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 나비클럽 소설선
김세화 지음 / 나비클럽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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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는 약자에게로 흐른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가장 큰 위험 요소가 아닐까. SNS의 발달로 남과 비교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리고, 숏폼이 넘쳐 흘러 섣부르더라도 빨리 나온 결과만을 인식하는 현실에서 부러움의 대상은 질시의 대상이 되고 이때 뻗어나온 질투의 감정은 혐오가 되어 대상을 찾고 있으니 말이다. 그 혐오는 결코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 분명하게 혐오란 감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곳은 보다 아래, 나보다 약한 쪽이다.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밤, 이슬람 사원으로 가는 골목길에서 누군가가 피습당했다. 피해자인 권윤정 교수는 이슬람 사원을 건립할 당시 교회와 주민들의 반대에 맞서 다문화교류연구원들과 자문변호사와 함께 무슬림을 변호했던 사람이었다. 비 오는 날, 망치로 사람을 내리치고 도망친 사람은 언뜻 보기에 무슬림 혐오자로 보이기도 했고, 단순한 퍽치기 범죄자로 보이기도 했다. 전자는 JBC 박우태 기자의 시선이었고, 후자는 경찰의 입장이었다. 


단순한 사건인 줄 알았는데 며칠 후 다시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 밤, 다문화교류연구원 자문변호사인 윤미라 변호사가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무슬림 사원에 방화가 발생했다. 각 사건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걸까. 


작가는 과거에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에게 기사를 위해 사건의 경위를 자세하게 물어봤던 일이 부끄럽다고 했다. 그리고 폭행당한 남자를 취재한 기억은 없다고, 대부분 폭행 사건의 가해자는 남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현실적인 사건을 추리소설로 이야기할 때 탐정 역할은 여성 형사로 설정하고 싶어 한 작가님 덕에 오지영 형사가 탄생했다. 


상대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지 못하고 사실관계에 집중하는 성격 덕에 오지영 형사는 이 사건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언론에서는 종교 갈등 및 무슬림 혐오로 몰아가며 경찰의 무능력함을 비판했고, 경찰 내부에서는 사건 해결보다는 실적은 자신들이 챙기고 힘든 일은 오지영 형사에게 미루는 등 알력을 행사했다. 그 와중에도 오지영 형사는 묵묵히 사건에만 집중하는데...


사건은 계속해서 발생했다. 무슬림 사원에서 일어난 방화 사건 이후에 교회에서도 방화가 일어났고, k대학에 다니는 외국인 유학생들과 연관 있던 사람들에게도 사건이 발생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서 어떤 종류의 사람이 가장 아래쪽에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을 보여준다. 유학생을 많이 받은 대학교와 근처에 있는 교회, 무슬림 사원, 다문화교류를 위한 비영리단체,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한 회사 이 모든 곳에서 약자는 존재했다. 단 한 사람이 이 모든 곳에서 가장 아래쪽에 있었고, 모든 조건이 그 사람을 약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조건은 방송국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이 사건 전체에서 강자의 위치에 있던 기자가 후에 방송국 내에서 약자로 전락하는 장면은 통쾌했지만 씁쓸하기도 했다.


작은 권력만 있어도 휘두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권력을 휘두른다는 자각 자체가 없을지라도 그러하다. 자신들은 신앙심도 있고 성실하게 살아간다고 믿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처지에 따라 달리 대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렇다. 끝까지 자신들의 잘못은 없고 억울한 피해자라고 생각할 것만 같아 더 화가 나기도 한다. 이 사건의 가장 큰 가해자는 실제 범인 다음으로 그들이 아닐까 싶다.


권윤정 교수의 심경이나 타오 어머니의 마지막 한 마디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었다. 두 사람은 비슷했다. 원칙을 중요시하고 남에게 신세지지 않으려고 하는 면들이 말이다. 원칙은 중요하다. 모든 일에서 원칙은 큰 틀을 유지시키고 책임에서 자유롭게 해준다. 원칙을 지켰을 때에는 두려움이 없다. 하지만 그 원칙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개개인의 모든 사정을 봐 줄 수는 없다하더라도 어느 정도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다면 원칙이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인간을 위한 원칙이 도리어 인간을 속박하기만 한다면 그 원칙은 이미 그 뜻을 잃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오지영 형사의 원칙은 굳건하고 부드러웠다. 그래서 그녀는 보상은 적을지언정 능력을 인정 받았고 사건을 해결했다. 권윤정 교수의 원칙은 사람을 보지 못했고 타오 어머니의 원칙은 자존심을 세우는 정도로 보였다.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받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가진 어두운 면이 주는 상처는 보다 더 끔찍하고 이기적이었다. 돈이나 신앙심으로 상대를 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사회적 구조가, 약자에게는 함부로 해도 용인되는 그 사회적 모순이 여실히 보였다. 그래도 우리는 이 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약자가 될 수 있다. 그러기에 약자를 배려하고 내가 가진 것들에 고마워하며, 세상은 더불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늘 생각하면 좋겠다. 부디 그런 세상이 빨리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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