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작업가설,
3장 대역부인과 볼모
4장 여성노예 편을 읽게 되면,
옛 과거 전쟁에서 힘으로 승리한 남성들에게
전쟁에서 패배한 남성들은 죽임을 당하고,
아이와 여자들은 노예가 되었다.
여자들이 재산의 한 부분으로 종속된 것의 당연한 수순이 되었다.
노예 여성들은 경제적 착취와 성적 착취를 당연시 당했다.
여성들 대부분이 강간을 통해 쉽게 강제되었는데, 어머니가 되면 여성들은 자녀들과 자녀들의 친척에게 충성스러워지며, 관계를 맺은 부족과 잠재적으로 강한 유대를 맺게 된다고 하였다.(86쪽)
강한 모성의 생물학적 기능들이 결국 볼모 역할에 쉽게 적응하게 만들었고, 사유 재산, 노예 제도의 근간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콕 집어 설명하니 뭐라 할 말이 없다.
강간이 가부장제의 시초라거나,
남성들은 정복하고 보호하기 때문에 사물화를 행하는 주체가 될 수 있었지만, 여성들은 정복당하고, 보호받기 때문에 사물화 된다.(172쪽) 라는 문구도 정확해 보여 새삼 놀랍고, 퍽이나 서늘한 느낌도 든다.
읽을 수록, 그동안 알고 있었던 듯 한데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눈치채지 못한 사실들을 알려주는 듯 하여, 멍~한 느낌이랄까!
여튼, 흥미롭다.
부지런히 계속 읽어나가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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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은 자신이 모르는 부족의 구성원에 대해 폭력적으로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사냥과 먼 거리 여행을 해본 경험으로 쉽게 탈출한 뒤 전사가 되어 돌아와서 복수를 하려고 할 수도 있다. 그 반대로 여성들은 대부분 강간을 통해 쉽게 강제될 수 있다. 결혼을 하거나 어머니가 되면 여성들은 자녀들과 자녀들의 친척들에게 충성스러워지며, 관계를 맺은 부족과 잠재적으로 강한 유대를 맺게 된다.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이것이 사실상 노예제가 역사적으로 발달한 방식이다. 다시 한번 여성의 생물학적 기능은 여성을 이 새롭고 문화적으로 창조된 볼모 역할에 쉽게 적응하도록 만들었다. 또 어떤 이는 역사적 시대에 지배엘리트들 사이에서 번번이 이용되었던 것처럼 여성이 아니라 양성의 아이들이 부족간의 평화를 보장하기 위에 있는 중인해서 볼모로 이용되었을 수도 있다고 가정하기도 한다. 아마 여성 교환도 그런 방식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양성의 아이들은 교환되었고, 성숙하면 새 부족과 혼인을 했을 것이다. - P86
지배엘리트들의 왕권찬탈자로서의 이해관계로 인해, 그들이 확립한 권력의 형태는 이를 관찰한 어떤 사람이 쉽게 ‘세습적 관료주의‘(patrimonial bureaucracy)라고 불렀던 형태를 갖게 되었다. 그들의 권력이 얼마나 안정적일지 여부는 권력의 중요한 하급지위에 가족구성원들을 얼마나 많이 임명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이 초기시대에 그런 가족원들은 매우 종종 여성- 부인, 첩, 딸-들이었는데, 이를테면 이들은 남편/아버지/왕을 섬기는 최상위 신하들이 되었다. ‘대역부인‘ (wife-as-deputy)의 역할은 이렇게 출현하였으며, 이 시기 이후 그런 역할을 맡는 여성들이 계속 등장하게 된다. - P128
피정복여성들에 대한 강간은 두 가지 측면에서 피정복민에게 영향을주었다. 강간은 여성들에게 불명예를 안겨주었고, 강간에 내포된 의미는그들의 남성들을 상징적으로 거세시키는 기능을 하였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부인과 누이. 자녀들의 성적 순결을 보호할 수 없는 남성들은 실로 성불능자이며 불명예를 당한다. 피정복집단의 여성들을 강간하는 관습은 기원전 두번째 천년부터 오늘날까지 전쟁과 정복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남아 있다. 이것은 죄수들에 대한 고문처럼 ‘진보‘나 휴머니즘적 개혁, 복잡한 도덕적 · 윤리적 동정에 대항해 온 사회적 관습이다. 나는 피정복여성들에 대한 강간이 가부장적 제도의 구조 속에 구축된 필수적 관행이며, 가부장제와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장 순수한 상태속에서 이러한 관계를 볼 수 있는 것은 계급관계가 형성되기 전에 가부장제 체계가 시작되는 바로 그 시점이다. 남성에게 명예란 자율성, 자신의 태도를 정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권력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자율성을 인정받을 권리 등을 포함한다. 그러나 가부장적 지배 아래서 여성은 자신의 태도를 정하거나, 자신을위해 무엇을 결정하지 못한다. 여성의 몸과 성적 서비스는 친족집단, 남편, 아버지의 처분에 달려 있다. 여성은 자녀에 대한 양육권과 권력을 갖 - P143
지 못하거니와 ‘명예‘ 또한 가지지 못한다. 여성의 명예는 처녀성과 남편에 대한 정숙한 성적 서비스 속에 존재한다는 관념이 기원전 두번째 천년에는 아직 완전하게 발달하지 못했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포로여성들의 성적 노예화는 사실상 가부장적 결혼과 순결을 여성의 ‘명예‘로 간주하는 이데올로기의 유지와 같은 가부장제의 발달과 정교화 과정의 한 단계였다는 것이다. 노예제의 문화적 발명은, 그것이 여성에 대한 실질적 정복에 의지하고 있었던 만큼이나 여성종에 대한 상징들의 정교화에 의지하고 있었다. 남성들은 자기 집단의 여성들과 나중에는 포로여성들을 종속시킴으로써, 다른 남성들을 성적으로 통제하는 상징적 권력을 배웠고 우월함을 표현하고 심리적으로 노예상태인 사람들의 계급을 만들어내기 위한 상징적 언어를 다듬었다. 여성들과 어린이들을 노예화하는실험을 해봄으로써 남성들은 모든 인간존재가 노예상태를 견딜 수 있는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들의 절대적 지배를 하나의 사회제도로 만들 수 있는 노예화의 형태와 기술을 발전시켰다. - P144
"남성들은 그들이 정복하고 보호하기 때문에 사물화를 행하는 주체가 되는 데 비해, 여성들은 그들이 정복당하고 보호받기 때문에 사물화된다." 지배당할 수 있는 어떤 집단에 속해 있다는 낙인은 애초의 구분을 강화시키며, 오래지 않아 여성들은 열등한 집단으로인식된다. 여성을 열등한 집단으로 보는 선례는 노예가 될 수 있는 다른 집단에게 그러한 낙인을 옮기는 것을 허용하게 되며, 여성의 가내종속은 그것으로부터 노예제가 사회제도로 발달하게 된 모형을 제공하였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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