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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8, 갑자기 다가온 IMF 여파로 직장을 잃으신 부모님으로부터 요즘 들어 부쩍 살기 어려워졌다는 말을 듣는 횟수가 증가하였다. 50, 노후 대책은 커녕 현재의 생활을 감당하기 위해 무언가 일은 하지만 들어오는 돈 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은 현실은 암울함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에게는 늘 잊지 않으시고 말씀하신다. 9급이나 7급 공무원에 머무르기에는 내가 너무 아깝다고. 얌전히 직장생활을 하시던 지난 날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그 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게 중산층 이상의 삶을 물려주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우리는 뉴스에서 계층간의 양극화가 점차 심화되고 있다는 소식을 자주 듣는다. IMF 로 많은 이들이 고통스러워할 때 부유층의 자제들은 지금이 더 좋다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고도 하던데, 지금과 같은 흐름이라면 머지 않아 그들만을 위한 세상이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갖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본 한 뉴스 기사에서는 강북에 살기 때문에 미팅에도 참여할 수 없다는 어떤 대학생의 철없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었다. 참 어이없는 세상이구나 라며 그냥 넘기긴 했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겪는 소외감은 아마 앞으로 더욱 커질 듯 싶다. 그런데 이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닌가 보다. 미국의 한 모녀가 저술한 이 책은 철저하게 미국의 현실을 담고 있다. 하지만 중산층 가정의 위기와 그 대책이라는 부제 앞에서 나는 이유 모르게 숙연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말이다.

여권의 신장은 많은 여성들로 하여금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직장 생활하는 것을 허락했다. 그것은 여성들에게 하나의 축복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족을 부양해야만 한다는 가부장적 무게에 짓눌렸을 남성들에게도 궁극적으로는 바람직한 태도라고 난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의 직장 생활의 결과는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물론 과거 전업 주부보다 오늘날 일하는 여성들이 가계의 수입을 증대시킨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전체 가계 소득의 증대와 동시에 매달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고정비용 역시도 증가했고 이로 인해 실질적인 여유자금은 더욱 감소한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또한, 저자들은 과거 전업 주부로서의 여성은 남편의 실직 등으로 인한 소득 상실시 언제라도 노동할 수 있는 예비 근로자로서, 가족 구성원 중 아픈 사람이 존재한다면 무료로 그를 간호할 수 있는 예비 간호사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보고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은 과거 전업주부에 의해 무료로 제공되던 이러한 서비스들이 더 이상 불가능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정을 버리고 사회로 진출한 여성들을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한 가정은 고정비용 조차 감당하지 못해 경제고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여성의 노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맞벌이를 통해 벌어들이는 그 많고 많은 소득에도 불구하고 왜 오늘날 파산하는 이들이 그리도 많단 말인가? 저자는 교육으로부터 그 이유를 찾고 있다. 오늘날 교육은 중산층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좋은 학교에 진학하길 바라고, 이를 위해 부모는 좋은 학교가 존재하는 좋은 학군으로, 경제적으로 무리를 해서라도 이사를 감행한다. 매달 감당해야 되는 집세와 자신의 직장생활을 위한 차량 유지비 등으로 인해 오늘날의 중산층들은 굳이 과소비를 하지 않아도 파산의 위기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한가지 더, 대출조건의 완화 등 보다 시장 질서에 부합하는 정책이라며 정부가 내세우는 정책들이 중산층의 파산을 독촉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과거에는 집값의 30%에 해당하는 돈을 갖고 있어야 모기지 대출이 가능했으나, 이제는 3% 정도의 돈만 있어도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NCBC 가 내세운 소비자 파산신청 권리 제한이 결과적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을 파산의 늪으로 몰아넣으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것이다. 지금 당장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는 이에게 카드 융자를 통해 빚을 갚을 수 있다고 제안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지만, 그 유혹은 실로 달콤하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금융회사들이 이러한 비윤리적인 방법을 통해 많은 이윤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사회복지제도는 여전히 많은 논란을 끌고 다닌다. 한 개인의 경제적 어려움은 그 사람의 나태, 과소비 등으로부터 비롯되며 복지에의 집착은 개인으로 하여금 노동에 대한 동기를 저하시킨다고 많은 이들은 주장해왔다. 그렇기에 많은 사회는 정말 빈곤한, 그냥 놔두면 우리 사회의 안전에 위협이 될 정도의 빈곤층에 대한 복지제도를 운영하는 것으로 자신의 몫을 다했노라고 말한다. 과거와 같았으면 이는 문제될 리가 없겠지만, 오늘날과 같이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현실이 지속되는 속에서 이는 충분한 사회적 안전망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기존의 중산층은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체 신 빈곤층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계층을 형성할 뿐이다.

