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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섬들의 지도 - 간 적 없고, 앞으로도 가지 않을 55개의 섬들
유디트 샬란스키 지음, 권상희 옮김 / 눌와 / 2022년 7월
평점 :
간 적 없고 앞으로도 가지 않을 55개의 섬들이란 설명이 붙은 책. 지도책을 보며 전체를 상상하는 작가는 ‘동경은 원하던 것을 이루었을 때 얻는 만족감보다 훨씬 더 크다.’ 라고 말한다. 그렇다. 이 지도책에 나오는 섬들은 수많은 사연을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섬에 얽힌 사연을 볼 때면, 내 상상은 너무나 순진했음을 깨닫게 된다.
이스터 섬은 경쟁으로 폐허가 되었고, 매쿼리 섬에 홀린 견습 사관 헨리 엘드는 결국 펭귄 떼의 희생양이 된 것 같고, 생폴 섬에서 물라토 한 명은 결국 먹혀버린 것 같다. 티코피아 섬에서는 일정 인구 수 이상이 되면 성인들은 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나가 죽음을 맞이하거나 태어난 아이들을 살해한다. 섬은 결코 낙원이 아니었다. 안노본이란 섬은 방문한 내역은 있으나 그 곳에서 있었던 일을 공개하기는 어렵다. 도대체 주민들과 방문자들 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마 유쾌한 일은 아닌 듯 하다.
하지만 여전히 이 섬들은 매력적이다. 있지만 없고, 어디 속해 있는 것 같지만 그 누구의 것이 아니기도 하다. 남은 건 ‘흔적을 남기려는 욕망을 지닌 인간’의 시도 뿐. 그리하여 아마 고프 섬처럼 재앙이 가득한 곳을 만들게 된다. 인간을 따라 밀항한 쥐는 이 섬의 동물들을 다 잡아 먹었다. 헬리콥터는 독이 든 미끼를 뿌려댄다. ‘세계에서 가장 교란이 덜 된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p.62)
인간이 사는 세상의 대부분이 오로지 집이라는 섬으로 바뀐 비자발적 고립의 시기에 내가 또다시 《머나먼 섬들의 지도》에 몰두하고 싶게된 것도 당연하다. 고립을 뜻하는 단어 ‘Isolation‘은 라틴어로 섬을 뜻하는 ‘Isola‘에서 유래하였고 뜻도 ‘섬이 되다‘이다. 나는 다섯 개의 섬을더 찾아냈다. 이 섬들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있지만 야생과 경작, 단절과 연결, 이상과 현실의 사이에 있는 섬들의 혼종성의 핵심으로 인도한다. - P9
실상은 이렇다. 오늘날 그 여정이 얼마나 멀든 상관없이 인간은 항상자기 종족의 흔적과 마주하게 마련이다. 주인 없는 미지의 땅은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새로운 시작 또는 대안적인 사회 형태라는 섬과 관련한 악명 높고 유명한 꿈에 필수적이었는데, 이로 인해 영원히 사라지고말았다. - P11
경험적 연구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섬은 축복받은 곳이자 자연의 실험장이다. 다시 말해, 섬에서만큼은 연구 대상을 애써 제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관찰할 수 있다. 물론 외부에서 침입한 동물에 의해섬에 서식하는 동식물이 멸종되거나 전염병으로 주민들이 죽어나가기전까지의 이야기다. - P27
가장자리 따위는 없는 둥근 지구의 어디에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에덴동산은 없다. 멀리까지 탐험해 상상 속 괴물들을 지도 밖으로 쫓아냈지만, 대신 스스로 괴물로 변해버린 인간들이 있을 뿐이다. - P29
섬을 발견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섬 덕분에 유명해진다. 섬을발견한 일이 마치 창조와 관련된 업적인 것처럼, 찾아낸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에 있어서, 지형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마치 이 이름 덕분에 비로소 어떤 장소가 존재하기라 - P29
도 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세례식과 마찬가지로 발견자는 발견물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섬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섬을 단지 먼 곳에서 보기만 했거나, 그 섬이 오래전부터 원주민이 살고 있는 이름 있는 땅이라 해도 말이다. - P30
섬에 깃발을 꽂는 일이 끝나면, 지도를 제작할 차례다.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장소가 태어난다. 이 바다 너머의 땅은 점령되고 소유당하며, 정복 행위가 지도 위에서 다시 반복된다. 어떤 섬이든 먼저 정확한 위치가 측정되고 표기된 다음에야 비로소 현실 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섬이된다. 모든 지도는 식민 지배라는 폭력의 결과이자 과정이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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