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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걸 (알라딘 리커버 특별판, 양장)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8년 2월
평점 :
품절
소설처럼 읽었다. 여성 과학자로서 인정 받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는 과정은 혀를 내두들 만했으며, 평생 친구인 빌이라는 동료와의 깊은 관계는 이성간의 우정이 있을 수 있다는 증거가 되었으며, 과학과 문학을 모두 아우르는 글솜씨에 책 읽기의 즐거움이 배가되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되게 어색하고 되게 웃긴다. 마치 학교에서 생활기록부를 작성할 때 행동발달 종합의견을 쓰거나 독서상황을 기록하는 것처럼 되어버렸다,ㅉㅉ)
특히 소설처럼 읽힌 부분은 빌이라는 동료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이다. 일화 하나하나가 소설같이 재밌으면서도 인간에 대한 신의을 보여주고 있어 감동을 준다. 남녀관계를 초월한 우정이 아름다우면서도 인상적이다. 알듯 모를 듯한 식물 이야기는 어느덧 두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실마리가 되어 글은 자연스럽게 과학과 우정을 넘나들며 20년에 걸친 한 과학자의 인생을 보여주고 있다.
눈길을 머물게 했던 아름다운 문장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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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식물은 두 가지를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나는 위에서 오는 빛,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래에 흐르는 물이다. 두 식물 사이의 경쟁은 한 가지 동작으로 결정된다. 더 높이 뻗는 동시에 더 깊이 파고 드는 것.
흙은 참 묘하다. 그 자체가 대단한 것은 아닌데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나서 생긴 산물이라는 점에서 묘해진다. 흙은 생물의 영역과 지질학의 영역 사이에 생긴 긴장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나타난 낙서 같은 것이다.
사랑과 공부는 한순간도 절대 낭비가 아니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리고 고구마에 관한 얘기는 어떤 경각심을 주기도 하는데,
지난봄, 빌과 나는 온실에서 대규모 농경 실험의 뒤처리를 하고 있었다. 거기서는 지금 예측되는 향후 수백 년에 걸친 온실 가스 수준의 환경을 만들고 거기서 고구마를 기르는 실험을 해오고 있었다. 이 온실가스 예상치는 우리가 탄소 배출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계속 현재처럼 산다면 생길 것이라고 예측되는 수치다. 고구마들은 이산화탄소 양이 늘면서 더 크게 자랐다.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커다란 고구마들에는 우리가 아무리 비료를 줘도 영양소가 더 적게 들어 있고, 단백질 함유율도 낮았다. 이 부분은 약간 놀랄 일이었다. 동시에 좋지 않은 소식이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배고픈 나라들에서는 필요한 단백질의 많은 부분을 고구마에서 얻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커다란 고구마들은 더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지만 영양 공급은 덜 하는 일이 벌어지리라는 전망이다.나는 이것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한때 고구마 농사를 지을 때 커다란 고구마를 캐며 즐거워했던 일이 그리 즐거울 수만은 없겠다는 생각이 드니 우울해진다. 소설같이 읽히면서도 이런 경각심까지 일깨우는 이 책, 명불허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