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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色 로맨스 : 일상 혹은 환상
연두.정지원.이지환.채현 지음 / 가하 / 2011년 12월
평점 :
보영은 프리랜서다. 일단은 가난한 프리랜서. 통잔잔고가... 만원이 되지 않는. 왜냐.. 괜히 설레이면서 기대하던 짝 있는 줄 몰랐던 동창 앞에서 쪽팔리기 싫어 3만원만 하려던 부조를 5만원 했으니까. 웃음이 났다. 나 역시 그런 적이 있었다. 난 결국 3만원 넣었지만, 그 친구는 부산에서 수원까지 와 준 (물론 기차표도 친구가 끊어줬다.ㅜㅜ)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내 사정 뻔히 다 아니까.
결혼식장에서 저마다 보영보고 늘씬하고 우아하다며 칭찬한다. 보영은 도도하게 웃으며 속으로 흐느낀다. 돈이 없어 굶다보면 살이 빠진단다... 그런 그녀에게 카드대금이 빠져나가는 날은 마치 13일의 금요일에 제이슨이 나타나는 것과 같은 공포를 준다. 카피를 써 주고 들어와야 할 돈이 밀렸다. 그녀는 은행에서 걸려오는 전화 앞에서 갈등한다. 받고 싶지 않다... 비참하게 느껴지는 자신을 저주하며. 그래도 보영은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우습게도 위안을 얻는다. 로맨스의 시작이라고나 할까.
쌈장녀는 매우 처절한 상황을 유쾌하고 담백하게 끌어나간다. 곳곳에 웃음기가 배어나와 읽는 동안 씁쓸하지만 즐거웠다.
결혼이 다가오면 신부들이 느낀다는 우울한 기분들... 메리지 블루. 연서는 말 그래도 흘러가는대로 사는 여자다. 딱히 절절한 연애를 한 기억도 없고, 되는대로 대학을 가서 취업이 안 되니 남들 가는대로 대학원을 가고, 선배들이 잔뜩 있는 제약회사에 들어간다. 그러다가 엄마가 선보라는 남자와 선을 보고 이제 그 남자와의 결혼을 앞두고... 이제 연서는 고민한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걸까...
누구나 한 번쯤 느낄만한 감정들을 연서의 마음과 상황을 통해 잘 표현하고 있다. 결혼을 앞두고 다른 남자를 돌아본다던가, 결혼 자체를 늦추고 싶어한다던가, 이 남자가 나를 선택한 이유가 뭘까 고민한다던가, 시어머니에 대해 생각해보고, 엄마에 대해 생각해보고, 내 삶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렇게 보영과 연서가 자신이 살고 있는 삶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그에 반해 우민과 느와는 일상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완전 어린 나이에 미술계의 신이라 불리던 우민이라는 존재 자체가 환상이라고나 할까. 딱 맞춰 느와 역시 보랏빛 눈동자에 환상을 간직한 여자이고.
사고로 오른손이 망가져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우민은 우연히 들어가게 된 가게에서 비통한 음색을 내는 첼로 연주자 느와를 만난다. 운명의 반쪽을 만났다고 자신하는 우민에게 느와는 정말 신비로운 환상이었다. 사라진 그녀와 그녀를 기다리는 우민, 그리고 그녀를 찾아나서는 우민.
나는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여자다. 이 꾸진 아파트로 이사오고 난 뒤 생겨난 불면증, 쓸고 쓸어도 계속 나오는 노란털, 밑에 층에서 계속 울어대는 개 때문에 이사온 걸 후회하는 중. 그러던 어느 날 새벽 3시. 나는 자는 걸 포기하고 편의점에 먹을 걸 사러 간다. 가는 길에 만난 검은 고양이는 "이 년이" 라는 말에 발끈하여 자랑스러운 자신의 명란젓을 보여주고, 온통 검은 옷을 입은 남자와 엘레베이터를 타고 같은 층에 내리며 공포에 질린다. 옆집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 남자를 보며 괜히 겁 먹었다며 안도하지만, 역시 기분 나쁘다.
윗층에는 마녀가 산다. 그리고 아래층에는 늑대인간이 살고, 옆집 남자는 뱀파이어이고, 내가 사는 호의 전주인은 여우란다.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 이 아파트가 싼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