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11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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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옛날 일인데 내가 재수하던 무렵 알게 된 어떤 이는 내가 못하는 과학을 잘 해서 참 부러워했다. 나보다 잘 하는 게 있으면 당연히 멋져 보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 역시 그랬는데, 어느 날 무슨 문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쁘다'라는 말을 '예뻐다'라고 쓰는거다. 당연히 오타일거라 믿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는 '예뻐다'가 맞다고 박박 우겼고, 내 표정은 어그러졌다. 멋져 보이던 모습은 그 날로 폭우에 얼룩이 씻겨 내려가듯 엄청난 속도로 사라졌다. 


마까르 제부쉬낀과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바렌까)는 편지를 주고 받는 사이다. 이 소설은 그들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낯선 여인의 편지>나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처럼 말이다. 바렌까를 사랑하는 마까르는 그의 재산을 털어 그녀를 위한 물건들과 돈을 보내고, 마까르를 아끼는 바렌까는 그를 걱정하며 책과 약간의 돈을 보내고, 각자의 근황을 알려주는 편지를 주고 받으며 그렇게 우정인듯 애정인듯 감정을 쌓아나간다. 처음엔 부성애라고 했지만, 편지를 읽어나가다보면 서로 애틋한 감정을 품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둘 다 가난하고, 마까르는 나이가 많다. 러시아 소설을 읽다 보면 이런 경우(나이 차이)가 왕왕 있는데, <첫사랑>의 지나이다도 <전쟁과 평화>의 나타샤도 <안나 까레니나>의 키티도 <우리 시대의 영웅>에서 페초린을 사랑하는 여인들도 다 그러하다. 여기서 페초린이야 매력적이라고 해도, 피에르나 레빈이 멋진 건 아니니까 저 시대, 저 나라 사람들의 사정이 있는건가 싶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영국이든 러시아든 불과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가 스스로 경제활동을 하면서 삶을 꾸려가긴 어려웠다. 특히나 계급 사회에서 상류층 물이 조금이라도 들어 있으면 조신해야 하니 가정교사 일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러니 상속자에게 기대거나 남편에게 기댈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대를 이어야 하니 어린 여자를 선호했겠지. 적당히 교육 받고, 귀족적인 자존심은 있지만 적당히 순종적인.


하지만 우리 바렌까는 똑똑한 여자다. 첫사랑이 책을 좋아하지만 아프고 가난하여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뽀끄로프스키였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으나, 가난이 그를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누구나 선하게 태어나는지도 모른다. 환경이 그 사람을 선하게도 악하게도 만드는 것일지도. 아니다, 모두 가난하다고 악하게 되는 건 아니니까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지는 않다. 다만, 환경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하기에 누군가를 최악으로 몰아가는 환경을 보다 나아지도록 만드는 건 중요한 일인 듯 하다.


나는 둘의 사랑 이야기에 슬퍼하고 싶었는데,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사회에 분노하게 된다. 고골의 <외투>를 읽으며 분노하는 마까르를 이해하게 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써 놓은 듯 하여 부끄럽고 화가 나는 거다. 심지어 자신이 사랑하는 바렌까가 권했으니 그녀가 자신을 비웃는 건 아닐까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까기보다 마까르는 좀 더 나은 사람이다. 문학 작품도 알고, 자신을 객관화 해서 볼 줄도 아니까. 하지만 궁지에 몰렸다고 술을 마시는 건 좋지 않았다. 가난은 사람을 자꾸만 더 나쁜 선택지를 택하게 한다. 


바렌까가 이상한 소문에 휩싸인 채 장교들에게 희롱을 당했다는 장면에서는 평화를 사랑하는 나도 주먹질을 하고 싶어진다. 그 더러운 입을 다물라고! 바렌까가 한 남자에게 마음을 준다고 다른 모든 남자에게 몸과 마음을 허락해야 하는 것도, 놀림감이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마까르는 결혼한 사람도 아니고 범죄자도 아니라고. 가끔 이런 이야기들은 사람을 빡치게 한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한 쪽을 꼭 가볍고 함부로 해도 되는 그런 사람으로 몰고 가는 것 같아서 말이다. 


바렌까와 마까르의 사랑 이야기가 분명한데, 왜 난 둘의 사랑보다는 자꾸 다른 생각이 드는 지 모르겠다. 둘 다 가난하지만, 어린 시절은 풍족하게 보냈고 첫사랑도 배운 사람이라 바렌까는 문학을 사랑하고 문학에 대한 이해도 높다. 하지만 마까르는 이상한 소설을 좋아하고 고골을 싫어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불문율인지, 푸시킨은 싫어하지 않는다. 마까르는 역참지기를 좋아하던데 나는 눈보라가 더 좋다. 아니 아니 대화를 하지 말라고. 바렌까와 마까르의 사랑인데 왜 내가 뭘 좋아하는지가 나오냐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문학적 빈곤에 관한 것이었는데.


읽으면서 결말이 눈에 보였다. 망할 그 곳의 날씨는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니까. 그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그 곳이니까 둘 중 하나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 마까르의 편지는 가슴이 아팠다. 그 편지는 바렌까에게 전해지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문체가 좋아져도 그 편지는 결코 바렌까의 눈에 닿지 않겠지. 그게 너무 슬펐다. '예뻐다'를 주장하던 사람이 이제는 '예쁘다'는 단어를 넘어서 예쁘다는 표현을 수만가지 단어로 나타낸다 한들 나는 알지 못할 것처럼.


