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오매는 반성폭력 운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방식이 바뀌었다는대단히 중요한 이야기를 이렇게 전했다. "사람들이 성폭력상담소에 있으면 힘들고 피폐하고 괴롭지 않냐고 물어봐요. 무겁고 어둡고 힘들게느껴지지만, 거기에 압도되고 짓눌리는 게 아니라 사건을 대응해보고시간을 버텨보며 깊이가 생기죠. 상담소에서 일하지 않았더라면 배우지 못했을 것 같아요." 인터뷰에 몰입하면 감동세포가 두 배로 활성화되는 나는 또 감화받아 고개를 끄덕끄덕 "피해자들의 어둡고 무겁고 아픈 이야기들을 꾸준히 듣고 견디며 길러진 힘이네요" 했더니, 그가 (이번에도 구름에 달 가는 말투로) "음, 어둡고 무거운 건 피해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굴러가는 방식이 그렇다고 생각해요" 했다. 상대방이 ‘무안하지 않게 말의 오류를 잡아주는 일은 나한테도늘 숙제였는데 지적받는 입장이 되어보니 그 자연스럽게 짚어주고 넘어가는 포인트와 뉘앙스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 P246
한국은 ‘유가족이 할 일이 너무 많은 나라‘라는 슬픈 말이 있다. 가족을 잃고 활동가가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소중한 가족을 잃지않기 위해서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 ‘직업적으로‘ 관심 갖고 목소리를내는 사람이 늘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공무원이나 교사 같은 안정된 직업을 선호하는 사회가 아니라 어떤 직업이라도 안정된 일자리가보장되고, 인간다움이 지켜지도록 싸우는 활동가가 대접받는 사회가더 좋은 사회라는 생각을, 김오매 인터뷰를 통해 믿게 됐다. - P247
《나, 조선소 노동자> 같은 책을 읽으면서도 자기가 산재 사고를당하리라고 생각하는 노동자는 거의 없다. 나부터도 그렇다. 그렇지만우린 누가 산재 사고를 말할 때 들어주는 사람이 될 가능성은 높다. 약자의 목소리를 ‘듣는 신체‘가 많아지는 세상. 적어도 그런 사고가 ‘비일비재한 죽음‘이라고 말하는 게 부끄러운 일임을 아는 사회를 만드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 같다. 김도현은 ‘비일비재한 죽음‘이란 단어를 없애기 위해 앞장서는 사람이다. - P276
비슷한 시기에 다른 친구도 죽음을 맞았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생은 유한하다 같은, 현의 머리에 있던 문장이 비로소 가슴으로 내려와 ‘쓸쓸하다‘는 감정이 되었다. - P279
그리고 개. 어릴 적 엄마가 술에 취해 있을 때 내게 다가와 손등을 핥아주는 존재, 사랑을 받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사랑을 주는 반려동물이다. "쓰고 나서 알았어요. 애정, 희망, 긍정의 순간엔 늘 작은 개가등장하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개를 키웠어요. 개가 갖고 있는 항상성, 항애정성을 어린 나이에 체감하고 있어서 그걸 신비화해서 보는 거 같아요. 일방적이고 조건 없이 주는. 작은 개에게 투영되긴 했지만, 인간은 아마도 해내지 못할, 불가능한 사랑에 대한 염원도 있는 것 같아요. 두려움 없는 사랑을 인간은 할 수 있을까요?" - P291
그러니까 ‘호시절‘이라는 시집은 ‘일러두기‘부터 허밍처럼 속삭인다. "우리 같이 있어요." 여기, 사람이 있는데 늘 하나가 아닌 둘이 있고, 혼자 있을 때조차도 고독이 너무 커서 자신을 둘로 분리해서 대화하고 있다. 《호시절》은 어떤 시집이야? 누가 내게 묻는다면이렇게 답하리라. "사랑 시집 // 이곳은 두 사람이 사는 집" (<영원 칸타타>>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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