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의 이론과 비평>책을 읽다가,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 단편만 잠깐 읽었는데
순간 멈칫했다.
아...작가님은 누구신가요?
어쩜, 여성들의 심리를 그것도 어린 아이를 키우는 전업 주부의 심리를 확대경을 들고 들여다보는 것처럼 이처럼 세밀하게 표현한단 말인지!
19호실을 찾아간 수전이 너무 안됐어서
이 책을 읽은 그 밤을 잊을 수 없었다.

지금은 나도 아이들 방학.
비록 어린 아이들이 아니고,
조금 커다란 아이들이지만 방학은 방학이다.
나도 수전처럼 쌍둥이에게 폭풍처럼 화를 내었더니,
아름다운 두 아이들이 잔뜩 움츠러든 채 손을 잡고 서서
당혹스러움과 경악이 담긴 시선으로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292쪽 8 째 줄에서 11 째 줄.)
우리집 쌍둥이는 책의 문장처럼 움츠러들어 손을 잡고 당혹스러워하거나 더이상 경악하지 않는다.
좀 컸다는 말이다.
그래도 애들 방학은 방학.
나도 수전처럼 ‘19호실‘에 가고 싶다.

호기롭게 세웠던 연초의 계획들은 아이들의 방학으로 인해,
어그러지고, 좌초되었다.
주부에게 연초 계획을 지켜내기란 1 월이 아니라, 3 월 2 일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그래도 방학이 시작되면 새벽에 애들을 깨워 아침 밥을 차려 주느라 수선을 떨지 않아도 되니, 오로지 그 시간은 나의 시간이 되어 좋다.
삼 시 세끼 차리는 것도 힘들고,
뭔가 쫓기듯 정신 없고, 피곤하여 집안 일이 눈 앞에 쌓여 있을 때,
또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한만큼 계획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 등등 그 순간 수전처럼 19호실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19호실이 그리 깨끗하지 않고, 지저분하다는 문구가 생각이 나 생각을 고쳐 먹는다.
이렇게 생각을 고쳐 먹는 나!
아직 덜 힘들다는 말일터,
좀만 힘을 내보자.
방학은 시작이 있다면, 끝도 있는 법이다.
오늘도 밥을 차리고, 또 차린다.

또 다른 길로 샜지만,
도리스 레싱의 단편집 이 책은 완독해야지 싶다.
19호실 한 편만 읽으려 했건만,
그래선 안될 것 같은 책이다.

수전은 요리와 청소를 하는 파크스 부인을 도우려고 안으로들어갔다가, 아이들의 옷에서 바느질거리를 찾아냈다. 그녀는매일 바쁘게 할 일을 찾아냈다. 한 학기가 끝날 무렵, 수전은 자신이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이해했다. 첫째, 집에 아이들이 없는 시간 동안, 그녀는 아이들이 항상 옆에 있을 때보다 더욱더 바쁘게 지냈다는(일부리 자신을 바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남몰래 경악하며 당황했다. 둘째, 이제 앞으로 5주 동안 집에 아이들이 가득할 테니 그녀가 혼자 있을 수 없게 됐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있었다. 그녀는 앞으로 5주 동안 자유를 잃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벌써부터 혼자서 바느질과 요리를 하던 시간을 - P290

되돌아보았다. 5주 동안의 방학 뒤에 이어질 두 달 동안의 새로운 학기가 그녀를 유혹하며 자유를 말했다. 하지만 무슨 자유인가? 사실 그녀는 지난 학기 동안 사소한 집안일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 그녀는 침실 창가의 커다란 의자에 앉아 셔츠나 원피스를 바느질하는 자신의 모습, 수전 롤링스를 바라보았다. 바느질하는 대신 그 옷들을 그냥 새로 사도 될일이었다. 커다란 부엌에서 몇 시간 동안 케이크를 만드는 자신의 모습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보통 그녀는 케이크를 사서 먹는 편이었다. 그녀의 눈에 보인 것은 외로운 여인이었다. 확실했다. 하지만 그녀는 외롭다고 느끼지 않았다. 우선 파크스 부인이언제나 집 안 어딘가에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적이 가까이 있는것 같은 느낌 때문에 정원에 나가는 것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그 적의 정체가 짜증이든 초조감이든 공허함이든, 손을 바삐 놀리고 있으면 왠지 적이 덜 위험해 보였다.
수전은 매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런 감정은 현명하지 않았다. 그녀답지 않은 감정이었다. 소중한 친구이자 남편인 매슈에게 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정원으로 나가면, 그러니까 아이들이 없을때 정원으로 나가면 꼭 거기서 적이 나를 공격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적이라니, 무슨 적, 수전?"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당신 병원에 한번 가보는 게 낫지 않겠어?"
그렇다, 절대로 이런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다. 수전은 방학이 반가웠다. 기운이 넘치고 똑똑한 네 아이는 요구하는 것도 많았 - P291