현대인의 심리치료법이라는 짤을 봤다. 정신과 의사가 불안에 떠는 환자에게 "푸른 초원에 누워 있다고 생각해봐요." 라고 하면 환자는 "여전히 불안해요."라고 대답한다. 다음 장면은 의사가 "할부와 대출금을 다 갚았다고 생각해봐요." 라고 하면 환자는 "속이 후련해요." 라고 대답한다. 나 역시 우와, 진짜 좋겠다!!를 외쳤다. 그 빚과 삶의 무게에 짓눌려 절망적인 상태가 가난이라면, 그 짓누르던 무게가 사라졌을 때 얼마나 행복할까.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보다. 고르쉬꼬프는 그 무게에서 벗어나게 되었는데 어째서 죽었을까. 


바렌까와 마까르가 아무리 가난해도 서로를 위해 가진 모든 것을 탈탈 털어주는 마음, 마까르가 길을 지나다 만난 동냥하는 아이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마음, 고르쉬꼬프가 애처롭게 도움을 요청하자 가진 돈을 전부 주었던 마음... 장군이 마까르에게 베푼 1백 루블보다 더 값진 것이 아닐까. 가난해서 가난한 이들의 마음을 알고 도와주고 싶어하는 마음, 하지만 도와줄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 그것이 어쩌면 도스토예프스키가, 톨스토이가, 푸시킨이, 러시아 작가들이 사랑하는 러시아 민중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규선 님의 <야래향>을 들으며 책을 읽는 게 아니었다...

바렌까, 문학이란 정말 좋은 것이더군요. 정말 굉장해요. 저는 그것을 그저께 그들 모임에 참여하면서 깨달았습니다. 문학이란 정말 심오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만들기도 하고 교훈을 주기도 하고, 그리고 또 저기... 아무튼 문학 속에는 그런 다양한 이야기가 씌어 있어요. 정말 훌륭합니다! 문학은 그림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선 그림 같고 또 거울 같기도 합니다! 욕망에 대한 표현, 신랄한 비평, 가르침을 주는 교훈들, 방대한 자료가 그 안에 들어 있어요. - P91

가난한 사람은 까다로워요. 가난한 사람은 보통 사람과 다른 눈으로 세상을 쳐다보고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곁눈질로 쳐다봅니다. 주변을 항상 잔뜩 주눅이 든 눈으로 살피면서 주위 사람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신경을 씁니다. 누가 자기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혹은 다른 사람들이 <뭐 저렇게 꼴사나운 놈이 다 있어!>, <대체 저렇게 가난한 사람은 무슨 느낌을 갖고 살까?>, 아니면 <이쪽에서 보면 어떤 꼴을 하고 있고 저쪽에서 보면 또 어떤 꼴일까?> 등등의 말들을 할까 봐 남의 말에 일일이 신경을 씁니다. 바렌까, 모두 알고 있듯이 가난한 사람들은 발닦개만도 못한 인생이고 아무도 그들을 존중해 주지 않습니다. 누가 책에 뭐라고 쓰든 엉터리 3류 작가 족속들이 뭐라고 끼적이든 가난한 사람의 인생은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 P130

왜 이전하고 같을 수밖에 없냐고요? 3류 작가들의 말대로라면, 가난한 사람이 가진 것은 모두 옷을 뒤집어 보이듯 세상에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죠. 그들 말대로라면 가난한 사람에게는 성스러운 것도 있어서는 안 되고 자존심이니 뭐니 하는 것도 절대로,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 P131

정말 나쁜 일은 앞서 말한 부자의 옆에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즉 그의 귀에 대고 <그만 해, 그런 생각은 이제 그만 하라고. 언제까지 너 하나만 생각할 거야. 너 하나만을 위해 사는 것은 이제 그만 해. 너는 가난한 구두장이가 아니잖아. 그런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너는 애들도 건강하고 마누라도 밥 달라고 보채지 않잖아. 주위를 한번 둘러봐. 그 잘난 신발 말고도 걱정할 게 얼마나 많은지 알아? 좀 더 고결한 무엇을 찾아보라고!>라고 질책할 수 있는 사람이 부자의 옆에는 없단 말입니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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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4-28 1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분명히 가난은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좋게도, 나쁘게도요.
가난하면 너그럽기 힘들다고 하지요. 늘 가난한 건 싫지만 가난을 경험해 보는 건 나쁘지 않다고 봐요. 사물을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거든요. 어떤 면에선 성숙해지죠.

꼬마요정 2022-04-29 22:29   좋아요 1 | URL
그렇죠. 가난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지만, 원하지 않는 선택이나 더 나쁜 선택을 하게 하는 게 안타까운 듯 해요. 하지만 그 일을 겪으면서 성숙해지기도 하니, 세상은 참 신기합니다. 무조건 좋은 것도, 무조건 나쁜 것도 없으니까요.

새파랑 2022-05-21 0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뻐다‘가 ‘예뻐 (전부)다‘ 아니었을까요? ^^ 저도 <가난한 사람들> 완전 좋아하는데 요정님 리뷰 보니 색다르게 느껴집니다~!!

꼬마요정 2022-05-21 11:01   좋아요 1 | URL
아니에요!! 아니에요!! 20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떠올라요 그 때의 당혹감이 ㅋㅋㅋ 그런데 새파랑님 문학적 상상력 정말 대단하십니다!! <가난한 사람들> 좋아하시는 분들 많네요. 너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