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을 보고 나서 이 책을 읽으니 문장 하나 하나가 의미있게 다가온다. 지금 초반부를 읽고 있는데 읽어 나가면서 계속 하워드 진의 글을 옮겨볼 셈이다. 힘이 된다.

 

 

 

 

 

 

 

 

 

...누군가 대외정책을 비판하거나 병역을 기피하거나 국기에 대한 맹세를 거부할 때면 거듭해서 등장하곤 하는 애국심의 문제, 조국에 대한 충성의 문제였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건 조국, 국민이지 어쩌다 권력을 잡게 된 정부가 아니라고 설명하려 애썼다.      (9쪽)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지 않는다는 이계삼의 글이 떠올랐다. 의심없이 해오던 일이지만 조금만 고민해보면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일이 얼마나 많던가.

 

정의를 위한 이러한 싸움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바로 인간이다. 잠시라도,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순간에도 남들과는 달리 아무리 작은 일이지만 무언가를 행하는 인간이다. 또 영웅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아주 작은 행위라도 불쏘시개 더미에 더해지면 어떤 놀라운 상황에 의해 점화되어 폭풍 같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11쪽)

 

고려대생 주현우의 '안녕들 하십니까?'의 대자보는 아주 작은 행위에 불과한데 폭풍 같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그래서 무언가를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일깨워준다.

 

지배적 견해에 도전하면서 공개적으로 발설된 대담한 생각의 힘은 쉽사리 측정할 수 없다. 적들의 자기확신만이 아니라 친구들의 자기만족까지도 뒤흔들 정도로 용기를 내어 말하는 특별한 사람들은 변화를 위한 소중한 촉매이다.      (51쪽)

 

이런 사람들은 분명 있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이런 친구들이 있다. 내 가족 중에도 있다. 겉으로는 기분 나쁘지만 속으로는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그 용기에 놀라면서도 그 당돌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변화를 위한 소중한 촉매'라고 인정하는 게 합리적이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옹졸함을 드러내는 건 졸렬하다.

 

사회운동은 많은 '패배-단기적으로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것-를 당할지도 모르지만, 투쟁의 과정에서 낡은 질서의 힘은 부식되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생각은 변화하게 된다. 저항자들은 일시적으로 패배하지만 분쇄되지는 않으며, 반격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 다시 일어서고 기운을 얻어 왔다.  ... 고통받고 있는 어떤 집단이 스스로에게 의지해야만 함을 알게 된다는 것은, 그러한 교훈이 단기적인 의미에서는 쓰라린 패배를 동반한다손 치더라도, 미래의 투쟁을 위해서는 자신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          (78~79쪽)

 

패배가 자신을 강하게 하고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어떻게 패배하느냐에 따라서.

전략적인 패배.

 

...전쟁 직후 7백 명의 일본 관리를 심문한 후 당시 일본인들은 항복하기 직전이었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지 않았더라도, 그리고 일본을 침공하지 않았더라도 1945년 이전에는 '확실히' 전쟁이 종결되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아룰러 미국은 이미 일본의 암호를 해독하고 있던 상태로 일본이 막 항복하려고 하는 상황임을 알고 있었다. (134쪽)

 

원폭 투하의 진짜 이유는 정치적인 동기라는 것이다. '러시아가 태평양전쟁 참전을 앞두고 있던 상황에서 일본을 패배시키는 데 있어 그들의 기선을 제압하고 우리(미국, 프랑스, 영국, 즉 문명세계)의 힘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동기는 '전쟁이 끝나기 전에 .... 또 한 번의 승리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교과서에는 절대 실리지 않을 내용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모든 정부의 진정한 동기는...그들은 언제나 민주주의를 위해, 자유를 위해, 침략에 맞서, 모든 전쟁을 종식시키려고 싸우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건 국민들이 전쟁을 지지하도록 동원하기 위한 손쉬운 방편은 아닐까? 사실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싸움을 원치 않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그런 명분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138쪽)

 

지금도 지구 어느 곳에서는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전쟁을 의식하지 많고 살 수 없는 우리에게 '전쟁의 진정한 동기'는 늘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우화...홀로 사는 한 남자가 문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본다. 강력하고 무장한 폭군이 문 앞에 버티고 선 채 묻는다. "복종할 테냐?" 남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옆으로 비켜선다. 폭군이 들어와 집을 차지한다. 남자는 몇 년이고 그의 시중을 든다. 폭군은 독극물이 든 음식 때문에 수수께끼처럼 병에 걸린다. 그는 죽는다. 남자는 문을 열더니 시체를 치우고 집으로 돌아와 문을 닫고는 단호하게 말한다. "안 하겠다."       (141쪽)

 

하워드 진은 전쟁의 대체물로 이런 인내심을 들고 있지만, 굳이 전쟁을 거론하지 않아도 이미 이런 인내심으로 버텨내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위의 우화는 이 책에 수록된 <코이너 씨의 이야기>라고 한다. 

이 책을 검색해보니 절판된 상태고...그래도 검색해보니 여러 글이 올라와 있다. 그중에서...

 

 

 

 

 

 

 

'에게 씨는 그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파리를 쫓고, 잠자는 그를 보살펴주었다. 그리고 이날 이후 칠 년동안 한결같이 그에게 복종했다. 그를 위해 온갖 일을 다 해주었지만, 꼭 한 가지만은 하지 않았다. 그건 말을 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칠 년이 지나자 그 기관원은 너무 많이 먹고, 자고, 명령만 하다가 뚱뚱해져서 죽고 말았다. 그러나 에게 씨는 그를 썩은 이불에 말아 집 밖으로 끌어내고, 침대를 닦고 새로 도배를 한 다음,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 "아니, 싫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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