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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과 폭력 - 성을 통해 본 인간 본능의 역사 ㅣ 한길 히스토리아 7
한스 페터 뒤르 지음, 최상안 옮김 / 한길사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서양인들이 신대륙을 정복할 때 세 가지 직업의 사람들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선교사, 상인, 군인. 종교를 지배하고, 경제를 지배한 뒤 무력으로 현지인들을 옭아매든, 그 반대이든 서양인들은 백인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자신과 다른 '문명'을 '야만'이라고 불렀다. 문명은 야만을 개화시켜야 한다는 사명 아래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 그들을 옹호해 주는 이론. 저자가 반박하는 엘리아스의 문명화 이론이다.
저자는 성의 역사, 수치심의 역사를 통해 엘리아스를 반박한다. 여자들이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는 것을 언제부터 수치스러워했을까, 남성들은 항상 성적으로 우위에 있었던가. 서양인들 뿐 아니라 아프리카나 인디언들,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사회에는 수치심이 존재해왔고, 그것은 오히려 도시화, 문명화 되면서 익명성으로 인해 줄어들고 있으며, 성적인 범죄는 날로 늘어만 가고 있다. 즉 엘리아스가 주장하는 대로 문명화 과정을 통해서 수치심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원래 각 사회의 성격에 따라 내재되어 있던 속성일 뿐이며, 문명화 과정이란 제국주의의 식민지화를 옹호하는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펼치면 낯 뜨거운 삽화들이 여러 장 나온다. 그것도 컬러로. 책 내용을 살펴볼라치면 더하다. 포르노그라피로 보는 성의 역사. 방대한 양의 자료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저자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책의 양도 거의 600페이지에 달하며, 후주만 250여 페이지이다. 그러나 쉽게 읽힌다. 물론 주석 뒤져 가며 읽기에 시간은 걸리지만 내용이 어렵지는 않다. 여러 부족이나 사회가 가지고 있는 성이 가지는 의미를 계속해서 다루기 때문에 자칫 지겨워질 위험도 있었다. 또한 2/3 가량 모두 여성의 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것도 주로 남성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들이 가지는 의미나 사건들, 결과, 그 이후의 여성들의 삶 등 억압받고 고통받는 여성들의 이야기였다. 후반부로 갈수록 나타나는 그런 이야기들이 부담스럽고 짜증이 났다. 자주 사례로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성폭행, 윤간, 강간 - 마지막 장 제목은 반항하는 여자 길들이기이다! - 등이니 거부감이 들 수 밖에.
이 책에는 여성에 의한 성폭행도 저술하고 있다. 어느 쪽이든 성으로 굴복당하면 비참함을 느낀다. 그러나 남성이 여성에게 성폭행을 당할 경우와 여성이 남성에게 당하는 경우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일단 둘 다 비밀로 하려고 하는데 여성은 남성의 음낭만 만져도 손이 잘리거나 구타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남성은 질 내 사정을 하지 않았다면 성폭행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적어도 19세기 전까지는 그러했으며 아직까지 여성은 강간당하기를 원한다고 믿는 남성들이 많다고 한다.
전쟁이 터지면 여성들은 모두 성폭행의 위협으로 불안에 떨다가 결국 윤간 끝에 배가 갈려 죽거나 끌려가 사정받이 노릇을 해야했다. 현재에도 그건 마찬가지이다. 미군들이 이라크에서 자행하는 성범죄들은 예전에도 전쟁 때 일어났던 범죄들이다. 나라를 불문하고 문명을 불문하고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면 엘리아스의 이론은 서양우월주의적 사고가 맞는 듯하다. 그래서 문명국이며 경찰국이며 선진국이라 우기는 자들이 보이는 행태가 저러한 것이라면 과연 문명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