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잉 홈
문지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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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혁 작가의 책은 <고잉 홈>이 처음이다. 이 책을 사고 얼마 되지 않아 독립서점인 '우연한 서점'에 들렀다가 나이책을 샀다. 내 나이에 꽂혀 있던 책을 뽑아 들고 계산을 한 후 포장을 열었다. 문지혁 작가의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였다. 피식 웃음이 났더랬다.


<고잉 홈>은 책표지가 인상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이기도 하고, 무언가 아련해지는 기분이 들어 쓸쓸해졌다. 여러 단편들을 읽는데, 십여 년 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노력 끝에 자격증을 땄는데 그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니. 예전에 수능 끝나고 대학만 가면 끝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대학 갔더니 앞이 막막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인생이 그런 것인지 끝은 없었다. 손에 쥔 자격증은 말 그대로 자격증일 뿐, 나는 또 다시 선택을 해야 했고, 경험을 쌓아야 했다. 정말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동기들이 막말로 "꼬마요정도 개업하는데 누구든 못해" 라고 할 정도였으니. 


그래서였을까. 안정을 찾아 미국으로 떠났으나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특히 <나이트호크스>는 읽는 데 다른 의미로 마음이 아팠다. 줄어드는 통장 잔고 앞에서 병원에 가는 것이 무서워 약국으로 가자는 아내의 말을 수용하는 '비겁'해지는 마음이 말이다. 그 뿐인가, <뜰 안의 볕>의 늘봄처럼 이 선택이 맞는지 확신도 없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마음도 공감이 갔다.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비주류인 늘봄처럼 나 역시 내 업종에서는 그런 상태였으니. 내가 선택한 길이 맞는지, 잘 하고 있는지 늘 물음표를 가진 채 그렇게 지내왔다. 어떤 때는 뿌듯했지만 나 자신에게 실망스러울 때도 많았다. 나는 <골드 브라스 세탁소>의 영처럼 반듯한 길에서조차 길을 잃는 사람이었고, <고잉 홈>의 현처럼 나에게 일어날 사실이었으면 하는 일을 상상했다. 


<뷰잉>은 다른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는데 떠밀리듯 하게 되는 일들이 가끔 상처로 남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뷰잉은 일종의 장례식장이다. '나'는 그냥 맹 선생님이 들렀다 가야 한다 해서 가게 되었는데, 막상 관을 보고 떨게 된다. 시체를 본 적 없어서. 나는 이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나는 시체를 만져본 적도 있는데라고 말했다. 남편에게 "시체 만져본 적 있어? 진짜 냉기가 장난 아냐, 저세상 차가움이야."라고 했더니 남편이 "냉동고에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라고 답했다.


난 온기가 사라진 시체라서 그렇게 차가운 줄 알았는데, 어쩌면 냉동고에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그러다 다시 노아의 이야기를 보면서 나 역시 떠밀리듯 학원에서 강사 아르바이트를 했던 때가 기억났다. 교회 집사님이 원장선생님이었는데, 난 하루만에 짤렸다. 애들에게 신앙심을 흔드는 이야기를 했으니까. 내가 안 믿는다고 애들한테 그렇게 이야기할 건 아니었는데. 원장 선생님은 맹 선생님, 아니 심 선생님 같은 분이 아니었다. 그런 분이었다면 나는 달라졌을까.


<핑크 팰리스 러브>는 버리지 못한 미련과 하지 못한 이별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잘 만나고 얼마나 잘 헤어지고 있을까. 일로 만나든 사랑으로 만나든 어떤 이유로든 만나고 헤어지며 그 인연을 끝내기까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을까. 흔들리는 삶에서 과거를 마주할 때 비겁함과 우유부단함은 얼마나 큰 후회를 남기게 될까.


<크리스마스 캐러셀>과 <우리들의 파이널 컷>은 잃어버림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이를 잃어버리고 아버지를 잃어버린다. 입양아인 에밀리와 지적장애인인 아버지는 다르지만 이별을 잘 마무리했기에 사랑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동반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자녀 살해는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에어 메이드 바이오그래피>는 장인어른을 만나러 가는 여정을 이야기한다. 미국으로 이민 온 이호철은 미국에서 산전수전 다 겪고, 입양한 딸 조이를 결혼시킨 후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건강이 좋지 않아지자 조이와 사위는 비록 코로나 시기이지만 아버지와 장인어른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에 오른다. 그 여정에서 사위는 이호철에 대해 생각한다. 그가 살아낸 세월은 험난했고, 그는 용감했다.   


그들에게 '홈'은 어떤 곳일까. 그곳은 미국에서 정착하여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것일 수도 있고, 한국일 수도 있다. 낯선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교회든 어디든 한인 공동체를 찾는다. 소속감이란 생존과 직결되니까.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떠난 곳에 적응하지 못하여 돌아온다 하여 결코 실패한 건 아니다. 그저 또 다른 경험을 했을 뿐이고, 삶이라는 여행에서 여행지 하나를 추가한 것이다. 그러니 불안과 이별 안에서 너무 종종거리지도 아파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나 역시 그러했으면 좋겠다. 

게시물 사건 이후 수는 교회에서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에 그가 나타나지 않으리나는 건 영도 알고 있었지만, 그가 준 하드커버 원서 <The Book of Daniel>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수의 흔적이 집에 남아 있는 건 불결하게 느껴졌다. 돌려주려는 건 아니었다. 혹시라도 나타나면 책을 세로로 세워 그의 머리를 내려찍을 작정이었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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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4-09-02 11: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단편집 좋았는데 리뷰를 쓸 수 있을지 ㅎㅎ

꼬마요정 2024-09-02 22:30   좋아요 1 | URL
자목련 님 리뷰 완전 기대돼요💕👍🏽 리뷰 좋을 것 같아요!!! 아니 이미 좋아요 ㅎㅎ

희선 2024-09-05 0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지혁 작가 책을 처음 보고, 다른 곳에서 문지혁 작가 책을 사게 돼서 신기했겠습니다 소설은 제목과 반대일 때가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소설 속에서는 안 좋다 해도 소설이 끝나고 나서는 좋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걸지도... 좋아질지 모르겠지만...


희선

꼬마요정 2024-09-07 23:36   좋아요 1 | URL
네!! 신기했어요. 문지혁 작가 책이 딱 나오니까 어멋 하게 되더라구요 ㅎㅎㅎ 소설 속에서는 안 좋아도 소설이 끝나고 나서는 좋아지면 좋겠어요. 이 책 재미있게 봤습니다. 우울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열심히 사는 인물들이 인상적이었어요. 불안하지만 답이 정해져 있으면 그것 또한 재미가 없겠지요. 삶은... 참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