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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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겉표지에는 세 개의 문장이 울타리처럼 가장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박노자의 삐딱한 국가론.

폭력으로 유지되는 국가와 결별하기.

 

많은 내용 중에서 두 가지가 인상적이다.

 

하나.

 

(37쪽)...우리가 국가를 '합리적인 조절자'로 생각하는 것은 실로 어리석음의 극치인 셈이다. 계급국가는 합리적이지 않으며 합리적일 수도 없다. 예컨대 지금의 남한처럼 모국어 이해마저 잘 안 되는 서너 살짜리의 유아들까지 혀 수술을 받아가면서 '영어 유치원'에서 '원어민'에게 영어를 배워야 할 정도로 전국적인 '영어 광풍'을 일으키는 것은 합리성이 아니고 그 반대다. 영어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 다수가 영어에 광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그저 다수에 대한 가혹 행위이자 엄청난 규모의 낭비일 뿐이다. 그러나 영어 능력을 그 주된 문화자본으로 삼고 있는 남한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에서 '영어 광풍'은 너무나 필요하다. 그러한 분위기에서야 영어를 무기로 삼는 저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합리화하고 세습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3월 초. 원어민 교사의 첫 수업. 영어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강연 동영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강사는 중국에서의 영어 열풍을 보여주면서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는데 강연장의 분위기는 뭐랄까 흡사 종교 집회와 흡사했다. 소름이 끼쳤다. 아무리 영어가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해도 종교는 아니잖은가. 수업이 끝나고 이 문제의 동영상에 대해서 한마디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 종교적인 강연같다고. 그랬더니 그 다음 시간 부터는 수업 중에 내 눈치를 살짝 보는 듯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할 걸 그랬나 싶다. '영어가 무슨 종교냐?" 고.

 

버겁다. 불편하다. 괴롭다. 고통이다. 무엇이? 영어가. 

 

둘.

 

(287)...우리 모두가 그들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대체 우리 모두는 누구에게 이런 빚을 지고 있을까?

 

(287)...'또라이'로 취급받아도, 이등/삼등 시민으로 전락해도, 그들은 군사주의적 독재의 유순한 '국민'되기를 거부했다.

 

그나마 초기 기독교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은?

 

바로 여호와의 증인이다.

 

11쪽에 걸친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부분(277~287)을 읽으며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침례교회-여호와의 증인-천주교-불교의 영향을 차례대로 받아온 내게 여호와의 증인은 쉽게 외면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종교가 아니었다. 변호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남들처럼 그들을 비웃거나 조롱할 수는 없었다. 아련한 동정심 같은 걸 갖고 있었는데 이제야 그들도 제대로 평가를 받는구나 싶어 감격스러운 것이다. 이 부분을 그대로 옮기지 못해 애석하다.

 

여호와의 증인하면 떠오르는 소책자가 있다. <깨어라>, <파수대>. 어렸을 때 한번도 얼굴을 뵌 적 없는 먼 친척 고모가 상당기간 이 잡지를 집으로 보내준 적이 있다. 그 고모도 음지에서 살았을까, 왜 한번도 얼굴을 뵐 수 없었을까.

 

 

내 친구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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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하라 - 박노자, 처음으로 말 걸다
박노자.지승호 지음 / 꾸리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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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공산당을 반대함)-승공(공산당을 이겨냄)-멸공(공산당을 없애버림)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이념교육을 철저하게 받아온 세대로서 이 책의 제호와 빨간 색의 서체는 몹시 자극적이다. 그래서 이 자극적인 제호만 보고도 이 책이 궁금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온갖 이념교육의 부작용으로 감히 생각해보거나 입 밖으로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시원하게 들을 수 있었고 그 의미를 한번쯤 곰곰히 되새겨보게 되었다. 이런 책은 나와 같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나올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우리 세대는 온갖 이념교육으로 극히 소심하고 속이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들어서 감히 이런 생각들을 한다는 자체가 위험한 것으로 여겨 본능적으로 몸을 도사리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의 인터뷰어인 지승호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나는 순간 움찔했다.