이러한 비극적인 현실에 대해 저자는 간단하면서도 명확한 논조로 이야기한다. 교육과 의료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통한 이들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전제되어야만 지금의 파산 경쟁(!)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또한, 직접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내는 속에서만이 지금의 맞벌이의 함정을 벗어날 수 있다고 말이다. (이는 단지 미국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역자가 책의 말미에서 우리나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을 찬찬히 읽어보길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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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상상을 하는 존재들이다...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의 사람들에겐 그 상상의 세계로 만들어진 신화나 미신이 절대적인 삶의 지침이 되었었다. 과학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던 사람들은 지금은 당연한 자연 원리에도 이유를 달고, 이야기를 만든다. 해가 뜨고, 해가 사라지고, 계절이 바뀌고, 비나 눈이 내리고, 모든 일에 인간들은 상상력을 동원하여..이야기들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신화가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사고가 진화한 것이 그리 좋은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지금은 누구도 기본적인 자연현상에 관심을 두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이야기가 없다....잡소리는 넘쳐나도 이야기는 없다. 

어느 나라에나 자기들만의 신화가 존재한다. 세계 여러나라의 신화들을 보다보면...이상하게 비슷한 사건을 겪거나, 비슷한 이미지의 신들이 등장하기 나름이다....그것은...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흘러 흘러 비슷한 신화를 가지기도 하지만....비슷한 소재를 두고 상상하여 만들어진 것이기에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 것일 터이다.

신화는 어디 까지나 미지의 세계다. 정답이 없는 세계다. 물론 신화가 증명되기도 한다. 어릴적 아버지에게 들은 영웅들과 신화를 믿었던 슐리만이라는 사람은 자라서...평생을 트로이나 신화의 유적을 찾아 다녔고, 결국 그는 트로이를 발견한다...이후에 슐리만이 찾은 그것이 맞다, 틀리다...의견이 분분하기는 하지만....그처럼...슐리만같이 평생을 걸고 찾을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그만큼 신화를 사랑하고, 믿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슐리만의 어메이징 스토리가 궁금하신 분은[트로이의 부활]이라는 책을 읽어 참고 하시길 바란다.) 나 역시 신화를 처음 접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신화라면 자동으로 침을 질질 흘린다...^^

신화는 누구의 것도 아니고, 신화는 누구의 말이 정답인 것도 아니다. 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는 마치 토마스 볼핀치나, 이윤기의 책이 정석인냥 알고 있거나....그들이 가장 신화에 근접하거나, 맞는 글을 쓴다고 볼 수가 없는 문제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가 그렇다고 정석인가?....길가메시 서사시가 초석인가?....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우스] 이야기가 정석인가?.....모든 신화는 누구의 것도 아니고, 누구 한 사람의 창작물이 아닌 것이란 이야기다.  글을 쓰고, 정리하고 하는 것이야...누구든 할 수 있다. 대략....참고문헌을 많이 쓰면서..가장 보편적인 신화책이야 만들 수도 있다. 카오스에서 시작하여....구구절절.....가능하다.....그러나 그런 책은 유감스럽게도 너무도 많이 널려 있다. 어쩌면 그것들은 이미 신화가 아닌지도 모른다....

신화는 딱딱한 하드커버에 갖힌 세계가 아니라.....물렁물렁한 반죽의 세계다....누가 반죽하냐에 따라 신화는 달라질 수 있다. 이번 이우일의 새로운 반죽은 정말 그런 면에서 너무도 반갑고, 신선하고, 꼭 필요한 도전이라고 할만 하겠다. 이우일이 영웅들의 시각이 아닌...이야기꾼, 즉 음유시인 호메로스의 시각으로 접근하여...그리스, 로마 신화를 재구성하는 것은 아주 흥미진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책은 10권중 1권에 해당한다...어서어서....10권이 모두 나와 10권 모두를 읽어보고 싶다. 그리고 이야기 중간 중간 [잠깐만, 호메로스]코너도 참 재미있는 이우일식 사고를 느낄 수 있었다. 

틀에 갖힌 그림이 아닌 강한 터치로 마구 그려진듯한,  스케일 큰 그림도 그의 새로운 시도에 한 몫을 단단히 한다.  그의 이런 거침없음이 계속 이어지길 소망한다.

이제 겨우 10권중 첫 권을 읽은 것이다. 너무 들뜨진 말아야겠다. 시작은, 시도는 분명 별 다섯개 짜리다...^^.....앞으로 이우일식 신화에 청신호가 켜져...우리 나라만이 아닌 세계로 뻗어 나가길....기대한다....일단은!!^^.... 2권이 나오기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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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플라시보 > 영화에서 페미니즘을 들여다 보다.

