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추왕과 죽엽군
죽엽군:대나무 잎 군사

 

제13대 미추왕은 김알지의 7대 손이다. 대대로 벼슬이 높고 성덕이 있으므로 점해왕을 이어 왕위에 올랐다. 재위 23년 만에 죽었으며 흥륜사 동쪽에 능을 정했다.
14대 임금 유리왕 때, 이서국 사람들이 서울 금성을 공격해 왔다. 신라 쪽에서도 방어에 나섰으나 오래 버티어 낼 수 없었다. 그때 홀연히 어디에서 온지도 알 수 없는 신기한 병정들이 나타나 신라군을 지원해 왔다. 그 신기한 병졸들은 모두 댓잎사귀를 귀에 꽂고 있었다. 그들은 신라군과 힘을 합하여 적군을 쳐부수었다.
적군들이 물러간 뒤 그 신기한 병정들은 또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다만 미추왕릉 앞에 무수한 댓잎사귀가 쌓여 있는 것만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제사 귀에 댓잎사귀를 꽂고 왔던 그 신기한 병정들이 미추왕 혼령의 공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 미추왕릉을 죽현릉(댓잎 꽂은 병정들이 나타난 능)이라 불렀다.
36대 임금 혜공왕 15년(779) 4월 어느날, 김유신 장군의 무덤에서 갑자기 회오리 바람이 일어나 죽현릉 쪽으로 불어가고 있었다. 그 회오리바람 속에는 한 늠름한 장군 차림을 하고 준마에 올라앉은 사람과 그 종자로 보이는, 역시 갑옷을 입고 병기를 갖춘 사람 40여 명이 휩싸여 허공에 떠가고 있었다. 그들을 휩싼 회오리바람이 죽현릉에 이르자 그들은 죽현릉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장군 차림의 사람과 그 종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죽현릉 속으로 들어가고 난 잠깐 뒤에 능 속에서는 웅숭깊은 울음소리가 울리는 듯하고, 또는 뭔가 호소하는 듯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은 이러한 내용의 것이었다.
"신은 평생에 나라를 위해 역사의 한 시대를 도왔고, 환난을 구제했으며, 분단해 있던 국토를 통일시킨, 이러한 공훈을 이루었습니다. 지금 죽어 혼백이 되어 있어도 이 나라를 굽오 돌보아 재앙을 물리치고 환난을 구제해 가려는 마음은 잠시도 변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 경술년에 신의 자손이 죄 없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것은 지금의 군신들이 나의 공훈을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제 신은 차라리 이곳을 떠나 멀리 다른 곳으로 옮겨가 버리고 다시는 나라를 위해 애쓰지 않으려
고 합니다. 왕께선 부디 신의 옮겨감을 허락해 주소서."
미추왕의 혼령이 대답했다.
"나와 그대가 이 나라를 돌보지 않는다면 저 백성들은 어찌하겠소? 그대는 전과 다름없이 다시 힘쓰도록 하오."
세 번을 청했으나 세 번 다 미추왕의 혼령은 허락하지 않는가 보았다. 그러자 회오리바람은 김유신 장군의 무덤으로 되불어갔다.
40여 명의 종자를 데리고 회오리바람을 몰아 미추왕릉을 다녀간 그 장군 차림의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바로 김유신 장군의 혼령이었다. 당시의 임금 혜공왕은 이 사실을 보고받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곧 공신 김경신을 시켜 김유신 장군의 묘소에 나아가 사과를 드리게 하고, 다시 장군을 위해 공덕보전 30결을 취선사(경주에 있던 절)에 내리어 장군의 명복을 빌게 하였다. 취선사는 바로 김유신 장군의 평양 토병이 있은 뒤에 복을 비느라 세워진 것으로 장군과는 연고 있는 절이었기 때문이다.
미추왕의 혼령이 아니었던들 김장군의 혼령이 품었던 노여움을 막을 길이 없었을 테니 왕의 나라를 보호하는 공덕은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나라 사람들은 왕의 덕을 감사히 여기고서 3산과 같은 등급의 제사를 왕에게도 지내고, 서차를 오릉의 위에 놓아 대묘(大廟)라 일컬었다.

