대해서 인류의 일원으로 또 지역사회에 사는 시민의 일원으로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바로 인류의 영지를 지닌 과학자에게 주어진 길이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소신있는 과학자가 있을 텐데 위 칼럼마따나 '진실을 잘 알고 있을 전문가들이 입을 다물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의 저자인 다카기가 처믕부터 이런 과학자의 길로 들어선 것은 아니었다. 인생의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과학자 본연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는 대학의 교수직을 사퇴한 내용도 나온다.

 

(117) 실험과학자로서, 나 또한 상아탑 안의 실험실에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 자체를 실험실로 삼아, 방사능을 두려워하는 어민들과 불도저 앞에서 눈물 흘리는 농민의 처지를 내 것으로 하는 데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나가자, 나는 그렇게 마음을 굳혔다.

 

(127)..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 외에 따로 살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후 농민들, 어민들과 함께 하는 반원전 혹은 탈원전 운동과정은 지금 밀양에서 일어나는 일과 매우 흡사한 과정을 겪는다.

 

(143)...눈앞에 제기된 문제로부터 도피하지 않을 것, 어떠한 조직이나 권위에 대해서도 자신의 독립을 유지하고 모든 문제에 지적 성실성을 가지고 대처할 것....

 

원전에 대한 다음과 같은 양심적인 말도 눈에 들어온다.

 

(201)원전이 기술적으로 핵무기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강대국들이 경제적으로 전혀 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잠재적 위험이 큰 핵산업에 국가 주도로 대량투자를 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핵무기개발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따라서 원자력문제의 바탕에는 항상 그러한 국제정치의 역학이 깔려있으며, 기술 자체가 국가기밀에 속하기 때문에 항상 기밀성,폐쇄성이 뒤따른다.

뿐만 아니라 원자력과 같은 중앙집권형의 거대기술을 국가나 대기업이 일단 보유하게 되면 핵무기의 보유와는 별도로, 에너지 시장이나 에너지 공급관리에 있어서 거대한 지배력, 즉 권력을 갖게 된다. 거의 모든 정부가 풍력이나 바이오매스, 태양전지 같은 지역분산형 테크놀로지를 경시하고 우선 원자력산업에 참가한 것은 이러한 중앙집권적인 성격 내지는 지배력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밑바닥에는 거대테크놀로지와 민주주의가 어디까지 서로를 허용할 수 있는가라는 현대의 보편적인 문제가 관계하고 있다.

 

(188) 요컨대, 개인의 인권이나 사상을 바탕으로 해서 국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 밑에 개인이 있다는 것이 그들의 사상이다. 에너지정책을 말할 때에는 개개인이 어떤 에너지정책을 희망하는가 하는 논의가 먼저 있어야 한다.

 

 두서 없는 인용이지만 하나만 더.

 

(123) 모든 측면에서 우리 일본인은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노력이나 윤리의 문제로 환원하려는 경향이 강한 반면, 그들은(독일인) 항상 시스템의 문제로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나는 크게 배웠다.

 

 

인용만이 내가 이 책을 두고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다카기 진자부로가 친구에게서 받았다는 어느 스님의 글씨액자, 마지막으로 옮겨본다.

 

<진지한 마음으로>

 

진지한 마음으로 하면

십중팔구 이루어진다

진지한 마음으로 하면

무엇이든지 재미있다

진지한 마음으로 하면

누군가 나를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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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2-02 0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책을 읽으셨군요.
이 책이 제대로 널리 사랑받으며
많은 이들 마음을 울릴 수 있으면
참 좋으리라 생각해요.

nama 2014-02-02 08:23   좋아요 1 | URL
깨달음과 용기를 주는
이런 책은 널리 읽혀야해요.
세상의 좋은 스승들을 만나는 것도 큰 즐거움이구요.
 

지난 번 녀석에게 헌 책만 보낸 게 마음에 걸려 새 책을 보냈다. 녀석이 제주도에 가 있으니 기왕 간 거 제주도나 실컷 돌아다니다 오라는 의미에서 제주 여행에 관한 책을 골랐다. 녀석은 기질상 무엇인가에 꽂히면 끝까지 파고드는 성향이 있다. 그 기질을 잘 살리면 이름 석 자는 남길 수 있을 텐데 아직 그게 뭔지 모른다. 그걸 탐구하려는 의지조차 없다. 가정형편이 좀 더 좋았더라면, 그래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더라면 그 기질을 제대로 꽃 피울 수 있을 텐데...이 아쉬움과 안타까움 때문에 나는 녀석의 무례와 불응을 참아내곤 했다.

