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 '가정통신문을 이렇게 써도 될까?'라는 페이퍼의 밑에서 세번 째 줄에 적힌 "아까운 수재, 청소할 때 무한 매력 발산'의 별칭을 얻는 녀석에게 다섯 권의 책을 보냈다.

 

      

                                

    

 

 

 

 

 

 

 

 

 

 

 

 

 

1학기 때는 게임중독에 빠져 이따금 무단결석도 하고, 2학기 때는 친구들과 어울려 흡연을 시작하는 등 여러가지로 담임인 나를 애태우던 녀석이었다. 고집은 또 얼마나 세고 제멋대로인지, 전화를 해도 받는 일이 없고 문자메세지는 아예 아이들 표현대로 '씹어버린다.' 그래서 한번도 전화로 목소리를 들어본 적도, 답신 메세지를 받은 적도 없다.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학교에서 응당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입에 달고 살건만, 이 녀석에게서 '선생님'이라고 불려본 적이... 딱 한번은 있었다. 그것도 자기가 아쉬울 때.

 

이 아이가 세상과 단절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건 아마도 어린 시절 겪었던 부모의 이혼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일 뿐이다. 한번도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으니 쉽게 속단할 일은 아니다. 하여튼 어떤 계기로 인해, 한때는 영재라는 말을 듣던 아이가 공부를 손에서 놓고 세상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것이다.

 

입학 첫 날의 마치 당장이라도 창문 밖으로 뛰어내릴 것 같은 가라앉은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처음부터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그 침울한 표정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한번도 못들으면서도 꾸준히 이 아이를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번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학생부 선도위원회에 올려 단발령과 교내봉사라는 처벌을 받게 했는데 참으로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일종의 충격요법이 필요하다 싶어서 내린 내 나름의 가혹한 방법이었는데 그게 효과가 있었는 지는 모르겠다. 한번도 녀석과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드디어 2학기 때는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바람난 사람처럼 오로지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 외에는 어떤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교과 선생님들이 불러도, 담임이 뭐라해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고문관처럼 행동했다. 청소? 그냥 가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단 대답은 '네'한다는 것,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는 말은 절대로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는 것, 반발하거나 반항적인 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웃는 표정이 매우 선하고 예쁘다는 것이다.

 

이제는 친구들과 너무 어울리다보니 오히려 걱정거리가 되었다. 방학을 맞아 특단의 조치를 내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멀리 있는 누나한테 보내서 그간 등한시한 공부도 하게 하고 친구들과도 떨어뜨려 놓는 일이었다. 방학식이 있던 날, 누나한테 내려간다는 녀석의 얼굴은 퍽으나 가라앉아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고소(?)하고 한편으로는 몹시 외로워 보였다.

 

그간 녀석에게서 영어자습서를 거절당해본 적이 있었던지라, 학습서는 빼고 딸아이가 읽던 책을 골라서 우편으로 보냈다. 깁스에서 갓 벗어난 발을 끌며 남편과 우체국으로 가면서 이 또한 괜한 짓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책 중에는 나도 재미있게 읽고 딸아이도 재미있게 읽었던 <용의자X의 헌신>이나 <인생>은 사실 좀 아깝기도 했다. 손때가 묻어 있고 추억이 어린 책이기 때문이다.

 

우편물 배송 완료했다는 우체국 문자가 오기가 무섭게 또 한 통의 문자가 왔다.

 

'선생님 책 잘 읽을게요.' 녀석이 보낸 최초의 문자였다!

 

답신을 보냈다. '헌 책이라 미안해. 다 읽으면 문자해. 새 책 보내줄게. 내가 책을 좀 알거든 ㅎㅎ'

 

녀석의 두번 째 답신이 왔다. '네'

 

이 문자를 기억하리. 그리고 다 잊으리. 그간의 불응과 무례와 굳게 다물었던 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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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1-07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감동이네요. 선생님의 마음이 아이에게 통했나봐요. 비딱하게 나가는 아이 모습에서 '외로움'을 읽으셨다는 말씀에 저도 뭉클해요.

nama 2014-01-08 07:59   좋아요 0 | URL
이 아이는 일 년 내내 외로운 모습이었어요. 그래서 밉다가도 다시 안쓰러워지고, 포기하다가도 다시 눈길이 가곤 했어요. 지난 일 년 동안 제가 양육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요. 꼭 제 자식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