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알프스 산자락에 있는 '그랑 샤르트뇌즈 Grand Chartreuse' 수도원의 일상을 다큐멘터리로 찍은 것인데, 대사가 거의 없고 상영시간이 2시간 49분이나 되어 성공적 흥행은 애초에 기대 밖이엇지만 이상하게도 한국에서 꽤 맣은 관객을 모았던 영화였다. 필립 그뢰닝Philp Groning이라는 감독이 이 수도원에 촬영을 청원한 지 무려 15년 만에 허락을 얻어 6개월을 수도사들과 함께 기거하며 혼자서 찍었다고 했다. 영화의 내용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동트기 전 일어나서 기도를 시작으로 오로지 성경 읽기와 쓰기, 묵상, 기도, 세 번의 미사를 드리는 수도사들의 일과를 담백하게 담고 있을 뿐이다. 수도원은 폐쇄되어 외부와 단절되고, 내부도 대화는 금기되어 침묵만이 흐른다.

.....수도원을 의미하는 영어에는 '클로이스터 Cloister'와 '모나스터리Monastery'라는 두 단어가 있는데, 본래의 뜻은 다르다. '클로이스터'는 '갇혀 있다'라는 뜻의 'Claudere'를 어원으로 가지는 반면, '혼자됨'이라는 'Moochus'를 어원으로 삼는 '모나스터리'는 그런 '클로이스터'중에서도 스스로를 독방에 가두어 침묵과 은둔의 삶을 원하는 수도원을 뜻한다. 안에서는 밖으로 나오는 문을 열 수가 없으며 음식도 작은 구멍을 통해 외부에서 공급받는다.

  1084년에 브루노라는 수도사를 비롯한 여덟 명이 그르노블 인근 프랑스 알프스 산맥 속 험준하기 짝이 없는 샤르트뢰즈까지 기어이 찾아가 스스로를 유폐시키며 시작한 수도생활이 최초의 모나스터리이며, 그들이 시발하여 만든 그랑 샤르트뢰즈가 카투샨 카르투지오, 체르토사 혹은 차터하우스로 불리며 세계 곳곳에 퍼진 봉쇄수도원의 본산이다. 이 그랑 샤르트뢰즈 수도원은 영화 촬영으로 무려 천 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처음으로 그 내부를 공개한 것이다.

 

승효상의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에 소개된 영화 <위대한 침묵>을 보았다. 위 인용문에서 '이 수도원에 촬영을 청원한 지 무려 15년 만에 허락을 얻어'라고 되어 있는데 영화 자막에 의하면 15년이 아니라 16년으로 나온다.

 

 

 

 

 

 

 

 

 

 

 

 

 

 

 

오전 7시에 출근하면 창밖은 아직 어둑하고 서서히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는데 그때가 이 영화를 보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그러나 이 시간은 오래 가지 못한다. 이내 아이들이 들어오고 수업에 들어가고 잡무 처리를 해야 한다. 어디까지나 직장이니까. 더군다나 TV화면이 아닌 컴퓨터 모니터나 작은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다보니 단번에 보지 못하고 끊어서 여러 번에 걸쳐서 보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좀 지루하긴 하다. 금욕적인 수도원 생활이야 조금만 생각해도 상상할 수 있는 거니까. 울림이 없는 것은 아니나 크게 감동 받았다거나 놀라웠던 건 아니다. 물론 '무려 천 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처음으로 그 내부를 공개한 것.'이니만큼 호기심이 앞선 것은 당연하다.

 

살다보면 어느 순간 기도가 저절로 나올 때가 있다. 막막하고 불안하고 절망적일 때. 어떻게든 안 될 때. 사방이 꽉 막혀있을 때. 무언가 절절해질 때. 이런 순간에는 말(언어)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침묵도 일종의 언어임을 깨닫게 된다. 절망이라는 막다른 골목 앞에 이르러서야 겨우 깨닫게되는 이 '침묵'을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그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은 또 무엇일까. 스스로 선택한 침묵이라서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일까.

 

한편으로는 이 영화에 나오는 수도사들처럼 말년을 보내도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깊은 산 속의 암자건, 히말라야 오지에 있는 곰파든, 알프스의 천 년된 수도원이건. 그렇게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 살아보고 싶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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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독서 두번째 이야기 - 길을 안다는 것, 길을 간다는 것 여행자의 독서 2
이희인 지음 / 북노마드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책을 읽어야 하나, 여행을 떠나야 하나. 여행은 책이고 책은 여행이라지만 이 둘을 함께 하기에는 책도 불쌍하고 여행도 불쌍한데. 이 둘을 절묘하게 결합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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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1-28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a님, 이번주 내내 춥고 눈오고 날씨가 좋지 않았는데, 잘 보내셨나요.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하고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nama 2015-11-29 14:35   좋아요 1 | URL
제가 늘 한 박자 늦는 것 같아요. 즐거운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영화 <검은 사제들>을 보러 갔다. (성인은 1만 원, 수능수험표를 소지한 딸은 6천 원을 받는다.)

 

영화가 무섭진 않고 옛생각만 난다. 집안의 우환 때문에 굿거리를 한 적이 있다. 그것도 두 번이나. 한번은 아버지 때문에, 또 한번은 언니 때문에. 그리고 얼마 후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사탄'이라는 단어도 귀 따갑게 듣곤 했다. 그래서 낯익은(?) 내용이라고나 할까. 영화처럼 극적이진 않지만 내용은 비슷하다. 자꾸 옛생각이 나는 걸보니 나이를 먹긴 먹었는가보다.

 

그건 그렇고.

 

딸아이 친구는 이 영화가 무서워서 못 봤다며, 딸아이가 그런다.

