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점선 스타일 1 - 오직 하나뿐
김점선 지음 / 마음산책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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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 나온 김점선의 인터뷰 책이다.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하지 않는 툭툭 던지는 말투가 재밌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점선의 책을 읽게 된다. 나긋나긋한 감성이 물씬 풍기는 투의 글은 금방 질려버리지만 상대방을 적당히 무시(?)하는 듯한 말투에는 왠지 묘한 끌림 같은 게 있다. 무엇보다 김점선의 글에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김점선이 글이고 글이 김점선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유명한 혹은 소위 성공한 사람들을 인터뷰한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이렇다. 박완서, 김중만, 장영희, 표민수, 김방옥, 신수정, 김창완, 윤여정, 최인호, 김영희, 신경숙, 이승철, 앙드레 김, 은희경, 조영남, 김혜자, 정명훈.

 

이 책이 중고샵에 떴길래 무슨 책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김점선의 책이기에 그냥 구입했을 뿐, 사실 나는 유명인사에게 별 관심이 없다. 그들의 성공에도 관심이 없는 건 매한가지. 그러나 새겨들을 만한 부분이 있어서 소개해본다.

 

107쪽...어느 날, 김창완 어머니가 버스를 탔다. 옆자리 할머니가 손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어머니가 물었다. "왜 그러셔요?" "말두 마셔. 영감이 10년이나 누워 있다가 죽어서 화병이 나서 그런다우." 그렇게 할머니가 말했다. 김창완 어머니가 김창완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1971년에 중풍으로 쓰러져서 1998년에 돌아가신 이야기를 했다. 옆자리 할머니가 내릴 때 김창완 어머니에게 90도로 절을 했단다.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설명이 두 군데 나오는데 역시 들을 만하다.

 

142쪽...성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감성이 풍부하고 매우 인간적이고 정서가 안정되어 있다. 빈부를 초월하여 늠름한 영혼을 가지고 있다. 깊은 믿음이 있다. 종교적인 믿음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모호한 믿음. 자신의 영혼이 좋은 데와 닿아 있다는 믿음. 무조건적인 안정감.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예의와 부드러움이 있다. 무례하지도 않고 덤비지도 않고 차분히 존재한다.

 

163쪽...성공한 사람들은 나이를 초월해서 밝고 깨끗하다. 열정적이고 순수하다. 인간 최초의 순수 같은, 맑은 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꾸밈없이 말하고, 환하게 웃고, 예의 바르고 따뜻하다. 이제까지 보아온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던 빛나는 특징이다.

 

흠, 나 같은 인간은 도저히 성공한 부류에 속하지 못하리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앙드레 김에 대한 얘기가 인상적이다. 보통은 거부감으로 다가오는 그의 말투, 옷차림, 그리고 무성한 근거없는 소문들을 일축시키기에 충분하다.

 

169쪽...(앙드레 김은) 일관된 정서가 평생을 지배한다. 고결한 상대를 사랑하듯이 자신을 사랑한다. 누구나 자기애와 운명애를 느끼지만 그 실천 과정에서 인생이 결정지어진다. 희미하게 흐지부지하게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흐지부지하게 인생을 끌고 다니다가 끝낸다....(앙드레 김은) 일관되게 나타나도록 자신을 관리하는 것이다....범죄 취조실에 잡혀와서 사는 게 인생이 아닐진대, 자신이 되고 싶은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것은 자유이자 권리다. 많은 사람들이 포기해서 앙드레 김이 돋보일 뿐이지!

 

2권도 있는 데 중고샵에 뜨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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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 인류학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속담으로 세상 읽기 지식여행자 14
요네하라 마리 지음, 한승동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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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의 책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라면 <프라하의 소녀시대>가 되겠고 그 다음으로 기꺼이 이 <속담인류학>을 꼽고 싶다.

 

세상에 떠도는 온갖 속담을 끌어다놓은 것도 재밌고 그 속담을 빗대어 세상 이야기를 슬쩍슬쩍 끄집어내는 것도 무척이나 유쾌하다. 잡다한 속담에 빗댄 잡다한 이야기의 범벅이지만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혼자서 키득키득 웃음을 베어물게 된다. 그 많은 속담을 어떻게 수집했을까도 내내 궁금한 사항이었다.

 

그러나 역시 압권은 미국과 그 미국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고이즈미에 대한 이야기다. 이런 부분은 직접 지은이의 말을 들어보는 게 좋겠다.

 

p86...유럽, 심지어 일본을 포함해 세계는 미국 없이도 잘해나갈 수 있다는 인식에 다가가고 있다. 거꾸로 미국은 세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자각하기 시작했다. 세계로부터 물자와 돈의 유입이 중단되는 것, 이것이 미국 경제에 가장 큰 공포이며, 바로 이것을 어떻게든 저지하기 위해 세계의 자금과 자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것이다...유럽이나 일본만큼 중동 석유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미국이 중동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집착하는 것은 바로 세계의 돈과 자원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실제로 유럽과 일본이라는 구세계에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미국에겐 늘 세계적인 혼돈과 동란 상태가 필요하다.

