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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 ㅣ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신화 이해를 위한 “숨은 열쇠 찾기”. 저자는 그리스도 로마 신화를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필요한 열두 개의 열쇠를 숨겨두고 각자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찾아보라고 한다. 그러면 각자가 신화를 이해하는 자신만의 열쇠들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대인들의 상상력과 관점에서 형성된 상징이 가득한 신화를 해석하는 것은 그리 녹녹한 일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화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에게 이 제안은 군침이 돌게 하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장기 베스트셀러이고 신화에 대한 붐을 일으킨 책이지 않은가?
첫 장 ‘잃어버린 신발을 찾아서’를 읽으면서 잔잔한 흥분과 설레임을 느끼며 나머지 부분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 뿐 아니라 성경과 우리의 고전 동화에 이르기까지 ‘잃어버린 신발’이 나타나는 공통점을 보여주고, 그 의미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둘째 장부터는 그 기대만큼의 실망이 마지막 몇 장에 이르기 전까지 계속 되었다. 얼마간은 책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이 책을 왜 샀는가 돌이켜보게 되었다. 베스트셀러라는 점을 너무 과신한 실수는 아니였던가 등등. 구입동기는 결국 기억해내지 못했지만 그 질문에는 이런 책을 선택한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않은 바람이 담겨있던 것만은 분명했다.
두 번째 장부터는 깊이 있는 질문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종종 너무 허무하게 끝나버린다고 느껴지곤 했다. 때론 유치해보이기까지 하는 윤리적 명제로 마무리되기도 해서 당황스러웠다. 넉넉하게 잡아서 네 개의 장 정도는 만족스러웠지만 나머지 부분에서는 도대체 열쇠가 무엇인지 찾기가 어려웠다. 억지로 찾아낸 열쇠는 너무 단순하고 쉬운 것이어서 설마 이걸 찾으라고 그 긴 이야기를 전개시킨 것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몇 장은 열둘이라는 숫자에 맞추기 위해 억지로 끼워넣은 것 같다는 혐의를 지우기 어려웠다.
물론 나의 상상력이 이 책의 깊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열두 개의 열쇠를 찾게 하기 위한 것이라기엔 너무 장황했거나, 너무나 크고 단순한 열쇠를 위해 주변에 너무나 복잡한 그림을 그려 넣은 것 같았다. 저자가 5장에서 나무에 대한 예의를 강조했건만 이 책이 불필요한 부분을 위해서 너무나 많은 나무를 죽인게 아닌가라는 의문마져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난 후에 내 안에 그리스 로마 신화를 위한 나만의 열쇠 꾸러미 하나가 남겨져 있었다. 신발, 뱀, 풍요의 뿔, 디오늬소스의 부활이나 여러 이름들의 상징성, 그리고 복잡한 신들의 세계와 족보에 조금은 익숙해진 점.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매혹적인 상상력에 더 많은 관심이 생긴 점. 또 아테네 올림픽 개막식 공연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었던 점.
이미 신화의 정원을 더 거닐어 보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 깊이 뿌리내리고 그 미로에 내 발걸음이 조금은 익숙해져 있었다. 아쉬운 점이 적지 않았지만 어쨌든 저자의 약속대로 난 어느새 신화라는 이름의 자전거를 혼자 타고 나아가고 있었다. 이런 변화의 측면에서 다시 돌아보니 그 불만들이 사그러들었다. 다소 장황해 보이던 측면은 신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이고, 너무 쉬운듯 보인 측면은 신화의 정원을 가볍게 산책하도록 도운 것임을 알게 되었다. 결국 내 아쉬움은 저자가 의도치 않은 것까지 기대했던 내 욕심의 결과였을뿐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입문서로서는 그리 부족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신화가 인간 이해의 열쇠이고 그것이 목적이라면 그리스 로마 신화보다는 동양과 우리의 신화에 먼저 다가가야 하지않을까? 그렇게 한다면 저자가 말하듯 신화의 의미를 알기 위해 신화를 타고 눌러야 하는 우격다짐도 불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신화라면 더더욱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을테니까. 사실 서양의 신화도 저자가 말하는 그런 우격다짐 없이도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다. 그 신화의 매력이 나를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