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반 무 많이 서해문집 청소년문학 16
김소연 지음 / 서해문집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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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인사말도 밥 먹었어? 밥 한끼 하자~ 등등 밥과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난 먹는 걸 싫어했다. 어릴 때부터 작다고 하도 엄마가 밥을 강요해서다. 5살 때인가 유치원 대신에 미술학원을 다녔는데, 그 때 도시락을 싸서 들고 다녔더랬다. 엄마는 은색 타원형 도시락에 밥을 가득 담아서 나에게 들려 보내며, 학원 선생님께 꼭 '꼬요'가 밥을 다 먹게 해달라 부탁했다. 덕분에 나는 다른 애들이 다 그림 그리는 동안 교실 한구석에서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밥을 먹어야 했다. 점심 시간 동안 밥을 다 못 먹었으니 수업시간까지 밥을 먹어야 한 것이다. 그러고 집에 오면 또 저녁을 먹어야 했다. 밥을 먹고 잠들면 다음 날 아침 또 밥을 먹고, 도시락을 싸서 점심을 먹고... 밥을 적게라도 주면 모르겠으나 늘 밥그릇 가득 밥을 주고 먹으라고 하니 난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거기다 안 먹는다고 반항하면 집에서 쫓겨났다. 민망하게도 옷도 안 입히고 쫓아낼 때도 있었다.(난 여자앤데?) 그래서 맨날 체하고, 속이 메슥거리고, 급기야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나이를 보고 갸우뚱 하며 '위장장애'입니다. 라고 했다. 아니, 6살 짜리가 왜 위장장애죠?


지금도 여전히 스트레스가 많고 우울하면 잘 먹지 못한다. 가슴이 턱 막혀서 잘 넘어가지 않는거다. 그래서 키도 작고 몸무게도 적게 나간다. 하... 그래서 주짓수 할 때 너무나 힘이 든다. 체구도 작은데 허리는 플랫이다. 하하하 


하지만 남편을 만나고 먹는 걸 좋아하고 즐기는 남편의 취미 덕에 나도 먹는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 먹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이 책을 만났다.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이 없어서 먹지 못하던 시절 이야기부터 경제가 아무리 발전해도 여전히 먹고 사는 것이 걱정인 이야기까지 우리 사는 이야기들이 가슴 아프게 펼쳐진다.


6.25 전쟁, 그러니까 1950년 북한이 일으킨 그 전쟁부터 10년 마다 이야기 하나씩 해서 1990년대 말 IMF까지 총 5개의 먹거리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있는데, 가장 먼저 나오는 먹거리가 '고구마'이다. 전쟁이 발발하자 대통령이 있다는 대구로 피난가던 영진과 어머니는 지나는 길에 운 좋게 고구마를 캐게 된다. 먹을 것이 생겨 좋았지만 일부 빼앗기기도 하고, 일부는 금반지랑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금반지를 도로 강탈당할까 밤을 틈타 도망을 치고 그 금반지로 트럭을 얻어 타고 대구에 도착한다. 하지만 대통령도, 오촌 아저씨도 그 곳에는 없다. 한강 다리 끊고 도망가신 그 분은 이미 부산에 있을 테니까. 영진은 그것도 모르고 오촌 아저씨네에서 밥을 먹을 거라 생각하고 남은 고구마를 자신보다 더 안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와 할머니에게 건넨다. 명령은 윗대가리들이 내리고 피해는 선량한 사람들이 입지. 영진과 갈 곳 없으면 우리 집으로 오라던 여자아이는 부디 살아남아 행복해졌기를 바란다.


두 번째 이야기는 유엔탕, 그러니까 부대찌개의 시조새 뻘 되는 음식이다. 순자 고모는 일본 여학교를 다녔을만큼 엘리트였지만 해방이 되고 전쟁이 난 나라에서 부모도 없이 아끼는 조카와 함께 살아가기는 너무 어려웠다. 자신이 엘리트였던 시절 이름인 준코를 고집하는 것도, 해방된 세상에서 여전히 득세하는 무리들 때문이겠지. 휴전이 되고 부모님도 못 찾고 부산에서 다시 의정부로 온 순자 고모는 여전히 유학 시절을 못 잊고 그 때 동경했던 레스토랑을 꿈꿨고, 남희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 먹고 살아야겠다 생각했다. 마침 동경에서 알던 김인호를 만난 순자 고모는 미군 물품을 팔아 남희를 학교에도 보내고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이 한여름밤의 꿈처럼 바스라졌다. 그래도 부대찌개는 남았으니, 흔한 표현이라 해도 눈물 젖은 음식이 아니겠는가.


