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 간 연수를 받으며 틈틈이 이 책을 읽었다. 의무적으로 한 해에 90시간 이상의 연수를 받아야 하는데 나는 온라인연수보다는 오프라인연수를 선호한다. 온라인연수는 시간이 지나면 거의 기억에 남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에 반해 이런저런 전문가들이 바로 눈 앞에서 하는 오프라인강의는 기억에 오래 남고 때로 감동적이기도 하다. 전문가로서의 전문성이 묻어나는 귀한 한마디가 주는 울림을 오래 음미하기에는 오프라인 강의가 적격이다.
이 책에도 나온다.
사이버패이스는 말 그대로 텅 비어 있는 공간이다.....이푸투안 교수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공간space'과 구체적인 감각적 경험을 통해 의미가 부여되는 '장소place'를 개념적으로 구분한다. 그에 따르면 공간은 구체적 행위나 상호작용을 통해 가치 있는 장소로 바뀐다. 집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커튼을 걷고 창문 너머의 먼 곳을 내댜보는 미국식 삶이 공허한 이유는, 집이 장소가 되지 못하고 공간이 되기 때문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집이 '사는 곳'이 아니라 '사는 것'에 머무르는 이런 현상을 가리켜 또 다른 지리학자인 에드워드 렐프교수는 '장소 상실'로 정의한다. 한국의 아파트야말로 장소 상실의 대표적 사례다.
아무리 아파트에 오래 살아도 '집'같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를, 위의 학자들이 깔끔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평수 넓은 아파트나 위치 좋은 아파트가 부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어차피 아파트는 '집'이라는 '장소'가 될 수 없다. 그저 '공간'일 뿐이다. 더 이상 태어남의 장소(대개는 병원에서 출산한다)도 죽음의 장소(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는다)도 아니다. 숨바꼭질도, 무엇인가를 숨겨 놓을 수도 없는 투명한 공간이 되어버린 아파트지만 이를 벗어나기도 힘들다는 게 참으로 씁쓸하다.
김정운 식으로 말하면 '온라인강의와 아파트는 어딘가 닮아 있다.' 남는 게 없고 헤어져도 서운하지 않다.
재미와 지식의 기쁨을 동시에 주는 이 책을 읽노라면 일상이 조금 즐거워지고 긴장이 저만치 물러나 버린다. 다 읽고 난 이 책이 다시 읽고 싶어진다. 묘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