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홍련 - 철산사건일 한국추리문학선 14
이수아 지음 / 책과나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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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중에 <조선별순검>, <다모>, <아랑사또전>이 있다. 셋 다 조선시대 배경에 억울한 죽음이 있고, 민초들의 사연이 있고, 애절한 사랑이 있다. 어떤 이야기에는 왕이 나오고 어떤 이야기에는 옥황상제가 나온다. 어쩌면 이 <탐정 홍련>은 <아랑사또전>과 가장 많이 닮아있겠으나, 사건을 해결하는 방법이나 절차를 보면 <조선별순검>이나 <다모>와 더 가깝다.


장화, 홍련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계모의 몹쓸짓에 희생당한 자매의 이야기. 그 이야기에서 아비는 방관자이자 방조자이다. 애초에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가문인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가문에 종속되어 가문을 위해 희생되었다. 어떤 일이든 가문에 먹칠을 하게 된다면 그저 죄인이 되고, 암암리에 처단되는데, 그 먹칠을 한 가해자는 가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숨겨지고 애꿎은 피해자만 오명을 뒤집어 쓴 채 당연히 받아야 할 벌을 받는 것이 되어버린다. 거기다 돈이 엮이면 일은 더 더러워진다. 어찌보면 그 가문의 체면이라는 것도 모두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인 것이니, 그들이 그토록 외치는 충(忠)이나 효(孝), 인(仁), 의(義) 따위는 모두 무엇을 위함일까.


조선시대 사대부들 중 일부는 그 도리를 지키기도 했다. 사대부 남자들이 아닌 여자들이 지키기도 하고, 양반이 아닌 평민이나 노비들이 지키기도 했다. 그들은 배우지 않아도 자식을 위하고 부모를 위하고 배우자를 위해 행동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그나마 옳은 일을 하고자 하는 이들이 억울한 일을 풀어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본래의 신분을 숨기고 사는 추리 마님은 처음에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황 대감의 첩이 되었고, 자신의 경험을 이용해 많은 사건들을 해결했다. 그리고 자신의 언니인 장화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마침내 철산으로 향하게 된다. 지금 철산은 장화 홍련의 귀신이 나타나 부임하는 부사들을 죽인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4년 째 부임하는 부사마다 죽어나가니 그 곳은 행정도 엉망이고 경제도 엉망이 되었다. 어째서 귀신이 사람을 죽이는가. 


제목에서부터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장화 홍련의 이야기를 환기시킨다. 그리고 비슷한 이야기인 아랑 전설 또한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다른 것이 있다면, 살아있는 자 즉 홍련의 존재이다. 죽지 않은 홍련은 의녀 생활로 인해 의학 지식을 쌓았고, <무원록> 등을 읽고 공부하여 검시까지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사건을 해결할 능력이 있었으나, 여자인 것이 걸림돌일까.


정동호는 철산의 부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부사가 죽어나는 것을 알지만 가문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철산으로 오긴 했는데, 진짜로 귀신을 보게 될 줄이야. 여기서 정말 <아랑사또전>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랑사또전>이 천녀의 욕망이 불러 온 재앙이라면, 이 이야기는 사람의 탐욕이 불러 온 재앙이라는 것이 다르다면 다를까.


죽어서야 비로소 말을 할 수 있게 된 억울한 귀신들이 있는가 하면, 산 자를 모함하는 귀신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은 어떤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부제가 철산 사건 일지이기 때문에 장화의 사건은 완전히 해결되지는 못한다. 하지만 억울하게 죽은 여인들과 못된 장난질로 억울하게 누명 쓴 여인의 사건들을 해결하면서 사건의 배후와 장화의 죽음에 한 걸음씩 다가갈 수 있었다. 홍련이 언니의 죽음에 얽힌 단서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함께 이 곳 철산에서 일어난 가슴 아프고 슬픈 사건들을 알게 되었고, 마주하였고, 정당하게 법적으로 해결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다음 편으로 한양 사건 일지가 꼭 나왔으면 좋겠다. 계속해서 우리 추리 마님이 정동호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러다보면 <신주무원록>도 나올 것이고, 한층 더 과학적인 수사가 진행되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가득할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한(恨)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나쁜 놈들이 벌도 받고 말이다. 그것이 현실의 법이 아닌 천벌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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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3-27 0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에 홍련이 있어서 장화 홍련이 떠오르겠습니다 의녀로 공부를 해서 검시도 할 수 있다니 멋지군요 이때 여성이 당한 일은 제대로 수사 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여성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도... 양반이 아닌 사람은 다...


희선

꼬마요정 2023-03-27 18:41   좋아요 1 | URL
오히려 양반이 아닌 사람들에게 관심을 더 줘야 하는 게 나랏님이고,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 해야할 일인데 말입니다. 세상이 참 거꾸로입니다. 그래도 소수일지라도 약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억울한 일을 안 당하도록 해 주는 위정자들도 있다는 게 다행이랄까요. 사실, 교육이 참으로 중요한 게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할 수도 있어야 하니까요. 여기서 홍련은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