나는 영화를 전공과목으로 공부를 했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영화에 대해 많이 안다던가 아니면 공부를 열심히 했다던가 하는건 전혀 아니다. 따라서 내가 영화를 보고 느끼는 수준은 영화에 대해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영화보기는 즐기는 사람의 수준 정도라고 생각한다. 내가 영화를 보는 잣대는 재밌느냐 재미 없느냐. 혹은 2시간과 7천원의 돈이 아깝냐 아깝지 않느냐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었으며 영화를 텍스트로 분석해가며 본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꾸지 않았었다.

그래도 대학 다닐때 한 삽질이 있는지라 영화 용어사전 같은게 나오면 새로 구입하고 소설가나 누가 영화에 대해 재밌는 글을 썼다고 하면 대체적으로 사서 읽어보는 편이었다. (정재승의 '물리학자는 영화에서도 과학을 본다' 와 이우일 김영하의 '영화 이야기' 등은 상당히 재밌었다.) 그러나 정작 영화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쓴 책은 전혀 사 보지 않았다. 이유는 딱 하나.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어려운걸 싫어하니 내신 15등급이라는 찬란한 업적을 이룬게 아니겠는가!)

이번에 고른 유지나의 여성영화 산책은 순전히 친구의 '어렵지 않고 재밌다.' 라는 추천 때문이었다. 일주일에 한편은 꼭 영화를 보고 쉬는 날이면 비디오 두편씩 연달아 때리는 것을 겁나하지 않는 내가 이제서야 영화를 전공하는 사람이 쓴 제대로 된 영화비평서를 읽는다는게 좀 그렇긴 하지만 뭐 어떤가.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가장 이르다는 편리한 교훈을 따랐다고 우기면 되는것을.

유지나는 알다시피 유명한 영화평론가이다. 지금은 심영섭씨를 비롯해서 많은 여성 영화평론가들이 있지만 내가 대학을 다닐때만 해도 유지나는 거의 독보적인 존재였었고 그녀의 말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일단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한 영화평론가였다. 이런 유지나가 여성 영화에 대해 썼다고 하니 호기심이 일었다. 과거의 유지나는 너무 극단적으로 영화를 몰아부치는 경향이 있었는데 (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 결혼을 하고 나서는 조금 둥글둥글 해 졌다. 남녀가 적이 아니라 함께 나아가야 할 동지라는 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터득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에서도 역시 유지나는 옛날 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진 문체로 여성 영화를 말 하고 있다.

사실 영화라는 것이 상당히 남성의 판타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가장 극단적인 포르노만 두고 봤을때도 절대적인 남성의 눈으로본 포르노만 존재할 뿐이지 여성을 위한 포르노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더구나 요즘 한국영화들을 보면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여성의 입지는 고사하고 아예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 영화들이 속출하고 있다. 얼마전 칸느에서 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만 하더라도 상당히 남성적인 영화이며 영화에 등장하는 유일한 여자인 강혜정은 (물론 최면술사가 있긴 하다.) 복수를 위한 장치로서 등장하는 것이지 영화 속에서 그녀가 가진 위치는 희박하다 못해 안쓰러울 지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 안에서 그려지는 여성상이나 남성상에 대해 따진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무의미하게 보일 지경이다. 여성이 등장을 하고 개뿔이나 무슨 역활을 맡아야 따지던가 말던가 할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런 토론들이 무의미하지 않은 것은 바로 언젠가는 달라질것이라는 희망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리에게는 아직 변영주나 이정향 같은 여성 감독들이 있으니까. 앞으로 제 2의 제 3의 변영주와 이정향이 등장하기를 기대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우리나라의 영화부터 시작해서 헐리우드 영화, 제 3 세계 영화에 이르기까지. 영화 즉 시네마코프 안에서 존재하는 여성의 위치를 다루었다. 실제 세상에서도 엄청난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듯 영화라고 해서 다를바 없다. 여성 주인공이 이끌어 가는 보기 드문 영화들이 있긴 하지만 그 여성들 조차 철저하게 남성적 시선에서 본 여성. 혹은 남성의 판타지를 대변하는 여성이라는 것은 참으로 슬픈 현실이다.

이 책을 보고 나서 좀 더 영화를 의미있게 또 다른 각도로 보게 되었다. 그저 재밌다와 재미 없다는 이분법적 사고에 젖어서 산 나로써는 상당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읽기에 그다지 부담스러운 문체도 아니며 어려운 영화 용어도 많이 등장하지 않아서 영화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도 충분히 읽을 만 하다. (오히려 영화를 전공한 사람들에게는 싱거울수도 있을 정도이다.)