 

(186쪽) (지승호)"그렇다면 '혁명'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좌파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박노자) "예를 들어 이렇게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나마 천안함이 북쪽 소행이 아닐 수도 있다, 혁명의 방법론이 무엇이다, 이런 대화를 하면서도 하등의 공포가 없지 않습니까? 사실은 엄청난 발전이죠. 80년대 만약에 이와 같은 종류의 대화를 했다면 아마 둘 다 상당히 떨었을 것입니다. 언제 검거와 고문을 당할지 모르니까요..."(지승호)"맞는 말씀이신데, 오슬로와 지금 여기 대한민국은 온도 차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전 좀 공포가 있는데요."

 

우선 대통령에 대한 얘기. 

 

(23)...네 명의 대통령(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을 가리킴)은 서로 지점이 달라도 사실 민중에 대한 정책은 굉장히 일관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에 대해 기대를 갖고 있다는 것은 민중한테 제일 해로운 겁니다. 부르주아 정객 중에서는 어느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랬었구나.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들켜버렸다는 충격 엇비슷한 감정이 들었고 이 혜안에 적잖이 놀랐다.

 

이번엔 국가에 대한 얘기다.

 

(85) ...국가는 권리를 가지고 있고, 우리는 의무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진 거죠. 문제가 생기면 의무를 다하지 못해 그렇다고 쉽게 생각하죠. 만약에 우리가 국가주의적인 사고방식이나 기업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 민주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다면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은 1차적으로 국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국가와 개인은 어디까지나 계약관계이므로 1차적으로 국가의 존재 이유는 개개인 국민에 대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입니다....우리는 국가를 일종의 개개인 인민의 계약에 의해 성립된 기관으로 보지 않고, 우리보다 더 의미 있는 일종의 전지전능한 기관으로 보는 거죠. 그게 참 아쉽습니다.

 

전지전능한 기관으로서의 국가라고라...그래 이렇게 교육 받아왔지, 지금까지.

 

노르웨이의 숙제철폐운동도 참 의미있게 다가와서 읽기를 멈추고 한참 생각에 잠기게 했는데...

 

(96)...숙제를 철폐하면 이와 같은 상류층, 중류 상부층의 아동들만의 '프리미엄'이 사라지고 그나마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기회가 약간 더 주어지게 됩니다.....또 한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학생도 학습노동자인데, 노동자는 노동하는 장소에서 노동을 해야지, 집에서까지 노동을 한다는 것은 학교에 의한 개인 시간의 식민화예요. 노동 시간과 개인 시간이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게 원칙이어야죠.

 

흔히들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면서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라면 여기에 하나를 덧붙여야 하리라. '자식을 대학에 들여보내봐야 어른이 된다'라고. 고등학생 자녀를 둔 사람이라면 금방 이해가 되는 얘기다. 학습노동자가 아니라 차라리 학습노예에 가깝다.

우리와 같은 상황에서는 숙제철폐운동은 깜찍하고 귀여운 발상처럼 들린다. 그런데도 자꾸 이 운동에 눈길이 머문다.

 

종교에 대한 얘기는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아직도 이런 사실을 외면하는사람들이 많으니 반복할 수 밖에.

 

(195)...그리고 종교라는 것이 교회나 사찰에 가서 "제발 내 자식 서울대 들어가게 해 달라, 취직하게 해 달라", 이런 기도하고 아무 관계가 없는 거거든요. 진짜 종교인의 기도는 내가 못박혀서 남을 대신해서 죽을 수 있게 해달라는 정도일 텐데요. 우리한테는 이미 그런 정신이 극소수한테만 남아 있는 것이죠.

 

책 말미의 지승호의 마지막 글귀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같이 조금 더 고민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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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 인생]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1인분 인생 - 진짜 나답게 살기 위한 우석훈의 액션大로망
우석훈 지음 / 상상너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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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에 대한 리뷰를 쓴다는 게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지고, 한편으로는 어리석거나 주제넘은 행위는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정성껏 차려놓은 밥상을 앞에 놓고 미주알고주알 분석하고 평한다는 게 참 미안하고 쑥스러운 일이다.

 

마음이 머물렀던 곳에 갈피갈피 붙여놓은 포스트잇을 하나씩 떼어내며 그대로 옮기는 것도 리뷰라면 참 좋겠다. 이상하게도 포스트잇을 많이 붙여놓은 책일수록 리뷰 쓰기는 더욱 곤혹스럽다. 도대체 잘 차려놓은 밥상을 받고 잘 먹은 처지에 무슨 말을 보태리.

