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몇 회까지 정말 재밌게 봤다. 

깨방정 숙종과 재기발랄한 풍산이 동이와 기품 있는 야망을 가진 장희빈이라는 인물의 재해석이 마음에 들어서다. 

언제나 인현왕후와 장희빈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 숙종은 조금은 무자비하지만 그래도 제법 괜찮은 왕으로 나왔다. 장희빈의 고약함을 알면서도 참아준다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번 동이의 숙종은 조금 다르다. 자신이 마치 스타라도 되는 양 미소를 날리던 숙종. 그 깨방정! 약간은 가벼워보일 수 있는 그 부분이야말로 숙종을 더 좋아보이게 하는 듯 하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현왕후와 장희빈 이야기대로라면, 숙종은 여자 치마폭에 휘둘리는 암군이면서 탕평책이라고 쓰는게 서인 한 번 쓸었다가 남인 한 번 쓸었다가 결국 서인천하 만들어주고, 나중에 노론, 소론 갈라져서 사도세자 사건과 같은 불행한 일을 만든 왕이지 않을까. 근데 그렇게 평가받지 않는다. 왜일까? 

장희빈. 이 드라마에서 가장 마음에 들던 캐릭터는 바로 장희빈이었는데, 말도 안되는 대비시해사건으로 장희빈은 그저 악독한 장희빈으로 전락했다. 동이를 보면서 쉴새없이 불만을 토로하게 된 것도 바로 장희빈의 캐릭터 '변질' 이 큰 원인이다. 기존 인현왕후와 장희빈은 선악의 대결이었다. 하지만 동이에서 장희빈은 중인이지만 그 누구보다 도도하고 당당하다. 숙종을 사랑하는 마음도 당당하고, 중전의 자리를 노리는 것도 당당하다. 비록 신분은 미천하고 세가 약하더라도 자존심과 배짱은 천하 여걸이다. 권력과 애증에 눈이 멀어 처음부터 악했던 기존의 장희빈이 아닌거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변했다. 장희빈은 이제 그저 악녀다. 궁중암투에서 살아남기 위해 술수를 부리는 내명부 사람이다. 심지어 악몽도 자주 꾼다. 그렇게 심지 굳던 그녀가 스스로 암투의 구렁텅이로 들어가 악몽을 꾼다. 그래도 연기는 잘 한다. 나중에 인현왕후 저주하는 장면이랑 사약 받는 장면 기대해 본다. 

동이. 제일 맘에 안 드는 캐릭터다. 동이가 숙빈 최씨가 되기 전까지는 거의 기록이 없기 때문에 창작이 가장 많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데, 어떻게 참.. 완전 엄친딸이다. 6살까지 아버지한테 모든 지식을 전수받았다. 그녀는 수사의 배테랑이다. 돌아가신 아버지 외에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오만가지 지식이 머릿속에 다 들어있다. 규칙도 필요없고, 조력자도 필요없다. 자기 혼자 다 처리하려다 주변 사람들 걱정 끼치고, 나중에 혼자 다 알아내서 주변 사람들 바보 만든다. 하지 마라는 짓은 혼자 다 한다. 그러고도 감찰궁녀들 중에서 서책은 제일 많이 읽는단다.. 속독이라도 배웠나보다. 어디에 던져놔도 영특해서 일처리 잘 한다. 경제관념도 있다. 약재도 잘 안다. 억세게 운도 좋다. 어쨌든 불사신이다. (한효주가 사극에 조금 안 어울리는 면도 있다. 현대극 보는 듯하다고나 할까. 특히 인현왕후나 장희빈이랑 대화할 때 확 차이가 난다.) 

참고로, 인현왕후 얘기 조금 하자면.. 장상궁의 입궁 문제가 있을 때 인현왕후가 자기 밑에 있는 상궁에게 그랬다. "자네도 나를 바보로 알고 있구먼." 바보됐다. 좀 더 정치적인 인물로 나와도 될텐데.. 너무 아쉽다. 배우도 참 마음에 들던데. 발음도 좋고 단아해서. 

숙빈 최씨는 실제로 아주 정치적인 인물이었다. 장희빈이 중전 자리에서 물러난 것도, 인현왕후가 복위된 것도 숙빈 최씨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았을 일이었다. 그런 그녀는 무수리였지만 궁 안에서 오래 살면서 스스로 정치감각을 키웠다. 그녀의 정치적인 감각이 아니었다면 숙종의 승은도 입지 못했을 거고, 장희빈의 질투 속에서 살아남기도 어려웠을 거다. 장희빈에게 남인 세력이 있을 때 숙빈 최씨에겐 일단 아무도 없었으니. 서인 세력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 것도 다 그녀의 역량이었다.  

그런 그녀가 동이라는 드라마에서는 정치라고는 눈꼽만큼도 모르는 사람으로 나온다. 다른 건 다 알면서 정치만 모른다. 운과 진실만으로 살아남기에는 궁이라는 곳은 너무 무섭다. 그 진실도 증험을 찾아야만 증명할 수 있으니.. 물론 동이는 어떤 상황에서든 증험을 찾아내겠지만.. 사실, 장희빈 쪽이 더 치밀하고 머리 잘 쓴다. 동이는 솔직히 운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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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6-12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요즘 동이 안땡깁니다 --;
말도 안되는 구라가 넘치는 김수로왕을 보게 되더군요ㅋㅋ(시나리오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면서)

꼬마요정 2010-06-12 23:42   좋아요 0 | URL
아하! 그렇군요..
아직 김수로왕은 못봐서요..
이럴거면 아예 허구의 인물 내세우는 사극이 좋을 것 같아요..
대장금이나 다모 같은.. 역사적 사실은 양념처럼 들어가 있구요..
뭐라해도 동이의 그 혼자 잘난 캔디같음에 공감을 못하는 거겠죠..뭐

루쉰P 2011-06-10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 드라마에 대한 이 집중력!! 전 요즘 '미스 리플리'를 보고 있습니다. 이다해의 연기를 보며 전 조금 비딱한 시선이기는 하지만 이다해가 승리했으면 하는 그런 심리를 가지고 있어요. 이다해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기에 어떻게든 승승장구 했으면 하는 이 마음..좀 못됐죠. ㅋ

꼬마요정 2011-06-11 02:32   좋아요 0 | URL
전 사극을 즐겨보는 편이고, 요즘은 '최고의 사랑' 열심히 보고 있답니다. 미스 리플리는 못 봐서 잘 모르겠네요~ 근데 요즘은 악역도 나름 이유가 있어서 밉지만은 않을 때도 많더라구요~^^

루쉰P 2011-06-12 09:16   좋아요 0 | URL
딩동! 저도 '최고의 사랑' 애청자입니다. ㅋ 독고진의 심장수술로 갑자기 뭔가 우울한 분위기로 가고 있는...아! 제발 해피엔딩!!

꼬마요정 2011-06-12 23:57   좋아요 0 | URL
제발 해피엔딩!!! 드라마라도 행복해야죠~~~!! 안 그러면 작가 나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