페미니즘을 언제나 투쟁적으로 그리고 날카롭게만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방법의 차이일 뿐. 그들과 유지나가 내려고 하는 목소리는 하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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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쎈연필 > 反-영웅주의, 전복의 서사

나는 만화를 참 좋아했는데 요즘은 거의 볼 일이 없다. 하지만 생각날 때마다 만화방에 가서 꼭 챙겨 보는 만화가 셋 있다. 『창천항로』『무한의 주인』, 그리고 『』이다. 『불멸의 용병』이라는 해적판으로 이 만화를 접했던 게 십 년 전쯤이다. 현재는 정상 판권 계약에 따라 무삭제로 꾸준히 나오는 중이다. 더딘 만큼 고대하는 재미도 솔솔해서, 기다리는 맛이 싫증나진 않을 정도로, 아끼는 만화.

이 만화는 여타 영웅신화들과 마찬가지로 <여정>의 서사다. 길은 한자로 道. 정의의 사내가 온갖 고난을 이기고 마지막에 귀환(가령, 누명을 벗고 정의를 찾는)한다는 둥의 (오디세이아 같은) 고색창연한 서사가 뇌리를 스치지 않는가? 그러나 작가는 신화와 기독교 바이블과 동화적 판타지를 작신작신 비틂으로써 신선함을 이끌어 낸다. 뿐아니라, 시간적 구성도 전복한다. 현재 - 회상 - 진행 순이다. 현재의 절정인 상태를 아무런 원인 없이 보여주어 호기심을 유발시키고, 과거로 되돌아가는 방식인데, 과거의 서사가 너무나 길어서, 초반부에 절정의 장면을 제시하지 않았더라면, 복잡한 서사를 싫어하는 만화 독자(나의 편견?)들이 계속 읽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멀리 에둘러서 초반부의 시점을 거친 이 만화는, 현재, 진행 중이다.

전복의 미학을 집중 연구한 서적, 어디 없나? 이 만화는 그리스/로마/북유럽/켈트족 신화를 채용하지만, 기독교 바이블을 전복시킨다. 작품 속, 예언서에 의해 흰 매로 상징되는 그리피스는 예수의 알레고리일 테고, 어둠의 매로 상징되지만 제대로 혐의가 씌워지지 않은 가츠는 아하르 페르츠(적그리스도)의 알레고리인 듯하다. 그리피스는 밑바닥 삶으로부터 시작해서 정치에 뛰어들어 세상을 자신의 정의(?)로 구원하려는 노모스적인 인물이지만, 가츠는 세계가 체계와 믿음에 의해 다루어지는 게 아니란 걸 본능적으로 알고 부딪어 가는 아노미적인 인물이다. 기독교 바이블이 박애로 구원을 이룬다면, 중세적인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의 인물들은 칼로써 구원을 하려 한다. 기독교 바이블이 말(진술)이라면, 이 작품은 스크린(묘사)이다. 가츠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여정을 지속하는 게 아니라, 그리피스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길을 간다. 공적(구원) 자아보다 사적(복수) 자아가 더 부각된 영웅이 있던가? 여정 서사에 대한 안티이면서, 기법은 여정이다(제대로 된 풍자!).   

이 만화는 반지의 제왕에서부터 시작된 동화적 판타지를 무시했다. 마법사, 드래곤, 전설의 무기, 여정을 위한 구성원, 공적을 세우는 모험, 멋진 친구와의 조우 등 동화적인 판타지의 일반 소재가 철저히 배제돼 있다. 대신에 듣도 보도 못한 괴물,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검, 외로운 여정, 살육, 강간, 오로지 적들만이 난무한다. 여정의 중심인물인 가츠는 그냥 전사가 아니라 미친(berserk) 전사이다. 그는 가장 친한 친구(그리피스)로부터 사랑하는 사람이 강간 당하는 것을 목도 당했고, 그 순간에 괴물의 발톱에 의해 한쪽 눈이 실명했고, 외눈은 절대로 용서를 하지 않겠다는 외곬 여정의 암시일 것이다. 또한 한쪽 팔이 잘려서 대포가 달린 철제 의수를 달고 다닌다. 괴물보다 더 괴물같다. 미소년 엘프 사내도 아니고, 애들이 좋아할 자그마한 호비트 주인공도 아니다. 거대한 칼을 차고, 괴물들ㅡ아마도 왜곡된 또 다른 가츠의 자아를 상징하는ㅡ을 살육하고 다니는 인물이다. 일반적인 동화 판타지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20여권쯤에는 요정이 변이된 괴물이 나온다. 요정 괴물은, 옛적 소녀였고, 요정을 꿈꾸었고, 요정들에게 틈입했지만, 꿈과는 달리 모습만 아름다운 괴물이 되었다. 그리고 살육을 일삼다가, 가츠에게 무참히 도륙당하고 대포 맞아 죽는다.