세 번째 이야기는 '라면'이다. 70년대 어린 여자애들이 하는 일은 주로 미싱 돌리는 것이었다. 꽉 막힌 공간에서 하루 종일 천 먼지, 실 먼지에 폐가 막히고 미싱 바늘에 손톱이 뚫리면서 하루에 열 시간을 넘게 일하는 사람들... 사장은 욕심 부려 주문을 다 받아놓고 직원들이 그 일을 다 감당하도록 했다. 야근을 안 하면 싫어하고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하던 그들... 그 시절 대부분 서민들이 그러했든 막내인 아들 성재는 공부하고 나머지 누이들은 모두 일을 하러 가야했다. 성옥은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이 성자 언니와 다른 공장에서 일했다. 월급을 받으면 성자는 라면을 사서 갔다. 국수 면을 넣어 라면 양을 많이 만들어 도란도란 다같이 라면을 먹었다. 아버지는 지게꾼, 어머니는 떡장수, 딸들은 옷 공장에서 일을 하며 청계천 판자촌에서 사는 '평범한 가족'이다. 하지만 그 '평범한 일상'은 판자촌이 뜯겨져 나가고 그들에게 경기도 광주에 집을 주겠다는 정부의 말에 산산이 부서졌다. 아버지가 찬양하던 박통이 준다는 집은 천막에 불과했다. 비가 오면 세간살이가 다 떠내려가는 그런 천막. 게다가 취득세도 내야했고, 서울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각서도 써야 했다. 공장이 있다했지만 그 곳엔 들판 뿐이었다. 화가 난 이주민들이 시위하자 폭력 시위로 매도해 그들을 폭도로 몰아갔다. 전라도 광주의 모습이 다른 게 아니었다. 결국 성자네 가족은 다시 용산 판자촌으로 이사했다. 그들의 삶이 좀 더 나아졌을까. 


네 번째 이야기는 '떡볶이'다. 와아!!! 나는 떡볶이가 좋다. 그런데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는 가슴이 아프다. 하긴 이 다섯 가지 이야기 중 가슴 안 아픈 이야기가 없긴 하다. 나도 어릴 때 자주 가던 떡볶이 집이 있었다. 포장마차 가게였는데 팥빙수도 맛있고, 떡볶이도 맛있었다. 성희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네를 자주 이용했다. 내가 이 글을 읽을 때 약간 내 어릴 때 모습 같아서 옛 생각에 잠겼더랬다. 맛있는 떡볶이 이야기지만, 얽힌 사연은 가슴 아팠다. 변명 할라치면 그 시절 그럴 수 밖에 없었겠지 라고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동호 삼촌은 그렇다쳐도, 민주네 아주머니에게 성희 엄마는 너무했다. 교회 근처라서? 보여지는 그 체면이라는 게 뭐가 그렇게 내세울만한 게 있는건지. 일 하느라 낮에 공부를 하지 못한 학생들을 가르치고 민주주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걸 빨갱이 취급하고, 포장마차에서 신세 한탄을 들어주던 민주네 아주머니를 못배운 상스러운 사람 취급하고... 과연 성희는 어른이 되면 그 시절을 돌아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어른의 세상은 다 위선적이고 겉치레 뿐이라는 생각일까. 오히려 경찰서에서 만난 민주네 아줌마와 기호의 모습이 더 아름다웠다.


마지막 이야기는 드디어 '치킨'이다. 닭!! 반반 무 많이를 외칠 수 있는 그 음식. 90년대 경제 호황 속에서 누군가는 은행을 다니며 딸을 영국으로 유학 보낼만큼 부를 가졌고, 누군가는 겨우 형제에게서 보증금 없이 월세로 슈퍼였던 가게를 닭집으로 바꿔 겨우 빚을 갚으며 살아간다. 각각의 집의 아들들은 한 명은 치킨을 외치며 컴퓨터도 사고, 한 명은 돈을 벌어야 해서 대학을 포기한다. 하지만 IMF는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풍족하게 살던 진우는 이제 현식을 이해하게 되었다. 


