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철학과에서 알게 된 선배랑 우연찮게 대화할 기회가 생겼다. 열심히 이야기하다가 문득 강연 이야기가 나와서 내가 "저두 강연 많이 들으러 다니구 해야 하는데.. 그래야 사고의 폭이 넓어질텐데 말이죠.."라고 말을 던졌다. 그랬더니 그 선배 왈. "책 많이 읽어.. 그러면 사고의 폭이 넓어지거든"
순간 나의 기분은 솔직히 더러웠다. 격한 표현이라 생각되지만 사실이다. 그 선배가 나쁘다거나 잘난 척하는 사람이라거나 그러지는 않다. 사실 우리는 안 지 몇 개월 밖에 안 됐고, 수업 시간에나 보는 그런 겉만 아는 사이다. 그리고 그 선배는 나에게 조언의 형식으로 다정하게 이야기 한 거다. 그런데 내 기분은 왜 그렇게 나빴을까...
책을 많이 읽으라고? 거기에 내 자존심이 다친거다. 겉으로는 내가 겸손한 척, 모르는 척 잘 했는데, 막상 그런 말을 들으니 나의 가식이 가면을 벗어버린 거다. '남들보다 책 많이 읽었어.. 당신보다 많이 읽었을걸..이거 왜 이래?' 그 때 내 맘속의 대답이었다. 겉으로는 "네.. 그래야겠죠.. "라고 가식을 떨었지만 말이다.
오만한 나...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언제부터 남의 호의마저 나의 잘난 자존심의 방정식에 맞춰 답을 내는 그런 허영덩어리에 가식쟁이가 된 것일까... 처음에는 자존심이 다쳐서 기분이 상했지만, 잠시 후 나의 이러한 거만함에 역겨워졌다. 내가 잘난 게 뭐가 있다고... 너무 아팠다. 나 자신안에 이런 의식이 있다는 건 너무 아팠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내가 지향하는 나는 이런 나가 아니었는데...
나 혼자 나란 인간에 실망하면서도 남이 모르겠지란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리고..나는 다시 나의 이런 어리석음에 몸서리쳤다.
우울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