● 미추왕과 김유신 가문에서 전해오는 이야기
미추왕은 김씨로서는 처음으로 왕위에 오른 사람이다. 그리고 이 설화에 등장하는 김유신도 신라에서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 이처럼 혼령이 나타나 어떤 일을 처리했다는 것은 미추왕과 김유신, 두 가문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것을 가문 신화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설화가 생겨난 이유를 우리는 정치 사회적인 면에서 찾을 수 있다. 즉 김씨 왕족이 여러 집단으로 분화되었을 때 주도권을 잡은 친족 집단이 직계 선조에 대한 신화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낼 필요를 느낀 것이다. 이런 경우는 고려 왕건의 선조에 관한 신화나 <용비어천가> 등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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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 왕 이야기 1 - 엑스칼리버
장 마르칼 지음, 김정란 옮김 / 아웃사이더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이야기하는 심연의 지옥 타르타로스에는 시시포스나 익시온, 탄탈로스 등이 갇혀 끊임없이 고통을 받고 있다. 여기서 특이한 인물 49명을 만날 수 있는데, 그들은 다름아닌 다나오스의 딸들인 다나이데스이다. 원래 다나오스는 50명의 딸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딸들이 왕국을 빼앗으려는 아이깁토스의 아들들과 결혼을 하게 되는데, 큰 딸인 히페름네스트라를 제외한 49명의 딸들이 첫날밤 남편을 살해한다. 그 벌로 그들은 타르타로스에서 밑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것이다. 아더왕 이야기는 이와 유사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스의 한 강력한 왕은 서른 명의 공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너무나 오만하여 결혼과 동시에 자신들이 남편에게 귀속될 것을 거부하였고, 막내를 제외한 나머지 공주들은 자신의 남편을 살해하기로 결의한다. 결국 막내의 고발로 29명의 공주들은 추방되었고, 그들은 바다를 떠돌다 영국에 도착하여 정착한다.

신화나 전설은 여성의 지위를 격하시키는 체계적인 골격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마찬가지로 아더왕 이야기 역시 기독교적 색채까지 가미되어 여신은 음란한 여성으로 격하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을 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어서는 안 된다. 시작하는 이야기의 29명의 공주는 자신의 권위와 명예, 자존심을 지키려는 것이 지나쳐 그리되었지만, 만약 남성이 그런 일을 계획했더라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그 뒤의 이야기들도 마찬가지다. 역자인 김정란은 이 책에 등장하는 음란한 여성들은 대부분 여신들이라 한다. 전통적 모계사회에서 우두머리인 여신이 있으면, 남자는 계속해서 바뀐다. 계승권은 여성에게 있으며, 남성은 그 여성을 얻어야만 권력을 얻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신이 여러 남자를 거느리는 것은 당연하며, 또한 신전의 사제들이 여럿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여성으로 격하되어 버린 여신에게 붙여진 오명은 음란함이었다.

아더왕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 켈트 신화, 북유럽 신화, 이집트 신화, 히타이트 신화 등 다양한 신화와 전설의 복합체이다. 가장 두드러진 예는 바로 모르간이다. 모르간은 자신을 소개하며 이런 말을 한다.

"어떤 사람은 나를 이슈타르나 이시스라 부르기도 하고, 아프로디테라 부르기도 하지요. 다른 이들은 나에게 다나 또는 돈이라는 이름을 주었어요..."

이 말은 곧 그녀가 태초부터 존재하던 여신이라는 의미이다. 즉 그녀는 멀린이 믿는 신을 믿지 않으며, 자신이 여신이기 때문에 멀린과는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보다 당당한 태도를 지녔다. 멀린은 늘 자신이 악마의 아들이지만, 신에 의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여 신의 종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르간은 다르다. 그녀는 고대의 여신이며, 가부장적·기독교적 시각에 의해 타락하여 사라져야 할 존재이다.  

이 책의 후반부부터 중요한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아더'이다. 그는 멀린과 마찬가지로 죄의 씨앗이다. 그들이 나중에 보여줄 결속력은 그러한 동질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둘이 아닌 하나인 셈이다. 저승에서 만들어진 칼 엑스칼리버를 뽑아든 그는 고구려의 유리 태자이자, 아테네의 테세우스이다. 신표로 자신의 피를 증명해야 하는 인물이다. 그 신표가 엑스칼리버이며, 그 칼을 뽑아들면서 원탁에는 그를 따르는 기사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아직은 먼 훗날의 이야기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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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메트리오스 2004-07-21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켈트인, 로마인, 게르만인, 노르만인 등.... 브리튼 섬에 여러 민족이 거쳐간 섬이라 다양한 신화와 전설이 복합된 걸까요? 시공사에서 나온 <아서왕>을 보면 앙주 왕조의 헨리 2세가 아서왕 전설을 이용해 왕조의 정통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아서왕의 무덤을 '발견'하게 하여 여전히 애벌론에서 아서왕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 브리튼인들의 희망을 꺾으려는 의도가 있었다더군요. 또한 프랑스의 카페왕조에 대항하기 위해 그들의 영웅인 샤를마뉴에 필적할 만한 인물을 내세울 필요가 있었다고도 하고요. 신화나 전설은 종교나 정치적인 이유로 종종 이용되는 것 같아요.