다. 그래서 수전은 하루 중 단 한순간도 혼자 있을 수 없었다. 수전이 방에 있을 때에도 아이들은 바로 옆방에 있었다. 아니면 수전이 자기들을 위해 뭔가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점심때나 차 마실 시간이 되고, 아이들 중 한 명을 치과에 데려가야 하는 일도 생겼다. 뭔가 할 일이 있었다. 5주 동안,
천만다행이었다.
이토록 반가운 방학이 시작된 지 나흘째 되던 날, 수전은 쌍둥이에게 폭풍처럼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 아름다운 두아이는 잔뜩 움츠러든 채 서로 손을 잡고 서서 (이 광경을 보고 수전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당혹스러움과 경악이 담긴 시선으로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 차분하던 엄마가 이렇게 고함을 지르다니. 무엇 때문에? 아이들이 엄마한테 간단한 장난을 치려고 한 것이 이유였다. 그냥 터무니없는 장난 두 아이는 서로를바라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는 듯 가까이 붙어 서더니, 손에 손을 잡고 가버렸다. 수전은 거실에 혼자 남아 창턱을 매달리듯 붙잡고 심호흡을 했다.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수전은 위의 두 아이에게 머리가 아프다고 말하고는 방에 들어가서 누웠다.
큰아들 해리가 동생들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엄마가 머리가 아프셔서 그래." ‘괜찮아‘라는 말이 수진에게 고통스럽게 들렸다.
그날 밤 수전은 남편에게 말했다. "오늘 내가 쌍둥이한테 말도안 되는 일로 고함을 질렀어." 비참한 표정이었다. 매슈가 부드럽게 말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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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1-11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밥을 차리고 또 차린다... 아. 나무님. 체험에서 나오는 글이여서 더 감정이 올라오셨겠어요. 전에도 몇 차례나 말씀드렸지만 밥 차리는 거 너무 어려운 일이라서 아이들 방학이 될 때마다 엄마의 고단함은 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요. 이런 걸 보면 저는 너무 쉽게 살고 있는 게 아닌지...ㅠㅠ 나무님 힘내세요!

책읽는나무 2023-01-11 14:40   좋아요 0 | URL
이 좋은 책을 이렇게 허접하게 기록해도 되나? 싶긴 한데요~
정말 요 밑줄 그은 부분은 읽으면서 완전 대공감되었어요ㅋㅋㅋ
밥 차리는 상황!!
아....ㅜㅜ
그렇다고 매번 시켜먹거나, 나가서 사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ㅜㅜ
반찬거리는 없고, 입맛에 맞는 반찬 집도 없고...쩝~
그래서 그냥 꾸역꾸역 먹고 있어요ㅋㅋ
좀 열심히 해보려고 도서관에서 요리책도 빌려왔는데 며칠 째, 처박아뒀어요.
화가님은 남편 분 참 잘 만나셨어요. 칭찬 많이 해드리세요^^
전 방학이 끝나기만을!!!🥺☺️☺️

독서괭 2023-01-11 17: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방학에 명절에.. 힘든 1,2월이군요ㅠㅠㅠ 책나무님. 집안일에 너무 힘쓰지 마시고 내려놓고 충분히 쉬시길 빕니다. 저는 아침에 꼭 밥 먹이려고 하다가(요리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차려주는 것이지만) 그냥 고구마, 샌드위치, 누룽지 등으로 간단히 먹이는 일이 늘어나면서 죄책감 갖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그래도 애들 잘 크더라고요? ㅎㅎ
19호실이 이런 내용이었다니. 꼭 읽어봐야겠어요!

책읽는나무 2023-01-11 22:39   좋아요 1 | URL
방학은????
갇히는 신세죠ㅜㅜ
요즘 집안일도 뒷전이고, 애들한테 돌아가면서 시키기도 하고, 그러는데도 집안일이 늘 밀려 있네요? 참 이해가 안됩니다??
아마도 다 큰애들이 셋이라 그런 것 같아요. 빨리 내보내야 내 시간이 생길 것 같아요ㅜㅜ
아침밥은....ㅜㅜ
제가 아침밥을 꼭 먹어야 하는 체질이라 식구들도 그리 만들어버렸나봐요.
아들은 늦잠 자니까 안차려 주는데 딸들은 굶고 싶다 그래놓곤 날 닮아 배고픈 걸 못참고...배가 고파 속 울렁거린다고 엄살 떨고~ㅋㅋ
요즘 아침밥을 간단히 차려 먹으려고 엄청나게 궁리 중입니다. 샐러드 좋네? 하다 준비하면 와~ 손 엄청 가구요. 누룽지 좋아! 끓이면 시간 많이 가구요. 샌드위치도 빵 굽고 준비해서 다 먹고 나면 설거지거리가???
애들이 많다보니 모든 게 일입니다!ㅜㅜ
답은 빨리 키워서 빨리 내보내는 거!
그것만 바라며 오늘을 살고 있네요ㅋㅋㅋ
19호실 진짜 책 들고 가고 싶어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