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냐 > 어이없는, 추악한 사기극

어이없다. 이토록 힘이 센 '유령'을 본적 없다. 이처럼 파렴치하고 노골적인 사기극이라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홀로코스트'. 독일 나치에게 희생된 600만 유대인 량학살을 뜻한다. 똑똑한 유대인들은 대량학살에 대한, 그리고 강제노역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일단 독일에. 그리고, 스위스 은행에 눈을 돌렸다.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유대인들의 비밀계좌를 얼렁뚱땅 삼키지 말고 토해내라. 니들은 나치와 손잡고 유대인 금니까지 톨톨 털었던 금도 거래하지 않았느냐...뭐, 이런 주장이다.

여기까지는 타당한 주장일 수 있다. 하지만 엄청난 사기극..추악한 면모는 지금부터다.

쭈뼛쭈뼛 스위스은행들이 보상액을 제시했지만, 유대인단체는 콧웃음 쳤다. 결국 12억5000만달러를 챙겼다. 후일, 홀로코스트 희생자 계좌를 통해 스위스 은행들이 얻은 총 이익은 현재 가치로 3000만달러 쯤으로 추정됐으니, 엄청 남는 장사다.

유대인들의 주장대로라면, 모든 유대인 희생자 6명중 1명의 비율로 2차 세계대전 이전에 스위스 은행 계좌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거다. 6명중 1명이 벤츠와 스위스풍 별장을 갖고 있었다는 거다.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계속 부풀리다보니 스스로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분위기다.

부풀려서 돈을 챙겼다 치자...이게 누구 뱃속으로 들어갔는가. 저자의 부모도 강제수용소 출신이란다. 저자의 어머니는 달랑 3500달러를 받았단다. 유대인단체들은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곱씹고, 교훈을 널리 전파하느라 돈이 필요하다고 선전한다. 쓸데없이 보상금을 날려버리지 않도록 신중을 기한단다...그렇게 수십억달러를 챙겼다. 우리 돈으로 수조원이다.

유대인단체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토록 성공적으로 보상금을 타냈냐구? 여기서 '깡패국가' 미국이 등장한다. 중동지역에서 이스라엘의 이용가치를 눈치챈, 또 이미 미국을 움직이는 상당수 유대인의 능력에 힘입어..미국은 노골적인 '경제 제재'라는 무기를 들이민다. 스위스 은행들이 버틸때, 미국의 각주 연금 등이 수억달러씩 차례로 스위스 은행에서 돈을 빼냈다. 예금 빠지는데 장사 있는가? 스위스 은행들도 못되고 한심한 놈들이지만, 더 못된 깡패가 있으니 이 부분은 지나가자.

독일, 스위스은행은 그렇다치고, 유대인들은 냉전 종식 후 동구권에게 눈을 돌렸다. 유대인의 고통을 외면한 죄! 가담한 죄! 암튼, 이 못사는 동구권 국가들에게 어떻게 수억달러씩 뜯어낼까, 2차세계대전 이후 반세기가 지났건만, 홀로코스트 피해 생존자는 계속 늘어나고...그 범위는 계속 확대된다.

4일자 신문에도 마침 나온다. 지난 2일 독일에서 유대인 강제노역 보상 차원에서 13만명에게 4억100만달러(약 4700억원)의 보상금이 지급됐다. 하루 송금 보상액으로는 사상 최대규모란다...유대인청구협의회 이스라엘 싱어 회장(그러니까, 이놈이 사기꾼 집단의 브레인이다)은 "이 지급금은 생존자들이 60년 이상 기다려온 자그마한 정의"라고 했단다...자그마한 정의!

 '홀로코스트'가 유대인의 전유물인양 떠들어댄 것도, 유대인만 박해받았다는 '미화'도 역겹다. 나치는 50만의 집시들을 체계적으로 살해했다. 비율로 따지자면 유대인 대량학살과 비슷한 수준이다. 또 나치에 의한 최초의 정치적 희생자는 유대인이 아니라 공산주의자들이었으며, 최초의 대량학살 희생자도 유대인이 아니라 장애인들이었단다. 물론 보상받은 건 유대인 뿐이다.

굳이 나치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20만명의 창녀, 87만명의 고아, 18만명의 불구자, 100만명의 과부...400만-500만이 희생된 베트남전쟁. 미국은 '쌍방이 모두 피해를 입었다'며 배상을 거부했다. 동티모르 인구의 3분의 1을 살해한 인도네시아의 대량학살도 홀로코스트에 비교되지 않았다. 91년 이라크전 이후 경제제재를 통해 미국은 100만명의 아이를 죽도록 내버려뒀다...당시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그만한 대가를 치를만 하다"고 했단다.