 

공감이 많이 가는 부분을 그냥 옮기는 수밖에 없다. 나도 이런 세상을 꿈꾼다.

 

(103쪽) 내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는 더 좋을 것 같다. 혼자서 잘 사는 삶을 추구하다 보면, 그때부터는 불법과 탈법의 묘한 경계를 탈 수밖에 없다. 그때에는 권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변화가 중요하고, 어떤 세상을 우리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인가, 그런 생각을 더하게 된다.

 

'되고 싶은 것'을 강요하는 게 요즘의 우리나라 교육의 한 모습이다. 생활기록부에 진로희망을 쓰는 난이 있는데 그곳에는 자신이 되고 싶은 미래의 직업을 쓰게 되어있다. 물론 그 옆에는 부모의 희망란도 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런 사실을 얘기하며 한가지씩 직업을 고르게 한다. 공부 좀 하는 아이는 의사, 법조계, 외교관 정도 쓰고 보통은 교사, 회사원, 공무원 정도, 그리고 공부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은 컴퓨터게이머, 축구 선수, 요리사, 디자이너, 연예인을 쓴다. 거의 천편일률적인데 문제는 아무것도 칸을 메우지 못하는 아이들이 꼭 한두 명씩 있다는 것이다. 빈칸으로 두면 안되기 때문에 그 녀석을 닥달할 수밖에 없는데 녀석들은 하나같이 되고 싶은 게 없다는 푸념을 한다.

 

이럴 때 교사는 녀석을 좀 덜 떨어진 녀석이라 생각하고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보게 된다.(내가 그렇다.) 어떻게 꿈이 없냐고 타박아닌 타박을 해가며 빨리 하나 써넣으라고 독촉을 한다. 마지못헤 녀석이 입을 반쯤 벌리고 겨우 하나 우물거린다. 녀석도 답답해하고 이런 녀석을 보는 교사도 답답해한다. 희망직업을 써넣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적, 없다.

 

(333) 꿈이 삼성전자 직원이거나 교사이거나 혹은 공무원이라는 학생들을 볼 때면 이런 게 꿈이 될 수 있나 싶다. 꿈은, 지구를 지킨다, 하늘을 날고 싶다, 혹은 시인이 되고 싶다. 무대에 서고 싶다. 그런 것들이어야 하는 게 아닐까?

 

재밌는 건, 생활기록부에 진로희망을 그냥 교사라고 쓰면 안된단다. 과학교사, 국어교사...이렇게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기에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 뭐라고 항의했더니 그러면 중등교사, 초등교사라고 쓰라고 한다. 참으로 무책임하고 비겁한 사람들이 기성세대다. 꿈을 요구하기 보다는 '내가 살고 싶은 세상'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한다.

 

(335)..꿈 같은 걸 만들어놓고 자기 플레이만 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삶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꿈을 키운다고 하면서 정작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거나 마음을 나누는 감수성과 공감 능력 같은 것을 죽이는 셈인지도 모른다.

 

아픈 말이다.

 

(212) 우파를 자신의 삶의 신조로 선택하지 않으면 경제적 생활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나라, 스승이나 부모가 먹고살기 위해선 우파가 되라는 나라, 그건 우리가 만들어야 할 나라도, 우리들의 미래도 아니다. 좌파든 우파든, 생태주의든 페미니즘이든, 대학을 가든 안 가든, 화이트칼라든 블루칼라든, 자신의 성격과 양심 그리고 선택에 의해서 자신의 미래가 결정되고, 마이너의 마이너가 되어도 입에 세 끼 밥 들어가는 데에 어려움이 없는 나라, 그게 우리들이 만들어가야 할 경제다.

 

(323) 자기 자식이 자기보다 경제적으로 더 열악할 것이라는 걸 한국의 중산층이 집단적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때가 사회 변화의 첫 지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음 세대로 갈수록 사는 게 더 힘들어질 거라는 말에 공감백배다. 미래가 어두운 아이들에게 꿈을 강요하고 되고 싶은 것을 선택하게 하는 게 지금의 진로교육이라는 현실이 참으로 고통스럽게 와 닿는다. 지금의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진로교육은 비겁하다. 고민없이 아이들에게 '되고 싶은 것'을 요구한 것, 미안한 일이다.