 

 

 

 

 

이 책을 보낸다만, 녀석에게 자전거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곳이 자기집이 아니니 없을 수도 있을 텐데 괜히 허파에 바람만 불어넣는 격이 되지 않을까. 이 책을 통해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주고 싶었는데, 나의 일방적인 바람이 되는 건 아닌지 어떤지 모르겠다.

 

 

 

 

 

 

 

 

 

 

 

 

 

 

 

 

 

 

맛보기로 딱 세 권 보냈다. 내 옆의 동료에게 이 책을 권했더니 좋은 책이라며 20권 전 권을 구입하더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문을 내서 역시 한 질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물론 내 딸아이에게도 초등학교 때부터 연차적으로 구입해서 전 권을 다 사주었다. 지금도 틈만나면 이 책을 손에 들고 있다. 초등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두고두고 읽을 수 있는 책이니 고맙기도 한 책이다.

 

녀석이 자전거에 미쳐 제주도를 제 것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녀석이 역사에 미쳐 게임 대신 밤 새 역사책을 읽어서 시뻘건 눈으로 등교하거나 까짓 하루 이틀 쯤 지각이라도 한다면 좋겠다.

 

이런 마음으로 책을 보냈는데 예상대로, 늘 그래왔듯 녀석에게서 책 잘 받았다는 문자조차 없었다.

물론 지난 번에 녀석에게서 온 문자를 보고 감동에 젖어 이런 말을 하긴 했었다, 내가.

'이 문자를 기억하리. 그리고 다 잊으리. 그간의 불응과 무례와 굳게 다물었던 입을.'

 

눈 앞의 작은 기대야 까짓 서운한 마음만 접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녀석의 그 숨은 자질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못한다. 아까운 수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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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 '가정통신문을 이렇게 써도 될까?'라는 페이퍼의 밑에서 세번 째 줄에 적힌 "아까운 수재, 청소할 때 무한 매력 발산'의 별칭을 얻는 녀석에게 다섯 권의 책을 보냈다.

 

      

                                

    

 

 

 

 

 

 

 

 

 

 

 

 

 

1학기 때는 게임중독에 빠져 이따금 무단결석도 하고, 2학기 때는 친구들과 어울려 흡연을 시작하는 등 여러가지로 담임인 나를 애태우던 녀석이었다. 고집은 또 얼마나 세고 제멋대로인지, 전화를 해도 받는 일이 없고 문자메세지는 아예 아이들 표현대로 '씹어버린다.' 그래서 한번도 전화로 목소리를 들어본 적도, 답신 메세지를 받은 적도 없다.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학교에서 응당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입에 달고 살건만, 이 녀석에게서 '선생님'이라고 불려본 적이... 딱 한번은 있었다. 그것도 자기가 아쉬울 때.

 

이 아이가 세상과 단절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건 아마도 어린 시절 겪었던 부모의 이혼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일 뿐이다. 한번도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으니 쉽게 속단할 일은 아니다. 하여튼 어떤 계기로 인해, 한때는 영재라는 말을 듣던 아이가 공부를 손에서 놓고 세상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것이다.

 

입학 첫 날의 마치 당장이라도 창문 밖으로 뛰어내릴 것 같은 가라앉은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처음부터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그 침울한 표정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한번도 못들으면서도 꾸준히 이 아이를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번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학생부 선도위원회에 올려 단발령과 교내봉사라는 처벌을 받게 했는데 참으로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일종의 충격요법이 필요하다 싶어서 내린 내 나름의 가혹한 방법이었는데 그게 효과가 있었는 지는 모르겠다. 한번도 녀석과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드디어 2학기 때는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바람난 사람처럼 오로지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 외에는 어떤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교과 선생님들이 불러도, 담임이 뭐라해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고문관처럼 행동했다. 청소? 그냥 가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단 대답은 '네'한다는 것,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는 말은 절대로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는 것, 반발하거나 반항적인 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웃는 표정이 매우 선하고 예쁘다는 것이다.