허기야, 19세기 영국 식민주의자들의 혹정으로 약 2000만명 정도의 인도 주민이 굶어죽었단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90%는 백인 침략자의 공세에 사라졌다. 이런 '홀로코스트' 에 대한 사과도, 보상도 물론 없다.

이런 사기극이 가능했던건 '고분고분 잘 속아 넘어가는 언론이 아무리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도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이야기라면 언제든지 헤드라인 기사로 내보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황당한 현실 때문이다. 이스라엘, 미국의 유대인 엘리트, 그리고 미국은 홀로코스트를 조작하고 이용했다.

아, 좀 흥분했다. 하지만 이런 어이없는 사기극을 알게 됐는데, '쉰들러 리스트' 류의 유대인 희생에 눈물 쏙 빼는 얘기만 들었던 나로서는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홀로코스트 산업'은 진정 고통받았던 일부 유대인들의 고귀한 희생을 추악하게 만들어버린다.

책은 워낙 꼼꼼하다. 학술논문 혹은, 이 자체가 홀로코스트 산업에 대항하는 증거자료라 일반 독자에겐 불필요한 내용도 적지않다. 좀더 쉽고 분명하게 쓸 수도 있었겠지만, 일부러 택한 정공법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덕분에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하지만, 용기있는 유대인 저자의 고발은 충분히 고개숙일만 하다. 미국 언론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는 이 책을 쓴 저자는 10년간 일했던 대학에서도 쫓겨났다고 한다. 아직도 진실을 알리는 작업이 부당한 고통을 안겨준다니 서글프다.

책이 약간 어렵게 쓰여진 것에 대한 보상일까? 추천글은 상당히 힘이 세다. 가슴이 쿵쿵 뛸 만큼. 박노자가 썼다.

"...팔레스타인인들을 매일같이 희생시키는 범죄적인 인종주의적 국가 이스라엘이 '희생자 집단'의 탈을 쓰고, 큰돈을 쏟아부어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지은 미국이 불평등 무역과 친미독재 권력 방조, 다국적 기업들의 국제적 착취 장려, 환경 파괴를 통해 굶주림과 유행병으로 죽어가는 제3세계 주민의 홀로코스트를 계속 진행시키고 있는 곳이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세계다.

 우리에게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인류 문명이 환경 파괴의 홀로코스트나 미국에 의한 핵 공격의 홀로코스트로 멸망당하기 전에 자본주의적 세계 체제를 본격적으로 해체하는 것이다....홀로코스트 신화의 허상을 들춰낸.. 이 책은 착취와 기만이 없는 더 나은 세계를 위한 중요한 디딤돌이다... - 박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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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털짱 > ‘사기(史記)’를 펼쳐들기 전에 사마천을 읽다

 사마천. 그의 전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사기’의 연구자인 저자에게 들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했을 것 같다. ‘사기’의 위대함만큼이나 궁형이라는 삶의 굴절이 사마천이라는 역사적 인물에 사람들을 몰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중국 산터우 대학 중문과 교수로 사마천과 ‘사기’에 대한 연구성과를 장기간 접해왔던 저자의 경력이 어우러져 허구적 구성 속에서도 학술적 근거를 제시하는 초장을 접하고 보면 과연 전문가가 쓴 전기소설은 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저자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설이라는 장르에 맞추어서 이야기하자면, 섬세한 감수성을 토대로 한 심금을 울리는 언어구사력을 보여주지도 못했으며, 하나의 긴 호흡 속에 독자를 묶어두고 결국에는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해주는 치밀한 극적 구성을 갖추고 있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문학적 텍스트 그 자체로는 그렇게 큰 매력이 없었다는 게 솔직한 감상이다. 어린 시절이나 자료수집 과정, 서남 정벌 과정에서의 활약 등을 재현한 장(章)들의 이미지는 진부하고 장면 묘사는 평범했다.