 

포스트잇을 수없이 붙여놓았건만, 그래서 함께 생각해 볼 것도 많건만, 나머지는 직접 읽어보는 수밖에. 특히 태권도 4단의 아내와 사는 얘기, 고양이 얘기가 재밌는 권말부록처럼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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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물건 - 김정운이 제안하는 존재확인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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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몇 페이지를 펼쳐보니 한겨레신문 칼럼에서 읽었던 글이 몇 편 보인다. 이 분의 글은, 처음 읽어도 낯설지 않고 읽은 것 또 읽어도 새롭게 다가온다. 게다가 육성이 느껴지는 글이다. 사람도 재미있고 글도 재미있는데다가 글에서 글쓴이의 육성을 듣는 듯싶고 얼굴 표정이 보이는 듯싶다. 사람이나 글이 단순하면서도 깊고 깊은 듯하면서 가볍다. 수다스러운데 새겨들을 만한 부분이 있다. 묘한 매력이다.

 

그래도 새 책인데 싶어서 낯익은 글을 건너뛰고 2부 부터 읽었다. 여러 장의 사진 중에 이어령의 3m짜리 책상 사진이 가히 압권이었다. 사실 이 책을 얼마 전에 나보다 8년 연상인 동료 교사한테 선물로 드렸다. 약속 시간 10분 정도를 남겨놓고 단번에 고른 책이었다. 아무에게나(?) 주어도 재미있게 읽힐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선물로 건네기 직전 우연히 펼친 부분에 바로 이어령의 이 책상 사진이 눈을 사로잡았다.

 

결국은 이 사진 한 장 때문에 내 것으로 새로 한 권을 더 구입했다. 3m 책상이라니.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궁금한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이어령의 책상에서 호기심을 끌어당긴 글은, 신영복의 벼루, 차범근의 계란 받침대, 문재인의 바둑판, 안성기의 스케치북, 조영남의 안경, 김문수의 수첩, 유영구의 지도, 이왈종의 면도기, 박범신의 목각 수납통 얘기로 끝을 맺는다.

 

꼭지 하나하나가 읽을 만했다. 어떤 한 사람을 대표하고 그 사람의 인생이 오롯이 들어있는 물건에 대한 얘기는 나름 참신하고 산뜻했다. 이런 각도로도 생각할 수 있구나, 하는 의외의 감탄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특히 이왈종의 골프공 얘기에서는 비실비실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신음 같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 대단한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은 그래도 살맛나는 게지, 싶었다.

 

나보다 8년 연상인 동료교사는 내게서 이 책을 받고 이 분보다 10년 쯤 연상되시는 남편분에게 이 책을 보여드렸다고 한다. 남편분은 제호가 '남자의 물건'이라서 기분 나쁘다며 읽지 않겠다고 하셨다 한다. 이분이 어떤 분이냐면, 내가 알라딘이라는 인터넷서점에서 10년간 1,000권 넘게 책을 구입했다는 말을 듣고는 독서목표를 5,000권으로 잡고 당장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기 시작하여 입술부르터가며 완독을 했다는 분이다. 연세가 아마 70세 전후쯤 되시는 분이다.

 

여자인 나는 오히려 이런 <남자의 물건>이라는 제호에서 별다른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떠올리기가 귀찮다. 설마 책에 그렇고 그런 얘기가 있을까 싶어서다. 김정운이라는 사람의 책을 이미 두 권이나 읽었는데 말이다. 이 책은 한 분야에서 일가을 이룬 분들의 물건을 통해서 그분들의 삶을 엿보는 즐거움을 주고 과연 내 인생에서의 물건이 무엇일까를 한번쯤 고민하게 한다.

 

그런데 이 책은 남자에게 주는 선물로 어울리나, 여자에게 주는 선물로 어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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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숙 2012-06-26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가 이책을 선물받은 주인공이고 독서목표 5000권을 하고 삼국지를 읽은 분은 나의 밖앗분 아니 남편이시다. 항상 신문을 읽고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다. 요사이는 자신이 인쇄중독자라고 하신다. 나는 주위에 이런분들이 계시기에 그나마 책을 읽는 것 같다. 이책을 너무 잘읽고 주변에 사람들에게 나도 이야기 하고 있다.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 - 생태주의 작가 최성각의 독서잡설
최성각 지음 / 동녘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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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책은 많다. 서평을 엮은 많은 책중에서 이 책이 돋보이는 점은, 일관된 흐름이 감지된다는 점과, 그 일관된 흐름은 다름아닌 세상에 소용되는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삶이 녹아있는 서평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책에 대한 책들이 빠지기 쉬운, 미처 소화시키지 못한 체 꾸역꾸역 엮은 듯한 지끈지끈한 두통감이 없다.