 

이제는 친구들과 너무 어울리다보니 오히려 걱정거리가 되었다. 방학을 맞아 특단의 조치를 내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멀리 있는 누나한테 보내서 그간 등한시한 공부도 하게 하고 친구들과도 떨어뜨려 놓는 일이었다. 방학식이 있던 날, 누나한테 내려간다는 녀석의 얼굴은 퍽으나 가라앉아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고소(?)하고 한편으로는 몹시 외로워 보였다.

 

그간 녀석에게서 영어자습서를 거절당해본 적이 있었던지라, 학습서는 빼고 딸아이가 읽던 책을 골라서 우편으로 보냈다. 깁스에서 갓 벗어난 발을 끌며 남편과 우체국으로 가면서 이 또한 괜한 짓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책 중에는 나도 재미있게 읽고 딸아이도 재미있게 읽었던 <용의자X의 헌신>이나 <인생>은 사실 좀 아깝기도 했다. 손때가 묻어 있고 추억이 어린 책이기 때문이다.

 

우편물 배송 완료했다는 우체국 문자가 오기가 무섭게 또 한 통의 문자가 왔다.

 

'선생님 책 잘 읽을게요.' 녀석이 보낸 최초의 문자였다!

 

답신을 보냈다. '헌 책이라 미안해. 다 읽으면 문자해. 새 책 보내줄게. 내가 책을 좀 알거든 ㅎㅎ'

 

녀석의 두번 째 답신이 왔다. '네'

 

이 문자를 기억하리. 그리고 다 잊으리. 그간의 불응과 무례와 굳게 다물었던 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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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1-07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감동이네요. 선생님의 마음이 아이에게 통했나봐요. 비딱하게 나가는 아이 모습에서 '외로움'을 읽으셨다는 말씀에 저도 뭉클해요.

nama 2014-01-08 07:59   좋아요 0 | URL
이 아이는 일 년 내내 외로운 모습이었어요. 그래서 밉다가도 다시 안쓰러워지고, 포기하다가도 다시 눈길이 가곤 했어요. 지난 일 년 동안 제가 양육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요. 꼭 제 자식 같은...
 

 

 

나이 먹는 게 좋은 점이 있다면, 예전에 도외시하던 옛 영화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는 점이다. 그저 고리타분하게만 여겨졌던 영화들이 비로소 의미있고 재미있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한가하고 늘어진 상태에서 영화에 빠져본 기억이 별로 없다. 직장에서 먹는 점심식사는 해치워야 할 하나의 일과이며 집에서 먹는 저녁밥 역시 허기를 때우기 위한 먹는 노동에 불과하다. 늘 직장생활이 버겁고 집안 일은 대충이다보니, 몸은 어느새 하나씩 망가지기 시작했고 .....이런 우울한 생각에  빠져 있는데, 때마침 모처럼 내 손에 들어온 리모콘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자 이 옛 영화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갓 태어났을 무렵 만들어진 영화였고 이미 여러번 보다말다 하다가 끝까지 본 적이 없는 영화라서 지레 겁이 나긴 했지만, 첫 화면부터 눈을 끌리 시작하는데.....과연 명불허전이다.

 

멋진 영화에 붙이는 온갖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영화였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를 완전하게 이해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문득 문득 과도하게 클로즈업된 로렌스의 표정이 압권이긴 한데, 말이 아닌 표정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제대로 와 닿지 않았다.

 

  

T.E. 로렌스를 알게 된 것은 이 책을 통해서였다.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아웃사이더>는 같은 범우사에서 나왔지만 1983년에 발간된 책으로, 당시 가격으로 3,000원을 주고 샀다. 추억이 어린 책이다. 세로 조판에 무자비한 번역이 일품이라고나 할까. 분명 내가 읽은 책인데 꼭 우리 아버지가 보던 책 같은 기분이 든다. 낯설다. 이런 조악한 번역을 감명있게 읽었었다니 ...도대체 어떤 부분에 빠져들었지?

 

 

 

 

 

 

30년 전에 발간된 <아웃사이더>를 통해 로렌스를 이해하고 싶었다.