 그러나 실존인물에 대한 평전은 제아무리 소설의 형식을 빌어도 완전한 소설과는 다르다. 허구적 상상력의 부산물이 아니라 과거에 진짜로 존재했었다는 사실(史實) 때문에, 인물의 생애는 역사적 사건들과 그 인물의 됨됨이를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 역사적 컨텍스트를 만들어내고 때로는 현재적 상황에 따라 그 의미를 새롭게 부여받는다. 그 자신이 한 명의 역사적 실체이자 사실(事實)을 사실(史實)로 남긴 위대한 역사가란 점에서, 사마천이 ‘사기’와 더불어 영원한 고전이 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저자의 담담한 서술은 사마천의 역사적 실존성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미덕을 발휘한다. 그리고 책의 후반기, ‘사기’를 집필하며 황제(黃帝)를 거쳐 춘추전국을 지나 내려가는 사마천의 목소리는 불을 뿜는다.


 역사적 실존인물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느 시대 사람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사마천은 추정되는 생몰 연대가 거의 한무제의 치세기간과 일치한다. 따라서 한문제의 시대에 태어나 한무제의 시대에 죽은 사마천에게 한무제는 단순히 한 사람의 황제로서가 아니라 시대적 배경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아버지 사마담보다 한무제에게 더 무게감을 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진시한무(秦始漢武)’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진시황제와 닮은 점이 많았던 한무제는 영토확장과 체제정비를 이룬 위대한 황제였지만 아내와 친자식들을 행행히 죽인 잔인한 아버지였고 동방삭과 같이 불로장생을 꿈꾼 불합리한 인간이었다. 이런 점에서 합리적 인간 사마천이 비합리적 절대권력 한무제를 감내해야 했던 상황 자체가 사마천이 평생에 걸쳐 풀어야했던 역사적 질문이 된 셈이다.

 궁형 이후의 치욕스러운 삶을 이어나가며 경험했을 극렬한 내면적 갈등은 육체적 고통을 넘어서는 괴로움이었을 것이다. 불합리를 불합리로 거부할 수 없다는 것. 죽음 아니면 그저 감내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현실은 그 상황에 대한 단순한 분노로 그치지 않는다.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무기력하다는 사실 자체가 그 상황에 처한 자신을 순순히 인정하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끝없이 반복되는 질문과, 그 상황에 직면한 자신의 존재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한 자학적인 물음을 절망적일 만큼 되풀이하며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바로 이 책의 주인공, 사마천이 위대한 역사가로 다시 태어나는 내면의 탄생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기’ 열전의 첫 장은 은나라 제후국인 고죽국의 왕좌를 버리고 산에 숨어살다 주왕조의 천하를 부정하며 굶어죽은 백이, 숙제로 시작한다. 이들의 죽음 앞에 “과연 하늘에 도가 있는냐”며 절규하는 사마천은 현실에서 불합리와 무도(無道)를 이기지 못한 역사적 정의(正義)의 내면적 힘을 과연 어디서 얻어야 하는가 하는 피를 토하는 물음을 역사에 던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하늘의 도는 공평무사하여 늘 착한 사람의 편을 든다.” 하지만 백이, 숙제는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가? 그들은 이처럼 은덕을 쌓고 고결하게 행동하였음에도 굶어죽고 말았으니! 또한 제자 72명 가운데 공자는 오직 안연만을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칭찬하였다. 그러나 안연 역시 뒤주가 늘 비었으며, 지게미나 쌀겨도 배불리 먹지 못하다가 끝내 요절하고 말았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보답한다면, 이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하략)...


 사실 정의가 불의에게 좌절당하는 현실에서 정의에게 유일한 위로가 되는 것은 그에 대한 사후 평가뿐이다. 그러나 이것도 공자와 같이 위대한 성인의 손을 빌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백이, 숙제가 현인이기는 하지만 공자의 칭송을 얻음으로써 그 이름이 더욱 드러났다. 안연은 독실한 선비이지만 공자의 덕에 힘입어 그 덕행이 더욱 드러났다...(중략)...세상 사람들의 마을 속에 살면서 행실을 닦고 이름을 떨치고자 하더라도, 공자와 같은 성현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어찌 그 이름을 후세에 남길 수 있겠는가?


