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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트벨트의 밤과 낮 - 여성 철강 노동자가 경험한 두 개의 미국
엘리스 콜레트 골드바흐 지음, 오현아 옮김 / 마음산책 / 2020년 12월
평점 :
여성주의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은 오랜만에 쉽게 잘 읽혔던 책이었다.(물론 철강 회사의 전문 용어들이 나올 땐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쉽게 읽힌다는 것은 작가의 회고록 스타일의 책이어 에세이를 읽는 가벼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읽다 보면 역시 쉽게 물 흐르듯 술술 읽히지는 않았다. 읽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도 들었었고, 문화가 다르다 보니 어떤 부분에선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지 않을 것 같은 상황들이 미국이라 다르구나! 싶다가도, 이 책을 통해 차별주의에 대한 야비한 밑바닥 면면들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생각보다 천천히 읽히기도 했다.
골드바흐 작가는 밀레니얼 세대 여성이다. 대학시절 남자 동기생 둘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인한 양극성 심리 장애를 겪는 과정에서도 힘들게 공부를 했다. 막상 졸업을 했지만 더 좋은 보수가 있는 직업을 갖지 못하니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하여 친구의 조언으로 어린시절 고향에서 붙박이 풍경이었던 철강회사에 입사를 한다. 책은 블루칼라 노동자의 삶을 여성의 몸으로 3년동안 일하면서 접했던 그 상황과 느낌을 기록하였다.
책의 말미에는 그래서 뭔가 극적인 반전이 있을 것 같았지만 그렇진 않은 것 같다. 3년동안 열심히 일해 돈을 모았고, 잠깐 헤어졌던 남친 토니와 다시 재회하여 결혼을 하여 아이도 낳은 듯해 보였고, 대학원 학위도 이수하여 대학 강사 일도 시작해 보인 듯하다.
하긴 회사에서의 극적인 반전이 이루어진다면 그건 소설이지, 일반인의 삶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작가에게 높이 살만한 긍정을 찾는다면 학창시절 동기 남학생 둘에게 당했던 성폭력의 대처에 대한 용기있는 행동과(골드바흐의 편에서 옹호해준 이들이 한 명도 없어 패하여 결국 양극성 장애에 시달리게 되었지만.) 심리적 장애를 가진 상태에서 직장생활 특히나 고된 노동을 해나가기는 쉽지 않았을터인데 여자라서 못해낼 것이란 편견을 깨고 당차게 남자의 몫을 해나간 의지력은 대단해 보였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고 여성주의에 대한 편견이 심한 남성들이 많은 환경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골드바흐는 현명하게 잘 대처하고 오히려 동료들과 잘 어울리는 걸 보면 골드바흐의 강단과 의지가 돋보이기도 하고, 미국 사회 문화의 특이성이 엿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골드바흐는 내내 여성을 업신여기는 남성 동료들 얘기는 종종 있었지만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나 인종차별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가 없는 걸 보면 어쩌면 본인도 ‘미국식 개인주의‘에 포함된 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사생활에 파고드는 건 그들의 문화가 아닐 수도 있었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골드바흐가 노동을 하는 직장 동료들에 대한 묘사 부분에선 존경심이 간혹 비춰보인다. 공감이 되기도 했다.
나도 이십 대 초반 첫 직장을 어린시절 동네의 붙박이 풍경이었던 S회사의 생산직에서 몇 달간 일을 했던 적이 있었다. 연수를 받고 부서를 배치받아 일을 한 곳은 제품의 불량을 찾는 일이었다면 다시 부서를 옮겼을 때는 약품 분석을 통해 제품의 불량이 일어나기 전 상황을 체크해야 하는 일이었던 것 같다. 골드바흐가 일을 한 고된 강도의 일과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생산직의 일을 한다는 건 아무래도 체력적인 면에서 상당히 버티기 힘든 일이어 골드바흐의 몸이 아플 때 일을 묵묵히 해내는 장면에선 나도 힘이 들었다. 나는 주야간의 근무 교대가 넘 힘들어 고민을 하고 있던 차에 전문직 일을 해 나가는 게 몸이 덜 힘들겠구나! 싶어 이직을 하였는데...전문직 일은 몸은 덜 힘들어도 정신적으로 힘들었....ㅜㅜ 그래서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암튼 책을 읽으면서 잠깐 잊고 있었던 그때 S회사에서 일을 했었던 잠깐의 그 시간들이 되살아 났다. 나는 내가 너무 어린시절 사회 물정을 몰랐던 사회 초년생이어서 였던지...회사에선 차별이나 편견을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냥 그런가보다.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시절엔 노조가 없는 회사로 유명했으니 쉬쉬하며 가려진 곳들이 많아서였던가? 싶기도 하다만...암튼 내 기억엔 일 하는 노동자들이 남녀 누구나 자신이 일 하는 분야에서 내가 이쪽에선 전문가다!라는 약간의 긍지를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다. 오래 일한 선배들이 늘 그런 자긍심을 키워주면 새내기 직원들은 선배를 본받아 전문가가 되고, 돈도 많이 벌어야겠다며 그들을 롤모델로 바라보게 된다. 어쩌면 이런 환경도 회사에서 세뇌당한 직원 교육의 영향일 수도 있겠으나, 열심히 일 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작업복을 입고 셔틀 버스를 타고 출퇴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 자리에서 진지한 얼굴로 땀을 흘리며 일 하는 모습이 상상되어 경이롭게 보아진다. 물론 업무의 과중함과 교대 근무의 고단함이 안쓰럽게 느껴져 노동의 대가로 받은 그들의 급여는 좀 다를 것이라고 느껴진다.(아마도 내가 경험으로 인해 골드바흐의 직장 동료애 부분에서 특별히 공감되어지는 것 같다.)