 

105쪽 ....<벗들이 본 로렌스> 속에서....' 이 책(,<지혜의 일곱 기둥>로렌스 저)을 읽고나니 가슴이 아프다. 이 책을 쓴 사람은 내가 알고 있는 한에서는 가장 위대한 사람이지만, 그는 대단히 틀려 있다. 자기가 자기 스스로는 아닌 것이다(He is not himself.) 이 사람은 <나>를 발견했지만, 그것은 진실된 <나>는 아닌 것이다. 내가 어떻게 될까 나는 마음쓰지 않는다. 이 사람은 행동 속에서 살고 있지는 않다. 교류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이 사람은 생명이 흘러가는 파이프(관)에 지나지 않는다. 대단히 훌륭한 파이프임에는 틀림없겠으나, 진실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무엇으로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감상은 로렌스의 근본을 꿰뚫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웃사이더의 일반적 성격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사람은 행동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다.

 

영화 속의 로렌스는 행동하는 군인이고, 그 행동을 통해 로렌스의 선지자 같은 면모를 웅대하고 드라마틱하게 재현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라니.

 

로렌스가 자기를 군인으로 간주하지는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그가 파도를 일으켰던 것은 어떤 사상의 예언자로써이며, 그의 힘은 어떤 사상에 심취해 있는 인간의 힘이며,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 힘인 것이다. ...로렌스가 가끔 비참과 실망상태에 빠졌던 것은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즉 자기가 설교하고 있는 사상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의 반생을 보느라면, 회로에 생긴 아주 조그마한 고장 때문에 못쓰게 되어버린 거대한 기계를 생각나게 한다.

 

전쟁에 의하여 그는 새로운 시야를 얻었다. 더 현명해지기는 했지만 조금도 행복하게 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로렌스는 인간에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아웃사이더로서는 아직 태아의 단계에 있는 그는 자기의 감정의 배후에 있는 추진력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자기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 때문에 그의 주된 관심은 사고에 쏠리고, 행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 알쏭달쏭한 말들...영화는 분명 로렌스의 영웅적인 행위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행동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니.. 과도하게 클로즈업된 로렌스의 표정의 의미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바로 He is not himself. 그는 그 자신이 아니었다.

 

이 심오한 인물을 연기한 피터 오툴이 얼마 전에 타계했다. BBC에서는 피터 오툴의 타계를 2013년의 10대 뉴스의 하나로 선정했는데, 절대적으로 동감하게 된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변호인>에서의 송강호가 노무현보다 더 '변호사스럽다'고 하는데 피터 오툴이 로렌스보다 더 로렌스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옛 영화에 옛 책.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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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변호인>을 보고 나서 이 책을 읽으니 문장 하나 하나가 의미있게 다가온다. 지금 초반부를 읽고 있는데 읽어 나가면서 계속 하워드 진의 글을 옮겨볼 셈이다. 힘이 된다.

 

 

 

 

 

 

 

 

 

...누군가 대외정책을 비판하거나 병역을 기피하거나 국기에 대한 맹세를 거부할 때면 거듭해서 등장하곤 하는 애국심의 문제, 조국에 대한 충성의 문제였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건 조국, 국민이지 어쩌다 권력을 잡게 된 정부가 아니라고 설명하려 애썼다.      (9쪽)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지 않는다는 이계삼의 글이 떠올랐다. 의심없이 해오던 일이지만 조금만 고민해보면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일이 얼마나 많던가.

 

정의를 위한 이러한 싸움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바로 인간이다. 잠시라도,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순간에도 남들과는 달리 아무리 작은 일이지만 무언가를 행하는 인간이다. 또 영웅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아주 작은 행위라도 불쏘시개 더미에 더해지면 어떤 놀라운 상황에 의해 점화되어 폭풍 같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11쪽)

 

고려대생 주현우의 '안녕들 하십니까?'의 대자보는 아주 작은 행위에 불과한데 폭풍 같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그래서 무언가를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일깨워준다.