 여기서 사마천은 궁형을 당하면서까지 죽지 못한 자신의 존재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의가 불의를 이기지 못하는 현실 자체는 어쩌지 못해도, 정의가 정의였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평가하여 후세에 명예롭게 기억되게 만드는 것! 그것은 오로지 역사의 기록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공자가 전국시대 천하의 어지러움을 바로잡고자 하였으나 뜻을 펼치지 못하자 물러나 ‘춘추’를 지어 군자와 천하의 난신적자를 포폄하여 세상의 바른 이치를 드러낸 것처럼, 사마천 자신 역시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내부적 자신감을 찾아낸 것은 아닌지. 저자가 책의 제목을 ‘역사가의 혼 사마천’이 아니라 ‘역사의 혼 사마천’으로 한 것도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하는 행위 그 자체가 불합리한 현실을 헤쳐나가는 역사(歷史)의 정신이라는 인식의 궤를 사마천과 같이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만큼 세상을 보고 깨달은 만큼 세상을 느낀다. ‘사기’에는 다양한 신분만큼이나 인생역정도 천차만별인 역사 속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사기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사마천 그 자신이다. 책 속의 인물들은 불합리한 현실에 “천하에 도가 있느냐”는 비분에 찬 질문과 직면한 사마천의 분신들에 불과하다. 백이와 숙제는 굶어죽고 굴원은 멱라강에 몸을 던졌지만 한신은 개백정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갔고 계포는 죄인으로 팔려 가는 것을 용납하였다. 이들 각자는 자신들이 대면한 어찌할 수 없는 물리적 상황에 대하여 다르게 대답한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답으로 받아들지는 것은 이들 자신이, 결국은 사마천 자신이 제나름의 당위성을 찾아낸 덕분이다. 궁형이라는 치욕에 대부의 이름을 지키며 죽음으로 맞설 수 있었던 것처럼, 스스로의 존재 자체에 대한 환멸에도 불구하고 삶으로써 맞서 싸워나갈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마천이 굴원의 비극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같은 길을 가지 않은 것은 자신의 삶에 당위성을 굴원과는 다른 지점에서 찾아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굴원을 비운의 시인으로 기억하는 것과는 달리 사마천을 위대한 역사가로 기억하는 것 역시 그 차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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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잉크냄새 > 신화, 역사로의 전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향으로 신화는 천지창조, 생명의 기원, 죽음과 윤회, 천국과 지옥, 자연과 초자연등에 대한 이야기로 인식되어 진다. 물론 신화라는 단어적인 의미의 정의는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건국신화는 단군신화의 환인과 환웅, 주몽신화의 황천과 하백등 신과의 연관성이 일부 수록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명백히 초기 국가의 건국에 대한 이야기이다. 신화라는 단어가 주는 신비성에 대한 선입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건국신화를 한국 역사의 1막 1장으로 인정함에 있어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 국가의 건국에 관한 역사가 신화적인 요소를 가지게 되는 것은 문자로 정착되기 이전의 수백년을 구전으로 전해지며 조금씩 변형을 일으켜 사실 자체가 신비화 되어버리는 경우와 후세들의 필요성, 특히 왕통의 정통성과 지배세력의 특권을 부여하고자 의도적으로 행해진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특히 한국 민족사는 일본에 의해 왜곡되어지고 홀대받는 특수성을 지니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건국신화의 신화적인 요소를 한겹씩 벗겨내며 신화적인 시간과 장소와 인물을 역사속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고조선의 단군신화, 부여의 동명신화, 고구려의 주몽신화, 백제의 온조설화 (백제의 건국신화만이 설화라 칭하여지는 것은 일찍 문자로 정착되어 신화적인 요소를 거의 찾아볼수가 없다), 신라의 혁거세신화, 가락국의 수로신화등 초기 국가 성립의 건국신화에서 시조의 탄생, 건국 세력, 건국 시기, 정치 체제, 성장 과정, 왕실 세력과 지배층 세력등의 역사적인 자료의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건국신화의 역사로의 전환, 그것은 비단 학문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한국인, 한국사회, 한국문화, 한국사의 뿌리를, 정체성을 찾는 일인 것이다. 대체로 연극에서 1막 1장이 전체적인 방향을 설정한다. 역사 또한 1막 1장인 건국신화의 올바른 인식이 현재와 후손의 역사의 방향과 미래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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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그다 > 지워야 할 몸의 역사

수잔 베가는 이렇게 노래했다. “당신이 지상에서 누군가의 팔에 안겨 누워 있다면 당신은 그의 역사를 삼키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지금 한 남자가 그녀의 곁에 있다. 그녀는 마흔여덟 살. 그는 서른다섯 살. 그녀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보다 미래인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2년에 소비에트가 해체되겠지만, 현재의 그, S는 스탈린에게 훈장을 받은 아버지를 둔 파리 주재 소련 외교관이고, 그녀는  미테랑이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는 모습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미온적 좌익 성향의 작가다. 러시아에서 만난 두 사람은 파리에 돌아와서도 나이와 국적과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탐닉한다.

