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브론테의 시 몇 편을 옮겨둔다.

에밀리 브론테는 영국 중북부 지역에서 살았다.
그리하여 그 속에서 시의 재료들을 찾았다고 한다.
히스의 거칠면서 성긴 날카로움, 그 위를 불어대는 나지막하면서도 강렬한 바람 소리, 누군가의 손길에 흩뿌려지는 듯 사방에 짙게 드리우다 어느새 사라지는 안개와 구름, 그 속에서 생명을 이어가다 사그라지는 풀들과 나무들 등등이 그녀의 작품 속에 곧잘 등장했다고 한다(175쪽)
그리고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두 언니를 잃어 일찍부터 죽음이란 것에 밀접하게 고민하는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시에는 매서운 자연풍광과 죽음에 대한 서늘한 쓸쓸함이 깃들어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마냥 우울하지 않은 느낌이다.
에밀리 브론테는 시적 재능과 소설가적 재능 두 가지를 모두 타고난 글 쓰는 여성작가였다.



상상력에게

긴 하루의 근심과 아픔에서 아픔으로세상 변하는 것에 지쳤을 때,
길을 잃어 절망에 빠지려 할 때,
그대의 다정한 음성이 나를 다시 부른다.
오 나의 진실한 친구여,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그대가 그런 어조로 말할 수 있는 한!

그 없는 세상은 그토록 희망이 없다니.
그 안의 세상을 나는 두 배로 소중히 여긴다.
속임수, 증오, 의심, 그리고 차가운의혹이 결코 일어나지 않는 세상.
그대와 내가, 그리고 자유가반박할 수 없는 권위를 지니는 곳.

무슨 문제가 되리, 사방에
위험과 죄와 어둠이 있고,
그저 우리 가슴속에
밝고 고요한 하늘을 지녀,
겨울이라고는 전혀 알지 못하는태양의 수만 빛으로 따뜻하기만 하다면?

물론 이성은 자연의 슬픈 현실에 - P39

종종 불평하기도 하겠지.
그리고 아픈 가슴을 향해 말하기도 하겠지
소중한 꿈들은 늘 분명 헛되어져 버린다고.
그리고 진리는 이제 막 피어난 환상의 꽃들을
무례하게도 짓밟아 버릴 수도 있어.

그러나, 그대는 늘 그곳에 있어,
서성이는 환상을 되가져 오고,
엉망이 되어 버린 봄 너머 새로운 영광을 숨쉬며,
죽음에서 아름다운 생명을 불러,
성스러운 목소리로, 그대의 세상처럼 빛나는
현실의 세상에 대해 속삭이지.

나는 그대의 유령 같은 축복을 믿지 않으나,
그러나 저녁 고요한 시간,
결코 사그라지지 않는 고마움으로
그대, 인자한 힘을 환영한다네.
인간 근심의 확실한 위무자,
희망이 절망일 때, 더 다정한 희망! - P41

휴식의 땅은 멀리 있구나

휴식의 땅은 멀리 있구나
폭풍우 물마루 이는 많은 산들과
초록이라곤 전혀 없는 드넓은 사막 사이
수천 마일이 펼쳐지네

맥없이 피곤한 나그네
마음은 어둡고 눈은 흐릿하여
희망도 위로해 주는 이도 없이
기진맥진 쓰러져 곧 죽을 듯하네

그는 종종 무자비한 하늘을 올려다보고
종종 따분한 길을 건너다보며
종종 드러누워인생의 피곤한 짐을 내버리고 싶어 하네

그러나 기진맥진하나 슬프지는 않은 사람
그대의 햇살 없는 길을 시작한 이래
뒤에 무리들이 잇달아 오니
그러니 노역이 다할 때까지 계속 가네

그대 여전히 절망을 통제하고 있다면
그대 가슴속 그 속삭임을 잠재우라
그대는 마지막 목표에 닿을 것이네
휴식의 땅을 얻을 것이네. - P71

잠은 내게 기쁨을 주지 않아

잠은 내게 기쁨을 주지 않아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
절망에 내준 내 영혼
한숨 속에 살고 있어


잠은 내게 휴식을 주지 않아
나의 깨어 있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죽은 자들의 그림자가
내 침대 주변을 감싸고 있어

잠은 내게 희망을 주지 않아
그들은 곤한 잠을 잘 때 와서
구슬픈 모습으로
어둠을 깊게 하지

잠은 내게 힘을 용감하게
새로워지는 힘을 주지 않아
나는 그저 거친 바다를
어두운 물결 위를 항해할 따름이야

잠은 내게 친구를 주지 않아
위로하고 견디도록 도와주는 - P75

그들 모두, 아, 어찌나 경멸적으로 바라보는지
그래서 나는 절망하네

잠은 내 상처 입은 마음을
잘 짜맞추려는 소망도 주지 않아
내 유일한 소망은 죽음의 잠 속에서
잊어버리는 거야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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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2-12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민음사에서 나온 이 시집시리즈 좋은 것 같더라구요.
이 책은 아니고 전에 황무지를 샀었어요.
구하기 힘들어서 한참 검색했었는데, 몇 년 뒤에 이 시리즈가 나와서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잘읽었습니다. 책읽는나무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책읽는나무 2022-12-13 07:52   좋아요 1 | URL
저도 이번에 민음사 시선집을 눈여겨보게 되었어요. 그동안은 본 듯 만 듯 하고 지나쳤는데 이젠 좀 눈에 들어옵니다.
황무지는 누구의 시선집인가요? 제목은 들어본 듯도 한데...
암튼 요즘은 몰랐던 시인을 많이 알게 되었네요^^

희선 2022-12-13 0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밀리 브론테가 쓴 시도 있었군요 소설 한권밖에 못 봤지만... 소설도 그렇고 시에도 히스의 자연풍광이 나오는군요 히스 잘 모르지만...


희선

책읽는나무 2022-12-13 07:53   좋아요 0 | URL
소설보다 시를 먼저 썼더군요.
시도 잘 쓰는 작가였더군요.
소설은 폭풍의 언덕 한 권만 낸 것 같구요.
저도 빨리 소설을 읽어봐야 히스의 폭풍같은 바람을 느껴볼텐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