"내 친구는 무서운 게 뭔지 몰라. <검은 사제들>보다 무서운 건, 아까 읽은 만화책 <송곳>이고, 그것보다 무서운 건 수능이야."

 

 

 

 

 

 

 

 

 

 

 

 

간단하게 말하면 이거다.  검은 사제들(허구)< 송곳(현실) < 수능(자신의 현실). 쯧쯧....딸아이가 재수를 하더니 한꺼번에 훌쩍 커버린 것 같다.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영화 대사 중에 이런 게 나온다.

" 넌 이제 선을 넘었다. 평생 악몽에 시달리고, 술 없인 잠도 못 잘 텐데. 아무도 몰라주고, 아무런 보상도 없을 텐데..?"

 

영화관을 나오며 남편과 나는 딸아이를 놀려댔다.

"딸, 너도 이제 선을 넘었구나. 이젠 어른이 다되었네."

 

결론. 이 영화는 하나도 무섭지 않은데, 강동원은 정말 잘 생겼다, 는 말에 세 식구 모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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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1-22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보았는데, 수능이 끝나서인지, 그 나이대 여학생이 많아보였어요.
영화가 조금 무서웠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보았어요.
nama님, 편안한 일요일 되세요.


nama 2015-11-22 17:46   좋아요 1 | URL
저도 약간 무서운 척하고 싶었지만 그냥 담담했어요. 옛생각만 났지요.
고맙습니다. 즐거운 저녁 되시길...

hnine 2015-11-22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무섭다는 평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망설이고 있어요.
저는 정말 무서운 것으로 <양심>도 꼽고 싶네요. 평생 악몽에 시달리고, 술 없인 잠도 못 자게 하고, 아무도 몰라주는 것, 그것도 양심과 통하는 것 아닐까요?
따님이 이번엔 원하는 결과를 얻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최선의 노력을 했으니 그것으로도 값진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진심으로.

nama 2015-11-22 17:55   좋아요 1 | URL
그런 영화가 있군요. 저는 공포영화는 그리 즐기지 않아요. 주변에 널린 게 힘든 일 투성이인데 굳이 영화까지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서요.
딸은, 결과보다도 인생공부를 한 듯싶어요. 스스로도 재수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고난의 시간이었지만 잘 이겨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말도 해요. ㅎㅎ

hnine 2015-11-23 05:55   좋아요 0 | URL
<양심>이라는 영화가 있는 건 아니고요, 따옴표 대신 제가 < > 로 표시해서 그렇게 보였네요.
맞아요. 소설 뺨치는 일들이 실제 상황에서 뻥뻥 터지는 것을 보며 살고 있는데 굳이 영화까지 그런걸 볼 필요가 있는, 제가 바로 요즘 그런 심정이랍니다.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alle:1930~2002 )의 전기.

 

집과 직장에 책탑을 쌓아놓고 손도 대지 못하는 책이 수두룩한 상태에서 시립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 읽었던 건, 목수정의 <파리의 생활좌파들>에서 이 예술가의 이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궁금했다.

 

2007년인가.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이 분의 전시회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나의 무지와 무관심에 한탄이 절로 나왔다. 다행히 과천인가에 이 분의 작품이 있다니 언젠가는 일삼아 보러갈 날이 있을 터.

 

읽은 것에 비해, 감탄하고 놀란 것에 비해, 느끼고 생각한 것애 비해, 내가 여기에 쓸 수 있는 말은 많지 않다. 그저 읽고나니 좀 더 멍청해졌을 뿐이다. 온몸으로 살다간 예술가의 생애를 읽다보면 나 자신이 무척 초라해질 뿐이다. 초라하고 불쌍해진 나 자신을 확인하게 된다.

 

직접 작품을 보면 어떨까? 분명 행복하리라. 행복에 겨워 나 자신을 돌이켜보는 어줍잖은 생각 따위 하지도 않을 것 같다. 아쉬운대로 책에 실린 작품 사진을 찍어보았다.

 

1966년 스톡홀름 전시회에 출품한 나나 시리즈의 대작 <혼>('그녀'라는 뜻이란다.)

 

 

오른쪽은 <내 애인의 초상(1961)>. 머리 부분의 과녁을 향해 다트를 던져봐?

 

 

"카드 놀이를 할 때처럼, 우리는 규칙을 모른 채 태어나는 것 같아. 하지만 어쨌든 손에 쥐어진 카드들을 제대로 써야겠지." - 니키 드 생팔

 

 

'소년은 늘 유명해지기를 꿈꿨다. 스위스의 영웅이 되고 싶었다.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면, 그는 유머와 지성, 엉뚱한 행동들을 동원하며 나섰다. 열여섯 살에 자전거 경주에서 우승했던 일은 장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가장 우수한 선수 뒤를 끝까지 따라가다가 마지막 몇 미터를 남겨 두고 추월했다. 외톨이였지만 온 힘을 다해 한 가지 목표로 매진할 때 그 상황에서 벗어날 기회가 생긴다는 것을 장은 몸소 체득했다.' - 110쪽

 

*위 글의 '소년'은 장 팅겔리라는 이름의 예술가로 니키의 연인이자 동반자이자 바람둥이로 니키와 더불어 한 시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이다. 그 역시 삶이라는 카드을 제대로 사용했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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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 (정본)
국립현대미술관 기획 / 돌베개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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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덕수궁에서 이쾌대 전시회를 보고 아트숍에서 구입. 이쾌대는 선구자의 소명의식이 짙고, 페미니즘의 시각,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혼재한 그림을 그렸지만, 그의 삶은 분단의 희생양이었다. 그의 일생과 작품 세계를 일별할 수 있는 도록. 비싼 게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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