 

지배적 견해에 도전하면서 공개적으로 발설된 대담한 생각의 힘은 쉽사리 측정할 수 없다. 적들의 자기확신만이 아니라 친구들의 자기만족까지도 뒤흔들 정도로 용기를 내어 말하는 특별한 사람들은 변화를 위한 소중한 촉매이다.      (51쪽)

 

이런 사람들은 분명 있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이런 친구들이 있다. 내 가족 중에도 있다. 겉으로는 기분 나쁘지만 속으로는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그 용기에 놀라면서도 그 당돌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변화를 위한 소중한 촉매'라고 인정하는 게 합리적이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옹졸함을 드러내는 건 졸렬하다.

 

사회운동은 많은 '패배-단기적으로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것-를 당할지도 모르지만, 투쟁의 과정에서 낡은 질서의 힘은 부식되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생각은 변화하게 된다. 저항자들은 일시적으로 패배하지만 분쇄되지는 않으며, 반격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 다시 일어서고 기운을 얻어 왔다.  ... 고통받고 있는 어떤 집단이 스스로에게 의지해야만 함을 알게 된다는 것은, 그러한 교훈이 단기적인 의미에서는 쓰라린 패배를 동반한다손 치더라도, 미래의 투쟁을 위해서는 자신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          (78~79쪽)

 

패배가 자신을 강하게 하고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어떻게 패배하느냐에 따라서.

전략적인 패배.

 

...전쟁 직후 7백 명의 일본 관리를 심문한 후 당시 일본인들은 항복하기 직전이었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지 않았더라도, 그리고 일본을 침공하지 않았더라도 1945년 이전에는 '확실히' 전쟁이 종결되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아룰러 미국은 이미 일본의 암호를 해독하고 있던 상태로 일본이 막 항복하려고 하는 상황임을 알고 있었다. (134쪽)

 

원폭 투하의 진짜 이유는 정치적인 동기라는 것이다. '러시아가 태평양전쟁 참전을 앞두고 있던 상황에서 일본을 패배시키는 데 있어 그들의 기선을 제압하고 우리(미국, 프랑스, 영국, 즉 문명세계)의 힘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동기는 '전쟁이 끝나기 전에 .... 또 한 번의 승리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교과서에는 절대 실리지 않을 내용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모든 정부의 진정한 동기는...그들은 언제나 민주주의를 위해, 자유를 위해, 침략에 맞서, 모든 전쟁을 종식시키려고 싸우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건 국민들이 전쟁을 지지하도록 동원하기 위한 손쉬운 방편은 아닐까? 사실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싸움을 원치 않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그런 명분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138쪽)

 

지금도 지구 어느 곳에서는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전쟁을 의식하지 많고 살 수 없는 우리에게 '전쟁의 진정한 동기'는 늘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우화...홀로 사는 한 남자가 문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본다. 강력하고 무장한 폭군이 문 앞에 버티고 선 채 묻는다. "복종할 테냐?" 남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옆으로 비켜선다. 폭군이 들어와 집을 차지한다. 남자는 몇 년이고 그의 시중을 든다. 폭군은 독극물이 든 음식 때문에 수수께끼처럼 병에 걸린다. 그는 죽는다. 남자는 문을 열더니 시체를 치우고 집으로 돌아와 문을 닫고는 단호하게 말한다. "안 하겠다."       (141쪽)

 

하워드 진은 전쟁의 대체물로 이런 인내심을 들고 있지만, 굳이 전쟁을 거론하지 않아도 이미 이런 인내심으로 버텨내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위의 우화는 이 책에 수록된 <코이너 씨의 이야기>라고 한다. 

이 책을 검색해보니 절판된 상태고...그래도 검색해보니 여러 글이 올라와 있다. 그중에서...

 

 

 

 

 

 

 

'에게 씨는 그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파리를 쫓고, 잠자는 그를 보살펴주었다. 그리고 이날 이후 칠 년동안 한결같이 그에게 복종했다. 그를 위해 온갖 일을 다 해주었지만, 꼭 한 가지만은 하지 않았다. 그건 말을 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칠 년이 지나자 그 기관원은 너무 많이 먹고, 자고, 명령만 하다가 뚱뚱해져서 죽고 말았다. 그러나 에게 씨는 그를 썩은 이불에 말아 집 밖으로 끌어내고, 침대를 닦고 새로 도배를 한 다음,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 "아니, 싫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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