꼬마요정 2004-07-21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원래 신화가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유도 정치적인 이유가 가장 큰 것이니까요. 조선시대 때도 세종대왕이 용비어천가를 지어 찬양한 것도 정통성을 얻기 위함이었죠... ^^*

verdandy 2004-07-21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더왕 이야기는 사실 유럽 전설 가운데 가장 미스터리한 부분이 많은 전설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예수는 결혼했었나>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초반이었고, 원 제목은 'Holy Grail, Holy Blood'(성배와 성혈)이었던가... 그렇습니다. 거의 베스트셀러급이 되었던 책인데 기독교계가 발칵 뒤집히는 바람에 책을 더이상 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미국과 유럽에서는 계속 판매됨) 이 책에서는 엑스칼리버가 변형된 성배 모티브라는 이야기를 했던 듯한데... 읽어본 지가 오래되어 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아무튼 아더왕 전설에 관심이 많으시면 나중에 읽어보실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그 이야기만이 아니라 다른 주장들도 나름대로 논지가 탄탄하면서 파격적인 주장들이 많아 인상이 깊었던 책입니다.

꼬마요정 2004-07-21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책을 구할 수 있다면 꼭 읽어보고 싶군요~~ 제가 신화나 전설 좋아하거든요~~^^*

verdandy 2004-07-21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국내에선 구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인터넷서점에도 전혀 없고 도서관에서도 보지 못했구요... 나중에 시간 된다면 제가 마이페이퍼에 리뷰 올리겠습니다.

꼬마요정 2004-07-2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감사합니다. 그 리뷰를 기다릴게요~^^*

verdandy 2004-07-21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존엔 있네요. Micheal Baigent, Richard Leigh, Henry Lincoln(공저), Holy Blood, Holy Grail, Dell, 1983-1-15.

꼬마요정 2004-07-21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원서겠죠?? ^^;;

verdandy 2004-07-21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영문판입니다. 한국어판 그 책은 본가에 있어서, 주말에 들를 때 찾아오겠습니다. 며칠 더 기다려 주시겠어요?

꼬마요정 2004-07-21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편하실 때 올리세요~~ 시간은 많아요~^^*
 

사실 성배는 없다. 성배는 단지 모험을 위한 하나의 물질적 핑계에 불과하다. 성배는 우리 자신을 찾는 일이다. 존재의 외적 형태와 내용이 일치한 상태. 성배는 인간 행위의 첫 번째 문명적 행위, 무엇인가 그릇에 담기에서 비롯했는지도 모른다. 최초의 형태 만들기, 이 원초적인 열망은 가장 높은 수준의 존재를 향한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고대의 솥과 중세의 성배, 그리고 현대의 사발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나는 사발을 들고 서 있다. 그 사발은 대충 깨어진 막사발이다. 나는 그 사발을 사랑한다. 사발이 내 상처투성이 존재와 똑 닮았으므로. 나는 그것으로 무엇인가를 퍼먹을 수도 있고, 머리에 뒤집어 쓸 수도 있다. 나는 신화가 지극한 물질의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오래 꿈꾼 자들이 고통스러운 탐색의 끝에 발견하는 '있는 없음'이다. 그렇다. 그것은 종교가 아니라,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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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칼디 기원
에티오피아의 고원지대에 사는 칼디 라는 목동이 염소에게 풀을 먹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난 칼디는 염소들이 매우 흥분하여 뛰어다니는 것을 보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칼디는 주위를 살펴보다가, 나무에 붉은 열매가 달린 것을 발견하였다. 염소들이 흥분한 원인이 그 열매에 있을 것으로 추측한 칼디는 자신이 그 열매를 직접 따먹어 보고는 그 또한 흥분되어 염소들과 함께 춤을 추게 되었다.
그 광경을 마침 지나가던 수도승이 목격하여 신기하게 생각하고는 그 열매를 가지고 수도원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수도승은 이 붉은 열매가 혹시 악마의 것일지도 모른다

는 두려움 때문에 불 속에다 던져버렸다.
잠시 후 커피열매가 불에 타면서 향기로운 냄새가 수도원을 감쌌다.그래서 수도승은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에 타다 남은 열매를 갖고서 많은 노력과 연구를 한 결과, 뜨겁고 검은 음료를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이것을 마시면 기도할 때 졸음이오는 것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을 활기 있게 해준다는 것을 알았다.
마침내 커피는 악마의 것이 아니라, 신이 내려준 고귀한 선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모하메드기원
모하메드가 잠을 쫓을 수 있도록 천사 가브리엘이 천상에서 커피를 가져왔다. 커피를 몇 모금 마신 모하메드는 기운을 내어 40명의 남자를 말에서 끌어내리고 40명의 여자를 기쁘게 하였다고 한다.
 