발푸르기스의 밤은, 사티로스의 모습을 한 사탄과 마녀들의 디오니소스적인 향연을 일컫는다. 괴테의 『파우스트』1, 2부에 걸쳐 묘사되는 게 유명한데, 이 만화의 20권쯤에 발푸르기스의 밤을 알레고리화 한 장면이 등장한다. 고야의 판화를 연상시킨다. 마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마녀 화형도 등장한다. 마녀로 몰려서 화형을 당하는 여자는 작품의 중심인물인 (가츠의 애인이자 그리피스의 추종자이며 강간 당해서 백치가 된) 캐스커인데, 가츠가 구해냈을 때, 화형식 장소인 탑이 무너진다. 그 탑은 대주교가 기거하는 곳이며, 고문의 난장이던 곳이다. 가츠에 의해 대주교와 고문단들이 죽고 탑이 무너진 것은, 신이 어쩌구…… 따위의 관념을 상징적으로 파괴한 것일 테다.

동료들을 제물로 삼아 강림한 그리피스는 국가를 만들고, 마치 아더왕의 전설처럼 주변에 전사들과 민중들이 들끓는다. 그 반대편의 가츠는 그저 괴물들을 살육하며 복수를 위해, 민중들의 빛이며 전사들의 왕을 죽이러 여정을 진행한다. 너무 강한 동화 판타지(그리피스)에 맞서는 카니발리즘적 판타지(가츠)의 묘한 알레고리. 나는 그간, 이 꿋꿋한 냉소로 점철된 만화를 사랑해 왔다. 헌데,

초반부터 요정이 여정에 동참한 것은, 이야기의 전달자적인 역할을 맡기기 위함이라고 여기고 그러려니 했었지만, 20권을 넘어서면서부터, 꼬마 도둑이 여정에 합류하고, 24권인가부터는 소녀 마법사가 동료로 합류하고, 가츠를 영웅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여사제와 그 친위기사가 합류한다. 게다가 미친 전사인 가츠는 점점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어이없는 전개에 나는 이 만화가 미워질 지경이다. 정말이지 너무나 강한 동화 판타지에, 이 작가마저 굴복한 것인가? 대세를 어쩔 수 없다는 듯, 지조를 버린 것일까? 이런 식으로 간다면 아무리 잘 해 봤자 잡종 판타지 밖에 안 된다. 작가가 어서 빨리 이성을 되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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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nrim > 재미있게 읽는 재즈의 역사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도 재미있게 재즈 100년사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지 만화로 쓰여진 이야기라서기보다 잘 쓰여졌기 때문! 적절하게 특징을 잘 잡아서 그려진 재즈 뮤지션들의 모습과 글쓴이의 남다른 유머 감각은 방대한 재즈의 역사 속으로 어려움 없이 빠져들도록 해준다. 딱히 만화를 그려본 적이 없는 아마츄어라는 사람이 이 정도의 그림과 이야기 실력을 보여주다니, 샘이 나기까지 한다.

루이 암스트롱부터 아트 블래키까지 수많은 뮤지션들이 어떤 음악을 추구하였고 재즈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이제 조금 흐름이 보인다. 무엇보다 재즈 음악을 마구마구 듣고 싶어지고 있다.

재즈 음악이 주로 흑인들에 의해 발전해왔지만 재즈의 역사에서 그들의 위상과는 다르게, 미국 사회에서 그들에 대한 차별만큼이나 재즈 음악을 하는 흑인들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일까. 마약과 약물, 알콜 중독 때문에 너무나도 아깝게 죽어간 뮤지션들이 많았다. 마약과 떼어놓고는 재즈의 역사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힘들게 발전해왔기에 그 음악속에서 더욱 힘이 느껴지는 것일까....

음악은 머리로 듣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듣는 것이라 한다. 그러니 일일이 장르니 계보 따져가며 음악을 들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방대한 음악들 속에서 나름대로 길잡이가 필요할 때가 있다. 지은이의 말처럼 '현학적 재즈 논하기'가 아니라 '유쾌한 재즈듣기'를 위한 도우미로써 이 책은 100%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이 책에 소개된 음악들을 하나씩 찾아 들어가면서 나도 유쾌하게 재즈 즐기기를 시작해야겠다. Jazz it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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