열정과 맹목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탐닉은 행복이지만, 살 만큼 살고 볼 만큼 보아온 마흔여덟 살 여성 작가에게 그것은 지옥이 된다. S와 만나는 일년 반 동안 일기 외의 다른 어떤 글도 쓰지 못하게 되고, 자기 감정이 아닌 모든 외부의 것에 문을 닫아 건 생활을 하면서도 그녀의 눈은 불행히도 “뜨여 있다.” 비싼 차에 대한 선호, 속물근성 드러나는 옷차림과 섹스를 할 때 보이는 ‘약간 작고 잔인해 보이는 치아’에서 그녀는 불행의 전조를 읽는다. 출세 지향적 삶을 살아온 그의 과거, 그녀를 “섹스 잘하는 정부”로 여기는 그의 현재, 그리고 그녀에게 지옥 같은 이별의 고통을 안겨주게 될 그의 미래가, 그 역사가 그녀의 눈앞에 훤히 보인다.

때로 울컥하는 마음에 그녀는 남의 물건을 탐하는 S의 ‘기둥서방 근성’을 비꼬기도 하고, 자기보다 예쁘지 않은 그의 아내와 존재 여부조차 분명치 않은 그의 많은 여자들에 대한 샛노란 질투로 밤을 지새고, 비싼 선물을 해준 뒤에 물질 대 감정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며 자괴감에 시달린다. 너그러운 어머니와 온갖 창의적인 체위를 구사하는 창녀를 동시에 연기하여 그를 기쁘게 하고는 “나는 언제나 모든 역할을 다 맡는 걸 좋아했다.”고 하며 자기 경멸에 빠진다. 그럼에도 그것을 거부할 힘이 없다. 먼저 우아하게 이별을 고할 시기도 이미 놓쳤다. 남은 일은 아무런 미래도 교감도 없는 관계 속에서 ‘나의 모든 공허함을 다해’ 그를 사랑하는 것뿐이다.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일기를 쓰는 것이다. 모멸과 불안과 절망과 환희와 기쁨에 대해. 일기는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고하는 이성과 부질없는 희망과 연장되는 이별의 순간에 대한 두려움과 탄식으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작가라는 것, 아무리 두려워도 진실에 눈감아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다. 아무리 아뜩하게 사랑하고 몸에 와 닿던 손길에 목말라도 모든 희망이 상상의 산물이며 S와 자신은 광년(光年)을 사이에 둔 먼 존재, 단지 육체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녀가 육체와 욕망, 고통의 세계에 속한다는 것은 그녀이외의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엄연한 사실!

그리하여 S가 전화 한 통 없이, 전언 하나 없이 러시아로 돌아간 후에도 그녀는 살아 남는다. “다시 돌아올 거야.” “나는 늙어빠졌을 거야.” “내게 당신은 결코 늙지 않는 사람이야.” “늙지 않도록 노력할게.” 하지만 그녀는 나이를 먹는다. ‘한 남자를 잃는다는 것은 한꺼번에 몇 해를 늙는다는 것, 그가 있었을 때 흐르지 않았던 그 모든 시간을 한꺼번에 늙는 것이며 앞으로 다가올 상상 속의 시간들을 한꺼번에 늙는 것’이기 때문에.

그가 떠난 후 처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끼며 그녀는 어느 날 아침 눈을 뜬다. 그럼에도 이 행복에 아무런 동기, 아무런 사랑이 없다는 사실이 그녀를 약간 슬프게 한다. 그래서 그녀, 아니 에르노는 『단순한 열정』과 『탐닉』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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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잘 만들어진 사극 한 편, 내지는 17세기 우리네 삶을 세세하고, 친밀하게 보여주는 다큐를 한 편 보고 난 기분이랄까? 아주 생생한 글맛과 술술 풀어가는 옛 이야기 속으로 나도 모르게 스르르 빨려 들어가고 만다. 그러나 그렇게 스르르~~흘러들지만 결코 여유부리며, 마냥 옛이야기 읽듯 흐느적거리면서 읽을 책은 아니였다. 다름아닌 한 여자의 자살을 둘러싼 시대적 이야기이니 말이다.