 

p154...그러고 보면 북한이 핵탄두를 보유했다고 슬쩍슬쩍 드러내 보여도 미국 정부의 대응은 이라크에 비해 훨씬 더 관용적이다. 아마 미사일방어체제를 일본과 한국에 팔아먹는 데 아주 좋은 구실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이 한국과 통일이라도 하면 동아시에서 미국의 존재 가치는 날아가버릴 것이다.

 

역시나 요네하라 마리의 국제적인 감각이 매우 돋보이는 책이 이 책인데 단 하나, 때때로 이 책은 19세 이상의 등급을 요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 속담이란 게 원래 해학적인 요소가 강한 민담 수준의 내용이 많을 수밖에.

 

 

학교 일이 참 만만하지 않다. 작년엔 아이들 때문에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는데, 올해는 온갖 공문 처리하느라 내 몸의 일정 부분을 따로 작동시켜야 한다. 겨우 반쯤 읽은 이 책을 이렇게라도 어설프게 남기려는 이유라면 이유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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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 박범신 논산일기
박범신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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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쯤에서 책을 손에서 놓다. 내면의 치밀함, 예민함이 숨이 막힐듯 매혹적이면서도 거기서 벗어나고픈 충동을 일으키는, 뭐야 이 정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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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수첩
최대봉 지음 / 글나루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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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공원에서 색스폰 부는 아저씨를 연상시키는 낭만 넘치는 글, 조금은 멜랑콜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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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서랍 - 이정록 산문집
이정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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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말한다.

"나더러, 다른 일 하지말고 넌 평생 책이나 읽고 있어라. 라고 하면 좋겠어."

"밥은 해줘야지."

"물론 밥은 해줄게."

 

이정록 시인의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책만 읽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리 두껍지 않은 이 산문집을 완독하는데도 일주일이나 걸리는 빠듯한 생활에서 책만 읽고 산다는 생각은 실현 가능치 않은 야무진 꿈에 불과하리라.

 

어제는 유독 숨가뿐 날이어서 더욱 이런 꿈을 꾸는지도 모른다. 1~5교시 연속으로 수업을 하고, 6교시- 동료교사의 수업연구 참관, 7교시- 수업연구에 이은 컨설팅 장학을 겸한 교과협의회, 이어진 교직원 연수는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끝이 났고, 다시 이어진 회식자리. 사이사이에 유예학생 처리하라는 요구가 밀려들고 교과협의회 회의록 작성해달라는 부탁조의 지시가 떨어지고, 학급종례마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 했다. 입에서는 단내가 났다.

 

일주일 전 일요일. 생태공원에 가서 작은 숲에 둘러싸인 정자에 두 다리 뻗고 앉아 이 책을 읽었다. 살랑살랑 바람이 불고 바람결에 실려온 해당화, 찔레꽃 내음. 한창 물오르기 시작하는 수십만 평에 이르는 갈대밭의 푸른 빛깔. 책을 읽기에는 완벽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이런 공간에 어울리는 완벽한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시인의 능청스럽고도 구수한 이야기를 읽다가 키드키득 웃음이 흘러나오면 그대로 입 밖으로 방출해버리고, 혼자 웃기 아까우면 옆에 있는 남편에게 방금 읽은 페이지를 손을 짚어가며 넘겨주었다.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행복한 책읽기는 현실의 삶을 더욱 고달프고 무의미하게 혹은 답답하게 만들기도 한다. 거꾸로 일상이 따분하고 고달퍼서 책을 읽는 한순간이 그리 달콤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 읽는 순간순간을 행복하게 하는 이 책 덕분에 나의 평상심이 흐트러지고 일상의 삶이 고달프게 다가오는 역설적인 현상을 오갔다.

 

이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이 시인이 너무나 좋아져서 그의 시집 <의자>를 서둘러 구입했다. 읽을수록 사랑스런운 시 <의자>를 베껴본다.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에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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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2012-06-04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이고 저랑 같은 분필과 칠판지우개전공이시군요.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마음이 우쭐해지네요. 공부가 짧아서 깊이도 없는 글인데, 제 추억의 언저리까지 동행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게다가 '의자'란 시까지. <의자>시집에서 제가 지금도 촉촉하게 읽는 시는 "머리맡에 대하여"랍니다. 점심 맛나게 드세요. 상추드실 때 아기달팽이 조심하시고요.

nama 2012-06-05 07:31   좋아요 0 | URL
직접 댓글을 남겨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마침 이 책을 한 번 더 읽고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답니다. 좋은 글 덕분에 울멍울멍 눈물겹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