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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쇄 ㅣ 위픽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3월
평점 :
<파과>의 조각이 어떻게 암살자 조각이 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이다. 10대의 그녀는 타고난 기민함과 순발력을 바탕으로 근육을 키우고 사람의 급소를 파악하며 순식간에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훈련을 받는다. 류는 때론 무자비하게 때론 무심하게 그녀를 대하며 아주 가끔 한 조각의 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저 인간을 죽이기 전에는 살아나올 수 없고, 마주한 상대를 죽이기 전에는 방 밖을 나올 수 없는' 그런 상황들을 살아가야 할 삶을 선택한 그녀는 그렇게 조각이 되었다. 누구보다 냉철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판단하고 움직이는 법을 배우며 말이다. 일단 마음 먹고 칼을 집었으면 무얼 찔러야 할까. 이는 비단 조각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살면서 누구나 악연을 만나고 억울한 일을 당하며 누군가에게 나쁜 기억이 될 수 있으니까. 그럴 때 조각처럼 감정없이 순식간에 그 일들의 급소를 쳐 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살벌하게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훈련을 하는데 나는 왜 이런 생각이 드는걸까. 아마 실제로 죽이거나 하는 장면이 안 나와서일지도 모른다. 작고 여린 그녀가 훈련을 하는데 어떻게 팔을 뻗고 어떻게 공간을 파악하는지를 보며 나도 모르게 그 훈련의 궤적을 따라갔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삶은 고독한 거라고.
잠깐 엿본 삶의 한 조각이 씁쓸한 건 그녀가 선택한 삶이 외롭고 잘못된 길이어서일까, 선택할 길이 없어보여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