 

상쾌한 서평에 몰입되어 대강 읽으려고 하던 처음의 독서 의도를 고쳐먹게 되었고 결국은 순서는 엉망이 되었지만 이 책을 완독하게 될 것 같다. 그러나 완독 전에 이 글을 쓰는 의도는 이 책에서 받은 신선한 인상을 잊기 전에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뭔가를 말하고 싶게 만드는 책은 좋은 책임에 틀림없지 않을까.

 

(19쪽) ...훌륭한 사람의 기준은 무엇일까? 나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 사람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일약 시민운동으로 명망가가 되어버린 성직자들을 가까이에서 봤더니만, 사람을 그 학벌과 직위와 신분으로 은근슬쩍 가려 대하기 시작해 쓸개를 씹은 심정이 된 기억이 있다.

 

쉬운 글이다.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하는 것도 이 책이 마음에 드는 이유다. 김성동의 <생명에세이>에 인용한 글을 옮겨본다.

 

(157쪽) "문자가 없으므로 책이 없을 것이고, 책이 없으므로 온갖 부질없는 알음알이를 가르쳐주는 학교가 없을 것이며, 학교가 없으므로 이른바 지식인 없을 것이다. 지식인이 없어 '국가'라는 이름의 최고 권력기관이 없을 것이므로 공업 우선의 개발독재가 없어 조상 전래의 토지로부터 내몰리는 농민이 없을 것이고, 농촌이 해체되지 않았으므로 달동네로 기어들어 미친 듯이 올라가는 전세값 사글세값은 못 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도시빈민이 없을 것이며, 부자들의 대량소비를 전제로 한 대량생산이 없을 것이므로 열악한 노동 조건 아래 신음하는 노동자가 없을 것이다."..자제가 안 되는 인간의 욕망을 문자로부터 시작한 문명과 결부시키면서 인간의 삶의 행복이 결코 문명의 발전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김성동의 <생명에세이>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으리.

 

꼭지 "니네들은 '넓게 생각하고 좁게'살아라"(우석훈,<생태요괴전>,<생태페다보지>)에 나오는 글이다.

 

(180쪽)...우석훈 식 퇴마술의 요체는 한마디로 '넓게 생각하고 좁게 살기'다. 과시적 욕구로 가득 찬 본능, 혹은 마케팅에 의해 급조된 욕망의 지시에 따라 살아가는 것은 '넓게 살기'다. '좁게 살기'는 이와 반대되는 삶의 상징적 표현이다. 좁게 살려면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넓게 생각해야 좁게 살 수 있다. 좁게 사는 일은 싸게 사는 일과는 다르다.

 

또 하나. 부탄에 대한 부분에서는 매를 맞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209) ...일각에서 근래 부탄이 상당히 신비롭게 소비되고 있는데, 모두들 간과하고 있는 부탄의 요상한 현실이 하나 있다. 부탄에서는 궂은일들을 모두 근처 인도 동부의 비하르 지역의 극빈층인 불가촉천민들을 싼 값으로 영입해서 해결하고 있다. 이른바 부탄의 힘든 일은 인도가 누천년이 흘러도 해결하지 못한 힌두 계급주의에 의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인도 불가촉천민들의 삶은 지옥을 방불한다.

 

하루에 200달러(인도 서민들이 한 달에 100달러를 넘게 받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를 내야 갈 수 있는 나라인 부탄은 분명 꼼수가 많은 나라임에 틀림없다.

 

지셴린의 <인생>도 필히 읽어볼 책이다. '난득호도(難得糊塗)"-똑똑해 보이기도 어렵지만, 어리석게 보이기도 어렵다. 똑똑한 이가 어리석게 보이기는 더 어렵다는 뜻-을 실천해 낸 지셴린에 대한 글도 무척 인상적이었으니, 이 책에 또한 비켜갈 수 없으리라.

 

아, 읽을 책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행복하다. 더불어 세상에 소용되는 이야기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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