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하라 - 박노자, 처음으로 말 걸다
박노자.지승호 지음 / 꾸리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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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공산당을 반대함)-승공(공산당을 이겨냄)-멸공(공산당을 없애버림)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이념교육을 철저하게 받아온 세대로서 이 책의 제호와 빨간 색의 서체는 몹시 자극적이다. 그래서 이 자극적인 제호만 보고도 이 책이 궁금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온갖 이념교육의 부작용으로 감히 생각해보거나 입 밖으로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시원하게 들을 수 있었고 그 의미를 한번쯤 곰곰히 되새겨보게 되었다. 이런 책은 나와 같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나올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우리 세대는 온갖 이념교육으로 극히 소심하고 속이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들어서 감히 이런 생각들을 한다는 자체가 위험한 것으로 여겨 본능적으로 몸을 도사리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의 인터뷰어인 지승호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나는 순간 움찔했다.

 

(186쪽) (지승호)"그렇다면 '혁명'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좌파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박노자) "예를 들어 이렇게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나마 천안함이 북쪽 소행이 아닐 수도 있다, 혁명의 방법론이 무엇이다, 이런 대화를 하면서도 하등의 공포가 없지 않습니까? 사실은 엄청난 발전이죠. 80년대 만약에 이와 같은 종류의 대화를 했다면 아마 둘 다 상당히 떨었을 것입니다. 언제 검거와 고문을 당할지 모르니까요..."(지승호)"맞는 말씀이신데, 오슬로와 지금 여기 대한민국은 온도 차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전 좀 공포가 있는데요."

 

우선 대통령에 대한 얘기. 

 

(23)...네 명의 대통령(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을 가리킴)은 서로 지점이 달라도 사실 민중에 대한 정책은 굉장히 일관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에 대해 기대를 갖고 있다는 것은 민중한테 제일 해로운 겁니다. 부르주아 정객 중에서는 어느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랬었구나.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들켜버렸다는 충격 엇비슷한 감정이 들었고 이 혜안에 적잖이 놀랐다.

 

이번엔 국가에 대한 얘기다.

 

(85) ...국가는 권리를 가지고 있고, 우리는 의무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진 거죠. 문제가 생기면 의무를 다하지 못해 그렇다고 쉽게 생각하죠. 만약에 우리가 국가주의적인 사고방식이나 기업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 민주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다면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은 1차적으로 국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국가와 개인은 어디까지나 계약관계이므로 1차적으로 국가의 존재 이유는 개개인 국민에 대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입니다....우리는 국가를 일종의 개개인 인민의 계약에 의해 성립된 기관으로 보지 않고, 우리보다 더 의미 있는 일종의 전지전능한 기관으로 보는 거죠. 그게 참 아쉽습니다.

 

전지전능한 기관으로서의 국가라고라...그래 이렇게 교육 받아왔지, 지금까지.

 

노르웨이의 숙제철폐운동도 참 의미있게 다가와서 읽기를 멈추고 한참 생각에 잠기게 했는데...

 

(96)...숙제를 철폐하면 이와 같은 상류층, 중류 상부층의 아동들만의 '프리미엄'이 사라지고 그나마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기회가 약간 더 주어지게 됩니다.....또 한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학생도 학습노동자인데, 노동자는 노동하는 장소에서 노동을 해야지, 집에서까지 노동을 한다는 것은 학교에 의한 개인 시간의 식민화예요. 노동 시간과 개인 시간이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게 원칙이어야죠.

 

흔히들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면서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라면 여기에 하나를 덧붙여야 하리라. '자식을 대학에 들여보내봐야 어른이 된다'라고. 고등학생 자녀를 둔 사람이라면 금방 이해가 되는 얘기다. 학습노동자가 아니라 차라리 학습노예에 가깝다.

우리와 같은 상황에서는 숙제철폐운동은 깜찍하고 귀여운 발상처럼 들린다. 그런데도 자꾸 이 운동에 눈길이 머문다.

 

종교에 대한 얘기는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아직도 이런 사실을 외면하는사람들이 많으니 반복할 수 밖에.

 

(195)...그리고 종교라는 것이 교회나 사찰에 가서 "제발 내 자식 서울대 들어가게 해 달라, 취직하게 해 달라", 이런 기도하고 아무 관계가 없는 거거든요. 진짜 종교인의 기도는 내가 못박혀서 남을 대신해서 죽을 수 있게 해달라는 정도일 텐데요. 우리한테는 이미 그런 정신이 극소수한테만 남아 있는 것이죠.

 

책 말미의 지승호의 마지막 글귀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같이 조금 더 고민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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