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녀석에게 헌 책만 보낸 게 마음에 걸려 새 책을 보냈다. 녀석이 제주도에 가 있으니 기왕 간 거 제주도나 실컷 돌아다니다 오라는 의미에서 제주 여행에 관한 책을 골랐다. 녀석은 기질상 무엇인가에 꽂히면 끝까지 파고드는 성향이 있다. 그 기질을 잘 살리면 이름 석 자는 남길 수 있을 텐데 아직 그게 뭔지 모른다. 그걸 탐구하려는 의지조차 없다. 가정형편이 좀 더 좋았더라면, 그래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더라면 그 기질을 제대로 꽃 피울 수 있을 텐데...이 아쉬움과 안타까움 때문에 나는 녀석의 무례와 불응을 참아내곤 했다.

 

 

 

 

 

이 책을 보낸다만, 녀석에게 자전거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곳이 자기집이 아니니 없을 수도 있을 텐데 괜히 허파에 바람만 불어넣는 격이 되지 않을까. 이 책을 통해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주고 싶었는데, 나의 일방적인 바람이 되는 건 아닌지 어떤지 모르겠다.

 

 

 

 

 

 

 

 

 

 

 

 

 

 

 

 

 

 

맛보기로 딱 세 권 보냈다. 내 옆의 동료에게 이 책을 권했더니 좋은 책이라며 20권 전 권을 구입하더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문을 내서 역시 한 질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물론 내 딸아이에게도 초등학교 때부터 연차적으로 구입해서 전 권을 다 사주었다. 지금도 틈만나면 이 책을 손에 들고 있다. 초등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두고두고 읽을 수 있는 책이니 고맙기도 한 책이다.

 

녀석이 자전거에 미쳐 제주도를 제 것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녀석이 역사에 미쳐 게임 대신 밤 새 역사책을 읽어서 시뻘건 눈으로 등교하거나 까짓 하루 이틀 쯤 지각이라도 한다면 좋겠다.

 

이런 마음으로 책을 보냈는데 예상대로, 늘 그래왔듯 녀석에게서 책 잘 받았다는 문자조차 없었다.

물론 지난 번에 녀석에게서 온 문자를 보고 감동에 젖어 이런 말을 하긴 했었다, 내가.

'이 문자를 기억하리. 그리고 다 잊으리. 그간의 불응과 무례와 굳게 다물었던 입을.'

 

눈 앞의 작은 기대야 까짓 서운한 마음만 접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녀석의 그 숨은 자질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못한다. 아까운 수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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