커피 음용의 시초
커피를 음료로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0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초기에는 커피열매의 씨를 오랫동안 찬물에 담가두었다가 추출된 액체를 마셨으나 점차 끓는 물에 넣을 경우 훨씬 추출이 잘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 많은 궁리 끝에 커피의 진가를 알아낸 것은 라세스 이후 14세기 말엽에 이르러 아라비아에서 커피생두를 볶는 기술이 개발되고 부터이다. 화려한 변신의 순간이었다.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이 커피를 새로운맛의 세계로 끌어낸다.
몸과 마음을 맑게 하는 쌉쌀한 맛과 깊은 향취에 모든 사람이 매혹되었다.
 
커피 명칭의 유래
커피(Coffee)라는 명칭은 에티오피아의 카파(Kaffa: 커피의 원산지 지명)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아랍어인 Qahwa, 즉 <식물에서 만들어진 포도주, 커피 및 여러 음료를 총칭하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실제로 17세기 초 유럽에 소개된 커피는 ,<아라비아의 포도주>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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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2004-07-21 0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는 축복이어요..ㅠㅠ
축복이라고 생각해요..ㅠㅠ
커피 하나, 설탕 하나, 아아..그 뜨거운 액체에 식빵을 퐁당 빠뜨려 찍어먹는 맛은...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험험.;;;
커피는 아무튼 축복이어요오~~

verdandy 2004-07-21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들은 바를 조금만 더 보강하자면...

커피가 처음 발견된 것은 8세기 정도라고 추정하지만, 아랍세계에 퍼져 있는 동안은 기호품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종교적 용도(각성 효과 때문. 기도 중에 졸지 않도록)로 주로 사용했다고 하더군요.

그걸 감히 홀짝홀짝 마셔대는 음료로 전환시킬 생각을 한 건 오스만투르크인들(아랍인들 입장에서 보면 같은 이슬람이긴 하지만 신앙심은 좀 의심스러운)이고, 카페라는 공간을 만들어낸 것도 그들이랍니다. 커피가 유럽에 들어가게 된 것도 오스만투르크의 서방진출과 관계가 있습니다.(이 이야긴 길어지니 다음에, 혹은 꼬마요정님이 올려주시겠죠^^)

꼬마요정 2004-07-21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멍든사과님~~ 맞아요 맞아요!!! 커피는 축복이어요~~^^* 전 요즘 커피가 다 떨어져서 인터넷 주문해 놓은채 커피만 기다리고 있답니다. 이번엔 거금을 들여서 트리니다드 원두를 구입했어요~~~^^ 마셔보고 평을 올리지요~^^*
베르단디님~~ 처음엔 베난단디로 착각했더랬죠..^^;; 까를로 진즈부르그의 작품 주인공 말이에요~~ 커피 역사를 안 올리려다 이젠 아는 바가 다 떨어져서 ^^;;(이건 비밀이에욧!!) 그래서 하나씩 올리는 중이랍니다. 사실, 역사와 유래부터 올렸어야 했는데..순서가 뒤바뀌긴 했지만 뭐 그래도 지금이라도 올리려구요~~~^^* 님께서두 커피에 조예가 깊으신 듯해요~~^^*

verdandy 2004-07-21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에 조예가 깊은 건 아니구요, 작은 단서 하나를 보면 호기심이 발동하는 미시사 연구욕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커피 전문점들이 붐을 이룰 때(스타벅스 세대가 아니고, 도토루, 자뎅이 막 나오던 시절 이야기죠) '염소와 칼디'라는 체인점이 있었답니다.(금방 없어졌어요. 망했는지...) 커피점에 웬 염소? 호기심이 솟아 이곳저곳 막 뒤지다가 알게 된 사실들을 그냥 몇 자 적었습니다. 개의치 마시고 속편 계속 들려주세요. 네?

