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신문에 실린 '두 과학자의 자살'이라는 칼럼이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21608.html

 

몇 문장만 인용해도 이 칼럼이 뜻하는 바를 쉽게 짐작할 수 있는데,

 

'숭례문 복원에 사용된 나무가 국내산인지 검증하는 일을 맡았던 목재연륜 분야 국내 최고의 권위자 박아무개 교수의 자살과 2008년 당시 광우병 위험을 알렸던 수의사 박상표의 자살이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다.'

 

'우리 사회는 정치사회적으로 극히 민감한 사안에 대한 법, 의학, 물리학, 각종 공학 전공자들의 정당한 의문이나 판단을 경청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소신을 고집하면서 사회에 경고를 보내는 전문가들을 조직 부적응자로 몰아가거나 최근에는 종북이라는 딱지까지 붙인다. 황우석 사태 이후 4대강, 삼성 백혈병 사고, 천안함 사고, 원전 사고 등 과학기술자들의 전문성과 판단이 필요한 일이 계속 발생했는데, 그 사안의 진실을 잘 알고 있을 전문가들이 입을 다물고 있다.'

 

이 칼럼을 신문에서 오려두고는 그간 미루었던 책을 읽기로 마음 먹고 근처 도서관으로 향했다.

 

 

 

 

 

 

 

 

 

 

 

 

 

 

소신있는 과학자로 살다간 다카기 진자부로의 자서전쯤 되는 책으로, 이미 유명한 책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위의 칼럼에 자극을 받아서였다. 과학자의 자살이라는 초점에 맞추어서 이 책을 훑어가다보니 다음의 구절이 인상깊게 다가왔다.

 

'(227쪽) 과학자들이 일시적이고 독선적인 자국.자민족의 이해의 노예가 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과학자는 이성적이고 보편적인 입장에서 인류 전체의 이익을 위해 생각하고 연구하고 활동하지 않으면 안된다. 스스로 자기 내면에 인류로서의 도덕적 의식을 형성하지 않으면 안된다. 과학자는 자기가 이루어놓은 연구와 개발의 성과에 대해서 인류의 일원으로 또 지역사회에 사는 시민의 일원으로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바로 인류의 영지를 지닌 과학자에게 주어진 길이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소신있는 과학자가 있을 텐데 위 칼럼마따나 '진실을 잘 알고 있을 전문가들이 입을 다물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의 저자인 다카기가 처믕부터 이런 과학자의 길로 들어선 것은 아니었다. 인생의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과학자 본연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는 대학의 교수직을 사퇴한 내용도 나온다.

 

(117) 실험과학자로서, 나 또한 상아탑 안의 실험실에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 자체를 실험실로 삼아, 방사능을 두려워하는 어민들과 불도저 앞에서 눈물 흘리는 농민의 처지를 내 것으로 하는 데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나가자, 나는 그렇게 마음을 굳혔다.

 

(127)..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 외에 따로 살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후 농민들, 어민들과 함께 하는 반원전 혹은 탈원전 운동과정은 지금 밀양에서 일어나는 일과 매우 흡사한 과정을 겪는다.

 

(143)...눈앞에 제기된 문제로부터 도피하지 않을 것, 어떠한 조직이나 권위에 대해서도 자신의 독립을 유지하고 모든 문제에 지적 성실성을 가지고 대처할 것....

 

원전에 대한 다음과 같은 양심적인 말도 눈에 들어온다.

 

(201)원전이 기술적으로 핵무기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강대국들이 경제적으로 전혀 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잠재적 위험이 큰 핵산업에 국가 주도로 대량투자를 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핵무기개발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따라서 원자력문제의 바탕에는 항상 그러한 국제정치의 역학이 깔려있으며, 기술 자체가 국가기밀에 속하기 때문에 항상 기밀성,폐쇄성이 뒤따른다.

뿐만 아니라 원자력과 같은 중앙집권형의 거대기술을 국가나 대기업이 일단 보유하게 되면 핵무기의 보유와는 별도로, 에너지 시장이나 에너지 공급관리에 있어서 거대한 지배력, 즉 권력을 갖게 된다. 거의 모든 정부가 풍력이나 바이오매스, 태양전지 같은 지역분산형 테크놀로지를 경시하고 우선 원자력산업에 참가한 것은 이러한 중앙집권적인 성격 내지는 지배력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밑바닥에는 거대테크놀로지와 민주주의가 어디까지 서로를 허용할 수 있는가라는 현대의 보편적인 문제가 관계하고 있다.

 

(188) 요컨대, 개인의 인권이나 사상을 바탕으로 해서 국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 밑에 개인이 있다는 것이 그들의 사상이다. 에너지정책을 말할 때에는 개개인이 어떤 에너지정책을 희망하는가 하는 논의가 먼저 있어야 한다.

 

 두서 없는 인용이지만 하나만 더.

 

(123) 모든 측면에서 우리 일본인은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노력이나 윤리의 문제로 환원하려는 경향이 강한 반면, 그들은(독일인) 항상 시스템의 문제로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나는 크게 배웠다.

 

 

인용만이 내가 이 책을 두고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다카기 진자부로가 친구에게서 받았다는 어느 스님의 글씨액자, 마지막으로 옮겨본다.

 

<진지한 마음으로>

 

진지한 마음으로 하면

십중팔구 이루어진다

진지한 마음으로 하면

무엇이든지 재미있다

진지한 마음으로 하면

누군가 나를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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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2-02 0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책을 읽으셨군요.
이 책이 제대로 널리 사랑받으며
많은 이들 마음을 울릴 수 있으면
참 좋으리라 생각해요.

nama 2014-02-02 08:23   좋아요 1 | URL
깨달음과 용기를 주는
이런 책은 널리 읽혀야해요.
세상의 좋은 스승들을 만나는 것도 큰 즐거움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