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번 주 채플에서는 성가대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노래 제목은 " We will claim Victory", 어두움 속에서 괴로움 당할 때 나에게 승리 주신 주님께 감사하고, 예수 안에서 승리를 외치는 곡이었다. 성가대 지휘자는 잘 못해도 웃으며 부를 것을 신신 당부했다.
성가대석에 올라 순서지를 보니, 장애인의 날, 장애해방을 위한 채플이었다. 그래서 예배가 시작되고 찬양을 하기 전에 학교에서 장애우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너무나 가파른 언덕, 계속 되는 계단, 장애인 시설이라고는 사용할 수 없게 만들어져 있고, 식당가는 길은 보통 사람도 조심해서 내려가야 하는 가파른 계단...그들은 교내에서 어디에라도 간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고 갈 때마다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한, 그 높은 현실의 벽 앞에서 멈춰있었다.
무거워지는 마음,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이 스쳐갔다. 그리고 이어질 우리의 찬양...."승리를 외쳐야 했다" 그것도 웃으면서...난 이미 시작하기도 전에 당황해하고 있었다. 장애학우들의 문제 앞에서, 그 힘겨운 절망 앞에서 승리를 웃으면 외치는 비장애인들의 찬양 ?...표정은 이미 굳어있었고 이래도 되나하는 상념에 붙들려 시작을 놓쳐버렸다. 간신히 쫓아가면서 혼신을 다해 지휘하는 지휘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그 분의 당부가 떠올랐다. 하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상념들 속에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한계 상황 속에서도 승리를 외칠 수 있는거야, 그게 믿음이고 신앙이지"하는 변명이 스쳤갔다. 하지만 강자가 약자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은....적어도 내가 장애우들을 향해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복잡한 상념 속에 찬양을 끝내고 자리에 앉았다. 그 때 모두들 박수를 쳐주었다.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치는 박수였을까? 그 때 장애우들의 특송이 이어졌다. 초등학생 쯤 되보이는 남학생-아마도 성장이 일찍 멈춘 듯 했다-이 혼자 노래를 부르고 나머지는 수화를 했다. 그 찬양의 가사는 내 마음을 울려왔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다. 뜻하신 그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복받쳐 올라오는 눈물과 거친 호흡을 삼켜야 했다. 자기를 부인하고 모두를 위해 나아가야하는 좁은길 앞에서 난 아직도 두려워 서성이고 있다. 그런데 그런 내 앞에서 그들은 노래했다. 주님 말씀하시면 나아가고 멈춰서겠다고. 그 뜻 그대로 순종하겠다고. 천국은 어린 아이와 같은 이에 것이라 했던가? 그는 어린아이의 몸으로 노래했고, 다른 사람들은 몸으로 그 노래를 그려냈다. 하지만 그들은 주님 말씀하셔도 나아갈 수 없었고, 멈춰설 수도 없었다. 그들의 휠체어로는 순종할 수 없었다. 아니 그 휠체어가 문제가 아니라 그들 앞에 놓인 장애물이 문제였다. 바로 그들의 아픔에 무관심한 우리의 안일함이 순종할 수 없게 하는 장애물이었다. 그렇게 나의 안일함과 무관심이 그들 앞에 놓인 벽이요, 계단이요, 가파른 언덕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승리의 노래와 순종의 노래 사이에서 서성이는 나의 무거운 마음을 향해 설교자는 선포했다. 장애우는 "의미있는 사회적 약자" 라고. 정상인이 자신의 육체를 자랑하지 목하게 하는 의미있는 사회적 약자라고. 나에겐 그들이 나의 죄악을 비춰주는 거울이고, 그들의 약함이 나를 시험하는 걸림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