다 읽고 나면 먹먹함이 덮쳐온다. 내가 겪은 시대의 이야기는 그 시대를 돌아보게 했고, 내가 겪지 못한 시대의 이야기는 그 시절을 살았던 분들의 괴로움과 힘겨움을 돌아보게 했다. 그래, 다들 열심히 살았다. 살아남기 위해서 살았고,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살았고, 맛있는 걸 먹기 위해서라도 살았다. 힘겨워도 살아남은 분들께는 존경의 마음을 표하고, 그 힘겨움의 원인이 된 나쁜 놈들에겐 욕을 전하고 싶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일이야. 왜정 때 목숨을 부지하겠다고 조상이 내린 이름을 성까지 왜놈 걸로 바꾸고, 그걸 또 무슨 자랑이라고 해방이 되고 10년이 넘었는데도 고집을 부리면서 입에 올리다니. 순자 고모뿐이었겠니. 미군정이 들어서고 나서 다들 미국말로 된 이름 하나씩 있어야 출세한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는데 뭘. 이놈의 나라는 어찌 된 게 배운 놈이면 배운 놈일수록, 사는 놈이면 사는 놈일수록 골수에 사대주의가 박혀서 중국 다음에 일본, 일본 다음에 미국, 여하튼 사대할 나라는 귀신같이 찾아내 알아서 기니, 참 그 요지경 속을 알다가도 모르곘단 말이지.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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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4-18 0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휴 리뷰 읽으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네요, 꼬마요정 님. 부모님이야 걱정하는 마음에 그러셨다 하지만 먹지 못하는 아이에게 자꾸 더 먹으라고 하시다니. 그걸 다 먹어야 할 어린이 꼬마요정 님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먹는 양이 있는데 그보다 더 적게 먹어라, 많이 먹어라 하는 것은 잔인합니다. 그래도 다정한 남편 덕에 먹는 재미를 알아가신다니 그게 너무 좋아요. 맛있는 음식 잘 드시고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건강하게 지내세요, 꼬마요정 님!!

꼬마요정 2022-04-18 23:5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저도 지난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결국 키는 크지 않았답니다. ㅎㅎㅎ 그래서 전 애기들 먹고 싶어하면 주고 싫어하면 기다리게 되었어요. 먹는 즐거움을 뺏으면 안 되니까요. 그래도 남편이 먹는 거 좋아해서 같이 먹으러 다니다 보니 제법 잘 먹고 있답니다. 그게 벌써 연애까지 포함해서 16년 째네요. ㅎㅎㅎ 다락방님도 좋은 와인 즐기시며 요가도 재미나게 하시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책 읽으며 건강하세요^^ 함께 행복하게 지내요!!!

감은빛 2022-04-21 1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밥을 안 먹는다고 쫓아내다니! 무서운 부모님이셨네요.
저 역시 키도 작고 체구가 작은 어린시절을 보냈는데,
저는 밥만 엄청나게 많이 먹었어요.
제 도시락 밥통은 친구들의 것보다 1.5배는 컸고, 밥을 꾹꾹 눌러 담아 주셨죠.
그 밥을 쉬는 시간에 다 먹어 치우고 점심 시간에는 매점으로 달려가 라면을 또 먹었죠.
그렇게 많이 먹어도 키도 안 크고 살도 안 찌더라구요.

한편 꼬마요정님 이야기를 읽으며 군대 시절 먹는 걸로 고문하곤 했던 선임병들이 떠올랐어요.
식판에 밥을 산처럼 퍼주고는 시간 안에 다 먹으라고 협박하고 조금이라도 남기면 두들겨 패곤 했던 인간들.
부식으로 나온 빵을 10여개 모아서 제 관물대에 넣어두고 저녁까지 다 먹으라고 강요했던 인간들.
저녁까지 못 먹으면 취침 점호 때 관물대 검사를 해서 벌을 주고, 점호 때 지적받았다는 이유로 남들 잘 시간에 화장실에더 두들겨 맞곤 했던 기억들이 떠올랐어요.

이 책 저도 읽어보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읽으라고 권하고 싶네요.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꼬마요정 2022-04-22 00:39   좋아요 0 | URL
아니, 그렇게 드셨는데 키가 안 컸다구요? 저도 잘 먹었어도 안 컸을지도 모르겠네요. 엄마가 조금만 먹는 것에 관대했더라면 지금의 전 어땠을까요 ㅎㅎ

어릴 때 부모님이야 키 크라고 먹는 걸 강요한다지만, 군대에서 먹는 걸로 고문하는 건 진짜 나쁜 짓이네요. 사람이 먹고 자고 내보는 게 진짜 중요한데, 게다가 식량 부족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도 많은데 그런 식으로 강요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건 진짜 나쁘다고 생각해요. 어줍잖은 권력으로 사람을 그렇게 짓밟으면 기분이 좋을까요? 사람을 그렇게 때리고 나면 기분이 나아질까요? 슬프고 화나는 일이네요ㅜㅜ

책이 참 맘에 들었어요. 괜히 생각에 잠기게 되고 맘이 아프더라구요. 옛날 생각도 나고… 재미를 느끼시면 좋겠어요. 전 좋았는데 감은빛님껜 어떨지.. 떨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