이 책은 향랑 사건으로 본 17세기 서민층의 생활사와 가족사를 면밀하게 보여줌과 동시에 당시 급변하던 당시의 결혼제도와 그것으로 수많은 여자들이 불이익을 감수하거나, 향랑처럼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도록 만든 시대적 이야기가 이 책을 주를 이룬다. 그리고 중간 중간 향랑의 이야기와 연결되는 다른 옛이야기들이 버무려져서 책 읽기의 맛과 방대한 자료들만으로도 아주 좋은 책임에 분명하다 하겠다.

향랑이 살았던 선산은 오늘날로 보면 구미시 형곡동에 위치하고 있고, 현재는 거대한 주택단지를 이루고 있는 지역에서 살던 옛 여인이였다. 그곳은 일반 백성만이 아니라 짐승들까지도 절의를 지킬 줄 안다고 자부하는, 다른 지역에 비해 유교적인 성향이 매우 강한 지역이였다. 그런 지역이다보니....그런 지역답기 위하여 알게 모르게 그 마을 사람들의 뇌리엔 절의에 대한 강한 억압이 자리하고 있을 터이다. 사실, 향랑이 또한 망나니같은 서방과 이혼하고 다시 재가를 할 수도 있는 신분이였음에도 그러지 않고 결국 죽음을 선택한 것을 보면 향랑 스스로도 그런 억압을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었는듯 하다. 물론 향랑이가 몸 붙힐 곳이 하나 없을만큼 가족들이나 시집에서 그녀를 내 몰은 이유도 있었지만 말이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선 이혼한 사람, 특히 이혼한 여자들에 대한 시각이 곱질 못하다. 이혼한 여자가 다시 결혼을 하고, 게다가 계모가 된다면...그것은 주위 사람들 입방아의 소재거리로 오르기 일쑤인 시대가 부끄럽지만 아직 우리 시대다. 물론 일부에선 나아졌다고 말하지만 아직 그런 시각으로 고통받는 여자들이 어디 한 둘이냔 말이다. 그런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의 시작을 이 책은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난 아주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래 우리나라 혼인 풍속은 남자가 여자의 집으로 가서 혼례를 치루고 그대로 처가에 눌러 사는 '남귀여가'와 '처가살이'였다고 한다. 자식들이 다 큰후에 시집으로 돌아가 살았기에 아들만을 선호하지도 않았고, 친손주, 외손주를 차별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런 결혼 풍속은 고대삼국, 고려, 조선을 망라하고 계속 이어져 왔는데, 조선조에 와서 중국의 '주자가례'가 도입되면서 이른바 친영론(親迎論)이 제기되고, 태종은 남귀여가를 비판하고 친영을 실시하도록 주장하게 되고, 점점 가부장제도가 정착하면서 여자들의 재가금지가 되고, 이전시대엔 활발하던 여성들의 예술이나 문학활동이 집안으로 축소화되면서 가문보조자의 역할만 수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안타깝고, 아까운 일인가!!

그런 시대의 이혼하거나, 이혼 당한 여자들은 갈 곳이 없었다. 친정엘 가면 출가외인이 되고, 시집에선 내몰리고....재가를 하면 평생 사람들로부터 '더러운 년' 소리 듣기에 딱이였다. 자존심도 강하고, 자기 주장이 강하던 향랑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이것은 그녀 스스로 자살한 사건이라고 하기 이전에 사회의 결혼제도와 그 제도들로 만들어진 사람들의 인식들이 만들어낸 집단적 타살이기도 하다.  사회적 타살 사건!!!

그러나 선산의 양반과 벼슬아치들은 향랑의 자살을 두고, 자기 고장의 이미지답게 재가하지 않고 목숨을 끊은 하나의 지아비만을 섬기려한 열녀로 포장하려 든다. 지금도 고소설이나 고문서에는 향랑은 열녀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당시의 시대적, 지역적 요소들을 고려하여 향랑을 열녀라는 어색한 포장 대신 억울하게 죽음을 선택한 인간으로 다시 제대로 돌려 놓았다고 본다.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라 하겠다.

향랑이 죽기전 노래한 [산유화]는 원래 백제 망국의 한을 노래한 것이지만 향랑의 마음도 고스란히 담긴 노래이기도 하다. [산유화]를 끝으로 리뷰를 마친다.

하늘은 어이하여 높고도 멀며

땅은 어이하여 넓고도 아득한가.

천지가 비록 크다하나

이 한 몸 의탁할 곳이 없구나.

처라리 이 강물에 빠져

물고기 배에 장사 지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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