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외계인이 지구를 평평하게 창조하였으니 - SF작가들의 유사과학 앤솔러지
문이소 외 지음 / 안온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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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과학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이 책 제목처럼 평평한 지구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먼저 방에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면 죽는다는 것이 떠올랐다. 어릴 때는 철썩같이 믿어서 방문 열고 선풍기를 틀고 자거나, 방문을 못 열면 선풍기를 끄고 잤다. 덥다고 선풍기를 켜도 엄마가 들어와서 끄고 가기도 했다. 이런 유사과학에 희생된 사람이 바로 나다!!


첫 번째 이야기는 <개벽>이다. 정보라 작가가 문을 열었는데, 유사과학이 과학보다 얼마나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준다. 윤 씨가 개벽(사전적 의미 : 세상이 어지럽게 뒤집힘) 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라고나 할까. 한 사람의 세상을 뒤집기 위해 외계인까지 등장할 일인가 싶다가도, 불안은 그렇게 허무맹랑한 것도 말이 되게 만드는 것이 아니던가. 절박하거나 외롭거나 일확천금을 노리고 공짜를 좋아하면 빠져들기 쉬운 게 도박, 다단계, 사이비 종교일테지. 우리는 이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윤 씨가 외계인을 창조주로 모시는 숯과 소금을 팔아먹는 다단계 단체에 어떻게 빠져들게 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정보라 작가답게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도 꼬집어주고, 인종차별적 발언도 짚어준다. 사실 속이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지, 속는 사람은 죄가 없다. 도박 같은 범죄가 아닌 이상, 다단계나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잃게 되는 것들은 바란 것에 비해 너무 과하다. 전세사기도, 다단계도, 사이비 종교도 모두 없는 사람들 상대로 참으로 나쁜 짓인 거다. 거기다 사이비 종교가 말하는 깨끗함과 더러움은 무엇일까. 그 말도 안 되는 이분법이 세상을 절망으로 가득차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외계인이 지구를 평평하게 만든 건 다 팔아먹기 위해서인게지.


두 번째 이야기는 <소같이 풀을 먹는 그리스도를 믿사오니>이다. 이산화 작가의 이야기로, 많이 웃었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를 믿지 않지만, 예수님이 백인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그것도 충격일텐데, 장박사가 주장하는 바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까 싶었다. 게다가 그 참신함이라니!! 나 같으면 '처녀수태'에서 '처녀'라는 말을 차라리 젊은 여자로 바꿨을텐데 말이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모켈레음벰베'는 마치 '네스 호의 괴물'을 떠오르게 한다. 어릴 때 진짜 네스 호에는 괴물이 산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으니까. 인간의 뇌는 신기하여 어떤 순간에는 생각한 대로 보이게 하는지도 모른다. '물에 뜬 통나무' 하나가 얼마나 많은 존재로 변주되는가. 그리고 강한 신념은 고립도 불사한다. 자신은 순교자라고 믿고 있을테지.


세 번째 이야기는 <유사 기를 불어넣어드립니다>로 최의택 작가의 이야기이다. 공무원 실수로 혜수가 아닌 해수가 되어버린 외계인 김해수. 외계인을 차별하는 큰 도시에서 작은 마을로 내려 온 해수는 우연히 살려 준 복순 씨 덕에 마을에서 적당히 잘 지내게 된다. 인간보다 체온이 높아서인지 팔다리를 주물러 주면 뭔가 기가 불어넣어진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그래서 마을 할머니들이 찾아와서 여기 저기 주물러 달라고 해서 해수가 사는 방은 늘 북적북적하다. 사실은 접촉과 정이 그리웠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리고 저 먼 안양에서 온 젊은 여자와 아이가 해수의 마음을 흔든다. 선천성 근이영양증을 앓아 걷지 못하는 박미서의 아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아이를 돌보는 박미서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돕는답시고 훈수 두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해수도, 박미서도, 아이도 모두 소수이자 이방인이었다. 외계인을 차별하는 세상이니 얼마나 더 많은 차별들이 있을까. 그런 차별들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따뜻하게 살 수 있을까, 해수를 응원하게 된다.