암튼 그래서 늘 돈을 함부로 쓰지 말아야지! 생각은 하는데 늘 나갈 곳은 정해져 있으니 급여는 들어왔다가 잠깐 스쳐 빠른 속도로 나가버린다.다람쥐 쳇바퀴 도는 월급 인생을 사는 게 허무해 보여 아이를 가지며 직장을 관뒀지만 남편의 월급 인생에 얹혀 사는 느낌이 들곤하여 노동이란 단어에 대하여 어떻게 뭐라고 글을 써야 하는 것인가? 조금 주춤되기도 한다. (주춤한 것 치곤 평소보다 더 많이 써버린..)
지금은 무보수의 가사 노동을 하고 산다만(아, 무보수는 아니구나? 내가 알아서 책을 구입하는 비용이 가사 노동에 대한 나의 월급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어서....^^;; 지금은 미술 수업을 받는 것으로 스스로 월급 인상을 하였고...^^;;;)
며칠 전 D님이 언급하신 가사 노동에 대해 며칠 생각을 해보았다.
나의 가사 노동이 없다면 지금의 남편과 아이들은 각자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집에 얼른 들어가 세탁기를 돌려야 내일 입고 갈 새 속옷이랑 새 양말이 마련된다. 반찬을 만들어 둬야 며칠 안심하고 밥을 먹을텐데...암튼 자질구레한 일들이 퇴근 후 얼른 집에 들어가야 할 이유가 되는 게 싫을테고, 황금같은 주말에 밀린 집안 일로 시간을 보내는 건 더더욱 싫을 것 같다. 나는 직장생활을 했을 때 그랬었다. 집안 일을 하는 게 넘 싫었었다. 그 귀찮은 일을 내가 대신해 주고 있으니 식구들은 얼마나 고마울까? 싶었지만 식구들은 잘 못느끼는 것 같아 나는 수시로 내가 하고 있는 가사 노동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 다행스럽게도 남편은 숙소 생활로, 아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덕에 뭐하냐고 전화를 하면 남편은 매번 세탁기에 빨래를 돌린다거나 저녁을 하고 있다고 하고, 아들은 주말에 몰아서 세탁기를 돌리는지 늘 시간을 내야만 빨래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제 두 딸만 좀 더 커서 밖으로 내보내면 가사 노동의 중요성을 아주 크게 깨달을 것이다.(그럴 것이라 믿는다.)
모든 인간은 보수가 적든 많든 노동을 해야 한다. 노동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 같은 노동이라면 좀 덜 힘들게 일 하면서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이라면 참 좋을 일이다.
하지만 나는 경력단절 여성이라, 집에서 가사 노동을 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가사 노동을 하고 있구나! 하고 살아 오다, 몇 해 전부터 생각을 바꿔 가사 노동에서도 좀 더 전문가가 되려고 내가 이 일을 하고 있구나! 그런 생산적인 마인드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것이 나의 정체성인 것인가? 알 길은 없다만... 여성 철강 노동자의 삶의 이야기인 이 책도 분명 긍정의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맡은 자리에서 열심히 일을 하며 내 생활을 바꿔 가는 것! 뭔가 그런 긍정의 느낌을 받았다.
자극을 받고 영향을 받는다는 건 아마도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