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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묘묘 방랑길
박혜연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4월
평점 :
조선판 셜록과 왓슨이라기에 냉큼 집어들었다. 기이한 이야기들을 어떤 식으로 풀어갈까 싶었는데, 묘한 인연이 함께였다.
권세 있는 윤 대감댁 막내아들 효원은 호기심도 많고 혈기왕성한 젊은이다. 그가 사는 마을에 역시 마찬가지로 권세가 있는 최 대감댁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최 대감댁 가문의 가보인 금두꺼비가 제발로 도망쳤다는 것이다. 효원은 친구인 지형의 집안에 일어난 일이라 더더욱 관심을 가지며 해결하려고 노력하는데... 그러면서 알게 된 여우의 아들이라는 묘한 사내인 사로를 알게 되고 그와 함께 사건들을 해결하기 시작한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도 사람이고 가장 힘이 되는 것도 사람인 듯 하다. 증오도 사랑도 모두 숨기지 못하고 드러내니 말이다. 금두꺼비 사건은 믿었던 친우의 본모습을 까발렸다. 인간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더군다나 권력을 가진 인간의 진면목을 알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았다.
효원은 사로와 함께 여행길에 올랐고, 아기장수 설화를 떠올리게 하는 사건을 만났다. 아기의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렸으니 부모는 그 날개를 지져야만 살 수 있다 여기는 설화인데, 민중영웅의 실패라는 비참한 결말이 예견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책은 그리 험악하지 않았다. 날개를 지지면 아기가 죽을 수 있다 생각한 엄마는 결국 날개를 없애지 않았다. 그들은 어떤 사건에 휘말리고 어떻게 되었을까. 여우의 자식이라 손가락질 당한 사로만이 이해할 수 있을까. "저들이 사람 취급을 해줘야 사람인게지요..."라고 말이다.
목각 어멈 이야기는 슬펐다. 기이한 이야기로 출발하였으나 엄마 잃은 아이의 눈가림과 배고픈 가족을 둔 남자의 합작이었으니, 더 욕심을 부린 이가 결국 파멸을 가져왔다. 진실에 눈을 감은 채 그리운 이가 살아있다 믿도록 두는 게 나았을까, 진실에 눈을 뜨고 인연을 정리하는 게 나았을까. 인연이 다하여 헤어지는 일은 언제 어디서라도 가슴 아픈 일이다.
차오르는 술잔은 손톱 발톱을 아무데나 버리면 안 된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이야기를 이렇게 풍성하게 만들어서 더 재미있었다. 역시 손발톱을 깎은 뒤 아무데나 버리면 안 된다. 아, 나는 괜찮을까. 우리 집엔 고양이가 잔뜩 있으니 말이다.
열리지 않는 문은 너무 귀여운 이야기였다. 주인의 뜻을 받들어 열리지 않는 문이 감춘 진실은 무엇일까. 무시무시한 사건 뒤에 끔찍한 과거가 있을까 무섭기도 했으니, 역시 사람은 의심과 비교에 짓눌리면 험한 일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해버린다. 일이 끝난 뒤에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비록 황 대감과 행랑아범이 서로 거짓을 사실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로 인해 행랑아범이 더 큰 죄를 짓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었고, 황 대감은 대가를 치르게 되니 또 다행이었다. 괜히 덕춘만 맘 졸인 셈이다.
푸른 불꽃과 여우 구슬은 사로의 과거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효원과 사로가 어떻게 만났는지, 효원이 어떻게 목숨을 건졌는지 말이다. 정(情)을 나눌 수 있는 존재는 매우 드물지만 반드시 필요하다. 그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사건을 해결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세상은 각박하지만 그 속에서도 인정은 피어나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