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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물건 - 김정운이 제안하는 존재확인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처음 몇 페이지를 펼쳐보니 한겨레신문 칼럼에서 읽었던 글이 몇 편 보인다. 이 분의 글은, 처음 읽어도 낯설지 않고 읽은 것 또 읽어도 새롭게 다가온다. 게다가 육성이 느껴지는 글이다. 사람도 재미있고 글도 재미있는데다가 글에서 글쓴이의 육성을 듣는 듯싶고 얼굴 표정이 보이는 듯싶다. 사람이나 글이 단순하면서도 깊고 깊은 듯하면서 가볍다. 수다스러운데 새겨들을 만한 부분이 있다. 묘한 매력이다.
그래도 새 책인데 싶어서 낯익은 글을 건너뛰고 2부 부터 읽었다. 여러 장의 사진 중에 이어령의 3m짜리 책상 사진이 가히 압권이었다. 사실 이 책을 얼마 전에 나보다 8년 연상인 동료 교사한테 선물로 드렸다. 약속 시간 10분 정도를 남겨놓고 단번에 고른 책이었다. 아무에게나(?) 주어도 재미있게 읽힐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선물로 건네기 직전 우연히 펼친 부분에 바로 이어령의 이 책상 사진이 눈을 사로잡았다.
결국은 이 사진 한 장 때문에 내 것으로 새로 한 권을 더 구입했다. 3m 책상이라니.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궁금한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이어령의 책상에서 호기심을 끌어당긴 글은, 신영복의 벼루, 차범근의 계란 받침대, 문재인의 바둑판, 안성기의 스케치북, 조영남의 안경, 김문수의 수첩, 유영구의 지도, 이왈종의 면도기, 박범신의 목각 수납통 얘기로 끝을 맺는다.
꼭지 하나하나가 읽을 만했다. 어떤 한 사람을 대표하고 그 사람의 인생이 오롯이 들어있는 물건에 대한 얘기는 나름 참신하고 산뜻했다. 이런 각도로도 생각할 수 있구나, 하는 의외의 감탄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특히 이왈종의 골프공 얘기에서는 비실비실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신음 같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 대단한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은 그래도 살맛나는 게지, 싶었다.
나보다 8년 연상인 동료교사는 내게서 이 책을 받고 이 분보다 10년 쯤 연상되시는 남편분에게 이 책을 보여드렸다고 한다. 남편분은 제호가 '남자의 물건'이라서 기분 나쁘다며 읽지 않겠다고 하셨다 한다. 이분이 어떤 분이냐면, 내가 알라딘이라는 인터넷서점에서 10년간 1,000권 넘게 책을 구입했다는 말을 듣고는 독서목표를 5,000권으로 잡고 당장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기 시작하여 입술부르터가며 완독을 했다는 분이다. 연세가 아마 70세 전후쯤 되시는 분이다.
여자인 나는 오히려 이런 <남자의 물건>이라는 제호에서 별다른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떠올리기가 귀찮다. 설마 책에 그렇고 그런 얘기가 있을까 싶어서다. 김정운이라는 사람의 책을 이미 두 권이나 읽었는데 말이다. 이 책은 한 분야에서 일가을 이룬 분들의 물건을 통해서 그분들의 삶을 엿보는 즐거움을 주고 과연 내 인생에서의 물건이 무엇일까를 한번쯤 고민하게 한다.
그런데 이 책은 남자에게 주는 선물로 어울리나, 여자에게 주는 선물로 어울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