네 번째 이야기는 <비합리적 종말점>으로 이하진 작가의 이야기이다. 읽는 내내 곽재식 작가의 <토끼의 아리아>가 생각났다. 거기서도 조사관이 나오는데, 정말 슬픈 사연을 가진 술 마시는 조사관이라고나 할까. <비합리적 종말점>에서는 억 단위의 지구인들이 기생충에 감염되어 죽어나가는 세상에서 정부든 세계기구든 누구든 이 기생충이 어떤 경로로 감염이 되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 한 역학조사관은 감염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사탕을 주목하고 추적하는데...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맞이하는 결말이라고나 할까. 어쩌면 가장 일어날 법한 일일지도 모른다. 검증도 없고 윤리의식도 없는 과장 광고에 현혹되지 말자라는 교훈을 얻었으며, 절대로 대가 없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또 한 번 되새긴다.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 뇌 역시 노력하여 얻은 도파민에는 내성도 없지 않은가. 인터넷에서 광고하는 성관련 증진제, 먹기만 해도 살이 빠진다는 다이어트 약물, 머리 좋아지는 약 따위에 흔들리지 말자. 약물로 만든 근육은 심장을 멈추게 하고, 식욕억제제는 호르몬 불균형을 가져오고, 오남용한 비아**는 저승 구경을 쉽게 하게 한다. 있는 그대로의 스스로를 믿고 사랑하자. 그리고 노력을 비하하지 말고 노력이 남긴 땀방울을 사랑하자. 그 땀방울이 어제의 나보다 훨씬 멋진 나를 만들어줄테니.


다섯 번째 이야기는 <운명의 수레바위는 멈추지 않아>로 유사과학의 대표적 사례인 점성술이 등장하는 전혜진 작가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사실 유사과학 혹은 사이비 종교 이야기를 빙자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물론 그 사랑을 찾기까지 하율이 잃은 게 너무 크기는 하지만 말이다. 절박함은 때론 이성을 마비시키고, 살고자 하는 일이 이상하게 죽음을 부르는 결과가 되는 비극을 만들기도 한다. 이것은 개인의 탓만은 아니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덮쳐오면, 가진 것 없는 개인인 우리는 그저 견디고 버틸 뿐이니까. 다 지나갈 것을 믿으면서. 겨울이 지나가면 봄이 오듯이 그렇게 나쁜 일 뒤에 좋은 일이 올 것이라는 믿음은 동앗줄이 되어줄테니. 그렇게 사람은 살아가겠지. 


여섯 번째 이야기는 <엑소더스>로 손지상 작가의 이야기이다. 인간은 언제 행복한가란 질문을 되새김질했다. 인정을 받으면 행복할까, 무리에 속하면 행복할까,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면 행복할까, 남이 정한 잣대를 만족시키면 행복할까. 그렇다면 다르면 행복하지 않을까? 다른 것은 정복해야 할까, 계급은 늘 존재해서 밑에 있는 계급을 착취하는 것이 정당할까, 장애는 왜 하등하다 생각할까. 어머니와 상툼은 정말 이툼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이툼은 이제 진짜 행복해졌을까. 그렇다면 이들은 왜 전쟁과 피를 부르는 신을 섬기는 것일까. 도대체 어디로 탈출할 수 있다는 말일까. 결국은 눈 감고 귀 막은 채로 그렇게 남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하는 걸까. 인간의 환경 파괴로 거대해진 바다코끼리와 두려우면 갈비뼈가 튀어나오는 알비노 펭귄들이 참으로 불쌍하다.


일곱 번째 이야기는 <정기유의 화양연화>로 문이소 작가의 이야기이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노래도 있듯이, 불안에 먹히면 서서히 침몰하는 배처럼 끝없는 나락에 있는 것만 같아진다. 그래서 끝없이 안 좋은 생각을 하고, 모든 불행이 나를 덮치는 것만 같아서 종교든 과학이든 유사과학이든 붙드는 것이다. 더 이상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그럴 때 햇빛을 쬐면 좀 도움이 된다고 하던데, 이건 과학이다. 실제로 햇빛은 세로토닌의 분비를 촉진시킨다고 하니 말이다. 요거트를 먹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장이 건강하면 몸이 건강하고, 몸이 건강하면 뭐라도 해낼 의지가 생길테니까. 그러면 어느 순간 걷기라도 할테고 그러다보면 뛸 수 있을테지. 그렇게 불안과 우울에서 빠져나온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내 사주든 성격유형이든 운명이든 그게 아무리 좋고 커다랗다 하더라도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그리고 가능한 인간성은 버리지 말아야겠지, 극한에 몰리더라도 아무리 어려워도. 


