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겉표지에는 세 개의 문장이 울타리처럼 가장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박노자의 삐딱한 국가론.

폭력으로 유지되는 국가와 결별하기.

 

많은 내용 중에서 두 가지가 인상적이다.

 

하나.

 

(37쪽)...우리가 국가를 '합리적인 조절자'로 생각하는 것은 실로 어리석음의 극치인 셈이다. 계급국가는 합리적이지 않으며 합리적일 수도 없다. 예컨대 지금의 남한처럼 모국어 이해마저 잘 안 되는 서너 살짜리의 유아들까지 혀 수술을 받아가면서 '영어 유치원'에서 '원어민'에게 영어를 배워야 할 정도로 전국적인 '영어 광풍'을 일으키는 것은 합리성이 아니고 그 반대다. 영어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 다수가 영어에 광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그저 다수에 대한 가혹 행위이자 엄청난 규모의 낭비일 뿐이다. 그러나 영어 능력을 그 주된 문화자본으로 삼고 있는 남한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에서 '영어 광풍'은 너무나 필요하다. 그러한 분위기에서야 영어를 무기로 삼는 저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합리화하고 세습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3월 초. 원어민 교사의 첫 수업. 영어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강연 동영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강사는 중국에서의 영어 열풍을 보여주면서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는데 강연장의 분위기는 뭐랄까 흡사 종교 집회와 흡사했다. 소름이 끼쳤다. 아무리 영어가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해도 종교는 아니잖은가. 수업이 끝나고 이 문제의 동영상에 대해서 한마디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 종교적인 강연같다고. 그랬더니 그 다음 시간 부터는 수업 중에 내 눈치를 살짝 보는 듯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할 걸 그랬나 싶다. '영어가 무슨 종교냐?" 고.

 

버겁다. 불편하다. 괴롭다. 고통이다. 무엇이? 영어가. 

 

둘.

 

(287)...우리 모두가 그들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대체 우리 모두는 누구에게 이런 빚을 지고 있을까?

 

(287)...'또라이'로 취급받아도, 이등/삼등 시민으로 전락해도, 그들은 군사주의적 독재의 유순한 '국민'되기를 거부했다.

 

그나마 초기 기독교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은?

 

바로 여호와의 증인이다.

 

11쪽에 걸친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부분(277~287)을 읽으며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침례교회-여호와의 증인-천주교-불교의 영향을 차례대로 받아온 내게 여호와의 증인은 쉽게 외면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종교가 아니었다. 변호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남들처럼 그들을 비웃거나 조롱할 수는 없었다. 아련한 동정심 같은 걸 갖고 있었는데 이제야 그들도 제대로 평가를 받는구나 싶어 감격스러운 것이다. 이 부분을 그대로 옮기지 못해 애석하다.

 

여호와의 증인하면 떠오르는 소책자가 있다. <깨어라>, <파수대>. 어렸을 때 한번도 얼굴을 뵌 적 없는 먼 친척 고모가 상당기간 이 잡지를 집으로 보내준 적이 있다. 그 고모도 음지에서 살았을까, 왜 한번도 얼굴을 뵐 수 없었을까.

 

 

내 친구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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