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십여년 전, 밤 8시인가 그 즈음에 경찰차들이 집 근처에 있고, 무서운 아저씨들 여러 명이 우리집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거다. 나랑 동생들은 무슨 일이지 싶어 밖을 기웃거렸는데, 그 아저씨들은 몇은 수첩을 들고 있고, 대부분 점퍼를 입고 있고 덩치가 컸다. 진짜 조폭일까 싶을만큼 위압적이었다.


알고보니 옆집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대문까지 피를 흘린 채 기어나오셨다던가 그래서 형사들이 출동한 거였다. 사연은 정말 끔찍했다. 바람 난 할아버지 때문에(사실 그 이유만은 아니겠지) 할머니가 자살 시도를 했는데, 하필 그 때 대여섯 살 쯤 되는 손녀가 유치원 갔다가 대문이 잠겨 있어 벨을 누른 거다. 할머니는 피를 흘리며 문을 열어주러 나왔다고 했다. 너무 끔찍한 그 사건에 동네 사람들은 모두 수군거렸고, 목격자인 손녀딸을 걱정했다.


하지만 모두 걱정 뿐이었을까. 어쩌면 다들 먹잇감을 찾듯 이야기를 부풀리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 두 번째 이야기인 방문교사 실종사건 처럼 말이다. 실종된 신미영 씨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도 않는 사람이며 본인이 피해를 입는 것엔 단호한 현대의 개인주의자였다. 그런 그녀가 실종되자 단순히 남자들과 이야기 하는 장면은 남자를 꼬시는 모습으로, 남자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부풀려진다. 인간의 숨겨진 저열한 호기심은 억울한 피해자를 만든다. 신미영 씨는 자신이 살아왔던 시간들이 무색하게 순식간에 꽃뱀 같은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다. 물론 이 사건은 그런 이야기는 아니지만, 작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보통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악의를 보여준다. 


봉명아파트의 관리과장으로 온 정차웅은 전직 형사다. 그가 형사를 그만두고 아파트 관리과장으로 온 것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상처 받았다. 물론 모든 사건이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악의가 가득한 사건도 있었고, 나쁜 사람이지만 본인에게는 좋은 사람이라 가슴 아픈 사건도 있었다. 그리고 일자리를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는 사건도 있었다. 아파트답게 정말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었고, 부녀회장의 19금 농담마저 쓸 데가 있었다. 


얼마 전에 읽은 <대도시의 사랑법>이 생각났다. 대도시 안에 있으면 편하고 이 공동체 안에 속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서로를 알지 못하고 조금만 달라도 배척하는 면이 있는 곳에서 남과 다른 사랑을 하는 사람들 말이다. 나와 남은 다르지만 그 다름을 이야깃거리로 만드는 건 좀 슬프다. 그런 면을 우리 모두가 갖고 있다는 점 역시 가슴 아프기도 하고.


그나저나, 정차웅 씨 코난이세요? 아니면 김전일? 아니 온 지가 얼마나 됐다고 사건이 벌써 몇 개인가요?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2-04-28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4-28 0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2-04-28 1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리뷰만 읽어도 화가 나네요.
피해자를 더 힘들게 만드는 것들이 제발 좀 단절되면 좋겠습니다.
꽂미남 정차웅씨의 활약이 기대됩니다^^

꼬마요정 2022-04-29 22:27   좋아요 1 | URL
정말 피해자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다 없어지면 좋겠어요ㅠㅠ
꽃미남 정차웅씨 마음씨가 고와서 꽃미남 해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