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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 왕 이야기 1 - 엑스칼리버
장 마르칼 지음, 김정란 옮김 / 아웃사이더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이야기하는 심연의 지옥 타르타로스에는 시시포스나 익시온, 탄탈로스 등이 갇혀 끊임없이 고통을 받고 있다. 여기서 특이한 인물 49명을 만날 수 있는데, 그들은 다름아닌 다나오스의 딸들인 다나이데스이다. 원래 다나오스는 50명의 딸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딸들이 왕국을 빼앗으려는 아이깁토스의 아들들과 결혼을 하게 되는데, 큰 딸인 히페름네스트라를 제외한 49명의 딸들이 첫날밤 남편을 살해한다. 그 벌로 그들은 타르타로스에서 밑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것이다. 아더왕 이야기는 이와 유사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스의 한 강력한 왕은 서른 명의 공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너무나 오만하여 결혼과 동시에 자신들이 남편에게 귀속될 것을 거부하였고, 막내를 제외한 나머지 공주들은 자신의 남편을 살해하기로 결의한다. 결국 막내의 고발로 29명의 공주들은 추방되었고, 그들은 바다를 떠돌다 영국에 도착하여 정착한다.
신화나 전설은 여성의 지위를 격하시키는 체계적인 골격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마찬가지로 아더왕 이야기 역시 기독교적 색채까지 가미되어 여신은 음란한 여성으로 격하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을 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어서는 안 된다. 시작하는 이야기의 29명의 공주는 자신의 권위와 명예, 자존심을 지키려는 것이 지나쳐 그리되었지만, 만약 남성이 그런 일을 계획했더라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그 뒤의 이야기들도 마찬가지다. 역자인 김정란은 이 책에 등장하는 음란한 여성들은 대부분 여신들이라 한다. 전통적 모계사회에서 우두머리인 여신이 있으면, 남자는 계속해서 바뀐다. 계승권은 여성에게 있으며, 남성은 그 여성을 얻어야만 권력을 얻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신이 여러 남자를 거느리는 것은 당연하며, 또한 신전의 사제들이 여럿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여성으로 격하되어 버린 여신에게 붙여진 오명은 음란함이었다.
아더왕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 켈트 신화, 북유럽 신화, 이집트 신화, 히타이트 신화 등 다양한 신화와 전설의 복합체이다. 가장 두드러진 예는 바로 모르간이다. 모르간은 자신을 소개하며 이런 말을 한다.
"어떤 사람은 나를 이슈타르나 이시스라 부르기도 하고, 아프로디테라 부르기도 하지요. 다른 이들은 나에게 다나 또는 돈이라는 이름을 주었어요..."
이 말은 곧 그녀가 태초부터 존재하던 여신이라는 의미이다. 즉 그녀는 멀린이 믿는 신을 믿지 않으며, 자신이 여신이기 때문에 멀린과는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보다 당당한 태도를 지녔다. 멀린은 늘 자신이 악마의 아들이지만, 신에 의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여 신의 종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르간은 다르다. 그녀는 고대의 여신이며, 가부장적·기독교적 시각에 의해 타락하여 사라져야 할 존재이다.
이 책의 후반부부터 중요한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아더'이다. 그는 멀린과 마찬가지로 죄의 씨앗이다. 그들이 나중에 보여줄 결속력은 그러한 동질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둘이 아닌 하나인 셈이다. 저승에서 만들어진 칼 엑스칼리버를 뽑아든 그는 고구려의 유리 태자이자, 아테네의 테세우스이다. 신표로 자신의 피를 증명해야 하는 인물이다. 그 신표가 엑스칼리버이며, 그 칼을 뽑아들면서 원탁에는 그를 따르는 기사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아직은 먼 훗날의 이야기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