꼬마요정 2004-07-21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도 도토루를 다녀요~~ 거기 원두가 맛도 괜찮고 싸거든요~~^^*

데메트리오스 2004-07-21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커피가 유럽에 전해진 계기라면 1683년에 있었던 투르크의 두번째 빈 포위공격 때를 말하는 거군요. 그때 투르크인들이 두고 간 커피자루를 게오르그 콜시즈키란 사람이 얻어서 상점을 열었는데 떼돈 벌었다는...(말 나온김에 커피 한잔 마셔야겠어요^^)

꼬마요정 2004-07-21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저는 오스만 투르크의 콘스탄티노플 공격 때 전파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뭐 전파경로야 다양하겠죠..그나저나 그 게오르그 콜시즈키란 사람..돈방석에 앉은셈이군요..부러워라~~^^
저도 지금 커피 한 잔 마셔야겠는걸요~~^^*
 
 전출처 : panda78 > Lisbeth Zwerger 리즈베스 츠베르거

리즈베스 츠베르거는 비엔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리즈베스 츠베르거는 비엔나에서 미술 학교를 다닐 떄부터 책의 삽화가가 되고 싶어 했다.
하지만 1970년대 당시, 그녀의 삽화가로서는 일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충고를 들었으며, 그녀의 그림 스타일이 너무 고전적이라는 평을 듣곤 했다.

'그래서 저는 화가로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몰라 혼란에 빠져 있었어요. '
그녀는 삽화가가 되려는 희망을 거의 포기하고 가끔 펜화만을 그렸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한 친구가 아서 래캠이 그린 그림책을 그녀에게 주었다.
'마침내 제게 빛이 비추었어요. 저는 의구심을 모두 묻어두고, 삽화를 그리고 싶은 저의 욕구를 따라갔지요.
요즈음은 그녀의 전속 출판사인 스위스의 노이게바우어사가 거녀가 자신의 본능을 따라 작품하는 것을 격려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태어난 도시인 비엔나만큼이나 매력이 넘치고 역사적인 고전들을 특히 좋아한다.
지난 16년 동안, 리즈베스 츠베르거는 호프만의 「이상한 아이」에서부터 빌헬름 하우프의 「난쟁이코」에 이르기까지 스무 권의 책에 삽화를 그렸다.
특히 안데르센 동화를 많이 그렸는데, 이야기 한 편에 10장-12장 정도의 보석같은 그림이 담겨진 이 동화로 '20세기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녀는 일찍이 '국제 비엔날레(BIB)상'을 두 번 받았고, 볼로냐 '국제 어린이 도서전 그래픽상'을 세 번 수상했으며, '뉴욕 타임즈 선정 어린이책 베스트 10'중에 3권이 선정 되는 등 그녀의 재능을 국제적으로 인정 받았으며, 마침내 1990년에는 어린이 문학 분야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작가와 화가에게 수여되는 '한스 크리스챤 안데르센상'을 수여함으로써 더 이상 수상할 상이 없는 세계 최고의 작가가 되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하네요. ^-^

 

 노아의 방주 이야기

 

 


난쟁이 코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중 머리를 자른 델라.

 



안데르센, 모래 아저씨

 

작업과정

츠베르거는 주로 어린 시절부터 이미 알려져 있어 친숙한 느낌의 이야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또는 그녀가 몰랐던 이야기를 출판사 사람이 찾아주어서 그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녀의 작품을 살펴보면 자신이 태어난 도시 비엔나 만큼이나 역사적이며 매력적인 고전들을 좋아하는 취향이 드러난다. 그녀는 환타지, 그리고 현대풍이 아닌 고전적인 이야기에 끌린다고 한다. 스스로 집착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림동화나 이솝 우화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왔던 것이다. 그녀가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도 아서 락컴이 이솝 우화에 그린 그림이었으니 그녀에겐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스카와일드의 <칸타빌레의 유령>은 그녀에게 있어 완벽한 이야기이다. 매우 로맨택하고 재미와 함께 슬픔까지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오스카 와일드는 그녀보다 정확히 100년 전에 태어난 작가이기도 하다. 네즈비트는 그녀가 선택한 작가 중에서 유일하게 아이들을 위해서만 글을 쓴 개성적인 이야기의 작가이다.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스스로 선택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녀가 매우 마음에 들어하는 작품이다.
 
츠베르거가 작품을 선택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많은 환타지를 가진, 일상으로부터 멀어지는 이야기"라고 한다. 그녀가 선택한 작가와 이야기는 매우 행복한 기분을 선사하게 해준다. 오랜 시간을 거쳐 정성과 마음을 담아 그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림책을 완성하는데는 보통 8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그림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장면을 결정하는 일이라고 한다. 한 권의 책이 될 것을 고려하여 앞뒤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도록 그림을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장면을 결정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본문 출처-산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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