여덟 번째 이야기는 <해상도의 문제>로 이주형 작가의 이야기이다. 대기업의 비윤리적이고 무책임한 행태를 보여주는 이야기라고나 할까. 운 좋게 당첨된 화성 여행권으로 화성을 갈 수 있게 된 수진과 동영. 그들은 팩스 텔레포트라는 방법으로 화성에 갈 것이었다. 팩스는 Formation After eXtinguishment의 약자로 소멸 후 형성이란 뜻을 갖고 있고, 이는 분해 후 재구성이란 말과 같다. 어릴 때 '울트라맨'이란 만화영화를 봤는데, 거기서 딱 이런 식으로 악당이 한 외계인(?)을 사라지게 했다, 나타나게 했다 하면서 협박했었다. 신기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이해가 쉬웠다. 분자 형태로 사람을 분해했다가 다시 재구성하면 그 사람은 분해 전 사람과 같은 사람일까. '테세우스의 배'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성격유형검사, 그것도 최근 수년간 사회생활로 만들어진 성격유형검사 결과를 토대로 인간의 성격이 그 유형에 따라 편향될 수 있을까. 너는 그런 유형이니 그렇게 행동할거라는 말에 휘둘리는 것은 아닐까. 에디슨 사의 행태는 충분히 있음직해서 무서웠고, 진짜 '나'는 무엇일까란 생각이 들었고, 내가 살아가는 동안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인 것 같아 신기했다. 그런데 MBTI랑 혈액형별 성격유형은 참 끈질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홉 번째 이야기는 홍준영 작가의 <그토록 단순한 시작으로부터>이다. 시작부터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언급하는데, 소수자이자 이방인이자 철저하게 배척당한 '괴물'과 '메이저 영감'과의 관계는 무엇일까. 동물농장에서 따온 이름으로 살아가는 메이저 영감은 과학자를 가장한 테러리스트이다. 대한민국에서, 돼지열병으로 돼지를 산 채로 묻어버리고 축산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자 한 축산인이 죽은 돼지들을 약물로 일으켜 청와대로 행진하게 했다. 그 후 그는 '메이저 영감'이 되었다. 인터폴이든 FBI든 수배를 당한 그가 갑자기 범국가적 범죄자 추적 비밀결사(N.W.O)에 자수했다.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만든 괴물을 없애기 위해 북극으로 갔다. 메이저 영감은 왜 N.W.O의 앨리스에게 자수했으며 또 어디로 갈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정치'를 하기로 했다는 그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뒷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이야기였다.


열 번째 이야기는 <유사과학소설작가연맹 탈회의 변>으로 홍지운 작가의 이야기이다. 못생긴 창조주, 인간을 버린 창조주 때문에 유사과학소설을 만들어 사람들을 현혹시켜야 했던 한 작가의 웃지 못할 사과문이며 비장한 연설문이다. 읽다보니 어느 순간 프리메이슨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우리 사회 곳곳에 뿌려진 음모론이 어쩌면 이런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닐까 잠시 고민해봤다.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남는 존재인 것 같기도 하다. 스스로를 죽이기도 하지만 악착같이 살아남으려고도 하는 것이다. 무의식을 덮고, 그럴싸한 의식의 흐름을 믿으면서 비논리도 논리적이라고 우기면서 말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비굴하게 행동하지만 또 누군가는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해 진실을 밝히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유사과학이 비록 사실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오랜 시간 인간이 의지해 온 것들도 있고 인간에게 희망을 준 것도 있으며 불안을 잠재워준 것도 있다. 그렇기에 여전히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이런 순진하고도 오래된 의지처를 악용해서 사람들을 나락으로 빠트리는 것들은 꼭 벼락 맞았으면 좋겠다. 이런 바람도 유사과학일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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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10-23 07: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선풍기 괴담은 도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 영향을 미친건지?! 저도 어릴 때 그거 믿었거든요. 진짜 오래간다 ㅋㅋㅋ 요즘 어린 친구들마저 들어봤을지도...

꼬마요정 2023-10-23 16:40   좋아요 1 | URL
선풍기가 나왔을 때부터 믿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전기요금 많이 나온다고 밀폐된 방에서는 못 틀게 한 걸수도 있어요. ㅋㅋㅋㅋ 잘 때 밤새 틀면 전기요금 많이 나오잖아요.(옛날 생각에) 이거슨 완전 도시 괴담 수준이라니까요. 아니, 선풍기 틀고 자면 왜 질식해서 죽냔 말이에요.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해요!!!!! 아, 너무 흥분했어요. 흠흠

다락방 2023-10-26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꼬마요정 님, 저는 들어본 적도 없는 책들을 정말 많이 읽으시네요! 이 책도 그렇고 호러 픽션 나이트도 그렇고 저는 꼬마요정 님 덕에 이 책들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꼬마요정 2023-10-26 22:50   좋아요 0 | URL
정보라 작가님 덕분에 이 책은 흥미가 생겼었는데, 다 재미있게 읽었어요. 요즘 제가 굉장히 관대하고 모든 것에 감탄하고 있어서 지금 읽는 족족 별 다섯이거든요. 일단 지금 제 상태로는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생각들이 너무 좋았어요. 호러, sf 쪽 한국 작가들한테 요즘 푹 빠져 있어서 그런가봐요. 장르 소설은 읽는 사람만 읽잖아요^^

다락방 님께도 좋은 독서가 되면 좋겠는데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