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미술을 아우르는 이 책을 '대작'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기껏 이런 구절만 눈에 들어온다.
로렌초는 첫째 아들에게는 정치 쪽을, 둘째 아들에게는 교회쪽을 맡길 심산이었다. 바보에게 정치를 맡겼으니 실패가, 똘똘이에게 교회를 맡겼으니 성공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했다. 로렌초가 여러 방면으로 손쓴 결과 조반니는 일찌감치 교회의 성직자가 된다. 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꼬마 조반니는 프랑스 푸아티에 근처 르 팽 수도원의 주교가 되고 열세 살에는 추기경이 된다. 이 말도 안 되는 일은 메디치 가문과 교회가 쌓아 온 오랜 인맥과 돈줄이 어우러져 만든 기괴한 작품이었다. 손해를 입는 거래를 마다하지 않고 정성을 들인 선물 공세로 로렌초는 교황으로 하여금 추기경 나이 제한을 철페시키고, 열세 살 아들을 추기경으로 만든다. 1513년 서른일곱이었던 조반니는 마침내 217대 교황 레오 10세(재위1513~1521)가 된다.
언제쯤 이 블랙홀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요즘은 책을 읽어도 읽는 게 아니다.
2016.12.10 기록 추가
세라 바트만은 남아프리카 코이코이족의 딸로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았으니 백인들과 똑같은 하느님의 딸이다. 그러나 그녀는 1810년 21세의 나이로 돈을 벌게 해 준다는 꾐에 넘어가 영국으로 오게 된다. 남다른 신체적 특성을 지녔던 그녀는 당시 유행하던 프리크쇼에서 전시되어 구경거리가 되고 말았다. 여성으로서의 수치심 따위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1815년 영국에서 노예해방운동이 일자 그녀는 이번에는 파리로 팔려 갔다. 그곳에서 26세의 나이로 죽기까지 그녀는 구경거리로 살아야 했다. 그녀가 죽은 후의 이야기는 더 기막히다. 나폴레옹의 전담의 쿠르비에는 그녀의 사체를 해부했다. 그리고 그녀가 '인간'이라는 결론을 내려 줬다. 이 일은 서구인들이 아프리카 사람들을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다. 죽어서도 그녀는 박제되어 파리의 인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2002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넬슨 만델가라 프랑스 대통령 미테랑과 칠 년가 협의한 끝에 시신을 거두는데 성공해서 그녀는 192년간의 치욕적인 여정을 마치고 비로소 고국으로 돌아왔다. 제국주의가 만들어 낸 여러 상처는 아직도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다.

출처;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